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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사회의 변화 ③】 민주주의와 시민적 공공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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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는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 경제적 피해와 사회적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 일각에서는 ‘세계는 더 이상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과 똑같은 모습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국민들이 겪고 있는 경제적․사회적 피해를 이겨내고 예전과 같은 안정된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정치와 정부, 기업, 시민사회 모두의 협력은 필수적이다. 지난 호에서는 ‘글로벌화, 민족주의, 민주주의’를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트릴레마(trilemma, ‘어느 것도 선호하지 않는 세 가지 중에서 한 개를 선택하여야 하는 삼자 택일의 궁지 상태’를 말하거나 ‘세 가지 정책목표 간에 상충관계가 존재하여 이들을 동시에 개선할 수 없는 상황’)로 전제하여 글로벌화와 민족주의를 살펴보았다. 이번 호에서는 ‘민주주의와 시민적 공공성’에 대해 조망해 본다.

 

 

민주주의의 원칙

 

민주주의의 어원은 그리스어의 demos(인민)와 권력, 지배, 통제 등을 뜻하는 kratos가 결합된 demokratia, 즉 현재의 democracy이다. 민주주의 국가의 주권은 입법자나 정부가 아닌 국민에게 있는데, 우리나라 헌법 제2조 제1항에서도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선언하고 있다. 세계 각지의 다양한 민주주의 제도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지만 민주주의 정부는 다른 형태의 정부와 구별되는 원칙과 관행이 존재한다. 미국무부의 국제정보계획국―Bureau of International Information Programs―은 민주주의 원칙―principles of democracy―을 정의하고 있는데 몇 가지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민주주의란 시민이 직접 또는 자유선거로 선출된 대표를 통하여 권한을 행사하고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수행하는 통치형태이다.

 

▸ 민주주의는 개인과 소수그룹의 권리가 일체가 된 다수결 원리를 기반으로 한다. 모든 민주주의는 다수파의 의견을 존중하는 한편 개인 및 소수그룹의 기본적인 권리를 열정적으로 보호한다.

 

▸ 민주주의는 전권이 집중된 중앙정부를 경계하고 정부 기능을 지방과 지역에 분산시키며, 지방정부가 가능한 한 시민의 근거리에서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한다.

 

▸ 민주주의는 모든 시민에게 열려있는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정기적으로 실시한다. 민주주의에서 선거는 독재자나 단일 정당의 폐쇄적인 선거가 아니라 국민의 지지를 위한 진정한 경쟁이어야 한다.

 

▸ 민주주의는 정부를 법의 지배하에 두고 모든 시민이 법 앞의 평등한 보호를 받으며, 시민의 권리가 법제도에 의해 보호되도록 한다.

 

▸ 민주주의 사회는 관용과 협력과 양보라는 가치를 무엇보다도 중시한다. 전체적인 합의에 도달하기까지는 양보가 필요하며 늘 합의의 형성이 가능하다고는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한다.

 

정리하면 민주주의란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 국민의 대표에 의한 권리 행사, 다수결의 원리에 의하면서도 소수자의 적극적인 보호, 중앙정부에 대한 권력 집중의 견제와 권력의 분산, 모든 국민의 법 앞의 평등, 관용과 협력, 양보 등을 조건으로 하는 정치형태이다.

 

공공성의 구조 전환

 

민주주의와 관련된 많은 핵심적 개념과 제도는 고대 아테네에서 확립되었다. 기원전 508~507년에 클레이스테네스에 의해 단행된 일련의 개혁조치가 민주주의의 출발점으로 기원전 5세기부터 4세기에 걸쳐 약 200년 동안 지속되었는데 그 전성기는 기원전 5세기 말경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시기에 평민들의 권력을 신장하고 모든 시민들이 부, 권력, 사회적 지위와 관계없이 법 앞에서 동등하게 대우받는다는 원리가 자리 잡았다. 혈연과 지연 중심의 전통적인 동질성과 폐쇄성을 넘어 폴리스 전체의 단합을 도모하고 정치적 교육을 심화하였으며, 시민들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집합적 의사결정에 평등하게 참여할 기회를 부여받았다.

 

그러나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는 전체 인구의 15% 내외의 시민에게만 부여되었으며 여성과 노예, 외국인을 배제되었다. 즉, 사회적 신분·재산적 지위에 따라 정치 참여가 제한된 차별적인 사회였다. 인종, 성별, 재산, 출신, 종교, 사회적 지위 등에 의한 차별 없이 국민 누구나 자유와 평등한 조건에서 권리와 의무가 부여된 현대적 민주주의로 정착되기까지 정치적 갈등과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그중에서 ‘공공성의 구조전환’은 현대 민주주의로 향하는 노정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위르겐 하버마스의 『공론장의 구조변동』―Strukturwandel der Öffentlichkeit, 18세기에서 19세기에 걸쳐 영국, 프랑스, 독일에서 발달한 시민적 공공성, 즉 시민사회의 특유한 공공적 커뮤니케이션의 성립과 그 변화를 추적한 저작―은 사상사적, 철학적으로 공공성의 개념을 정교화하여 관심을 높인 단서가 되었다. 하버마스는 시민적 공공성에 대한 안이한 기대를 경고하고 있다. 그는 공공성을 성질이나 특질로 보기보다는 공간을 의미하는 개념으로 보았다. 그가 공공권의 모델로 하였던 것은 18세기 유럽에서 부르조아로 불리는 중산계급이 싸롱이나 커피점 같은 장소에서 유통하였던 문예잡지와 같은 매체였다. 누구나 출입이 가능한 장소, 누구라도 읽을 수 있고 기고할 수 있는 매체로 사람들은 자유롭게 정치, 외교, 예술 등 다양한 테마를 얘기할 수 교환하였다.

 

귀족층과 시민의 지식인이 일종의 교양인으로서 대등 관계에서 살롱이나 커피하우스에서 작품을 비평하는 ‘공중으로서 교양인의 대등성이라는 불문율’을 바탕으로 조직된 전형적인 문예적 공공성이다. 여기에는 사회적 지위의 평등성이라는 비 폐쇄성, 교회나 국가의 권위에 의한 해석의 독점을 타파하고 작품을 자유롭고 비판적으로 독해하는 비판성이라는 원칙이 암묵의 제도적 기준이 되어 있었다. 그곳에 모일 때에 사람들은 유통업자도 금융업자도 수공업자도 귀족도 아니며 각각의 입장, 신분, 이해관계를 떠나 개인으로서 자유롭게 참가하고 공개된 장소에서 자기이익에 구속되지 않는 의견교환을 가치로 하는 공공성이 생겨났다고 그는 보았다.

 

공공성이란 어떠한 입장의 인간에게 더 열려 있고(개방성) 그곳에 참가하는 사람은 자기의 입장을 넘어 참가(무연성)하는 이중의 의무를 가진 공간이었다. 싸롱과 커피점에서의 토론과 문예 잡지는 누구에게도 열려있었다. 이 문예적 공공성 속에서 정치적 기능을 가진 시민적 공공성이 탄생한다. 그러나 공공권에 참여하는 자격이 만인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재산과 교양을 가진 부르주아에 한정되어 있었다. 이러한 공공성의 모순과 한계를 극복하는 대항 모델은 재산처분권과 사적 자율의 기반을 가지지 못한 노동자 계급이 새로운 공공성의 주체로 승진하는 개방성과 비판성이라는 이념을 현실화하는 구상이었다.

 

자본주의가 성숙하고 계급대립이 격화된 19세기 후반에는 일반 서민도 토론의 장에 들어가 문자매체를 구입하게 되었다. 노동자 계급의 문해율이 향상되면서 그들의 정치적 발언력이 높아지는 가운데 신문이 등장한다. 그러나 일반 서민이 참가하게 되자 그 장소와 매체는 변하여 자본주의를 선전하는 공론의 수단으로 사용하게 되어 어느 누구가 각각의 입장과 자기이익을 벗어나 개인으로서 참가하는 공공권이 아니었다. 이러한 변질을 하버마스는 공공성의 구조전환이라고 부르고 중요시하였다.

 

신문은 1850년대 이후에 빠르게 쇠퇴하는데 ‘공공권의 구조적 변화’, ‘공공성 원리의 기능변화’가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영국에서는 인지세법 폐지 후 값싼 대중적 신문이 증가하고 정부, 정당, 각종 단체가 활자 미디어를 통하여 홍보활동을 강화하고 자기들이 주장하는 이해관계를 보편적인 이해관계인 것처럼 선전하여 대중으로부터 동의와 묵인을 취하려는 움직임이 생겨난다. 또한 텔레비전과 라디오의 등장은 텔레비전 프로그램 안에 조직된 전문적인 대화 및 비즈니스로서 공개토론의 채널 또는 공중을 관리행정기관의 조작 대상으로서의 수동적 시민의 위치에 놓이게 된다. ‘재정치화된 사회권’의 성립, 이와 연동된 각종 단체의 홍보 활동 확대와 미디어의 오락화․상업화는 공중 자신에 의한 비판적 토론을 감축시키고 시민적 공공성을 조작적 공공권으로 전환한다. 하버마스는 현대의 사회적 커뮤니케이션 구조를 이처럼 특징지우고 있다.

 

민주주의의 한계와 시민적 공공성

 

민주주의에도 당연히 한계가 있다.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중우정치’의 비판을 받았다. 정치에 전문성이 부족한 일반 시민들이 국사를 직접 담당하였기 때문에 아테네의 정치는 소란스럽고 불안정하고, 충동적이고 비합리적이며 대중선동에 취약할 밖에 없는, 즉 다수의 폭정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는 비판이 바로 그것이다. 19세기 선거권이 점진적으로 확대되면서 기존의 자유주의적 의회제는 민주적 의회제가 되었으나 나폴레옹 1세와 나폴레옹 3세는 투표를 통한 대중 독재를 국가 규모에서 최초로 선도한다. 제1차 세계대전 후의 독일에서는 바이마르헌법에 의해 사회적 생존권, 노동권, 표현의 자유 등이 보상되고 역사상 드문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가 헌법상 출현하였지만 헌법 제정 후 14년이 지나 이러한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감시 사회, 나치당 독재의 시대를 초래하였다.

 

 

베네수엘라 대통령으로 13년간 재임하면서 혼돈상태로 빠트린 차베스도 민주주의가 낳은 산물이며, 1990년대 코트디부아르, 토고, 가나, 시에라리온, 케냐, 차드, 나이지리아에서는 민주주의를 도입한 뒤에 정치적 폭력이 일어났다. 민주주의의 출범이 폭력적 분쟁 또한 종식시키지 못했는데 콩고민주공화국, 우간다, 부룬디 등이 그 사례이다. 아자 가트와 알렉산더 야콥슨의 말처럼 민주주의의 다른 장점들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가 다종족 국가의 해체를 권위주의보다 더 잘 막아준다는 보장은 없는 것처럼 보이는 사례가 세상 이곳저곳에서 많이 일어나고 있다. 다수당의 입법권에 의해서도 민주주의는 다른 길로 나아갈 가능성이 높다. 나폴레옹 1세와 나폴레옹 3세의 투표를 통한 대중 독재도 민주적 의회제에서 있었던 역사적 사실(史實)을 상기할 때 다수당은 다수결의 원리를 남용할 가능성 또한 높다. 칼 슈미트는 ‘법은 한 사람 또는 많은 사람의 의지가 아니라 어떤 이성적이고 일반적인 것, 즉 법은 의지가 아니라 이성이다’고 하였지만 법이 이성이 아니라 다수당의 의지가 되어버릴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낡은 권력들과의 강고한 투쟁을 통해 획득한 입법권한이 합리적 합의의 결과가 아니라 정치적 의지의 결과물로 변질될 가능성 또한 적지 않다.

 

미국의 연방의회가 상원과 하원으로 분리되어 법안은 양원을 통과하지 않으면 성립하지 않는 정치체제인 경우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하지만 단원제인 경우에는 다수당의 의도에 따라 법률이 제정되거나 개정되고 사회제도가 굴절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러한 사회제도의 한계를 보완하는 방법은 입법권자, 정치인, 정부가 편애적 관점에서 벗어나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으려는 노력밖에는 없다. 이것이야말로 시민적 공공성의 회복인 것이다. 앞서 언급하였지만 시민적 공공성의 전 단계인 문예적 공공성의 중심지 커피하우스는 1680년과 1730년 사이에 영국에서 번창하였다.

 

커피하우스는 영국이나 프랑스에서 처음에는 문예적 비판의 중심지였으며, 후에는 정치적 비판의 중심지가 되었다. 여기서 귀족주의적 사교계와 부르주아적 지식인들 사이에서 교양 층의 평형이 이루어지기 시작한다. 커피하우스는 이미 널리 펴진 차뿐만 아니라 초콜릿과 커피 또한 최소한 부유층 주민 층의 일상 음료가 된 이후 커피하우스가 크게 증가한다. 18세기 처음 10년간에 이미 런던에는 3천 개가 넘는 커피하우스가 생기는데 이들 모두는 고정 고객을 가지고 있었다. 커피하우스들은 정치적 불안의 온상으로 간주되어 영국 정부가 1670년대에 문예적 공론장인 커피하우스를 통제하려고 기획한 것도 의사소통에 의한 논의적 민주주의의 제한이었다. 지금 우리 사회 일부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몇 명의 생각이 국민 대다수의 의견으로 둔갑해 버리고 사회 현상이나 국민의 생각을 편의적 읽고 해석하려는 논의적 민주주의의 왜곡은 좋은 사회, 밝은 미래로 나아가는 데 있어 철의 장막이 된다는 명제를 우리 모두가 공유하였으면 한다.

 

김상규 교육학박사 / 본지 논설주간 

김상규 교육학박사 / 본지 논설주간 

 

김상규 

도호쿠대학 법학연구과에서 공공법정책, 와세다대학 교육학연구과에서 교육기초학을 전공하였다. 저서로는 『민족교육』, 『교육의 대화』, 『세계의 학교제도』가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사회 변화와 공공정책, 저출산과 학교정책, 교육의 기회균등이다.

 

MeCONOMY magazine May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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