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12일, 이재명 대통령과 강원도민이 만난 타운홀 미팅에서 한 시민은 대통령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대통령님, 강원도는 매년 8조, 9조, 이제 10조 원의 사상 최대 국비를 확보했다며 홍보에 열을 올립니다. 그런데 도민들은 그 많은 돈이 다 어디로 가고 우리 삶은 왜 그대로냐고 묻습니다.”
비단 강원도만의 일일까?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대부분 고개를 끄덕일 법한 질문이다. 이 질문 속에는 지방자치의 현실과 풀뿌리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이 함께 담겨 있다. 1952년 첫 지방선거가 실시되었으나 1961년 군사정변으로 중단되었고,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1991년 지방의회가 재구성되었다. 이어 1995년 자치단체장을 주민이 직접 선출하며 본격적인 민선 자치 시대가 열렸다.
◇선거는 정말 ‘민주주의 꽃’인가?
그런데 안타깝게도 지방자치의 수준은 딱 거기까지였던 것 같다. 자치단체장의 의식과 역량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으나 주민이 체감하는 지방자치에 대한 효능감은 매우 낮다. 단체장도 의원도 주민이 선출만 할 뿐이지 주민자치·주민통제와는 아직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선거가 민주주의의 꽃이라고들 하지만, 선거는 국민의 주권을 빼앗는 수단이 되고 있을 뿐이다. 적대적 양당제도가 고착화 된 영호남에서는 더욱 그렇다. 호남에서는 민주당, 영남에서는 국민의힘 공천만 받으면 작대기를 꽂아놓아도 당선되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는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단체장과 의회가 같은 당 소속으로 구성되어 견제 기능이 마비되거나, 설령 당이 다르더라도 발목잡기나 하는 적대 정치가 관성화되어 생산적 정치를 기대하기 어렵다.
선거로 뽑힌 이들의 주된 일상은 행사장에 악수하러 다니는 일이다. 이들은 민생보다는 토목 사업이나 보여주기식 축제에 매달린다. 연말마다 보도블록 교체 작업은 반복적으로 잘도 한다. 지방 정부와 의회의 신뢰도가 20~30%에 불과한 것도 다 이유가 있다.
강원도 타운홀 미팅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이러한 우려를 솔직히 털어놓았다.
“예산을 배정하면서 항목을 중앙정부가 지정하지 않고 지방정부가 자율적으로 쓸 수 있는 비중을 높였지만, 걱정스러운 부분이 있다. 자율적 권한을 확대하면 잘 될까? 되레 망가뜨릴 기능성은 없는가? 이런 걱정은 있다.”
이는 대통령만의 걱정이 아니다. 정치 현실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시민이라면 누구나 통감하는 대목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방자치 이대로 좋은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은 물론 ‘지방자치 무용론’까지 주장하는 국민도 상당수다. 지방자치는 풀뿌리 민주주의 정착을 위한 필수 조건임에도, 이런 그릇된 정치 풍토 탓에 외면받고 있다. 지방자치가 진정한 ‘주민자치’로 이어지지 못한 결과이다.
◇지방자치가 주민자치로 성숙하지 못하는 이유
민주주의가 시민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려면, 지방자치가 단순한 행정 분권을 넘어 주민자치로 진화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지방자치가 중앙정부의 일을 나눠서 하는 수준에 그친다면 그건 지방자치의 본질에 맞지 않다. 또한 지방자치가 주민의 주권 행사로 이어지지 못하고 토호 세력 등 일부 특권층의 이익이나 지켜주고 있다면 이건 봉건 사회나 다를 바 없다. 그런 사회라면 주민의 주권 행사는 투표장에 국한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루소가 말했듯, 국민은 투표하는 순간만 주인일 뿐 선거가 끝나면 다시 노예가 되는 구조를 확인시켜주는 셈이다.
헌법에는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명시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대리인인 정치인들이 그 주권을 마치 자신들의 기득권인 양 사유화해 왔다. 이에 시민들은 참정권의 적극적 보장을 요구하고 있으며, 그 대안으로 인구 구성비에 맞춘 추첨식 대의기구인 ‘시민의회’가 주목받고 있다.
이미 서구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유의미한 제도로 확인된 시민의회는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추세이다. 하지만, 선거제도로 당선된 기득권 세력은 자신들의 권력이 흔들릴 것을 우려해서인지 이를 애써 외면하고 있다.
그러나 변화의 물결은 거스를 수 없다. 최근 전남광주통합시장 더불어민주당 후보 경선에서 “직접민주주의 방식의 ‘추첨’을 통한 시민 참여”를 공약한 민형배 후보가 선택받은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민 후보는 시민주권위원회를 출범시키며 참여 정치의 시동을 걸었다. 장차 민 후보가 당선되어 이를 실행한다면 한국 정치 발전에 한 획을 긋는 사건으로 평가할 만하다.
사실 전남과 광주를 통합하기로 한 특별법은 시민적 합의 과정이 충분치 않은 상태에서 추진되어 갈등의 불씨를 안고 있다. 실제로, 통합청사의 배치·각종 관공서의 안배·산업시설의 안배·예산 배분·도시지역과 농어촌지역의 균형잡힌 발전 등은 모두 가볍지 않은 갈등 요인이 될 수 있다.
통합시에 대한 특별지원금 20조 원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를 두고도 수없이 많은 줄다리기와 말들이 오갈 것이다. 이를 정치적 거래나 시혜성 지원금으로 적당히 덮으려 한다면 통합의 명분은 사라지고 다시 분리하자는 목소리까지 나올 수도 있다.
이 갈등을 해결할 적임자는 오직 주권자인 시민뿐이다. 권리 주장도 합의도 양보도 시민들만이 할 수 있다. 이는 어떤 엘리트나 특정 시민활동가도 대신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주권자인 시민들만이 할 수 있다. 물론 모든 시민의 목소리를 일일이 다 들을 수는 없다. 그래서 연령, 지역, 성별, 소득별 비율에 맞춰 추첨된 시민들로 구성된 ‘시민의회’가 필요하다.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숙의를 통해 합의를 도출하는 방식이야말로 가장 바람직한 갈등 해결 모델이 될 것이다.
◇광주, 다시 민주주의 성지로 거듭날 기회
일부에서는 추첨 방식의 대표성과 책임성을 우려한다. 그러나 인구 통계에 기반한 층화 표본 추출 방식은 오히려 선거로 뽑힌 의회보다 시민의 입장을 더 고르게 대변할 수 있다. 책임성 역시 마찬가지다. 추첨된 위원들은 단 한 번의 임기를 수행한 뒤 다시 보통의 시민으로 돌아가 자신이 만든 규범의 적용을 받게 되므로 결정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
의사 결정 과정에서 전문가의 조력을 받으며 숙의와 공개 토론을 거친 합의안은 그 무게감이 결코 가볍지 않다. 그렇게 의결된 내용은 의회로 넘어가 표결을 거치거나 시민투표로 최종 결정하게 된다. 그런 과정을 거치게 되므로 포괄성, 투명성, 공정성은 물론 효용성까지 담보하는 제도라 할 만하다.
광주시는 민주화의 성지로 역사적 평가를 받고 있다. 이번에 새롭게 출범할 전남광주특별시가 통합 과정의 갈등을 시민의 집단지성으로 풀어낸다면, 이곳은 과거에서 미래로 이어지는 진정한 민주화의 성지로 거듭날 것이다. 기득권층의 지지를 등에 업은 현직 시도지사를 차례로 밀어내고 대신 민형배 후보를 선택한 시민의 뜻도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형식적인 공청회나 동원된 위원회가 아니라, 공약대로 시민 참여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되는 정치를 하라는 명령이다.
정치는 곧 시민의 삶이다. 추첨을 통해 구성된 시민의회가 숙의와 토론으로 갈등을 해결하는 새로운 민주주의의 모델이 전남광주특별시에서 아름답게 꽃피우길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