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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업이냐 서비스업이냐, 기로에선 한국경제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는 지난 6월 말과 7월 초에 걸쳐 제조업과 서비스업 중 국가의 경제적 번영에 어떤 산업이 더 중요한지에 대한 논쟁을 온라인을 통해 중계한 바 있다. 논쟁자로는 우리가 잘 아는 영국 캠브리지대학교 장하준 교수와 미국 콜럼비아대학교 자그디쉬 바그와티(Jagdish Bhagwati) 교수가 나섰다. 두 교수의 논쟁을 중심으로 한국경제의 나아갈 방향을 알아본다. /에디터, 김상우 객원편집위원

제조업과 금융․서비스업 논쟁의 시작

 

논쟁은 제조업 기반이 경제적 번영에 가장 중요하다는 장하준 교수의 주장에 대해 바그와티 교수가 반박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논쟁이 있기 오래전부터 두 교수의 입장은 사뭇 달랐지만, 이런 논쟁이 벌어지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2007-8년 금융위기 이후 금융의 지나친 팽창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면서 ‘결국 중요한 것은 제조업 아닌가?’ 하는 질문이 대두된 데 따른 것이다.

 

경제적 번영 가져오는 기술진보와 생산성 증가, 제조업에서 훨씬 빨라

장하준 교수는 스위스와 싱가포르 같은 부국이 서비스 기반 경제로 보이지만 1인당 제조업 부가가치(MVA) 면에서 사실은 강력한 제조업 기반을 가진 나라들이라고 소개하면서, 결국 제조업이 약하면 수출경쟁력이 약해지고 수출경쟁력이 약해지면 단기적으로는 국제수지가 악화되고 장기적으로는 국민의 생활수준이 하락한다고 주장했다. 제조업이 약하면 경제적 번영도 없다는 것이다. 장하준 교수는 서비스업은 금융, 컨설팅 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본질적으로 교역 불가능하기 때문에 수출을 할 수 없고 따라서 국제수지 악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고 했다. 또 교역 가능하고 부가가치가 높은 금융, 컨설팅, 엔지니어링 같은 일부 서비스업도 생산자 서비스, 즉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부문의 서비스업의 발전도 결국은 제조업 발전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결론적으로 장하준 교수는 제조업이 경제적 번영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이유는 경제적 번영을 가져오는 생산성 증가가 서비스업보다 제조업에서 훨씬 빠르게 진행되며, 제조업에서 생산성 증가가 훨씬 빠른 것은 생산성 증가를 가져오는 기술진보가 주로 제조업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요컨대, 경제적 번영은 생산성 증가에서 오고 생산성 증가는 기술진보에 의해 좌우되는데 기술진보는 주로 제조업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제조업이 경제적 번영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산업이라는 것이다.

 

서비스업의 기술진보도 놀라운 수준, 제조업의 물신화 경계해야

이런 장하준 교수의 주장에 대해 바그와티 교수는 ‘제조업의 물신화(物神化)’라는 추상적인 개념으로 반박을 시작한다. 제조업의 기술진보와 생산성 증가가 실제 이상으로 아니 어쩌면 실제와 반대로 과대평가되고 있다는 것이다. 바그와티 교수에 의하면, 경제적 번영을 가져오는 기술진보는 제조업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서비스업에서도 상당한 기술진보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바그와티 교수는 기술진보 평가의 대가인 하버드 대학교 데일 조르겐슨(Dale Jorgenson)도 서비스업인 소매업을 기술적으로 가장 진보적인 분야로 평가했음을 상기시켰다. 소매업 특히 온라인 쇼핑몰의 기술진보가 가져다 준 생활패턴의 변화와 혜택이 엄청나다는 것이다. 또 바그와티 교수는 생산자 서비스뿐만 아니라 소비자 서비스도 교역이 증대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그 대표적인 사례로 의료관광을 들었다. 소비자 서비스를 통해서도 외화를 벌어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이는 일종의 수출이다). 또한 금융위기와 관련해 바그와티 교수는 금융위기로 금융의 문제가 드러난 것이 사실이지만 ''일부의 문제로 전체를 문제시해서는 안된다(baby should not be hurled out with the bathwater)''고 말하고, 일부 금융‘혁신’이 파괴적이긴 하지만 많은 금융혁신은 분명 경제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했다.

 

제조업 과대평가냐, 금융․서비스업 과대평가냐

장하준 교수의 입장은 서비스업에서 교역 가능한 부문이 있고 일부 기술진보와 생산성 증가가 이루어지는 부분도 있지만, 그것이 경제적 번영에 기여하는 정도는 무시해도 될 정도이며 결국 제조업 기반이 국가경제의 번영에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반면, 바그와티 교수의 입장은 제조업의 기술진보와 생산성 증가가 과대평가 되었으며, 서비스업에서도 경제적 번영에 상당한 기여를 하는 교역과 기술진보 및 생산성 증가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장하준 교수는 바그와티 교수가 금융․서비스업을 과대평가하고 있다고 비판했고, 역으로 바그와티 교수는 장하준 교수가 제조업을 과대평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논쟁 후 온라인 투표결과는 장하준 교수 입장에 대한 지지 76%, 바그와티 교수 입장에 대한 지지 24%로 나왔다. 투표결과로만 보면 장하준 교수가 승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상황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제조업 강국은 경제적으로 번영하고 있는가?

이 논쟁의 논평자로 나선 제프리 오웬(Geoffrey Owen) 런던 정경대 교수는 제조업 강국인 독일의 상황은 좋지만 비슷한 제조업 강국인 일본의 상황은 좋지 않고, 영국이나 프랑스보다 제조업에 더 주력한 이탈리아가 영국과 프랑스보다 상황이 좋다고는 할 수 없다고 지적하면서, 한 나라의 경제적 번영을 좌우하는 것은 제조업의 규모가 아니라 전체로서 경제의 생산성 증가이며, 전체로서 경제의 생산성 증가는 제조업뿐만 아니라 서비스업의 효율성과 발전에도 큰 영향을 받는다고 지적했다. 기실, 이 논쟁에서 제조업의 중요성을 역설한 장하준 교수도 ‘제조업은 좋고 서비스업은 나쁘다는 단순한 시각은 배격해야 한다’고 했다. 다만 제조업의 가치를 평가절하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최근에 와서는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경계가 모호해 지고 있다. 예컨대, 스마트폰에는 기기를 만드는 제조 부문과 기기 디자인, 애플리케이션 같은 서비스 부문이 뒤섞여 있다. 사실 제조업과 서비스업은 한 국가의 경제적 번영에 모두 일정 부분 기여하고 있으며, 둘 중 어느 한 부문만 가지고는 진정한 경제적 번영을 가져올 수 없다. 기술적으로 매우 뛰어난 스마트TV는 발전된 통신이나 방송 서비스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 이 둘이 결합되어야 스마트TV는 시장에서 판매되고 스마트TV가 확산되면 방송 및 통신 서비스도 그에 맞게 더 한층 발전하게 된다. 결국, 제조업과 서비스업은 그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서로에게 필수불가결한 존재가 되고 있다.

 

한강의 기적 만든 제조업 중심 수출전략, 한계에 봉착

지난 50년 한국은 ‘제조업 중심의 수출’이라는 경제발전전략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장하준 교수가 수출이 가능한 제조업을 중시하는 것은 어쩌면 이런 한국의 성공모델에서 깊은 영향을 받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부터다. 지난 50년 한국경제를 급속도로 발전시키고 국민들에게 경제적 번영을 안겨줬던 제조업 중심의 수출전략은 최근에 와서 그 빛이 바래지고 있는 것 같다.

현재 한국경제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성장잠재력 하락, 실업, 소득분배 악화로 요약된다. 특히, 언제부턴가 한국경제에 고용 없는 성장이라는 저주가 깃들기 시작했다. 성장률 자체도 점차 하락하고 있지만 성장을 해도 고용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문제다. ‘발전한 국가들이 탈산업화(탈제조업화)되는 것은 고용의 측면에서만 맞다’는 장하준 교수의 말은 고용이 탈제조업화된다는 것, 즉 일정한 발전단계에 이르면 제조업에서 더 이상 고용이 창출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한국이 경제발전으로 고임금국가가 되는 동안 중국 등 신흥국이 저임금을 무기로 쉽게 추격할 수 있는 중간기술 분야에서 제조업 강국으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에서는 중간기술 제조업에서 이미 탈산업화 혹은 산업공동화가 발생하기 시작했고, 따라서 이 분야에서 의미 있는 새로운 고용을 창출하기가 어려워졌다. 또한 첨단기술 제조업 분야라 해도 계속되는 기술혁신으로 노동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어나지 않고 있다. 바야흐로 한국에서 고용의 탈제조업화현상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한국이 직면한 고용 없는 성장의 원인이다.

고용 없는 성장은 실업과 소득분배 악화로 이어졌고, 이는 지금과 같은 극심한 사회적 분열을 낳았다. 성장을 해도 이러할진대, 성장이 침체된다면 상황은 더더욱 악화될 것이다.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낸 제조업 중심의 수출이라는 경제발전전략이 이제는 그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과거의 성공전략에 안주하지 말자, 서비스업에도 눈을 돌려야

수많은 제국의 흥망성쇠를 분석한 일본의 정치학자 타카사카 타다시요(高坂正堯)는 ‘성공 속에 실패의 씨앗이 있다’고 했다. 로버트 J. 허볼드는 ‘성공을 경영하라(Seduced by Success)''는 책에서 성공이 변화를 막아 몰락의 길로 이끌 수 있음을 경고하고, 성공을 가져다 준 전략과 방법에 안주하지 말고 항상 변화를 시도하라고 했다. 이제는 우리도 우리에게 번영을 가져다 줬던 그간의 제조업 중심 수출전략에만 매달려서는 안 될 것이다. 그렇다고 제조업을 포기하자는 것은 결코 아니다. 경쟁우위를 가진 제조업 부문에서 지속적인 기술혁신으로 저만치 앞서 나가면서도 부가가치가 높은 서비스업의 발전에도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다.

 

한국에도 발전 가능성이 높은 고부가가치 서비스산업들이 있다. 장하준 교수도 교역 가능하다고 인정한 금융산업이 그 대표적인 예다. 장하준 교수는 금융이 교역 가능한 그러나 생산자(제조업)에 의존하는 서비스라고 했지만, 생산자는 전 세계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역량을 키우면 얼마든지 전 세계 생산자의 수요를 충족시키는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또 금융서비스가 발전하면 우리 기업들이 세계 각국에서 막대한 규모로 진행되고 있는 대형 인프라프로젝트에 진출하는데 필수적인 금융지원도 제공할 수 있고, 벤처캐피털을 통해 국내의 기술혁신과 창업을 지원함으로써 제조업과 실물경제의 활성화와 고용창출에도 기여할 수 있다. 더욱이 금융은 그 자체로 교육수준이 높은 우리 젊은이들에게 눈높이에 맞는 고부가가치 직업을 제공하기도 한다. 금융 외에도 의료, 관광, 국제회의 같은 서비스업도 발전을 모색해야 할 분야다.

 

서비스업 발전의 첫걸음은 규제완화

여기서 한 가지 유념할 것은 과거처럼 국가가 나서서 특정 산업을 육성하는 방식으로 서비스업을 육성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발전을 막고 있는 불필요한 규제만 풀고 정비하면 된다. 시장경제는 국가가 손을 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시장경제를 추구하는 국가는 시장개입자가 아니라 시장촉진자로서 시장이 스스로 발전할 수 있는 제도적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서비스업 발전의 경우 그 핵심은 규제의 완화와 정비다. 서비스업은 그 어느 산업보다도 규제환경이 중요한 산업이다. 한국경제의 새로운 도약, 그리고 고용창출형 성장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서비스업 발전에 눈을 돌리고, 그에 필요한 규제환경을 조성해야 할 것이다.


     김상우 본지객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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