최근 1950년대 이후 최고의 국극 배우에 도전하는 ‘소리 천재’ 정년이의 성장기를 다룬 웹툰 원작 tvN 드라마 ‘정년이’가 큰 인기를 끌며 종영한 가운데, 초고령화 사회로 접어드는 한국 사회에서는 다른 의미에서 ‘정년이(정년을 채우려는 이)’가 직장인들의 관심사다.
2일 재계에 따르면, 정년을 현행 60세에서 65세로 연장하는 비용이 연간 약 30조 달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이 김현석 부산대 교수에게 의뢰해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65세 정년 연장 도입 시 추가 고용 비용은 최대 30조2,000억원까지 불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한국경제인협회는 정년 연장에 따른 기업의 투자·신규 채용 위축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30조 2000억 원은 25~29세 청년 90만 명(지난해 평균 임금)을 신규 고용할 수 있는 금액이다.
요즘 직장인들의 트렌드는 승진하지 않고 정년까지 근무하는 것이라고 한다. 일명 ‘의도적 승진 기피(conscious unbossing)’다. 지금은 부장 또는 임원 같은 ‘별’을 달아준대도 싫다는 직장인이 많다. 그들의 목표는 임원이 되기 보다는 ‘가늘고 길게’ 회사에 다니고 싶어 한다. 이유로는 ‘책임지는 위치가 부담스럽다’가 압도적이었다. ‘승진이 현실적으로 어려워서’ ‘워라밸이 불가능할 것 같아서’ ‘회사 생활을 오래 하고 싶지 않아서’ 등이 뒤를 이었다.
산업계의 오랜 숙제였던 정년 연장은 최근 정치권에서 더욱 활발하게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지난달 27일 국회에서 열린 ‘정년 연장 쟁점과 과제 정책토론회’에서 “과거 62세였던 건강수명 지표가 70세가 넘었다. 일하고 싶으면 일할 수 있게 정년 연장 등 제도개혁을 할 필요성이 있다”고 밝혔다.
다만 기업들은 정년 연장에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다. 국내 기업들은 대부분 근속 연수에 따른 연공서열형 임금 체계를 택하고 있어 법정 정년을 연장하면 임금 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특히 경기침체로 긴축 경영을 해야 하는 기업들로선 정년 연장은 큰 부담이기 때문이다.
한경협이 지난달 종업원 300인 이상 국내 기업 121곳의 인사 노무 담당자를 대상으로 ‘고령자 고용정책에 관한 기업 인식 조사’에서 응답 기업 67.8%가 정년 연장 시 경영에 부담을 느낀다고 답했다.
하지만 고령화 시대에 정년 연장은 피할 수 없는 숙제인 만큼 선제 대응에 나서는 기업들도 있다. 이중 일률적 정년 연장을 택한 기업들이 눈에 띈다.
경총에 따르면, 동국제강은 올해 3월부터 정년을 만 62세로 연장했다. 크라운제과와 인천공항공사도 정년을 각각 만 62세, 61세로 늘려 운용 중이다. 중견기업에서는 소신여객자동차가 2016∼2019년 두차례 걸쳐 만 60세였던 정년을 만 65세로 연장했다. 여객 업체인 대진여객도 지난해부터 정년을 만 63세로 늘린 상태다.
일률적인 정년 연장이 부담스러운 기업은 퇴직 후 재고용이라는 대안을 채택하고 있다. 이 방안은 사측은 숙련된 노동자를 신입사원 연봉으로 고용할 수 있고, 근로자는 정년 이후 일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윈윈’ 대안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제도를 도입한 대표적 기업은 현대차그룹으로, 현대차는 2019년부터 기술직(생산직) 정년 퇴직자를 대상으로 ‘숙련 재고용’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기아도 정년퇴직 후 재고용한 ‘베테랑’ 제도를 2020년부터 운용 중이다. 포스코도 지난해 정년 퇴직자의 70%를 재고용하기로 합의하고, 고용 기간은 1년 단위이며 2년까지 연장했다.
●이미 임금피크제·퇴직전문가 재고용 다양화... "시기상조... 도입은 기업 자율 맡겨야"
또한, 기업들은 임금피크제 개시 상향, 퇴직 전문가 재고용 등도 택하고 있다. KT는 지난 7월 임단협에서 임금피크제 개시 연령을 기존 만 57세에서 58세로 높이는 데 합의했고 나이와 관계없이 월 임금의 80%를 주기로 했다.
SK하이닉스는 반도체 생산 현장의 최고 커리어 단계로 ‘마스터’ 직책을 도입해 정년 이후에도 이들이 기술력과 노하우를 발휘할 수 있도록 했다. 삼성전자는 전문성을 인정받은 직원들이 정년 이후에도 계속 회사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시니어 트랙’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LG전자도 연구 개발, 제조 등 특화된 일부 분야에 대해 정년 이후에도 별도로 자문 역할을 받는 제도를 도입했다.
전문가들은 일률적인 정년 연장보다는 생산성 등을 반영한 임금체계 개편 등을 통해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고령 인력을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한 목소리로 말한다.
임영태 경총 고용·사회정책본부장은 “단순히 법정 정년을 일률적으로 늘리는 것은 기업경영과 청년고용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며 “고령 인력 활용 확대를 위해서는 생산성과 임금 간의 괴리를 줄이고, 임금의 유연성을 강화할 수 있는 임금체계 개편이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용민 한국경제인연합회 팀장은 "산업별로 고령 노동자에 대한 필요 수요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획일적으로 65세로 정년 확대를 적용하기에는 이르다"며 "또한 청년층의 신규 채용 등이 줄어들 우려도 있어, 정년 연장은 어느 정도 기업의 자율에 맡기는 것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