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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미사리카페 황제로 불리던 언더그라운드 3인조 ‘탱크팀’ 리더

가수 유람 ‘당신은 내 여자’ 신곡 발표

한 때 라이브카페의 메카였던 미사리. 여기에는 ‘정말로 노래를 잘 부른다’는 언더그라운드 가수들이 많았다. 그래서 저녁이면 젊은 연인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특히 3인조 트리오 ‘탱크’는 아직도 전설로 남아 있을 정도로 라이브카페의 황제로 통했다. 당시 ‘탱크’팀의 리더로 활동했던 가수 유람이 최근 솔로로 활동을 재개하면서 신곡을 냈는데 놀랍게도 트로트 가요다. 그동안 그에겐 무슨 일이 생긴 걸까? 가수 유람을 만났다.


당신은 내 여자입니다 / 모든 걸 다주어도 아깝지 않아 / 나를 믿고 내게 온 어여쁜 당신 천년만년 사랑합니다. 지난 4월에 발표한 가수 유람의 신곡 ‘당신은 내 여자’는 자신의 아내를 너무나 사랑한 한 남자의 절절한 사랑이야기가 담긴 곡이다. 재즈, 소울과 같은 노래를 불렀던 그가 갑자기 트로트로 전향한데는 어떤 이유가 있을까? 가수 유람은 트로트를 하게 된 것이 발라드나 재즈, 소울보다 시장이 넓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막상 트로트를 공부해보니까 너무 어려워서 힘들었다는 그는 요즘은 열심히 트로트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가수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창법과 호흡법을 바꾼다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바꿨냐고 묻자 “그 부분이 가장 힘들었다”며 웃었다.


가수 유람은 90년대 초반 첫 음악생활을 나이트클럽에서 시작했다. 당시 거기서 로비음악과 모든 작업을 직접 만들고 합성하는 미디음악도 했다. 어린나이지만 음악적인 소질을 눈여겨 본 지인이 그에게 음반을 낼 것을 권했고 서울로 상경한 그는 잘 나가는 한 기획사 대표를 만나 음반작업에 돌입했다. 그러나 당시 터진 기획사들의 연예인 비리사건으로 그의 첫 번째 꿈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기왕 서울에 상경했으니 서울에서 활동하기로 맘 먹은 그는 자신의 실력을 알아봐 준 서울 강남의 유명 클럽에서 음악생활을 시작했다.


“아마도 제 인생에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요. 그곳에서 음악계의 대선배인 ‘사랑과 평화’ ‘위대한 탄
생’ 이런 분들에게 음악이 무엇인지를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었으니까요.” 미사리의 언더그라운드 황제 ‘3인조 트리오 탱크’ 라이브 메카인 미사리에 입성하게 된 것은 이후 몇 년 후였다. 음악을 하면서 만난 친구들과 3인조 트리오 ‘탱크’라는 팀을 만들어서 활동을 시작했고 상당한 인기도 끌었다.


“그때 인기가 정말로 많았어요. 팬 층도 아주 두터웠고요. 저희 팀이 미사리로 들어가기 전만 해도 통
기타 가수가 전부였는데 저희 팀이 미디음악을 가지고 들어가서 화음도 맞추고 기타, 건반, 포커스
등을 치면서 노래를 하니까 새로운 센세이션이 일게 된 거죠. 새벽 세시 타임에 저희가 들어갔었는데
그 시간대에는 강남에서 젊은 여성들이 많이 놀러 왔어요. 미스코리아 출신 모델 출신들도 많았고요.”
남다른 그의 추진력은 가는 곳마다 신선한 바람과 함께 큰 호응을 얻으며 업소사장들이 서로 데려 가기 위해 경쟁할 정도였다. 그 인기에 힘입어 KBS아침드라마 주제곡도 불렀다.


“2003년경인데 KBS드라마 음악감독님의 권유로 KBS아침드라마 여고동창생 삽입곡 ‘비탈’을 부른 겁니다. 공중파에 정식으로 데뷔하게 된 거죠. 그걸 보고 KBS미디어에서 러브콜이 왔어요. 뮤직비디오를 만들어서 골든 시간대에 내보자고요. 조건은 KBS에서만 방송하자고 하더라고요. 그때 무조건 가야했어요. 제작자와 상의해보니까 앞으로 더 좋은 기회가 올 수도 있으니 조금만 기간을 끌어보자고 했죠. 그게 불발이 됐어요. 너무 욕심이 과했던 거죠. 당시 우리 팀이 언더가수지만 유명세를 탔기 때문에 계속 잘 나갈 줄 알았죠.”


이후 2000년대 중반이 되면서 잘 나가던 3인조 트리오는 멤버들 간에 불화가 생기면서 팀을 해체하게 된다. 결국 국내에서의 활동을 청산하기로 한 그는 일본행을 택하면서 힘든 길을 걷게 된다. “한국에서 펴지 못한 음악생활을 일본에서 펴보자고 생각했던 건데 녹록치 않았어요.” 다시 국내로 돌아온 그는 황제로 불리던 미사리 라이브카페에서 통기타 가수로 변신해 재기를 꿈꿨지만 3인조로 음악활동을 해오던 그에게 솔로가수 활동은 쉽지 않았다. 첫째는 가수로서 느끼는 자기만족이 약했다고 그는 말했다.


“당시 이대로 국내에 머물 것인가 아니면 또 다른 세계를 향해 도전해볼 것인가. 기로에 서서 고민이 참 많았죠.” 고민 끝에 그가 선택한 것은 관광수요가 많은 태국에서 음악생활에 도전해 보는 거였다. 그러나 태국 현지에서의 라이브카페는 늘 손님들로 북적였지만 낮은 물가 때문에 수지타산을 맞추기에 한계가 있었다. 외국에서의 두 번째 실패였다.


언더가수에서 트로트가수로 변신


언더가수 유람은 올해 3월 ‘당신은 내 여자’라는 신곡을 발표하고 트로트 가수로 변신했다. “당시 저와 함께 탱크 팀에서 음악 했던 친구가 광주에서 작은 스튜디오와 기획사를 운영 중인데 트로트를 한 번 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어요. 처음에는 망설였는데 조금 더 넓은 트로트 시장으로 나가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음반을 내게 된 거죠.”


그의 신곡 ‘당신은 내 여자’는 곡을 쓴 사람이 자신의 부인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은 절절한 사랑노래로 발랄하고 경쾌한 리듬이 인상적이다. “아내와 16살 차이가 나는데 부인을 너무 사랑해서 곡을 만들었다고 해요. 자신의 부인을 모티브로 쓴 곡이니까 얼마나 신경을 써서 쓴 곡이겠어요. 노래가사를 보는 순간 어쩌면 내 마음을 그대로 표현했을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최근 마음의 아픔을 겪었다는 그는 노래 가사가 자신의 심경을 담은 듯해서 이끌림이 강했다고 털어 놓았다. 현재 그는 서울에서 W bar라이브카페(서울 강동구 길동 소재)를 운영하고 있다. 산전수전공중전까지 다 겪었다는 가수 유람. 음악을 한다는 것이 어려운 길인 줄을 알기에 쫒아가기 보다는 순리대로 살아가려고 한다는 그는, 자신이 하고 싶던 음악으로 한때 많은 사랑을 받아온 만큼 팬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명감을 다해 노래를 부르겠다는 각오다.


“음악을 했다는 명함 한 장이면 되는 거 같아요. 욕심을 내려놓지 않으면 한도 끝도 없죠. 조금씩 보폭을 좁혀서 가려고 해요. 지금 당장은 사업에 전념하면서 팬들과 함께 하려고 해요. 여전히 저를 사랑해 주고 믿어주는 팬들에게 보답해야죠.” 얼마 전 개업한 W bar라이브카페에서 자신만의 무대에 설 때면 가장 행복하다는 그는, 가수는 무대가 크든 작든 자신의 노래를 들어 주는 사람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다고 힘주어 말했다.


실패를 통해 배운 교훈 잊지 않을 터


솔직히 그는 실패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 한때 라이프카페의 황제로, 때론 사업가로 살아오면서 거듭한 실패는 ‘자신의 그릇에 맞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교훈을 가슴에 새기게 했다. 그는 세상을 너무 만만하게 봤던 것에 대한 아쉬움도 크다고 말했다. “음악에 대해서는 제가 알지 모르지만 사회물정에 대해서는 잘 모르잖아요. 가령 지금처럼 제가 사업을 한다면 찾아오는 손님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데 저는 그걸 못했던 거 같아요. 제가 좋아하는 음악만 고집하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여러 번 실패를 거듭하고 나니까 느끼겠더라고요. 실패만 한 게 아니라 큰 공부를 한 거죠.”


그가 다시 재기를 꿈꿀 수 있기까지는 10년 동안 신뢰를 쌓아온 사업파트너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두사람은 10년 전 업주와 가수로 만나 신뢰와 믿음을 쌓아왔다. 그리고 사업파트너로 인생의 중요한 시기를 동행하고 있다. “형님께 정말로 많은 걸 배웁니다. 무역업을 하고 계시면서 함께 도와주시고 계시는데 늘 제게 조언을 아끼지 않으시죠. 지금껏 틀린 말을 하신 적이 거의 없는 것 같아요. 앞으로 많이 배워서 실망시키지 않은 후배가 되고 싶습니다.”


가수 유람이 운영하는 W bar라이브카페는 조용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룸과 연인끼리 얼굴을 마주보며 분위기에 취할 수 있는 스탠드 바, 그리고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라이브홀 등 3가지 콘셉트로 나눠져 있다. 통유리 건물로 아름다운 야경과 함께 실력 있는 가수의 노래를 들을 수 있다고 소문이 나면서 이젠 지역의 명소로 통한다.


10대에 가수로 데뷔


가수 유람은 초등학교를 들어가기 전부터 마을에서 꼬마가수로 통했다. “‘하늘의 황금마차’라는 노래가 있었는데 저는 늘 그 노래를 불렀어요. ‘무지개 타고 가는 눈부신 황금마차~’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부터 어딜 가든 불렀던 것 같아요. 집안에 행사가 있는 날이면 동네 어르신들이 늘 노래를 시켰죠. 그리고 잘 불렀다며 용돈도 두둑이 챙겨줬고요.” 어릴 적부터 끼가 많던 꼬마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동안 교내에서 열리는 노래자랑에서 1등을 독차지하며 6년을 보냈다. 중학교에 진학해서는 성악을 배우며 음악에 기초를 공부했다.


“당시 전국 콩쿠르가 열리면서 단원을 모집했는데 담임선생님께서 나가라고 하시기에 나갔다가 장려상을 받았어요.” 고등학교 때는 밴드생활을 했다. 공부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그는 오직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부르는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며 음악에 미쳐 살았다. “노만 가요제라는 게 있었는데 거기에 김흥국, 최유나 선배님들이 왔어요. 그 가요제에 고등학생밴드로 나가서 1등을 했는데 학교에서도 지역에서 노래신동이 났다고 난리였어요. 고등학교 때 티켓을 직접 만들어서 YWCA강당을 빌려 1, 2부로 나눠 콘서트를 했다면 알만 하잖아요.”


당시 그의 끼를 알아보고 판을 내자고 제안했고 서울에 상경한 그는 고등학생 신분으로 잠실에 있는 뉴코드 레코드사에서 솔로가수로 노래 한곡, 밴드로 노래 한곡, LP판을 냈다. 그때 그의 나이 18살이었다.


노래에 미친 반항아...하지만


“저는 학교 다닐 때 골통 짓을 많이 했어요. 크고 작은 사고를 많이 쳤죠. 아버지께서 교육공무원이셨는데 음악만이 제 마음을 잡는 다는 걸 아셨어요. 그래서 지원을 아끼지 않았죠. 도저히 공부로는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했던 모양이에요. 꽤나 큰돈을 주고 아버지께서 마이크를 사주시면서 음악을 열심히 하라고 하셨죠.”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그는 대학교 진학 대신 나이트클럽 보조로 들어갔다. 월급은 아예 없고 음악만 배우는 자리였지만 노래를 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으로 너무나 행복했다. 1년을 배운 후 독립한 그는
나이트클럽 싱어로 활동했다.


“생각해보면 당시 끼가 있긴 있었던 모양이에요. 그 끼를 끄집어 내줄 멘토를 만나지 못했던 부분에 대한 아쉬움이 크죠.” 2남4녀 중 막내인 그를 아버지는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그의 큰형은 국악을 전공했고, 큰 누나는 음악을 전공해서 KBS 단원으로 활동(지금은 다른 곳에서 합창단원으로 활동)했다. 큰 조카는 현재 시립단원으로 있을 정도로 가족들의 음악성도 남다르다. 긴 호흡을 필요로 한 음악을 하면서 자신이 만족할 수 있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다고 말한 그는, 앞으로 음악인으로서의 사명감을 갖고 최선을 다 하고 싶다고 말했다.


현재 그의 신곡 ‘당신은 내 여자’는 라디오를 통해서 애청자들을 찾아가고 있다. 그러나 아직 만족하기엔 이른다는 그는 교통방송이라든가 지역방송국 문을 두드려볼 생각이라고 했다. “모 방송국에 계시는 감독님께서 여러 곡을 준비해 두라고 하더라고요. 특집 방송을 잡아보겠다고요.” 그는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마다하지 않고 달려간다. 자신이 가진 재능이 누군가에게 삶의 활력이 되고 희망이 된다면 멈추지 않겠다는 각오다.


“행사에 가서 어르신들과 함께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르다 보면 이게 세상이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다만 아버지께서 우리 막둥이 언제 텔레비전에 나오나 기다리시니까 기회가 되면 방송에 출연도 할 생각입니다.” 미드음악을 하다가 언더그라운드 3인조 트리오로, 그리고 다시 트로트 가수로 변신한 가수 유람, 자신이 부르는 노래에다 세상 그대로를 담고 향후 엔카에 도전하고 싶다는 그의 계획이 잘 펼쳐졌으면 한
다.


MeCONOMY Magazine September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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