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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모차르트하우스 비엔나 스트링 콰르텟 (Mozarthaus Vienna String Quartet)

세계 최고의 실력가로 결성된 현악 4중주 단원


완벽한 앙상블의 구현으로 국제적 명성을 얻고 있는 모차르트하우스 비엔나 스트링 콰르텟 (Mozarthaus Vienna String Quartet)이 지난 1월 18일(토) 저녁 8시 예술의 전당 IBK챔버홀에서 연주회를 가졌다. 한국의 린덴클래식 초청으로 이뤄진 이번 공연에서 세계 최고의 연주자들은 국내 팬들에게 멋진 연주를 선사했다.

모차르트하우스 비엔나 스트링 콰르텟(MVSQ)은 비엔나 국립음대에서 카라얀 장학재단의 장학생으로 만난 멤버들로 결성된 현악 4중주단이다. 2007년 알반 베르크(Alban Berg)현악 4중주단 해체 이후 비엔나 시에서 그 뒤를 잇는 국제적인 현악 4중주단을 만들기 위하여 2011년 그라몰라(Gramola)음반사, 모차르트 비엔나(Mozarthaus Vienna)재단과  비엔나시가 함께 모차르트하우스 비엔나 상주 현악 4중주단을 결성했다.

비올리스트 토마스 카쿠스카(Thomas Kakushka), 미하엘 프리센슐라지(Michael Frischenschlager), 피터 마츠카( Peter Matzka) 교수를 사사한 멤버들은 뛰어난 앙상블을 선사하며 수많은 국제무대에서 인정받고 있다.

쉴레스비히 홀쉬타인 페스티벌(Schleswig-Holstein Festival), 잘츠부르크 아터기우 페스티벌(Salzburg Attergau Festival), 오스트 프리스란드 페스티벌(Ostfriesland Festival), 주덴부르트 페스티벌(Judenburg Festival),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 페스티벌(Mecklenburg-Vorpommern Festival)등에서 초청되어 연주회를 가진 이들은 현재 오스트리아, 독일, 영국, 미국, 이탈리아, 헝가리, 룩셈부르크, 일본, 중국 등 세계 각국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또 지난해부터는 그라몰라 음반사와 모차르트 현악 4중주 전곡 음반녹음을 계약하고, 모차르트 비엔나의 뵈젠도르퍼 홀에서 매년 5회의 정기연주회를 가질 예정에 있다.

현재 첫 음반 출시를 기념하기 위해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음반 프로모션 순회공연을 하고 있는데, 이들이 사용하고 있는 악기들은 비엔나 시에서 스트라디바리우스, 과리네리, 가스파로 다 살로, 발레스티르 등을 대여받은 세계적인 명기들이다. 


최고의 실력가, 그리고 4명의 멤버

현재 모차르트 비엔나재단에 소속 되어있는 멤버들은 모두 어린 나이에 연주를 시작해 탁월한 실력과 역량을 겸비한 실력가들이다.
 
멤버들은 헝가리인 2명, 일본인 1명, 한국인 1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소개하자면, 일본인 샨도르 보르카이(Sandor Javorkai, 제1바이올린)는 칼 플레쉬(Carl Flesch) 국제 콩쿠르에서 최연소 1위와 특별상을 수상했다.

헝가리인 중 형인 카추타카 타카하시(Kazutaka Takahashi,제2바이올린)는 파블로 데 사라사테(Pablo de Sarasate)바이올린 국제 콩쿨 특별상을 수상했으며, 동생 아담 야보르카이(Adam Javorkai,첼로)는 오스트리아 2009년 최고 음악가 상과 바르톡(Bartok)상을 수상했다.

멤버 중 한국인인 박형재(Alexander Park, 비올라)씨는 21살에 세계 최고의 현악 4중주단인 알반 베르크(Alban Berg Quartet)의 비올리스트 Thomas Kakuska 와 함께 빈 챔버오케스트라와 함께 협연한 실력가이다.

23세에 프라이너 음악원 빈(Prayner Konservatorium Wien) 최연소로 교수 시험에 합격하여 현재 교수로도 활동 중에 있다. 본지는 지난 달 17일 오전 11시, 이들이 묵고 있는 서울 반포 JW메리어트 호텔 로비에서 이들을 만났다. 인터뷰는 박형재 씨와 진행했다.



이번 한국공연은 어떤 의미가 담겨져 있으며 단원들은 어떻게 구성된 것인지요?

이번 공연은 모차르트라는 세계적인 작곡가를 알리는 것이 목적입니다. 또 한국에도 모차르트 하우스라는 재단이 있다는 것을 더 알리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 현재 오스트리아는 최고의 연주자들을 통해 전 세계에 클래식 음악을 알리는 마케팅을 꾸준히 전개하고 있는데요. 이를 위해 모차르트하우스 비엔나 상주 현악 4중주단이 결성되었습니다.

멤버를 결성할 때 두 가지 의견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하나는 금발머리를 한 오스트리아인으로 멤버를 구성할 것인가, 아니면 실력위주로 뽑을 것인가였다고 하는데요. 최종적으로 실력 위주의 멤버를 구성하기로 하면서 여러 나라 사람들로 멤버가 구성된 것 같습니다.

외국무대와 국내 무대에 섰을 때 느낌이 다를 것 같습니다. 어떤가요?

아무래도 더 잘해야겠다는 욕심이 많이 생깁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더 좋은 음악을 보여주고 싶고 감격스럽기도 하구요. 파란 눈을 관객이 아니라 동양인, 그것도 한국인 관객 앞에서 연주한다는 것에 대한 뿌듯함도 느끼고요. 공항에 내릴 때 가슴이 그렇게 포근할 수가 없었습니다. 내일이 연주회인데 벌써부터 가슴이 설렙니다. 종종 이런 기회가 주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한국에는 얼마 만에 오신 것인지요?

지난 2011년 통일부에서 주최한 초청 연주회에 빈 필하모닉 수석 첼리스트 타마스 바르가(Tamas Varga) 와 함께 참석해 예술의 전당에서 연주회를 가졌고, 유니세프 후원 자선콘서트에 Jess Trio와 함께 초청되어 성남아트센터 콘서트홀에서도 연주회를 가졌습니다. 한국에서 연주자를 초청하고자 할 때는 한국인이면서 유럽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런 연주자를 찾게 되는데, 현재 유럽이나 오스트리아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연주자가 전무하다 보니 제게 좋은 기회가 오는 것 같습니다.

빈 프라이너 음악대 최연소 교수로 알고 있습니다. 교수임명은 어떻게 된 것인지요?

유럽은 대학을 졸업함과 동시에 교수임명 시험이 있습니다. 거기서는 본인의 연주 실력과  학생들을 지도하는 것을 높이 평가합니다. 가령 어떤 모습과 방법으로 학생들을 지도하는지를 꼼꼼히 체크하고 인터뷰도 진행하는데 제 경우는 운 좋게 23세(2005년)에 교수임명 시험에 통과해 최연소 대학교수가 됐습니다.

당시 세계를 대표하는 사중주단에 계시던 비올리스트인 교수님의 추천도 있었고 많은 분들이 추천해 주셨습니다. 경쟁자도 상당히 많았지만 아시아인으로서 젊은 나이에 활동도 많이 하고 카라얀 재단에 장학생으로 있었다는 점 등이 좋은 점수를 받았던 것 같습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젊은 사람이 학생들을 가르치는 모습에서 정열적인 점이 상당히 좋게 작용했다고 하더라고요.

아주 어린 나이에 연주를 시작하신 것으로 압니다. 지금의 자리에 오르기까지는 많은 노력이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어머니께서는 바이올리니스트셨기 때문에 아주 어린 나이에 자연스럽게 악기를 가지고 놀았고 3살부터 집중적으로 악기 다루는 법을 배웠습니다. 물론 연주를 한다는 게 많은 노력이 필요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강력한 채찍도 필요합니다만, 사춘기가 되면서 놀 수가 없을 때 잠시 힘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나 최고의 길을 가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아픔이 따르기 마련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이겨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연습을 얼마나 하냐고 묻는 다면 살아남기 위해서 피나는 노력을 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특히나 유럽의 중앙무대에서 동양인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만큼 노력은 보태져야 하니까요. 물론 외국에서 연주자를 평가할 때 한두 번의 실수를 크게 문제 삼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철저한 준비와 다시 실수하지 않겠다는 각오는 필요하겠죠. 저는 다른 사람들이 한 시간 공연 리허설을 할 때 4번~5번 합니다. 확실한 준비와 노력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일찍이 외국으로 가서 연주자로 성장해 오신 것으로 압니다. 그러나 포기하고 싶은 적도 많았을 텐데요. 성공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계기가 따로 있는지요?

12살에 오스트리아 비엔나로 갔습니다. 거기서 홈스테이를 하면서 생활했는데요. 다행히 어릴 적부터 항상 동경하던 곳이었기에 그리 힘들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TV나 연주회를 보면서 외국사람들이 연주하는 걸 보면 저 사람들은 어떤 환경에서 연주를 할까 하는 동경심이 있었거든요. 이후 중학교 2~3학년 경으로 기억되는데 우리나라에 IMF가 와서 상당히 어려웠을 때 같이 공부하던 선후배들이 모두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당시 저도 방학이라 한국으로 오는 중이었는데요. 공항에서 유일하게 한국 사람들만 모아 놓고 옷부터 시작해 양말까지 검사를 하는 겁니다. 그걸 보고 참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우리나라가 힘들어 지니까 한국 사람들을 무시하는 구나, 어린 나이에도 그런 생각이 들었던 거죠. 그래서 어떻게든 성공해서 우리나라의 이미지를 올리는 데 일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은 우리나라 위상이 많이 올라갔지만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는 외국에서 아주 후진국으로 인식했으니까요.

물론 아직도 한국에 계신 연주자들과 대화를 나눠보면 우리나라의 경제규모에 비해 문화적인 투자가 크지 않다는 얘길 듣습니다. 앞으로 그런 부분에 있어서 정부가 조금 더 과감한 투자를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일반인들에게 클래식 음악은 어렵다는 인식이 있는 것 같습니다. 조언을 해주신다면?

한국에서는 클래식을 좋아하는 분들조차도 감동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클래식 음악은 편안함이 더 중요합니다. 문화라는 게 거대하게 해서 큰 변화를 추구하기보다는 편안함 안에서 즐거움을 찾는 것이거든요. 클래식 음악을 접할 때도 그런 시각이 필요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모든 걸 경제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요. 그렇다 보니 문화조차도 폭발적인 변화를 추구하려고 합니다. 그런 부분이 클래식을 이해하기 힘들게 하지 않나 싶습니다. 저는 한국에 와서 연주를 할 때 아직은 클래식 음악에 대한 인식이 넓지 못하기 때문에 관중들에게 그런 마음을 전해주고자 많이 노력합니다.

현재 유럽에는 우리나라 학생들이 많이 가서 공부하는 것으로 압니다.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한국에서 유럽으로 와서 음악을 공부하는 학생들을 보면 차근차근 단계를 밟으려고 하지 않고 빨리 어떻게 해서 대성공을 하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 음악도 절대로 그건 가능하지 않는 일입니다. 기초가 되어 있지 않는 상태에서 대성공을 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가령 그렇게 해서 운 좋게 국제 콩쿨에서 입상을 했다고 치더라도 절대로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왜냐면 유럽은 사람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어떤 연주자가 굉장한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인격적으로 맞지 않고 실력이 기초부터 잘 갖춰지지 않았다면 그들은 절대로 써 주지 않습니다.

아쉬운 점은 최근 한국에서 유학 온 어린 학생들이 전반적으로 굉장히 이기주의적인 부분이 많다는 겁니다. 유럽의 교수들이나 전문가들이 그런 부분을 가장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조금 더 늦게 배우고 조금 더 기다리고 하는 걸 배워야 하는데 나만 실력을 인정받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는 어린 나이에 유럽에서 생활하면서 그런 부분을 많이 배웠고 그런 마인드가 지금의 저를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연주자로서 가장 힘들었던 때는 언제인지요?

손목이 좋지 않아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쉬었는데요. 연주자가 손목을 쓰지 못하는 건 축구선수가 필드에서 뛰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연주자로 가지 않고 교수활동을 하게 된 것이기도 합니다. 사실 제가 가장 들어가고 싶었던 곳이 빈 필하모니의 오케스트라입니다. 하지만 손목이 안 좋은 것 알고 교수님께서 연주활동으로는 안 되니 교육자의 길로 가라고 조언해주셨습니다. 나이는 어리지만 충분히 해 낼 수 있으니 해보라고 용기도 주셨고요.

물론 교육자의 길로 간다고 해서 연주를 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연주자가 되는 것보다는 연습을 덜 해도 되니까 교수님께서 그렇게 추천해주신 것 같습니다. 당시 손목 때문에 남들이 10시간 노력하는 것을 한 시간 내에 채워나가야 하는 것과 악기대신 허공에 대고 연주를 해야 했는데 그때가 가장 가슴 아팠고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런 시간이 7년이 걸렸는데요.

당시 의학계에서 완치가 될 수 없다고 했는데 기적처럼 제 손목이 나아서 다시 연주를 하게 되었습니다. 오랫동안 쉬었는데도 최고 수준의 연주를 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감사하고 허공에 대고 연주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이 더욱 감사합니다.



요즘 우리나라에는 많은 분야의 전문가들이 재능기부를 하고 계십니다. 혹시 재능기부를 하실 생각은 없으신지요?

현재 저희 멤버들은 유럽에서 다양한 재능기부를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재능기부를 계속해 나갈 생각이구요. 국내에서도 기회를 만들어 재능기부를 해나갈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한국은 유럽과 재능기부에 대한 생각이 다른 것 같습니다. 국내에 계시는 선배님과 재능기부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는데요. 한국은 재능기부가 오히려 학생들에게 아픔이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 이유는 재능기부랍시고 한 번 와서 가르치고 나서 가면 그만이라는 겁니다. 유럽은 재능기부에 대해 관점이 다릅니다. 예를 들어 음악을 전공하는 아이들 중 정말로 재능이 있다고 보이는 학생들을 선택해서 재능기부를 하게 되는데요. 한국처럼 한 번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연속성을 가지고 지도합니다. 제 경우만 하더라도 유럽에서 공부할 때 교수님께서 재능기부로 저를 지도해 주셨는데요. 워낙에 바쁘니까 한 달에 한 번, 어떨 때는 두 달에 한 번 연주레슨을 하는데 보통 한 시간 연주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철저하게 가르친 다음에 숙제를 내줍니다.

당시 저는 연주를 하고자 하는 마음이 너무나 강했기 때문에 그런 재능기부가 상당히 도움이 됐습니다. 우리사회가 지원도 하고 훌륭한 연주자를 배출할 수 있도록 플랫폼을 만드는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제가 가진 재능이 후배들을 위해 좋은 재료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갈 생각입니다.

현재 유럽에서 활동하고 있는 우리나라 연주자들은 얼마나 되는지요?

현재 오스트리아에서 교수로 활동하는 사람은 저를 포함해 4명입니다. 또 유럽전체에서 오케스트라 활동 중인 사람들 중 한국 사람은 50명이 채 안 되는 것으로 압니다. 공부를 하는 학생은 수만 명이고 음악박사 학위를 취득한 사람도 상당히 많은데 유럽무대에서 살아남는 사람의 수가 소수라는 건 실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유럽에서 학위위주로 실력을 평가한다면 한국 사람들이 그 자리를 다 차지했겠지만, 유럽은 철저한 실력위주다 보니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해도 알아주질 않습니다. 유럽의 세계적인 연주자들은 박사학위 자체가 없고, 비엔나국립대학만 해도 실질적으로 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교수님들이 대다수입니다.

또 빈 필하모니의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도 대학 나온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그들은 철저한 능력을 보고 단원을 뽑기 때문인데요. 그만큼 실질적인 경험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걸 실력으로 치기 때문입니다.

이에 반해 한국은 학위취득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한국 사람들은 학위만 취득하고 모두 한국으로 돌아와 자리 하나를 가지고 경쟁을 하고 학생들을 레슨하는 것에 만족을 느낍니다. 현재 유럽에는 많은 자리들이 열려 있지만 실력의 한계 때문에 한국인들은 경쟁자체도 해보지 못하는 것이죠. 그나마 있었던 한국 사람들의 자리를 최근 중국인들이 차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부분은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멤버들이 각자 다른 나라 사람들인데요. 어떤 가정에서 태어나 연주를 시작했으며 서로의 생각은 잘 맞는지요? 

물론 서로가 생각과 느낌은 다를 수 있지만 4명이 함께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공부를 했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등의 작곡가들이 활동을 했고 태어난 곳에서 같은 음악을 배우고 듣기 때문에 음악에 대해서는 같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성격이나 이런 부분에서는 조금씩 덜 맞을 수 있겠죠.

멤버들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소개하자면 헝가리인인 카추타카 타카하시(Kazutaka Takahashi, 제2바이올린)와 아담 야보르카이(Adam Javorkai, 첼로)는 100년 전통의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난 음악 천재들입니다.

오스트리아 왕족 시절 증조 할아버지께서 클라리넷을 전공하셨는데요. 이들의 아버지는 바이올리니스트, 어머니는 피아니스트였습니다. 형인 카추타카 타카하시는 3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시작해 4살에 무대에서 연주를 한 음악천재이며, 동생인 칼 플레쉬는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2살 때부터 피아노를 시작해 콩쿨대회 입상한 실력가입니다. 칼 플레쉬는 첼리스트 파블로 카잔스의 연주를 듣고 너무 감명을 받아 첼로 연주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일본인인 샨도르 보르카이는 유일하게 부모님께서 음악을 하지 않은 데도 5살에 연주를 시작한 친구인데요. 어릴 적 TV에서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보고 연주자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합니다.

현재 그의 스승은 당시 TV에서 본 오케스트라 악장님이신데요. 그의 아버지는 판사이고 어머니는 특별히 직업으로 하시진 않았지만 취미로 노래를 하셨다고 합니다. 가끔 우리 둘은 일본인과 한국인이라는 것 때문에 독도문제로 예민해 지기도 하는데요. 지금은 “독도는 너의 땅도 나의 땅도 아닌 그냥 독도”라고 웃으며 얘기할 정도입니다. 이들은 모두 제게 있어 좋은 친구이며 최고의 실력가들입니다.


이들과의 인터뷰를 마치며 우리나라에 온 소감을 묻자 “처음 한국에 왔는데 참 편하고 친절해 좋다”며 웃었다. 특히 일본인 멤버인 샨도르 보르카이는 우리말로 “감사합니다”라며 장난기 어린 표정을 지어보였다. 세계 최고의 연주 실력을 가진 이들과의 인터뷰를 마치고 일어서는데 자신들도 모차르트하우스 비엔나 재단에 인터뷰한 사실을 알려야 하기 때문에 사진촬영을 해야 한다고 했다. 자유롭고 장난기 묻은 이들의 표정 때문에 몇 번이나 다시 찍어야 했던 인증 샷을 보면서 오랜만에 크게 웃고 돌아오는 길 하늘에선 하얀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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