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인 피터 드러커는 “아무리 우수한 기업이라도 30년 후까지 지금의 모습을 유지하려 한다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 확언했다. 기업이 도태되지 않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혁신이 필요함을 강조한 것이다.
피터 드러커의 조언을 받아들인 것일까. 애플은 1976년 창립 30여년 후인 2007년 아이폰을 처음 선보이며 신사업을 개척했다. 이후 애플의 신사업 개척은 성공적으로 안착하며 다양한 분야로 신시장이 열리고 있다. 애플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신사업은 기존 기업에게 새로운 사업모델을 창출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포스코경영연구소 박용삼 수석연구원은 신사업을 “기존에 주력으로 영위하던 사업 분야 외에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분야, 혹은 전혀 새로운 분야에서 추진하는 사업”이라고 정의했다.
박 수석연구원은 기술개발의 가속화와 글로벌 경쟁의 심화로 인해 산업의 라이프사이클이 점점 더 단축되는 추세이므로, 새로운 수익원을 찾기 위해 기업 간 신사업의 선점 경쟁은 점점 더 가속화 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기업들이 ‘해야 하는 이유’에 초점을 맞춰 온갖 장밋빛 전망과 낙관적 기대를 품고 신사업에 뛰어드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미국 기업전략위원회는 성장 정체 후 신규사업을 추진한 기업들의 90% 이상은 실패하며, 7년이 경과한 후에야 Cash Cow(성장성은 낮지만 수익성이 좋은 사업, 일종의 기업수익원) 역할을 수행한다고 보고했다. 또한 성장 정체 후 재성장을 달성한 기업은 10%에 불과하며 이들 중 고성장을 기록한 기업은 3%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국내에도 신사업에 뛰어들었다가 실패한 기업들이 있다. 웅진그룹은 본연의 비즈니스 모델(방문판매)과무관한 건설업과 태양광 분야에 진출했다가 파산했으며, STX그룹은 M&A를 통한 신사업 개척으로 급격히 외형을 확대했으나 성장속도 조절에 문제가 불거지면서 몰락했다. 동부그룹 역시 반도체, 가전, 로봇, 종자사업 등 무리하게 전개한 신사업 부문의 실적 부진으로 심각한 유동성 위기를 자초했다. 이처럼 신사업을 ‘해야 하는 이유’ 못지않게 ‘해서는 안 되는 이유’도 균형 있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신사업 성공을 막는 7가지 바이러스
박용삼 수석연구원은 ‘신사업 성공을 막는 7가지 바이러스’라는 보고서에서 신사업 진행 단계별 위험을 초래하는 7가지 리스크 요인을 선정했다. 박 수석연구원은 신사업이 결실을 맺기까지는 아이템 발굴→기획→실행의 3단계에 걸쳐 7가지 리스크 요인이 있으므로, 신사업 개척 시에 이 리스크요인들을 유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첫째, 아이템 발굴 단계에서 빠지기 쉬운 함정이다. ‘레밍스 바이러스’와 ‘집단사고 바이러스’가 그것이다. ‘레밍스 바이러스’는 남들이 좋다고 하는 신사업 분야(특히 미래 첨단기술 분야)에 앞뒤 가리지 않고 뛰어드는 오류다. 레밍스는 개체수가 일정 수준을 넘으면 같이 낭떠러지에 떨어져 죽는 습성이 있는 북유럽의 나그네쥐를 말한다. 레밍스바이러스는 남들이 좋다고 하니 무작정 뛰어들어 실패하는 경우로, 대표적인 예로는 1990년대 후반 닷컴 버블과 2000년대 초반 그린 비즈니스 버블이 있다. ‘집단사고 바이러스’는 조직에 대한 소속감과 의견일치에 대한 강박관념으로 전망이 불투명한 아이템을 신사업으로 채택하는 오류이다.
아날로그 필름의 대명사인 코닥사는 디지털 기술의 위협에 당황해 캠코더, 디지털 카메라, 전자액자, 포토프린터 사업에 무분별하게 진출했다가 2012년 파산했다. 둘째, 기획단계에서 빠지기 쉬운 함정으로 ‘자기확증 바이러스’와 ‘갬블러 바이러스’, ‘좋은 쥐덫 바이러스’가 있다.
‘자기확증 바이러스’는 기획 중인 신사업 프로젝트의 성공 가능성을 과신하여 그 반대 증거들을 무의식적으로 거부하게 되는 심리적 편향이다. 1990년대 후반 2년도 채 되지 않아 사라진 시티폰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갬블러 바이러스’는 카지노의 도박사처럼 여기저기 신사업의 씨앗을 많이 뿌려 놓으면 그 중에서 몇 개라도 싹이 나서 성공 확률이 높아질 것이라고 기대하는 오류이다.
1960년대 말 제록스가 설립한 PARC는 레이저 프린터, 이더넷, GUI, VLSI, 유비쿼터스 등 각종 첨단 IT기술을 개발했지만 단 한 가지도 사업화하지 못했다. ‘좋은 쥐덫 바이러스’는 제품의 성능과 품질만 좋으면 고객들이 그 가치를 인정해 잘 팔릴 것이라고 생각하는 오류이다. 미국의 모토로라는 1997년 66개의 통신위성을 띄워 전 세계를 단말기 하나로 통화할 수 있는 범세계 위성통신 서비스를 개시했으나 높은 단말기 가격과 통화료 때문에 목표 가입자 유치에 실패했다.
셋쩨, 실행 단계에서 빠지기 쉬운 함정으로 ‘흰 코끼리 바이러스’와 ‘돈키호테 바이러스’가 있다. ‘흰 코끼리 바이러스’는 신사업 출범 후 사업성이 없음이 명백해 졌는데도 불구하고 주위의 비난과 매몰비용이 두려워 제때 중단하지 못하는 오류이다. 옛 태국 왕은 마음에 들지 않는 신하에게 하얀 코끼리를 하사했는데, 흰 코끼리는 70여년을 살며 하루 수백 kg의 먹이를 먹었으나 신하들은 왕의 하사품이므로 죽이지도 살리지도 못했다고 한다.
이처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사업정리 시기를 놓치게 되는 것이 ‘흰코끼리 바이러스’다. 1968년 영국과 프랑스의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기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돈키호테 바이러스’는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처음에 가정했던 시장 상황과 변수가 달라졌는데도 처음의 계획대로만 고지식하게 밀어붙이는 오류이다. 웅진과 ST그룹의 몰락은 신사업 아이템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단기간에 초고속으로 신사업을 밀어붙이면서 전략, 재무, 인사관리, 운영 등 그룹이 감당할 수 있는 관리 범위와 역량 수준을 넘어섰던 데에서 비롯되었다.
무엇이 변하지 않을 것인가
기업들의 신사업개척 실패에도 불과하고 여전히 신사업은 기업운영에 있어서 매력적인 분야에 속한다. 그 이유를 박용삼 포스코 수석연구원은 “기업경영이 자전거 타기와 같다”고 전했다. 더디게라도 꾸준히 나아가야지 만약 제 자리에 멈추는 순간이 오면 쓰러지게 된다는 것이다. 매년 매출이 똑같은 기업이라면 아무도 투자를 하지 않을 것이며 주가는 떨어지게 되고 신용등급도 하락하여 돈을 빌리기도 어려워지게 된다. 더군다나 글로벌 경쟁은 심화되고 있고 기존 사업이 레드오션으로 변해 마진이 줄어들면서 불안한 마음에 어쩔 수 없이 신사업을 찾아 떠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대내외적인 위협에 대비하여 신사업에 뛰어들어 성공한 기업도 상당수 존재한다.
국내 대표 기업으로는 삼성전자이다. 이건희 회장은 1974년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과감히 한국반도체를 인수하여 반도체 사업에 뛰어들었고 현재 삼성전자는 세계 메모리반도체 시장에서 시장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다. 교복사업에서 출발했던 SK그룹은 정부의 민영화를 계기로 정유, 이동통신 등에 진출하여 그룹의 면모를 재정비하였다. CJ그룹은 원래 설탕과 간장을 만들던 기업이었지만 1990년대 말부터 케이블, 영화관, 음악, 공연 등으로 조금씩 발을 넓혀서 현재는 국내 최대의 미디어 기업으로 자리잡았다.
글로벌 기업의 대표적 사례로는 1994년 설립한 인터넷 종합 쇼핑몰 ‘아마존’이 있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아마존 신사업 성공비결’ 보고서에는 아마존의 성공과정이 잘 나타나 있다. 세계 최초의 인터넷 서점으로 출발한 아마존은 2011년 전년 대비 16배나 성장한 481억 달러의 매출을 올렸으며, 미국 온라인 소매시장의 13.7%를 점유했다. 2012년에는 회원 수 1.7억 명을 돌파했으며, 미국에서 매월 1.1억 명이 아마존의 온라인 쇼핑몰을 방문한다. 아마존은 인터넷 쇼핑몰 외에도 디지털 콘텐츠, 클라우드 서비스, 태블릿 PC 등 다양한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하며 애플, 구글, 삼성전자 등 거대 IT기업을 위협하는 수준으로 성장했다.
아마존 CEO 제프 베조스는 하버드비즈니스 리뷰와의 인터뷰에서 자신들의 성공요인을 신사업에 대한 투자방식으로 꼽았다. 기업들은 일반적으로 신사업에 투자할 때 “다음 5~10년 후에 무엇이 변할 것인가”에 대해 질문하지만, 그는 “다음 5~10년 후에 무엇이 변하지 않을 것인가”에 대해 질문한다고 말했다. 더불어 “만약 기업의 투자가 경쟁자나 현재의 기술 등 일시적인 것에 집중된다면, 그러한 것들이 변할 때마다 기업의 전략도 빠르게 변해야 하는 악순환이 거듭된다”고 강조했다.
‘뜨는 아이템’보다는 역량 발휘 사업에 주력해야
박용삼 수석연구원(포스코경영연구소)의 신사업 성공을 막는 7가지 함정과 아마존 CEO 제프 베조스의 종합해 보면 신사업 추진을 위한 지침을 알 수 있다. 먼저 일시적인 시장성, 즉 소위 ‘뜨는 아이템’보다는 자사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며 차근차근 개발이 가능한 사업에 집중해야 한다. 아마존은 인터넷 서점을 시작하여 이에 기반하여 사업으로 확장했다. 온라인 쇼핑몰은 인터넷 서점에서 쌓은 기술력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확장했으며, 물류 인프라의 구축을 위해 자동화물류시스템을 갖춘 키바 사를 인수했고 2012년 물류센터를 58개 보유하면서 물류시스템의 경쟁력을 강화했다.
다음으로 신사업 친화형 기업문화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포스코경영연구소는 보고서를 통해 이를 ‘신사업 DNA 구축’이라고 일컬었다. 박용삼 수석연구원은 조직 내에서 창조적 신사업 아이디어 생성을 고취하기 위해 3M이나 구글에서와 같이 의도적인 슬랙타임(Slack time)을 조성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슬랙타임이란 정식 업무시간 중에 개인이 관심있는 아이디어 연구에 투입할 수 있도록 허용된 재량적 자유시간을 주는 것을 말한다. 3M과 구글은 직원들에게 각각 15%, 20%의 슬랙타임을 주고 있다.
또한 해당 업계의 외부 전문가를 신사업 기획에 참여시켜 내부의 집단주의적 사고가 불러올 수 있는 독선과 편견의 여지를 최소화해야 한다. 집단적 사고와 상명하복식 문화에 익숙한 우리나라의 기업들이 주의해야 할 대목이기도 하다. 신사업이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기업활동인 만큼 유연한 사고와 신속한 의사결정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이를 두고 박용삼 수석연구원은 “악마의 옹호자, 마이너리티 리포트, 워 게임, 역할 전이 등을 통해 조직 내에 건강한 의견 불일치를 인위적으로 조장하고 다양한 시각이 유입될 수 있는 통로를 만드는 것”이 요청된다.
미국에서는 양적완화조치가 종료되고 국내에서는 최경환 식 경기부양책 ‘초이노믹스’가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 불안한 경제상황 속에서 기업들의 신사업 개척은 필수요건으로 자리 잡고 있지만 그 어느 때보다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지혜도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