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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최저임금과 생활임금

최저임금은 근로자의 생계비, 유사 근로자의 임금, 노동생산성 및 소득분배율 등을 고려해 결정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최저임금 수준을 둘러싸고 노사 간 입장충돌이 있어왔다. 또한 최저임금제도가 노동자들의 생활안정, 임금격차 해소, 분배구조 개선 등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면서 최저임금 수준의 현실화가 시급한 상황이다. 이에 미국, 영국 등에서 꾸준히 언급돼왔던 생활임금이 그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패스트푸드 알바 시간당 최저임금 5,210원


지난달 15일 오전 서울 신촌 맥도날드점 앞에서 생활임금과 노동권 보장을 요구한 시위가 열렸다. 미국 맥도날드 주주총회를 앞둔 15일 세계 6대륙 35개국 150여 개 도시에서 공동으로 진행되면서 한국에서는 서울 신촌과 부산 맥도날드 경성대점에서 열렸다. 서울 신촌에서 진행된 이번 행사는 세계 패스트푸드 노동자들이 연대해 패스트푸드점이 고용한 알바생들의 저임금 고강도의 노동과 열악한 노동조건에 대한 개선 의지의 표명이었다.

한국 맥도날드는 2012년 100억 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달성했지만 노동자들은 대부분 법정최저임금을 적용받는 비정규직이다. 이날 기자회견문에 따르면 유동적인 노동시간은 노동 강도를 높이지만 맥도날드, 롯데리아, 버거킹 등 대부분의 패스트푸드 업체는 시간당 5,210원의 최저임금을 고수하고 있다. 김정우 청년유니온 청소년팀장은 “세계 패스트푸드 노동자의 임금은 미국 7.25달러, 필리핀 2달러, 홍콩 5달러 등으로 모두 다르지만 모두 바닥”이라고 꼬집었다.

한편 강규혁 전국민간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위원장은 “최저임금으로 혹사시키는 초국적 패스트푸드 기업들이 더는 착취가 아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도록 강제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 함께한 이들은 시간당 최저임금을 1만 원으로 인상해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나라 최저임금 그리스보다 낮아

최저임금은 국가가 헌법에 근거해 최소한의 임금을 결정하는 것을 말한다. 지난 1997년 경제위기 이후 세계화 흐름과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급진적 추진에 따라 노동비용 절감에 초점을 둔 노동시장 유연성이 강화됐다.

 

이에 따라 비정규직이 확대되는 등 양질의 일자리가 줄어들고 고용불안이 심한 저임금 일자리가 늘어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개발시대부터 계속됐던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불평등관계가 IMF 이후 더욱 견고한 형태로 고착되면서 기업규모 간 양극화가 심화됐고 더욱 심해지고 있다.

고성장·고부가가치 산업의 독과점 대기업은 높은 임금을 지불하고 저성장·저부가가치 산업의 중소영세기업 및 하청기업들은 낮은 임금을 지불하며 소수 대기업을 제외한 다수의 중소영세기업에서 비정규직의 고용이 확산됐다. 고용형태와 기업규모, 성별 등에 의한 노동시장 양극화에 따라 소득불평등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면서 노동자간 임금격차가 커지고 양질의 생활을 누릴 수 없을 정도로 낮은 임금을 받는 저임금 노동자들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2014년 최저임금은 시급 5,210원, 월 1,088,880원(주 40시간, (유급주휴 포함) 월 209시간)이다. 임금노동자 1,773만 4천 명 가운데 256만 5천 명(14.5%)이 새로운 최저임금을 적용받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한국의 최저임금은 2011년 상용직 평균임금 대비 34% 수준으로 매우 낮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전체 노동자 평균임금의 50%를 최저임금으로 권고하고 있다. OECD통계에 따르면 한국은 비교 가능한 26개 OECD 회원국 가운데 20위이며, 법정 최저임금의 절대 수준 비교에서도 24개 회원국 가운데 20위이다. 또 법정 최저임금의 절대 수준 비교에서도 24개 회원국 가운데 16위다. 최저임금 5,210원을 달러로 환산하면 4.56달러로 일본(9.16달러)의 절반수준이며, 미국(7.25달러), 영국(9.57달러), 프랑스(12.55달러)뿐 아니라 심각한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그리스(5.79달러)에도 크게 못 미친다.

이에 최저임금이 한 가족을 부양하기에 충분하지 않아 생활임금 보장이 요구됐다. 생활임금이란 가족 부양이 가능하고 인간적 기본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수준의 급여로, 보통 ‘최저임금’보다 임금 수준이 높다. 관할 비정규직 노동자에 생활임금제도를 도입한 서울 성북구와 노원구의 올해 생활임금은 시간당 6,850원으로 법정 최저임금인 시간당 5,210원보다 31% 높은 수준이다.

최저임금과는 다른 ‘생활임금’이라는 개념은 특히 6·4지방선거를 앞두고 새정치민주연합 등의 정책으로 이슈화됐다.

권순원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 부위원장(숙명여대 교수)은 “미국과 영국은 프랑스나 호주처럼 최저임금을 생활임금 수준으로 지급하는 게 아니라 여전히 사회적 최저선으로 유지한다. 그 대안으로 생활임금이 도입됐다. 최저임금이 노동자 평균임금의 3분의 1 수준인 한국도 두 나라와 비슷하다”며 생활임금조례 제정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ILO는 최저임금의 결정은 빈곤을 극복하고 모든 노동자와 그 가족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데 기여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는데(ILO협약 131호), 생활임금은 노동자와 그 가족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 여러 국제기구에서 규정하고 있는 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양질의 생활을 보장하는 보수라는 개념에 충실하다.

또한 생활임금제도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현행 최저임금제도를 대체하고 보충하는 성격이지만, 중앙정부가 아니라 지역사회가 나서서 저임금 노동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적극적인 제도를 의미한다. 전체 노동자 월 평균임금이 약 257만 원임에도 올해 최저임금은 월 108만 원밖에 되지 못하는 현실에서 저임금 노동자들의 보호란 비현실적인 것이었다. 게다가 저임금 노동자들의 임금을 올리지 않고는 소비 진작을 통한 경기 활성화 역시 불가능하다.


6·4지방선거 정책으로 이슈화

노동자들에게 최소한의 인간적인 생활을 보장해 줄 수 있는 생활임금제도의 도입에 관한 요구가 이번 6·4 지방선거에 등장했다. 그동안 선거 때가 되면 정치권에서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대책을 쏟아 놓았지만, 정작 실효성이 있는 정책으로 연결된 사례는 매우 부족했다. 이런 현실에서 생활임금제도가 공약으로 등장하는 것은 지방자치제도의 발전이란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생활임금제도의 도입이 제대로 되려면 재정적으로 중앙정부의 의존성이 높은 현행 지방자치제도의 개선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지자체의 재정적 자율성을 높이려면 중앙정부 중심이 아니라 지역사회 중심의 가이드라인도 필요하고, 이에 따른 독자적인 정책시행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바로 이 측면에서 생활임금제도의 도입은 큰 의미를 가진다.


부천시, 서울시 노원구·성북구의 생활임금

부천시와 서울 노원구와 성북구가 제시하는 생활임금은 무엇보다 우리나라에서 사실상 최초의 생활임금 도입이라는 강점을 갖는다. 노원구와 성북구의 시도는 이후 서울시의 다른 지자체는 물론 전국적으로도 중요한 참고기준임은 분명하다고 할 수 있다. 반면, 서울시 생활물가의 절반인 8%라는 접근이 임의적이라는 비판도 충분히 있을 수 있으며 평균임금의 58%라는 접근은 정책목표라기보다는 생활임금 결정에 따른 정책 효과라는 지적이 있을 수 있다. 또한 당초 생활임금이 갖는 가족임금이라는 의미를 달성하기 위해 법정 최저임금보다 높은 수준의 ‘공공부문 최저임금’을 결정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노원구와 성북구의 생활임금이 갖는 한계는 선발주자 효과를 갖기 때문에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초’이자 서울이라는 상징성으로 인해 후발주자들이 모방하는 제도로 기능할 수 있는 것이다.

생활임금 조례 도입

한편 서울시정연구원의 ‘서울시 취약근로자의 노동시장 분석과 정책방향’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28개 도시에 생활임금 조례가 도입돼있으며 영국 런던시는 생활임금 적용 대상을 일반기업까지 확장하고 있다.

미국에서 생활임금 조례를 도입한 도시는 볼티모어, 밀워키, 로스앤젤레스, 시카고, 보스톤, 디트로이트, 샌프란시스코, 클리블랜드 등 28개다. 미국에서 가장 먼저 조례를 도입한 도시는 볼티모어로 1994년 통과돼 이듬해부터 시행됐다. 이 지역의 ‘빌드’(BUILD)라는 단체가 최대 공무원노조인 AFSCME와 연대해 벌인 생활임금운동이 결실을 맺었다.

1997년 이 제도를 도입한 로스앤젤레스는 생활임금제 대상을 시와 계약을 맺고 있는 기업뿐 아니라 정부의 보조를 받고 있는 일반기업까지 확대해 적용하고 있다. 그러나 뉴올리언스 등 21개 도시는 상위법인 주정부 법률에 위배되는 등의 이유로 조례 도입이 좌절되기도 했다.

영국은 2001년 런던시 시민단체들의 연합체인 ‘런던시티즌스’의 생활임금 캠페인 이후 2005년부터 생활임금제를 정식 도입했다. 시민단체들은 시장선거 과정에서 제도 도입을 제안했고 당선자인 노동당 소속 캔 리빙스턴 시장이 이를 받아들였다.

2008년 리빙스턴 시장의 3연임을 저지하고 당선된 보수당 소속 보리스 존슨 시장도 생활임금제를 강화하고 있다. 런던시는 생활임금 적용 대상 사업장을 공공위탁사업체 외에 일반기업으로 확대하는 캠페인을 벌여 HSBC 등의 금융회사도 이에 참여하고 있다.

제도 도입에 앞장선 ‘런던시티즌스’는 2011년 ‘생활임금재단’을 설립해 런던시와 함께 매년 11월 생활임금 기준을 발표하는 등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서울시정연구원은 보고서에서 “생활임금 수준을 어떻게 설정할지는 여전히 많은 쟁점이 있으며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사회가치를 생산하는 수단으로

한편 권순원 교수는 “생활임금의 적정수준을 도출하기는 어렵다”면서 “정책 연속성의 측면에서 현행 노원구·성북구의 생활임금 산정방식을 택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현재 노원구·성북구는 고용노동부 조사상 5인 이상 사업체 정액급여의 50%에 서울특별시 생활물가 하한선의 절반(8%)을 더해 생활임금을 산출하고 있다.

 

서울시와 서울복지재단에 따르면 지난 2012년 서울은 주거비용, 교육비 등으로 인해 전국 평균보다 생계비가 16% 더 필요했다. 그러면서 권 교수는 “생활임금 조례에 의한 비용 증가가 협력기업 총생산비용에 차지하는 비중이 작기 때문에 계약비용, 세금 증가로 이어지진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역사적으로 국가와 지방정부는 근로자 보호를 위해 기업들에 대한 재정지원(보조금, 감세 등)을 확대해왔다”며 “지방정부의 생활임금 정책비용이 기업에게 일방적으로 전가될 것이라는 우려는 사실과 다르다”고 말했다.

최재혁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 간사는 “생활임금이 모든 지자체에서 동일한 방식으로 운영될 필요는 없다”며 “여러 지자체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수용해 일단 시행하고 이행하는 과정에서 제도를 개선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황선자 한국노총중앙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공공조달의 재원은 국민 세금이므로 사회적 책임성이 강화돼야 하며 국민의 생활 및 노동 환경을 향상시키는 사회정책수단으로 적극 활용돼야 한다”며 “중앙 및 지방 정부는 공공계약과 생활임금의 연계를 통해 저임금과 빈곤을 해소하고 임금격차를 축소하는 등 사회적 가치를 생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석명옥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돌봄지부장은 “장애인, 노인, 어린이 등에게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요양보호사는 장시간, 고강도, 저임금 노동에 시달리고 있으며 이는 서비스의 질 저하로 직결된다”며 “생활임금이 요양보호사에게 실질적으로 적용될 수 있도록 관리·감독이 제대로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양극화 해소·경제 활성화 기여

고용노동부 통계에 의하면 지난해 정규직 평균임금은 월 298만 5천 원인데 비해 비정규직은 140만 4천원으로 158만 1천 원의 격차를 보이고 있다. 2008년 대비 23만 2천 원이나 증가한 수치다. 정규직 임금이 41만6천 원 오를 동안, 비정규직 임금은 겨우 18만 4천원만 오른 것이다.

세월호 실종자 명단에도 들지 못했던 4명의 아르바이트생. 선박직 종사자의 70%이상이 비정규직 노동자. 비정규직 문제는 결국 정규직 종사자들을 위험에 내몰고 있다. 또한 비정규직 문제와 소득 양극화 문제는 동전의 양면이다. 생활임금제도를 통해 인간적인 생활, 생활을 할 수 있는 임금(living wage)을 보장해주는 것이 결국 양극화를 줄이고 경제 활성화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 될 것이다.

 

MeCONOMY June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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