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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대전환의 시대, 농업・농촌 혁신 전략

백혜숙 공공식료사회연구소 소장

대한민국은 위기에 강하다. 고난과 역경 속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 공동체의 힘으로 위기를 기회로 바꾼다. 역동적으로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경제의 불확실성을 해소하여 국가의 품격을 높이고자 하는 우리나라 국민의 저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제 국민은 주권자의 권리로써 국가 대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대전환의 시작점은 당면한 민생 현안의 해결이다. 2024년 6월 한국은행에서 발간한 보고서에 의하면, 전 세계에서 농산물가격이 가장 비싼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농산물은 자영업자, 서민 경제와 밀접한 연관이 있고, 국가 안보와도 직결되어 있다. 농산물 가격 안정화를 통해 민생과 안보를 챙기는 정책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정책 대전환의 방향

 

장기적인 어젠다부터 명확히 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므로 대전환의 방향은 공화주의 기틀 아래 기후위기 시대에 대응하는 생태적 복지국가여야 한다. 생태적 복지국가로의 전환을 통해 지속 가능한 발전과 공공선을 실현해야 한다. 이를 위해 생산-유통-소비-폐기라는 가치사슬 연계 및 순환 경제에 토대를 둔 기본사회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먼저 단기적인 정책 대전환의 방향부터 잡아보자.

 

농림축산식품부의 2025년 농식품바우처, 농촌 공간 재구조화 추진계획과 함께, 11월 28일 국회에서 의결된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이하 농안법) 개정안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그 방향의 큰 틀이 잡힌다. 어처구니없게도 지난 19일, 내란죄 피의자이자 위임된 한덕수 권한대행이 선출된 국회의원들이 의결한 「농안법」을 포함한 농업 4법 등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지만 말이다.

 

◇「농안법」 개정이 중요한 이유

 

「농안법」 개정안을 제안한 이유는 국가 식량 안보를 강화하고 농업인의 경영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서다. 농산물의 시장가격이 기준가격 미만으로 하락하는 경우 그 차액의 일정 비율을 보전하도록 하는 농산물가격안정제도를 도입하며, 계약생산 제도를 지원하기 위한 사항을 규정하는 한편, 가격폭등 시에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시책을 마련하여 생산자와 소비자의 이익을 보호하고 국민 생활의 안정에 기여하려는 것이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농수산물의 수급 조절 등에 관한 사항을 심의하기 위하여 농산물수급조절위원회 및 수산물수급조절위원회를 설치한다. 둘째, 계약생산을 통한 주요 농산물의 원활한 수급과 적정한 가격 유지를 위하여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으로 하여금 계약생산의 목표 및 시행계획을 수립하도록 하고, 계약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생산자 단체 등의 손실을 보전한다. 셋째, 농산물의 가격폭등 시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시책 및 사업 등을 추진한다. 넷째, 농산물의 가격이 기준가격 미만으로 하락하는 경우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생산자에게 그 차액의 전부 또는 일부를 지급하는 제도인 농산물가격안정제도를 도입한다.

 

◇농산물 관련 제도의 허와 실

 

농산물가격안정제도는 주요 농산물 가격이 기준가격 아래로 떨어지면 차액 일부를 정부가 보상하는 미국의 가격손실보상제도(PLC, Price Loss Coverage)를 벤치마킹한 것이다. 그런데 유의할 점이 있다. 미국의 농산물은 우리나라처럼 경매제도로 가격이 결정되는 게 아니다. 이 부분을 간과하고 단편적인 일부 제도만 가져와서는 안 된다.

 

농산물가격안정제도가 실효성 있게 추진되려면 미국처럼 상대매매라는 유통 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래야 계약재배도 활성화될 수 있고 차액 보전 예산도 절감할 수 있다. 종합하면, 생산-유통-소비 가치사슬이 연계된 상대매매(수의거래) 유통 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한다. 결국 유통혁신이다. 공영 유통이 농림축산식품부 영역이 아니라 타 부처 소관 업무였다면, 과연 40년 가까운 세월을 전근대적인 유통 및 제도를 고수하여 국민에게 고통을 안겨주었겠느냐는 물음이 생긴다. 그렇다면 정부 조직 개편까지 고려해야 할 것이다.

 

농식품바우처 사업을 살펴보자.

 

2020년부터 시범사업으로 추진된 농식품바우처 사업은 2025년부터 본사업으로 전환될 예정이다. 농식품바우처 사업은 중위소득 50% 이하 가구의 식품 접근성을 높이고 농산물 소비를 확대하기 위해 1인 가구 기준 월 4만 원을 지원하는 제도이다.

 

당초 농림축산식품부는 지원 대상 확대 등 1조2,765억 원(국비 6,000억 원)을 요구했으나, 국회에 제출한 정부안에는 381억 원만 편성되었다가 1,763억 원으로 증액되었다. 농식품바우처 사업은 공공 급식(2024년 기준 8조 원 시장 규모 추정)과 함께 국가가 국민의 먹거리 기본권을 보장하는 정책의 양대 산맥이라 할 수 있다.

 

농식품바우처 제도는 단순한 복지 정책이 아니라, 한국 사회와 농업 경제를 지탱하는 중요한 국가 안전망이다. 취약계층의 기본적인 식량 접근성을 보장하며 농업 생산과 소비를 연결하여 경제적 안정성을 제공해 준다. 기후위기와 경제 불안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더 많은 국민에게 안정적인 식량 접근성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강화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농식품바우처 역시 미국의 영양보충지원프로그램(SNAP, Supplemental Nutrition Assistance Program)을 벤치마킹한 사업이다. SNAP은 미국 내 취약계층의 기본적인 식량 접근성을 보장하기 위해 운영되는 대표적인 공공 복지 프로그램으로, 농산물, 육류, 유제품 등 기본적인 식품을 구매할 수 있는 카드를 지원하여 빈곤층이 안정적인 식생활을 유지하도록 돕는다.

 

미국 농업 관련 예산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며, 농업 생산과 소비를 연결하는 중요한 정책적 도구로 작용하고 있다. 또한 SNAP은 기본 식료품 수요를 창출하여 미국 농업 경제를 지탱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즉, 수요를 창출하여 농업 경제를 지탱하는 것에 방점을 두고 있는 것이다.

 

1조9,434억 원과 113조5,249억 원. 2021년 영양학회 심포지엄에서 한국과 미국의 식품지원제도의 한 해 예산 규모를 비교한 수치다. 이를 국내총생산(GDP) 1억 원당 금액으로 환산하면 한국은 12만2천원, 미국은 54만1천원으로, 미국이 훨씬 높은 비율을 나타낸다.

 

한국의 식품지원제도는 전체 예산의 80.5%가 현금으로 지급되는 반면, 미국은 80% 이상이 현물 형태로 지원된다. 이는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한 농식품 지원이 농산물에 대한 안정적 수요를 창출하며, 농산물 가격을 지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우리나라도 농식품바우처 예산을 대폭 늘리는 한편 현금 지급보다는 현물 지급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현물 공급은 사회적경제로 연결하는 순환 경제의 틀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농촌의 공공 자원화

 

정책 대전환이 필요한 또 다른 영역은 농촌 공간 재구조화 및 재생 사업이다. 이 사업은 농촌의 경제적·사회적·환경적 변화 등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모색한 것이다. 농촌 공간의 재구조화와 함께 삶터·일터·쉼터로서의 농촌의 기능을 회복 또는 증진시키기 위하여 추진되고 있다.

 

그런데 농림축산식품부의 2025년 농촌 공간 재구조화 및 재생 사업을 들여다보면 지엽적인 부분에 국한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농촌지역 내 빈집실태조사를 강화하고, 빈집밀집지역 내 빈집은 리모델링하여 주민 공동이용 시설 등으로 재활용한다고 한다(신규 3개소, 3년간 19억 원 투입).

 

또 농촌 생활인구 유치를 위해 주거, 영농체험공간 및 지역 주민과의 교류 프로그램을 갖춘 체류형 복합단지를 신규 조성하고, 청년들이 농촌의 다양한 자원을 활용해 창업할 수 있도록 창업자금, 네트워크 등을 신규 지원한다(9개소, 10억원). 여기에, 지역 내 선도 민간기업을 중심으로 전후방산업을 연계하는 농산업 혁신벨트 1개소를 새로 조성할 계획이다.

 

최근 자료를 구하지 못해 2019년 자료에 근거해 살펴보자면, 농촌은 대한민국 국토의 약 89.3%를 차지하며, 인구의 18.7%가 거주하는 공간이다. 또한, 전국 162개 시·군 중 85.2%에 해당하는 138개 지역이 농촌을 포함하고 있다. 추세적으로 현재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렇듯 농촌은 지역균형발전의 핵심 축으로 기능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농촌은 저출산·고령화, 수도권 과밀화, 지방소멸 등 국가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회의 공간이자 해답의 중심지로, 그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지원하는 새로운 접근법이 요구된다.

 

농촌소멸 대응과 공간 재생은 단순한 농촌 문제 해결을 넘어 대한민국의 지속가능한 발전 모델을 만드는 과정으로 인식해야 한다. 기후위기 시대에 농촌은 식량 안보와 생태계 유지에 있어 필수적인 역할을 담당할 수밖에 없다. 당연히 탄소 흡수원 및 지속가능한 에너지와 자원의 생산 기지로 전환될 필요가 있다. 또한 도시와 농촌의 연결 모델을 강화하며 농촌 공간의 공공 자원화를 추진해야 한다.

 

농촌 주택을 다주택 규제에서 제외하여 도시민이 농촌 거주를 부담 없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농촌 지역을 친환경 주거 공간으로 재구성하여 생태마을을 조성한다.

 

나아가 더 세부적인 방안도 모색할 수 있다. 도시민이 농촌에서 일정 기간 생활하며 농업, 교육, 환경 복원 활동에 참여하는 ‘도시-농촌 반반 생활’ 같은 모델을 도입하는 것이다. 또한 농촌 지역에 고속 교통망과 원격 근무가 가능한 디지털 작업 공간을 제공하여 도시와 농촌 간의 연결성을 증대하는 것도 좋은 사업이 될 수 있다.

 

농업·농촌 정책의 대전환은 대한민국의 지속가능한 발전과 국가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필수 과제이다. 농촌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기후위기와 사회 불평등을 해결할 기회의 중심지로 탈바꿈할 수 있다. 국가적 차원의 통합적 지원과 혁신이 필요하다. 지금이야말로 농업·농촌을 미래 성장의 거점으로 삼아 모두가 잘 사는 균형 잡힌 사회를 만들어 갈 적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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