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는 부모가 사망했거나 양육 능력이 없어 보호가 필요한 아동에게 시설보다는 위탁가정, 공동생활가정 등 가정보호를 강화하는 정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올해로 가정위탁제도가 11년을 맞아 제도의 열매들이 맺히고 있지만 여전히 제도적·법률적인 지원이 부족하다는 것이 현장의 목소리다. 5월 22일 가정위탁의 날을 맞아 그 이야기를 들어봤다.
아동, 왜 가정에서 보호돼야 하는가
최근 계모에 의해 학대를 당해 의붓딸이 살해된 사건이 연이어 발생했다. 어떤 위험상황에서도 피신할 수 있는 피난처이자 안전지대인 가정에서 아동을 대상으로 이런 비극적인 일이 발생하자 국민 모두는 분노했다. 이에 아동폭력·가정폭력이 가정 내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문제라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도 “그동안 아동 학대는 80% 이상이 부모에 의해 이뤄지고 학대 사실이 숨겨질 가능성도 매우 높기 때문에 사회 구성원 모두가 더욱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며 “아동 학대를 더 이상 한 가정의 문제가 아니라 명백한 사회 범죄 행위라는 의식을 가지고 해결해 나가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게임중독으로 영아를 유기한 인면수심의 아버지 등 역기능적인 가정의 모습이 충격적이긴 해도 여전히 우리 인간에게 가장 안전한 지대는 가정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이면서 소설 「대지」의 작가 펄벅은 “가정은 나의 대지다. 나는 그곳에서 정신적인 영양을 섭취한다”고 했다. 특히나 영유아기 때의 가정은 생존과 연결될 뿐만 아니라 미래의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험과 기억들을 쌓는 근원적인 곳이다. 전문가들은 아동기에 겪은 경험들은 평생 동안 계속해서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아동기때 제때 올바르게 성장하지 못하면 아동은 결코 자신의 잠재력을 완전히 발휘할 수 없게 된다는 의미다.
아동이 스스로 독립할 수 있는 연령까지 성장하도록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당연하게 보호받고 지원받으며 자라야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례들이 세상에는 너무도 많아 아동을 가정에서 보호해야한다는 협약까지 등장했다. 유엔아동권리협약(Convention on the Rights of the Child: CRC)은 1989년 11월 20일 유엔이 채택한 어린이 권리조약으로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세계 192개국이 이 협약을 지킬 것을 약속했다.
유엔아동인권협약 전문은 “가정은 사회의 기본적인 집단이며 특히 아동의 발달과 행복을 위한 천연의 환경이므로 공동체 안에서 가정이 본연의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보호와 도움을 받아야 함을 확신한다. 조화로운 인격 발달을 위해 아동은 가족적인 환경과 행복 사랑과 이해 속에서 성장해야 함을 인정한다. 아동권리선언이 명시하는 바와 같이 아동은 신체적·정신적으로 미성숙하므로 출생 전부터 아동기를 마칠 때가지 적절한 법적 보호를 비롯해 특별한 보호와 배려가 필요하다는 점에 유념한다”고 밝히고 있다.
유엔아동인권협약은 또한 아동양육의 일차적 당사자로 부모와 가정을 언급하고 있다. 아동이 부모에 의해 가정에서 양육받을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정책을 요구하고 있다. 아동은 가정에서 성장할 권리가 있다는 유엔아동인권협약에 따라 우리나라의 소년소녀가정이 권고를 받은 바 있다. 우리나라에 소년소녀가장제도는 1984년에 도입됐다. 이 제도는 부모가 죽거나 아파서 혹은 학대 때문에 혼자 사는 아이들에게 기초생활보장 수급권 이외에 월 12만 원의 지원금과 각종 민간후원사업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오승환 교수(울산대)는 “우리 사회에서 ‘소년소녀가장’이라는 어휘에 대해 가지는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이는 적법한 보호조치가 될 수 없다. 아동으로만 구성되고 스스로 생계를 책임지우는 ‘소년소녀가정’은 아동권리 침해이고 가정위탁 전환 등 적절한 보호조치가 될 수 있도록 소년소녀가정 폐지 및 전환 정책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사회적으로도 일반국민, 민간기업, 비영리기관 등의 사회공헌 활동에 있어서도 더는 소년소녀가정을 내세우기보다는 가정위탁 등 적법한 아동보호체계에 대한 활동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우리나라가 그동안 UN 아동권리위원회로부터 지속적으로 보호대상아동의 시설보호에서 가정보호로의 전환 및 소년소녀가정의 폐지를 권고 받은 것이다. 각 자치단체에서 ‘소년소녀가정’으로 지정하는 것은 법에 규정된 보호 유형이 아니기 때문에 기초생활수급가정, 가정 위탁 등에 의한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고 있다. 이제 ‘소년소녀가정’은 2016년 이후 사라지고 가정위탁제도로 보호받게 된다.
유엔아동인권협약 등에서 권고하는 가정보호를 위해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가정위탁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가정위탁보호제도는 1990년대 말부터 지역 내에서 요보호아동 보호사업의 일환으로 시작돼 2003년에 지역가정위탁지원센터가 설치되고 2004년 중앙가정위탁지원센터가 설치됐다. 부모의 학대, 방임, 질병 기타 사정으로 친부모가 아동을 양육할 수 없는 경우 일정기간 위탁가정에서 아동을 보호·양육하며 다시 친가정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아동복지제도다. 이 제도는 아이의 건전한 성장은 물론 친가정이 가족기능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의의를 두고 있다.
중앙가정위탁지원센터에 따르면 위탁 보호를 받는 아동의 수는 2009년 1만 6608명(누적 집계), 2010년 1만 6,359명, 2011년 1만 5,486명, 2012년 1만 4,384명, 지난해 1만 4,586명을 기록하고 있다. 정부의 위탁 보호가 처음 실시된 2003년(7,565명)보다 2배 안팎으로 증가한 수치다. 한 위탁부모는 “아이들은 가족의 사랑 속에서 질서와 양보, 우애와 사랑, 배려와 협동을 스스로 배워간다. 사랑을 받고 자란 아이는 받은 사랑을 베풀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한다”며 “가정의 안전한 보호와 사랑 속에서 자란 우리 위탁아동들은 분명 이 나라를 이끌고 나갈 인재가 될 것이다”고 전했다.
가정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가정의 울타리를 선물해주는 위탁가정으로 참여하려면 우선 아동복지법에 따라 또 아동을 양육하기에 적합한 소득이 있어야 하고, 일반위탁가정이 되기 위한 일정 조건과 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또 위탁부모가 되기 위해선 만 25세 이상이어야 하고 위탁아동과의 나이가 60세 미만 차이가 나야한다.
가정위탁지원센터 관계자는 “위탁아동으로 보내겠다는 부모는 동사무소에 가서 신청해야 하고 위탁 부모가 되기를 희망하는 가정은 가정위탁지원센터에 신청하면 된다. 대리양육, 친인척 위탁가정에 전세자금 지원과 소득공제, 상해보험 등의 지원 혜택이 있으니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한다”고 전했다. 그러나 위탁가정이 필요한 아동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들은 “가정위탁보호의 본래 취지를 살릴 수 있는 인프라와 사회적 공감대가 모두 부족한 상황”이라면서 “현재 지방자치단체마다 다른 지원제도를 통일하고 보호 아동의 자립을 위한 실질적인 교육을 마련할 때”라고 지적했다.
경제적·법적·제도적 지원 필요
특히나 위탁부모와 위탁아동 등 위탁가정의 현실적인 필요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한 위탁모는 “사실 우리 사회에서 보호가 필요한 아이들이 입양, 시설보호, 다문화가정, 한부모가정 등 다양한 제도 속에서 보호와 지원을 받고 있다”며 “그러나 가정위탁보호제도를 잘 모르기 때문에 위탁아동들은 언제나 관심 밖이다. 지금보다 더 많은 사회적 관심과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올해로 11년째를 맞이하는 이 제도를 아직도 일선 공공기관이나 학교 등도 모르고 있어서 지원이나 혜택을 받지 못할 때도 있다고 한다. 학기 초가 되면 학교에 가정위탁보호확인서 등 서류를 제출하면서 설명해야 하고 주민센터나 구청 등 공공기관의 담당자가 바뀔 때마다 가정위탁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 이에 그는 “가정위탁제도가 더 많은 사람에게 알려져 일일이 설명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줄고 위탁가정에 대한 편견 없이 아동이 자랄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한편 요보호아동을 가정에서 보호하기 위해서는 가정위탁 보호조치 시 위탁가정에 경제적 지원이 추가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경기북부가정위탁지원센터 사은숙 위탁부모가 가정위탁보호제도 실천에 대한 인식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가정위탁보호 활성화를 위해 가장 필요한 점은 현실적인 경제적 지원이 23.6%로 가장 높았고, 영유아에 대한 가정위탁보호를 활성화하기 위한 방안을 보면 양육비 추가 지원 응답이 23.1%로 높게 나타났다.
실제, 입양 전 위탁모들에게 사례비로 월 50여만 원이 지원되며 영유아 양육에 필요한 물품(월 20만 원 상당)이 지원되지만 위탁아동과 위탁가정에 지원되는 재정지원은 아동의 기초생활수급비(1인 월 37만 원)와 가정위탁 양육보조금(월 12만 원)이 전부다. 또한 송순향 서울가정위탁지원센터 위탁부모는 “아이에게 통장을 만들어주고 싶어도 친부모가 아니라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보험 가입도 핸드폰 개통도 안 된다”며 “아이에 대한 법적인 양육권을 위탁부모에게도 부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뿐만 아니라 위탁아동이 갑자기 탈이 나 응급수술을 받아야 할 때는 친권자의 동의가 필요해 위탁부모는 응급상황에서도 아이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이 제한적이다. 위탁부모가 위탁아동에 대한 의무만 있을 뿐 법적인 권한은 없어 아이를 양육하는 데 불편을 겪고 있다. 이 때문에 위탁부모들에게 양육기간만이라도 법적권한을 줄 수 있도록 법적·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제주가정위탁지원센터 양창근 사무국장은 “위탁부모가 법정후견인제도를 활용해 법적 친권을 갖는 방법도 있지만 절차가 까다로워 대부분의 위탁부모들이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며 “일정 자격을 갖춘 위탁부모에게는 법정후견인이 되는 절차를 간소화하는 방법 등 제도적인 배려가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한편 가정위탁지원센터의 인원 확충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김대현 경희대 아동가족학과 학생(위탁아동)은 “위탁아동들이 가정위탁지원센터 선생님들과 충분히 상담을 하고 싶어도 과다한 업무로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지방의 경우 문화적 혜택이 많지 않아 선생님들의 지원과 상담이 수도권보다 훨씬 중요하다”며 “현재 센터 선생님들의 인원수로는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지원에 아쉬움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 지역가정위탁지원센터 131명의 상담원이 아동 1만 4,586명을 관리하고 있으니 1명당 111명 가량을 관리하는 셈이다. 이에 각 아동의 개별적인 특성이나 관심 등을 반영한 맞춤형 교육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에 전문가들은 “가정위탁의 인프라를 강화하고 지원센터의 상담원 수를 늘려 구체적인 관리를 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멘티가 멘토가 되고
김대현 학생은 “고등학교 1학년 때 대학에 못 갈 줄 알고 아무것도 열심히 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그런 나를 도와주는 이들이 많았다”면서 “해보면, 이미 그곳에 길이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위탁아동들 누구든 두려워서 먼저 포기하기보다는 열심히 한 후 열리는 문을 보는 기쁨을 경험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아울러 그는 상담선생님들이 자신에게 멘토가 돼준 것처럼 자신도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의 멘토가 되고 싶다고 했다. 아동가족학을 전공하게 된 계기도 상담사와의 만남을 통해 꾸게 된 꿈이라고 했다. 대현 군의 꿈과 삶이 어린 시절 방황하고 있는 어느 누군가에게 나침반이 되어주길 기대해본다. 그리고 제2, 제3의 대현 군을 키워줄 위탁가정이 더욱 많아지길 바라본다.
MeCONOMY May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