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감소, 지방소멸이 심각한데 멋진 농업창업과 농어산촌이라니. 그런 허황된 소리하지 말라고 눈을 부라릴 사람이 있겠지만, 수십 년 사이 먹고 사는 방법과 기술이 눈부시게 변화하면서 미래의 먹거리를 담당할 농업과 농어산촌의 위기가 오히려 기회가 될 거라는 전망이 머리를 들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농협 청년농부사관학교 졸업생과 청년 창업농 그리고 귀농인들을 중심으로 농업분야에서의 창업 성공사례가 늘어나고, 창업농이 ‘미래 최고의 직업이 될 것,“이라는 농협의 선전문까지 등장했다.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것을 발명하는 것’이라는 말처럼, 우리 농산물에다 가공기술, 그리고 맞춤형 푸드테크를 융합하여 제품을 표준화하고 세계화하면, 농업 창업만으로도 해당 지역의 인구감소를 막고 젊은이들을 끌어들여 멋진 농어산촌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건강한 흙과 먹거리는 기본, 가공과 유통을 겸하는 청년농부와 창업농의 등장
최근 「농협 창업농지원센터」가 발간한 『창업 농부이야기』 책자에 소개된 창업농은 전국에 걸쳐 총 64명으로 직접 농사를 지은 건강한 먹거리를 가공하여 판매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암을 극복하기 위해 귀농했다가 직접 재배한 작두콩, 수세미 오이, 모링가로 분말제품을 만들거나, ▲우리밀과 우리 쌀, 그리고 직접 기른 닭에서 얻은 유정란과 6무(무방부제, 무합성보존료, 무색소, 무유화제, 무쇼트닝, 무향미증진제)로 건강한 빵을 만든다.
이밖에도 ▲걱정 없이 먹을 수 있는 친환경 설탕, ▲북한의 대중 술인 농태기를 복원한 함경도식 통일 전통주, ▲순수 오디 잼, ▲냉 압착식 생 들기름, ▲마을기업을 꿈꾸며 100%국내 쌀로 뽑은 방앗간 흰떡 등 농약과 비료 등 관행농업이 아닌 지속가능한 자신들만의 농법으로 생산한 농산물을 활용하여 몸에 좋은 건강한 제품을 만들고 있다.
아직은 소자본을 기반으로 자신의 경험과 지역 특성을 살린 농산물을 가공하고 유통하는 새내기 사업이긴 하지만 만약 이들의 제품화 과정을 표준화한 뒤, 푸드테크를 도입해 저비용, 고품질을 유지하는 시스템을 안착시킨다면, 청년농부와 창업농은 해당 지역의 경제를 활성화시키고 나아가 젊은 층의 인구감소와 지방소멸도 막아낼 수 있는 미래의 희망이 될 것이다.
모든 사업은 지방에서 시작된다. 삼성그룹의 시작은 대구 능금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조사한 2022년 국내 음·식료품 제조업체 수는 모두 5만8,182개소(식료품 56,568, 음료 :1,614)로 이 가운데 매출 3조원이상 5개사, 2조원 이상이 16개사, 1조원 이상이 25개사이지만, 전체 평균 고용인원이 회사당 6.4명으로 상위 10%를 제외하면 영세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어느 세월에 청년농부와 창업농이 그 지역의 대표적인 식품기업으로 성장하겠느냐고 회의적으로 볼 수 있지만, 사업은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이 전부 지방에서 시작된다.
세계 최고 글로벌 기업 브랜드인 IBM에서 맥도널드까지, 세계적인 기업은 물론 국내의 30대 식품회사는, 모두 특정 지역이나 지방에서 일어난 기업들이다. 세계 최고의 기업인 월마트는 1962년 샘 월턴이 아칸소주에 연 작은 잡화점에서 시작해 아칸소주와 미주리주 일대에 점포를 늘렸으며, 오늘날의 삼성그룹도 대구 특산물인 능금을 만주와 중국에 팔기위해 대구시 수동에서 문을 연 삼성 상회로부터 시작됐다. 처음부터 세계적인 기업은 없었다.
특히 요즘처럼 인터넷과 인공지능의 푸드테크 시대에는 어느 청년농부가 혹은 어느 창업농이 세계적인 기업가가 될지 아무도 모른다. 인터넷 시대의 역설이라고 할까. 그래서 농어산촌에 있는 어느 제품이 유명해 지면 삽시간에 전국화에 이어 세계화 된다. 이를테면, 강원도 횡성군 안흥 찐빵 마을에는 손 찐빵 집 11곳, 기계찐빵 3곳 등 모두 14곳이다. 종사자 수는 70여 명 남짓으로, 대부분 어르신이지만 연간 매출액은 손 찐빵이 40억 원, 기계찐빵이 60억 원 등 총 100억 원에 달한다.
전국 4대 빵집' 중 한 곳으로 꼽히는 대전 성심당은 지난해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사상 최대인 63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대형 프랜차이즈를 제외하고 단일 베이커리 브랜드 매출이 600억 원을 넘은 것은 성심당이 처음이다. 이 때문에 마을의 이름, 건강한 식재료와 건강한 흙 등 지역이 가진 잠재력을 소홀히 생각하는 건 사업적으로 위험한 발상이다. 특정 장소가 가진 의미에 초점을 맞춰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제품을 창조해 내면, 얼마든지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다.
가능해진 「코리안 블랙누들(짜장면)」의 표준화와 세계화
「코리안 블랙 누들」은 필자가 만든 말이다. 수십년 전, 인천에 근무하면서 중국 산동성 요리사 100명을 초청해 우리나라 중화요리 전문가 100명과 짜장 맞대결을 펼쳤다. 그리고 사극 세트장인 「용인MBC드라미아」를 찾은 일본인 관광객을 상대로 짜장면을 만들어 팔았는데 그릇 바닥에 남아 있는 춘장까지 싹싹 긁어 먹었다. 그런 모습을 본 필자는 짜장면이 국제적인 음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 그곳에서 짜장면을 만드는 요리사와 함께 “코리안 블랙 누들”이라는 이름의 짜장 특허를 신청했고, 그의 주방에서 짜장 요리 수업을 받았다.
알고 보니, 짜장면의 핵심은 춘장과 돼지기름, 그리고 면에 있었다. 춘장은 물에 불린 삶은 콩에 밀과 소금을 섞어 발효시킨 장이다. 여기에 캐러멜과 조미료 등을 섞은 게 시중에서 일반적으로 보는 검정색 춘장이다. 필자는 그런 첨가물이 없이 우리 콩과 밀 그리고 염전의 소금만으로 춘장을 발효시켜보려 했다. 특히 돼지기름이 중요하다.
반드시 A급 최고품질을 쓰는데 중국식 프라이팬인 웍(wok)에 놓고 고기가 딱딱해 질 때까지 기름을 우려낸다. 이 기름으로 춘장을 볶아야 제대로 맛이 난다. 요즘 돼지기름 대신 식용유를 쓰고 있는 게 아쉽다. 춘장을 볶을 때는 각종 야채와 전분 등 10여 가지 재료가 들어간다. 이런 과정을 표준화하여 건강한 짜장면을 세계인에게 보급하자는 것이었는데 식품의 문외한이었던 필자에겐 지난(至難)한 일이었다.
국내 첫 식품클러스터, 창업농을 강소식품기업으로 육성
그사이 세상이 변했다. 아이디어가 있다면 내가 가진 장비나 설비, 검사기기가 없어도 얼마든지 시제품을 만들어 개발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2007년 FTA 타결 이후 농가소득 향상을 위해서 전북 익산시 왕궁면에 국내 최초로 세워진 식품전문 산업단지인 국가식품클러스터가 그것이다. 이곳에는 이미 165개의 식품기업이 들어와 있고, 원료조달부터 시제품생산, 인력공급과 수출, 마케팅까지 입주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12개의 지원시설이 들어서 있다.
이 단지를 관리 운영하는 「한국 식품산업 클러스터진흥원」의 김영재 이사장은 “전국의 각 시군마다 특산물을 이용한 식품가공업을 하고 있지만 아직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 “이곳의 최첨단 푸드 테크를 접목하면 그들 업소도 얼마든지 식품강소기업으로 클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곳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과 협력해 전국 1,400여개 전통시장의 제품을 밀 키트의 간편식으로 상품화하고 있었고, 청년식품창업 랩(Lab)에서는 올 들어서만 39살 미만의 예비창업자 120개 팀을 선발해 교육했다.
“예비창업자들은 자신들의 아이디어를 이곳의 모든 설비와 장비, 분석기 등을 이용해 원하는 만큼의 시제품을 만들어 봄으로써, 창업에 필요한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다”고 진흥원의 송재원 사업본부장은 귀띔했다.
또한, 문태곤 생산지원부장은 “우리나라의 식품클러스터 모델은 세계에서 가장 앞선 것으로 지금 폭발력을 가지고 확장하고 있는 K-푸드를 뒷받침할 수 있는 식품 실리콘 벨리 같은 푸드테크의 산실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2024년 1월 청년식품창업센터가 완공되면, 최첨단의 푸드 테크를 활용한 청년식품창업자를 배출하고, 전국 시군구의 식품가공업소에 푸드테크를 접목할 수 있는 길을 찾아볼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식품클러스터의 12대 지원시설의 하나로 시제품을 생산하는 파일럿플랜트 등을 돌아보고 나면, 이곳의 푸드테크를 활용하여 전국 시군구의 식품가공업소가 강소식품기업이 되어 지역경제의 랜드 마크가 되고, 인구감소와 지방소멸을 막는데 일조할 수 있는 것으로 보였다.
지역의 강소식품기업, 농어산촌의 부자경제학
작년 우리나라 농수산식품 수출액은 사상 최초 100억 달러를 넘어 113억 6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전년보다 15.1% 증가한 수치로, 특히 라면, 스낵, 소스류, 쌀 가공식품 등의 가공식품이 전체 수출액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처럼 K-푸드의 위상은 높아지면서 최근 치킨의 본 고장 미국에서는 한국산 냉동만두에 이어 K치킨 돌풍이 불고 있다.
한국식 양념치킨을 파는 치킨 프랜차이즈 B사의 경우 현지인들 사이에 입소문을 타면서 신규 가맹점 출점 문의가 이어지고 있으며, K사, G사, M사 등 다른 치킨 프랜차이즈도 현지 소비자들의 뜨거운 호응을 받아 점포 확장을 서두르고 있다는 신문보도가 있었다. 이제 우리나라 라면을 즐기는 모습이 SNS에서 공유되는 일은 흔해졌고, 베트남에선 초코파이가 제사상에 올라가기도 한다.
필자는 건강한 흙에서 키운 재료만으로 우리나라 밖에 없다는 짜장면의 레시피를 만들고, 이를 푸드테크로 표준화하여 세계화하면, 얼마든지 지역경제를 살려 농어산촌을 부자 마을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80여 년 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처음 문을 연 맥도널드가 2022년 7월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4만 백 개의 매장을 가지게 된 것은 “가장 빠르게, 가장 맛있게, 가장 싸게”라는 모토를 가지고 재료에서부터 소비자 판매까지 7백여 가지가 넘는 과정을 표준화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1년 365일, 언제 어디서나 변함없는 맛을 가진 한국의 건강 짜장면을 만든어 낸다면 맥도널드처럼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짜장면(짜장면이 아니어도 좋다. 어느 식품, 어느 음식이라도 상관없다) 한 가지를 가지고 어느 지역을 부자마을로 만들어 사람들이 모여들게 만드는 경제 영웅이 출현하는 날, 인구감소와 지방소멸이란 말은 사라지고 말 것이다.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