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편성에서 기후 대응 예산이 삭감됐다. 특히 재생에너지 분야는 심각한 수준이다. 풍력 정도만 이전 수준을 그나마 따라가고 있을 뿐 태양광 등 주요 재생 에너지 관련 예산은 대폭 삭감 됐다.
정권이 바뀌며 정책까지 바뀐 탓이다. 태양광 발전에 대규모 투자를 했던 문재인 정권과 달리 윤석열 정권은 원자력 에너지 개발에만 집중 투자를 하고 있다. 기후 문제는 단순히 춥고 덥고만의 문제가 아니다. 가깝게는 먹거리에서 멀게는 기상 이변까지 불러 올 수 있는 지구를 향한 엄중한 자연의 경고에 대비해야 하는 사안이다.
시민들 반응은 뜨뜻미지근 하다. 당장 먹고 사는 문제가 아닌 탓인지 정부의 달라진 움직임에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반면, 시민단체들은 한국의 부실한 기후 대응이 앞으로 큰 재앙을 불러 올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공허한 메아리처럼 메시지는 허공을 떠돈다.
28일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는 박정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 주최로 '기후 예산 어떻게 수립됐나? 기후 재정 어떻게 바뀌어야 하나?'를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다. 현재 기후 예산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분석하기 위해 개최된 이날 토론회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국민들의 침묵. 곪고 썩어가는 데 현실적인 대응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한 경종을 울린 것이 이날 토론회의 가장 큰 소득이었다.
◇대한민국 기후 대응 예산의 문제점은?
먼저 2022년 문재인 정부가 마지막으로 편성했던 예산과 윤석열 정부가 예산을 편성한 2023년, 2024년, 2025년 환경분야 예산을 비교해보자. 중앙정부 총지출은 2022년 607조7천억 원에서 2025년 677조4천억 원으로 연평균 3.7% 증가세를 보였으나, 환경분야 지출은 같은 기간 11조9천억 원에서 13조 원으로 2.9% 증가하는데 그쳤다.
총지출 증가율에 하회해 환경분야 지출이 전체 국가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감소한 것이다. 다만 2025년 환경분야 지출은 올해보다 4% 증가한 내년 총지출 증가율 3.2%보다 더 높게 편성한 점이 눈에 띈다. 2025년 증가율이 높은 이유는 자원순환 및 환경경제 부문 지출액이 올해보다 3782억 원(27.6%)으로 크게 증가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즉, 자원순환 및 환경경제 부분이 크게 증가한 것은 지난해 크게 감소한 것에 대한 기저효과가 많이 작용했다는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기후대응 기금 지출은 환경 분야 뿐 아니라 과학기술, 교통 및 물류, 농림수산 등 여러 분야에 흩어져 있다. 이에 기후관련 지출을 파악하고자 한다면, 환경분야 뿐 아니라 다른 분야에 존재하는 기후대응기금 지출도 포함해 분석해야 한다.
기후대응기금 지출액은 지난 정부가 마지막 편성한 2022년(2조3562억 원)보다 2025년(2조3260억 원)에 302억 원이 감소됐다. 이는 올해 탄소중립기반 구축 프로그램 내 R&D 사업이 삭감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또 특정 분야, 특정 부문의 예산 순증감액만으로 예산액 변화를 파악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문화 및 관광 분야는 올해 순증규모가 2.5%에 불과했다. 순증 규모만으로는 큰 변화가 없다고 판단할 수 있으나, 문화 및 관광 분야에서 삭감된 세부 사업 규모는 1조2천억 원(-14.5%)에 달하는 분야가 있고 1조4천억 원이(16%) 증액된 분야도 있다. 다시 말해 순증액 규모는 큰 변화가 없다고 해도 큰 규모의 감액과 큰 규모의 증액이 동시에 발생했다면 증액의 의미와 감액의 의미를 별도로 파악하고 그의미를 도출해야 한다는 의미다.
우리나라는 프로그램 예산 제도를 도입하고 운영하는 것이 목표다. 프로그램 예산 제도란 프로그램을 통해 국가의 정책 목표를 정하는 예산 제도를 의미한다. 즉, 국가의 정책목표를 프로그램 수준으로 설정하고 예산 기획, 편성, 성과평가를 프로그램 수준으로 진행한다. 이에 주요 감액 및 증액 사업의 이유를 프로그램별로 분석해야 국가의 정책 목표를 파악하고 평가할 수 있다.
전체 부서, 전체 분야에 흩어져 있는 기후변화 대응 관련 프로그램을 모두 합산해 합계를 구하면 올해 4조8천억 원에서 내년엔 3조8천억 원으로 1조1천억 원이나 감소(-22%) 한다. 기후 변화 대응 프로그램 중 가장 급격하게 감소한 프로그램은 재생에너지 및 에너지 신산업 활성화 프로그램이다. 연도별로는 2022년 1조5531억 원에서 2025년엔 6657억 원으로 8874억 원(-57.1%)이나 감소하게 된다.
재생에너지 및 에너지 신산업 활성화 프로그램 감액 이유는 태양광 발전차액 지원 사업 및 태양광 융자사업 등 태양광 사업 감소로 인한 삭감이다. 대신 CCU(탄소 포집) 사업 수소 관련 지출은 증가했다. 이와 같이 기후 위기에 대한 대응은 단순히 한 가지 분야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다. 이는 전체 인류의 생존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문제로 모든 정책과 예산 배분의 중심에 자리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기후 관련 예산은, 다른 분야의 예산처럼 독립적으로 배분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예산 결정 과정에서 우선적으로 고려돼야 한다. 기후 변화가 거의 모든 사회적, 경제적 문제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기후 변화는 모든 정책의 중심
앞서 언급하였다시피 기후 변화는 단순히 환경 문제에 그치지 않고 국가 경제, 사회 복지, 인프라, 에너지, 농업 등 모든 부문에 걸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다.
세계 은행의 보고서에 따르면, 기후 변화는 환경 문제를 넘어 이미 전 세계적으로 빈곤과 불평등을 심화 시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기후 변화가 계속되면 전 세계 경제 성장률은 2030년까지 최대 2% 감소할 수 있다고 이 보고서는 분석한다. 즉, 불평등, 경제 성장 등 모든 분야에 영향을 주는 사안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기후 예산은 단순히 1/N로 다른 부문들과 분리된 형태로 배분될 것이 아니라 모든 분야의 예산 배분 과정에서 고려돼야 한다.
◇모든 예산에서의 기후 인지적 분석 필요성
세계 경제 포럼(WEF)의 보고서에 따르면, 기후 변화에 대한 미흡한 대응은 향후 경제적 혼란을 초래할 수 있으며 이는 막대한 사회적 비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에 모든 예산은 기후 변화를 반영한 포괄적 인지적 관점에서 분석돼야 한다. 이는 국가 예산의 각 항목이 기후 변화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또한 기후 변화에 어떻게 대응할 수 있는지를 평가하는 과정을 포함한다.
예를 들어, 농업 정책은 식량 안보와 직접적으로 관련돼 있으며, 기후 변화는 곡물 생산, 물 관리, 식량 공급망 등 여러 요소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런 예산 배분에서 기후 인지적 접근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기후 변화로 인해 농업 생산성 감소, 식량 가격 상승, 기아 문제가 더 심화될 수 있다.
◇기후 변화는 인류 생존의 문제
기후 변화는 인류 생존을 위협하는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다. IPCC(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의 보고서에 따르면, 1.5도 이상의 온난화는 수백만 명의 삶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며, 경제적으로 취약한 국가와 지위에 심각한 타격을 준다. 따라서 단순히 환경 보호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 전체의 생존을 위한 문제로 인식하고 이를 고려한 국가 예산 배분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그러나 기후 재정의 현실은?
우리나라 기후 예산은 예산 내역이 공개되지 않고 불명확하며 불충분(24~28년 국고+지방비 투입 예산 29조 원 규모, GDP의 1.1% 수준) 하다. 여기에 감세와 세수 결손으로 삭감 압력에 노출 돼 있다. 오는 2027년까지 목표에서 20조8천억 원의 미달도 예상된다. 목표 달성이 불가능한 예산 편성 방향성을 갖고 있기 때문인데, 특히 그린 리모델링 160만 건, 생활폐기물 재활용률 83% 등은 실현 가능성이 크게 떨어진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 기후 예산은 감축만 인지되고 배출은 미인지 영역으로 남아 있다. 더욱이 대규모 배출이 발생하는 인프라 사업은 무시되고 있다. 조세 지출에선 각종 화석연료 보조금 평가가 배제되고 있다. 감축인지 예산서를 작성하는 지자체는 올해 2월 기준으로 전국 243곳 중 4곳에 불과했다. 여기에 예산에 반영되지 않고 탄소중립 기본 계획과 연계되지 않는 인지 예산 성과 평가도 이뤄지다.
◇ 기후위기, 그러나 정체된 기후대응기금
기후 대응 기금은 전체 규모 2.4조 원에서 정체되고 있다. 기금의 주 수입원과 관련된 배출권 가격의 폭락, 유류세 인하로 연간 3000~4000억 원 수준의 기금 결손도 반복되고 있다. 2025년 2조6천억 원으로 증액되긴 했으나, 배출권 수입을 너무 낙관적으로 예측한 측면이 있다. 여기에 유류세 정상화를 가정하고 있는데 이는 곧 결손할 결심을 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배출권 시장의 부진은 과잉 할당에 따른 가격 하락으로 EU의 1/10 수준에 불과하며, 제도 미비에 따른 산업계 초과 이익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을 뿐이다. 또 2018~2022년까지 국가 전체 감축(10%) 목표에 비해 낮은(5%) 감축률을 보이며 감축 기능 저하도 가져오고 있다.
◇ 연간 화석연료 보조금 10조원 vs 재생에너지 보조금 1조원
2024년 화석 연료 보조금은 10조4천억 원에 이른다. 반면 재생에너지 보조금은 1조1천억 원에 불과하다. 올해 재생 에너지 보조금은 지난해 비해 32%나 감소했다. 경유, 휘발유, 석탄, 천연가스 등은 5조6천억 원의 세금 인하 혜택을, 난방 보조, 유가 보조금, 배출권 부가가치세 등 보조금도 혜택을 보고 있다.
이미 14년 전 폐지된 교통, 에너지, 환경세 관련 법률은 8번 째 일몰 연장이 되고 있다. 이에 따라 예산 대부분은 도로에 쓰이고 있다. 교통시설 특별 회계 68%가 전입됐으나 기후 대응 기금에는 7%만이 전입됐다. 이는 곧 화석연료 체제 고착화로 해석될 수 있다. 탄력세율 제도도 탄소 가격 정책에 반하는 OECD 최대폭, 최장 유류세 인하 정책으로 남용되고 있다. 유류세 인하 효과는 제약(인하액의 절반 이하 반영)적이며, 물가 정책으로도 효과가 제한적이다.
◇기후 예산, 얼마나 쓰고 얼마나 부족한가
부문별 현재 투자 규모 추산과 필요 투자에 어느 정도 미달하는지 점검이 필요하다. 우선 국민적 합의를 위해 갭 분석이 필요하다. 우리의 부담을 구체화하는 숫자가 없으면 토론이 되지 않는다. 또한 기후 재정 규모의 결정과 예산 계획의 한정성을 확보해야 한다. 금융과 공공 부문의 경쟁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기후대응에 숫자를 필요로 하는 예산 당국과 투자자를 설득하기 위해서도 갭 분석이 중요하다.
◇ EU에선 재생에너지 등에 중점 투자
우리와 달리 EU는 2024~2030년까지 연간 8130억 유로의 투자가 필요한 것으로 집계하고 있다. 현재는 4070억 유로가 투자됐으며, 4060억 유로의 추가 투자가 요청 되고 있다. 분야별로 살펴보면, 에너지 전환 1220억 유로, 건물 1370억 유로, 수송 1470억 유로 등이다. 프랑스도 2022년 연간 1000억 유로를 투자하고 있다. 추가로 580억 유로가 투자 요청되고 있는데, 분야별로는 재생 에너지 투자에 20억 유로, 수송 70억 유로, 건물 개조 280억 유로, 친환경차 270억 유로 등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국가 기본 계획 5년(2023~2027년)간 연 평균 국비 18조 원을 필요로 한다. 광역 지자체 기본 계획 5년(2024~2028년) 연평균 지방비+민간투자 24조 원, 금융위원회의 정책금융 투입 계획은 2030년까지 452조 원이 필요하다. 연 평균 65조 원 규모다. 금융 및 민간 투자 추계가 난항을 겪고 있어 여신 및 채권 등 녹색활동에 적용된 일관된 기준이 필요한 상황이다. 문제는 내역이 불투명하고 부문별 불균형(수송 분야 과대 투입), 분류 적절성 문제(각종 토건 사업 포함, 송배전 비용 등) 상당부문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이 지적된다.
◇ 기후 특위 상설화 등 역할과 평가 필요
토론에 참석한 김다은 시사 IN 기자는 "기후 예산의 현실은 탄소중립 국가 기본 계획 목표에 못 미치는 예산 규모, 편향된 예산 항목, 온실가스 감축인지 예산 한계 등 많은 과제를 안고 있다. 또 기후 위기가 심각하다는 시민들의 광범위한 인식조사 결과에도 기후 예산의 현실에 대한 시민들의 결집도가 낮고, 큰 범주의 개념인 '기후 예산', 항목과 숫자만으로는 내 생활과 밀착된 이슈가 무엇인지 짐작하기 어렵다. 22대 국회, 기후특위 구성 불발, 기후위기 주요 법률에 대한 법안심사권과 기후대응 기금 등의 예산결산 심의권을 가진 기후 특위의 상설화 요구와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의 역할과 평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