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에 부실하게 대응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광호(60) 전 서울경찰청장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임재 전 서울 용산경찰서장이 같은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데 비해 김 전 청장은 업무상 과실이 증명되지 않았다며 무죄 판단을 받은 것이다.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2부(권성수 부장판사)는 17일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기소된 김 전 청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참사 발생 후 약 2년 만의 판결이다.
또한 참사 당일 서울경찰청 상황관리관으로 당직 근무를 해 같은 혐의로 함께 기소된 류미진 전 서울청 인사교육과장과 정대경 전 112 상황팀장에게도 모두 무죄가 선고됐다.
재판부는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 이 사건 사고 발생이나 확대와 관련해 합리적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피고인들의 업무상 과실이나 인과관계가 엄격히 증명됐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서울경찰을 총괄하는 김 전 청장의 경우 이태원 참사를 구체적으로 예견할 가능성이 충분하지 않았다고 본 것으로 판단된다.
이어 김 전 청장이 핼러윈 축제에 앞서 서울청 내 부서장과 경찰서장 등에게 점검과 대책 마련을 지시한 점을 언급하며 "합리적 수준에 현저히 미치지 못하는 비현실적이고 추상적인 지시에 불과했다고 단언하기는 쉽지 않다"고 부연했다.
무죄가 선고되자 방청석의 유족들은 오열했다. 유족들은 "인재가 아니냐", "우리는 누구를 믿고 사느냐"며 큰 소리로 항의했다. 김 전 청장은 판결에 대한 생각 등을 묻는 취재진 질문에 답을 하지 않고 법원을 떠났다. 일부 유족은 김 전 청장이 탄 차량 앞에 누웠다가 경찰에 제지당하기도 했다.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는 이날 김 전 청장 등에 대한 선고 직후 "재난 예방과 대응의 책무를 방기해 159명을 죽음에 이르게 한 주요 책임자들에 대해 죄를 물어야 함에도 법원은 면죄부를 줬다"며 "법원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데 공직자로서의 책무가 얼마나 무거운지 숙고하고 이를 국가책임자와 사회구성원에게 일깨워 줄 기회를 저버렸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검찰의 부실 수사와 법원의 소극적 법 해석으로 참사의 책임자 처벌은 지연됐고 피해자 권리는 또 한 번 침해당했다"며 "검찰은 즉시 수사를 보강해 항소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