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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사회의 변화 ②】 민족주의의 장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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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불문주의’의 종언(終焉)일까?   


대표적인 ‘민족 불문주의’ 문화를 가진 미국이지만 지난 3월 애틀랜타에서 아시아계 여성 6명을 포함한 8명이 숨지는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하였다. 코로나19의 확산을 시작으로 아시아계에 대한 미국 내의 혐오적인 시선과 차별이 확대되고 있다. 아시아․태평양 출신 이민자들의 인종차별 박멸을 목표로 활동을 하는 ‘아시아태평양계 미국인에 대한 증오 중단’(Stop AAPI Hate)에 따르면 코로나가 본격적으로 확산하기 시작한 지난해 3월부터 올해 2월까지 미국 내에서 보고된 아시아인에 대한 차별 행위가 최소 3,795건인 것으로 집계됐다. 일각에서 코로나19가 ‘중국 바이러스’로 명명되면서 아시아인 전반에 대한 혐오가 확산되고 있다.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는 미국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폭력과 범죄로 이어지고 있는데 영국도 예외는 아니다.


영국에서는 지난해 상반기에만 500건 가까이 중국인 인종차별 범죄가 있었는데, 지성을 단련하는 대학에서 중국인 강사가 백인들에게 집단 폭행당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유럽에서 코로나19 감염자가 가장 많은 프랑스에서는 도시 봉쇄가 시작된 지난해 10월 이후 아시아인 차별이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원이라는 편견에서 중국인 폭행을 독려하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으며 실제 폭행사건으로 이어지고 있다. 중국인과 외견상 구분이 가지 않는 다른 아시아인들의 불안이 깊어지고 있다.


물론 코로나19로 인한 인종차별이 서양인과 아시아인 사이의 문제만은 아니다. 코로나바이러스의 발원지 중국에서는 자국 내에서 코로나19에 걸린 외국인들을 오히려 차별하는 일이 빚어지기도 했다. 한 예로 지난해 4월 중국 광저우 아프리카인 밀집 지역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하자 흑인이라는 이유로 동행한 백인 여성은 출입을 허용하고 흑인 여성에게는 금지한 사건이 있었으며, 심지어는 살던 아파트에서 쫓겨났다는 차별 사례가 언론을 통해 알려진 적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코로나19로 인한 인종차별 논란이 계속해 불거져왔는데, 지난해 재난지원금 지급 과정에서 외국인들은 배제되는 사례들이 알려지면서 차별 논란이 일었다. 이후 지자체들이 외국인에게도 지원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했지만 일부 시민들은 ‘내 세금으로 왜 외국인들까지 도와줘야 하느냐’는 등의 역차별을 주장하는 비판여론도 일었다.


1915년에 우드로 윌슨 대통령은 갓 미국 시민권을 딴 수천 명의 귀화민을 대상으로 한 연설에서 “당신의 모든 면과 모든 목적에서 완전하게 미국인이 되지 않으면 당신은 미국에 헌신할 수 없습니다. 스스로를 특정한 집단의 일원으로 생각하는 한, 당신은 완전한 미국인이 될 수 없습니다. 미국은 집단들로 구성되어 있지 않습니다. 자신을 미국 내에 있는 특정한 민족 집단에 속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 미국인이 되지 않은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윌슨 대통령의 희망대로 20세기 미국은 ‘민족불문주의’를 토대로 다양하고 갈등요소가 많은 문화를 적절히 조화시켜 세계 유일의 제국(슈퍼집단)으로 발전하였다. 


미국은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가 정의한 현대적 의미의 제국, 즉 “전 지구적 교환들을 효과적으로 규제하는 정치적 주체, 즉 세계를 통치하는 주권 권력(sovereign power)”이 되었지만 팽창하는 자국우선주의와 코로나19 이후의 혼란은 슈퍼집단의 장래에 다모클레스의 검이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민족주의’(nationalism)란 무엇인가?


세계에는 195개의 국가가 있다(이중 교황청과 팔레스타인을 제외한 193개국이 국제연합에 가입되어 있다). 이들은 단일민족국가인 경우도 있고 미국처럼 수많은 인종, 민족으로 구성되어 어느 하나의 정체성으로 규정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최근에도 이민, 난민, 글로벌 인구 이동으로 다문화 사회가 진전되고 있지만 유럽과 동아시아 국가들은 대부분 민족국가로 생겨났고 지금도 그렇다. 이들 나라에서는 인구의 압도적 다수가 하나의 민족에 속하며 대개 그 민족의 이름이 국가명이 되고 그 민족의 언어와 문화가 국가의 공용어와 지배적인 문화가 된다. 중국은 정치적, 문화적으로 한족이 지배적이었고 중국어를 사용한다. 독일은 게르만이 지배적이었고 독일어를 쓴다. 헝가리는 헝가리 민족이 지배적이었고 헝가리어를 쓴다. 한민족으로 한글을 쓰는 우리나라는 민족 정체성과 국가 정체성은 공통적이다.   


민족의 정의 방식은 객관주의와 주관주의가 있다. 객관주의는 민족성(nationhood)의 객관적 기준을 세우거나 민족이 되는 집단을 언어나 종족 같은 단일한 기준 또는 언어, 공유 거주 지역, 공통의 역사, 문화적 특성 등과 같은 기준의 조합에 기초를 둔 정의 방식이다. 스탈린이 “민족은 언어, 영토, 경제생활 및 문화 공동체 내에 구현된 심리구조 등을 지닌 역사적으로 진화한 안정된 공동체이다”고 한 것은 객관적 정의방식이다. 그러나 객관적 정의에 쓰이는 언어, 종족 등의 판단 기준들 자체가 애매모호하고 변화무쌍하여 홉스봄은 “여행객이 길을 가는 데 구름 모양이 소용없는 것과 같이 쓸모없다”고 하였다.  


주관주의는 1960년대 이후 의식배양을 통한 민족형성의 시도로 발전하였으며 객관적 정의의 대안으로 나타났다. 민족은 어디에 사는가, 누구와 사는가와는 무관하게 소속 성원의 의사에 달려있는 ‘자유로운 선택’을 강조한다. 르낭의 “민족이란 일상의 국민결의이다”하는 정의가 대표적이다. 베네딕트 엔더슨은 “민족은 본래 제한되고 주권을 가진 것으로 상상되는 정치공동체이다”라고 하였는데, 그에 의하면 “민족은 구성원 각자의 마음에 서로 친교의 이미지가 살아있기 때문에 상상된 것”이며, “민족은 제한된 것으로 상상”되며, “주권을 가진 것으로 상상”되고 “공동체로 상상”되는 것이다. 


내셔널리즘 연구를 전문으로 한 앤서니 스미스는 민족주의를 보는 패러다임을 원초주의, 영속주의, 근대주의, 종족․상징주의의 네 가지로 구분하였는데, 크게는 원초주의와 근대주의로 구분된다. 스미스는 종족성과 그것이 가지고 있는 상징적 의미를 강조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데, 그가 말하는 종족이란 “고토와 연결되고 조상에 대한 공통의 신화가 있고 기억을 같이하며 하나나 여러 문화적 요소들을 공유하고 최소한 엘리트사이에서라도 상당한 연대성이 있는 고유의 이름을 가진 인간 공동체”이다. 그에게 민족주의는 “어느 인구 집단 구성원들의 일부가 그 집단이 실제적이거나 혹은 잠재적인 ‘민족’을 구성한다고 믿으며 그 자율성, 통합, 정체성을 확보하고 유지하려는 이데올로기적 운동”이다.  


한편 이전부터 존재하는 문화적 공동체와의 연속성을 중시하는 스미스의 입장과는 다른 논리가 근대주의이다. 여기에는 내셔널리즘을 근대 특유의 산물로 보는 홉스봄이나 어네스트 겔러가 있다. 그들은 민족을 원초적이거나 불변의 것으로 보지 않고 근대적 영토국가, 즉 민족국가와 관련하여 나타난 사회적 실체이며 근대적이고 기본적으로 정치적인 의미에서 매우 짧은 역사를 지닌 무엇이라고 본다. 근대 민족 및 이와 관련한 모든 것의 기본적인 특성은 근대성이라는 것이다. 다만 원초주의든 근대주의든 민족주의에는 실재하는 그 무엇보다도 강력한 화력이 내재되어 있다.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황혼에 날았다!


“헤겔이 말하듯 지혜를 가져오는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해가 져야 날았다. 그것이 현재 민족과 민족주의 주위를 나는 것은 좋은 징후이다.” 이 문장은 영국의 역사가 홉스봄의 『1780년 이후의 민족과 민족주의』 마지막 부분이다. 홉스봄은 민족과 민족주의가 새로운 역사 속에 계속 존재할 것이지만 그 위치는 낮을 것이며 종종 대수롭지 않은 역할만을 할 것이라는 미지의 기대를 이 한 문장으로 표현했다.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해가 져야 날았다’는 말은 독일 관념론을 대표하는 사상가 헤겔의 『법철학』(1821년) 서문에 나오는 말이다. 헤겔은 현실이 끝나는 지점에서 철학이 시작된다는 의미로 이 말을 사용하였다. 이 말이 오늘날에는 한 시대가 끝나는 시점에서 지혜와 예술의 여신 미네르바는 올빼미를 풀어 올빼미의 큰 눈으로 시대를 성찰하도록 하고, 다가오는 ‘밤’이라는 미래를 준비한다는 의미로도 쓰이고 있다.  


민족주의를 세계사적 차원에서 조망한 홉스봄의 가설처럼 ‘종족적 공동체 및 집단의 공존은 현대사회의 운명’이다. 대대적이며 다층적인 인구 이동과 변동에 기반을 둔 도시화와 산업화는 기본적으로 종족적, 문화적, 언어적 면에서 동질적인 인구가 거주하는 영토에 대한 민족주의의 기본 가정을 허물어뜨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민 수입국에서는 인종 및 민족의 게토화(ghetto)로 사회적, 지역적 격리가 만들어져 있다. 우리나라의 차이나타운, 미국의 코리안 타운, 일본의 한국인 상점가 등은 현대적 의미의 ‘게토’이기도 하다.  


지역의 토착주민에게는 ‘낮선 사람’인 이민자들에 대한 거부감으로 생긴 외국인 혐오증 및 인종주의는 1890년대 이후의 미국과 1950년대 후의 서유럽에서 익히 알려져 있다. 수년 전에는 난민 수용을 둘러싸고 유럽 국가에서 정치적, 사회적으로 많은 논란이 있었으며, 난민 유입을 반대하는 우익 포퓰리즘 정당이 선거에서 약진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코로나19가 몰고 온 인종차별, 민족차별 문제는 과거와는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팬데믹이 장기화하면 할수록 차별문제는 더 심각하게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민족주의는 분리와 통합이 연속적인 과정에 있다. 다민족으로 구성된 국가들이 단일민족의 소규모 국가들로 쪼개지고 분단국가이던 독일은 통일을 이루었다. 종족과 언어 면에서 동질적이며 단일 국가로서 오랜 전통을 가진 우리나라는 분단국가로부터의 탈출이 오랜 숙원이지만 대륙의 많은 국가의 경우 다민족 국가 안의 민족 간 적대적인 관계는 독립국가를 만드는 연료가 되었다.


앞으로 몇 년 동안 민족주의의 부상과 국제적 분열 확대로 인한 일부 탈세계화 움직임은 불가피해 보인다. 그러나 세계화로부터의 성급한 후퇴는 무역과 통화 전쟁을 유발하며 모든 나라의 경제를 해치고,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며 인종적 내지 족벌적 민족주의를 촉발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문제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거버넌스의 개선이 필요하며, 아울러 각 개인은 혼합된 정체성과 이중의 문화적 배경을 갖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회에서 다양한 문화를 몸소 체험함으로써 관용적이고 개방적인 공감능력을 길러야 한다. 다문화적인 정체성은 또한 다른 사람에 대해 공감을 표현하는데 필요한 보다 풍부한 개인적 경험과 느낌의 저수지를 만들어주는데 여기에는 교육의 힘이 불가결하다. 그래서 미네르바의 올빼미가 교육의 주의로 날아오를 때가 된 것 같다.

 

김상규 교육학박사 / 본지 논설주간 

▲ 김상규 교육학박사 / 본지 논설주간 

 

김상규 

도호쿠대학 법학연구과에서 공공법정책, 와세다대학 교육학연구과에서 교육기초학을 전공하였다. 저서로는 『민족교육』, 『교육의 대화』, 『세계의 학교제도』가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사회 변화와 공공정책, 저출산과 학교정책, 교육의 기회균등이다.

 

MeCONOMY magazine April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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