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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사회가 너를 거꾸러뜨린다고?... 그러면 새로운 사회를 만들면 되지

뉴욕타임스 서평 소개- 2023년 11월 14일 자

 

When Society Gets You Down, Build a New One

In Gabriel Bump’s novel “The New Naturals,”

a disillusioned couple start a utopian commune

in an underground bunker.

 

붕괴에서 살아남을 새로운 삶의 방식이 있는가?

 

미국뿐만 아니라 현대 사회 전체-를 기소(起訴)하는 크기를 고려할 때 가브리엘 범프의 두 번째 소설, 『The New Naturals』가 정말 재미있다고 느끼게 만드는 솜씨는 굉장한 위업이다. 분명하게 말하면, 그의 2020년 데뷔작, “Everywhere You Don’t Belong”의 후속작품 격인 이번 작품에 진정한 슬픔이 뭔지가 꽤 많이 스며 들어가 있다. 이 책은 여러모로 볼 때 절망으로부터 분출되는 이상한 종류의 희망에 관한 이야기다.

 

이 소설의 주인공들은 모두 자본주의, 정치, 기후, 인종 간의 관계에 있어서 점잖은 허구(polite fiction; 모든 참여자가 진실을 알고 있으나 갈등이나 곤란한 상황을 피하고자 대체 버전을 믿는 척하는 사회적 시나리오) 등을 지속 가능한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들은 필연적인 붕괴에서 살아남을 새로운 삶의 방식, 어떤 유토피아를 원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괴짜 백만장자에게서 나온 자금으로 서부 매사추세츠의 지하 벙커에 새로운 사회를 만든다. 그러나 특별히 잘되지는 않는다.

 

이 소설은 - 가장 암울한 어떤 순간에서조차 예리하고 재치가 있다- 흑인 학자인 리오와 지브랄타가 그들의 첫 아이를 기대하고 있는 가운데 그들의 배경이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들은 더 좋은 무엇인가를 꿈꾸며 밤을 보낸다. 리오는 특히 단호하다.

 

“그녀는 완벽한 세상에 관해 이야기하곤 했는데 그녀의 강력한 목소리가 중얼거림으로 바뀌다가 말소리가 멈추면 다음 날 해가 뜰 때까지 코를 골았다.”

 

그러나 부부의 새로 태어난 아이가 병에 굴복하자-처음에 그들의 의사는 걱정할 게 없다고 묵살했다-더 좋은 세상을 꿈꾸다가 그만두고 그들이 원하는 세상을 건설하는 쪽으로 간다. 그들이 접촉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달라며 성가시게 하고 있는데 결국 이상한(부유하지만 지루해하는 사람으로 읽힌다) 백만장자의 눈을 사로잡아 그들의 기업, 『the New Naturals; 새로운 재능을 타고난 사람들』로 이름을 붙인 미래의 거주자들에게 자금을 대기로 결정했다.

 

거기에서 범프는 다양한 등장인물을 소개한다. 그것들은 이 세상에 대해 각자가 가진 환멸 등 어찌 되었든 이곳의 세력권으로 들어오게 될 것이다. 소저너(Sojourner, 일시 체류자라는 의미)라는 이름의 저널리스트는 자신의 직업과 파트너에 진저리를 치고 있다.

 

미래에 대한 수확체감의 법칙이란?

 

바운스라는 사람은 완전히 망가진 전직 축구 천재이고, 엘팅과 부캐넌은 아무 목적 없이 시카고를 배회하다가 인근에 사는 선량한 가족들을 불안하게 만든다는 이유로 경찰은 그들을 때리고 체포한다. 범프는 너무 많은 것을 느끼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너무 크고 다양한 모든 것이 불공평하고 세상에서 실패자가 되어 두 다리가 꽁꽁 묶여있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를 기술하는 재능이 있다.

 

이런 부류의 것들은 정말이지 사람들을 시무룩하게 만들어 놓을 수 있다. 다행히 범프는 유머 감각이 있어 이를 잘 활용하고 있다. 데니스 존슨(Denis Johnson)의 조각들이 이 책에 특히 대화에 나와 있는데 이따금 그의 작품인 “Jesus’ Son”에 나오는 병원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사람들이 말을 주고받지만 그 결과는 반대로 시끌벅적하며 배꼽을 잡게 하고 대부분 사람이 실제로 이야기하는 방식을 제거하였다. 그래서 읽으면서 기분이 좋다.

 

『The New Naturals』에 두서너 개의 실망스러운 측면이 있다. 첫 번째가 문체다-범프는 뛰어난 작가지만 너무 자주 반복에 의존하고 있다. 이 반복은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 어느 단락에서는 거의 모든 문장이 같은 자구(字句)로 시작하고, 대화는 반복적으로 아니면 대화 안에서 똑같은 말투 (이를테면 “오케이” 더스틴 말했다. “내가 갈게. 좋아, 괜찮다니 좋네. 내가 가지. 좋아. 오케이”)로, 그리고 2명 이상의 인물들이 똑같은 말(표현)을 약간 변형시켜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개별적으로 이러한 사례 가운데 어느 것도 나쁘게 만들어진 건 없다. 사실 반복은 어떤 장면의 긴장 혹은 감정적 이해관계를 높여주는 빠른 길, 일종의 지름길의 기능을 꽤 빈번하게 한다.

 

그것과 다르게 문장구조가 먹히는 어느 순간에 이르면 그런 역할을 하는데-이를테면 소저너(Sojourner)가 마지막으로 이 세상의 반 이상향이 달려온 궤적을 자신이 환상을 보면 말로 표현할 때이다. “유일한 일은 있을 것이다. 그것은 어리석은 일, 절망적인 일이다. 일과 수면, 재미없는 잠, 활기 없는 잠, 나는 지금으로부터의 100년이 내 가슴 위에 턱 버티고 서있는 것 같은, 그리고 우리는 지긋지긋한, 기교라곤 전혀 없는 미래에 이미 와 있는 것처럼 느낀다”-고 표현함으로써 미래 세계에 대한 수확체감의 법칙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것과 다른 이슈는 일의 속도를 유지하는 것, 아니면, 오히려 일의 속도를 유지하는 것과 일의 깊이 사이의 관계이다. 사실상 이 소설 속의 거의 모든 주인공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들이다.

 

지하에 건설된 유토피아

 

리오와 지브랄타는 특별히 진짜 살아있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그 이유는 그들의 유토피아적 꿈이 통제 불능 상태가 되었더라도, 그들이 만드는 사랑의 등고선을 저자인 범프가 워낙 잘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초점이 주인공들의 어떤 무대에서 다음 무대로 너무 뜬금없이 이동한다는 것인데 그래서 모든 이야기의 실마리들이 사람들이 희망할 수도 있는 짜임새로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건 아니다.

 

소설 전체를 통틀어 한결같은 걸음걸이를 걷는다는 의식을 찾을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그게 나쁘다는 것만은 아니다. 저자인 범프는 이를테면, 페이지와 페이지를 『the New Naturals』의 지하 유토피아의 건설을 기술하는 데 할애하고 있다.

 

대신 그는 몇 개 문장만으로 그렇게 하고 있는데 그런 식은 확실히 이 소설이 가진 장점이다. 그렇지만 한 명의 주인공이나 여러 주인공 그룹들이 다음으로 이행할 때 전광석화같이 빠르다고 해서 잘 어울리는 건 아닐 것이다.

 

그로 인한 결과로 별거는 아니나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부정적인 공간이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를테면, 리오와 지브랄타, 또는 등장인물들 각자에서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거나 그들의 이야기를 함께 묶는 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 지나치게 독점적으로 그들에게 초점을 맞춘 이 이야기의 버전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기란 힘든 일이다.

 

소설이란 좀 더 길어져야만 한다는 말은 잘 나오지 않는 불평이지만, 지금 우리는 여기에서 그런 말을 하고 있다.

 

여하튼 그런 소설 작법에 개의치 않고, 『The New Naturals』은 현대 생활에서 가장 주눅 들게 만드는 걱정에 아마도 전념하려는 듯하다. 이 책에서 받는 느낌은 일부 하중을 떠받을 만한 기둥은 동굴에 관한 것이다. 안개에 덮인 듯, 그러나 다음에 올 무엇에 대한 안개처럼 흐려 정체를 알 수 없는, 가공할 만한 추측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글을 쓴 Omar El Akkad는 소설 “American War”와 “What Strange Paradise”의 저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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