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총 사업비 7조8000억원 규모의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사업자 선정 방식에 대한 방위사업추진위원회(방추위)의 최종 결정이 두 달 앞으로 다가왔다. 최근 업계에 따르면 최종 결정은 내달 중순 방추위 분과위원회에서 안건 심의 후 4월 중 방추위에서 내려질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가운데 KDDX의 사업자 선정방식을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이 입찰방식을 두고 대립하는 가운데, 방위사업청(이하 방사청)의 애매한 대처 방식이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비판이 계속되고 있다.
◇ 앞에선 ‘원팀’, 뒤에선 ‘몰아주기?’... 방사청 오락가락 행정 논란
최근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국내 조선업계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후보시절부터 K-조선에 러브콜을 지속적으로 보내왔고, 최근에는 미군함 건조와 유지보수 등을 미국과 상호방위조약을 맺은 국가에 맡길 수 있도록 하는 법이 개정되고 있어서다.
이로 인해 국내서는 정부, 기업 등이 ‘원팀’이 되어 해외수출에 힘써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방위사업청도 이 같은 시류에 맞춰 ‘원팀’을 내세우며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 등 국내 대표적인 함정건조 업체에 화합과 협력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방사청이 해외사업에 대해서는 ‘원팀’을 강조하면서 국내 KDDX 사업에서는 제대로 된 컨트롤 타워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방산업계에 따르면, 방사청은 KDDX 사업 방식을 3월 17일 열리는 사업분과위원회에서 결정할 예정이다. 지난 3일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은 산업통상자원부의 심사를 통과해 KDDX 방산업체로 복수 지정됐고, 사업분과위에서는 수의계약, 경쟁 입찰, 공동설계 등 3대 방식 중 하나의 방안을 결정하게 된다.
방사청은 현재 수의계약을 적극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이는 기존 관례대로 기본설계를 한 HD현대중공업과 상세설계 계약을 맺는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지난해 7월, 군사기밀 불법취득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업체의 도덕성 문제가 불거져 수의계약이 좌초됐는데 같은 문제를 또 반복하냐는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 방사청, KDDX 사업 관리 실패? 공정성 논란 확산
지난 2013년 HD현대중공업 직원 9명은 한화오션(전 대우조선해양)이 수주한 KDDX 개념설계도 등 군사 기밀 자료를 몰래 촬영해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2023년 11월 최종 유죄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군 당국이 2015년 HD현대중공업 직원들의 군사기밀 불법 취득 사실을 인지했으면서도 이후 입수수색을 벌인 게 3년 후인 2018년이었고, 또 1년 후인 2019년 12월에서야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 것이 공정한 경쟁을 해쳤다는 논란의 씨앗이 됐다.
이후 2020년 11월에서야 군 관련자가 첫 유죄판결을 받았는데 한 달 전인 10월 KDDX 기본설계를 HD현대중공업이 수주하면서 논란이 증폭됐다.
방산업계에서는 방사청이 보안사고가 발생한 즉시 관련 업체에 강력한 제재를 내리지 않은 것이 사태를 키운 원인이라고 보고 있다. HD현대중공업 직원들이 군사기밀을 불법취득한 혐의가 명확함에도 방사청이 ‘입찰 자격 유지’를 사실상 허용한 것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방산관련 한 전문가도 M이코노미뉴스와 만난 자리에서 ‘KDDX’ 논란에 대해 방사청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말했다. 방사청의 역할은 군에서 제시하는 ROC(작전요구성능)에 맞는 무기체계를 적기에 조달하기 위해 법·규·정제도의 틀 안에서 사업관리를 하는 것인데 이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는 “방사청 사업관리의 핵심은 납기와 성능을 맞추는 것인데 KDDX 사업이 논란이 많은 건 방사청이 이 역할을 잘못해서 그런 것”이라고 꼬집으며 “특히 군 사업은 판단을 잘해야 하고, 잘못한 부분이 있으면 감점 처리를 한 후에 다음 경쟁에 이를 반영하면서 진행해야 하는데 KDDX에서는 그렇게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익을 위해 괜히 싸울 필요가 없다. 잘못한 건 인정하고 이제라도 기본 원칙대로 법에 의해 경쟁하면 된다”며 “산업부에서 유사 이래 처음으로 KDDX 사업에 방산업체 2곳을 지정한 것은 정정당당하게 다시 경쟁을 하라는 뜻 아니겠냐”고 반문했다.
또 다른 방산업계의 관계자는 “이번 사태의 본질은 방사청이 공정과 투명성의 원칙보다는 사업 진행의 효율만 고려했기 때문”이라며 “어떤 결정이 나오든 이에 불만을 갖는 업체가 이의 제기나 법적 대응에 나설 수 있다. 수의계약이 최선책으로 보기는 힘들다”고 우려했다.
◇ 보안감점제도 무용지물?... 방산업계 신뢰 흔들릴 우려
일각에서는 KDDX 사업자 선정과 관련해 현행 보안감점제도의 취지를 고려해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방위산업체의 보안 준수 여부를 평가하기 위해 도입된 해당 제도가 유명무실해지는 것은 향후 국내 방산산업 성장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보안감점제는 방위산업 기술 유출 방지를 위해 2014년 도입된 제도로, 군사기밀보호법 등 보안사고 발생 시 최대 5.3점 감점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이는 방산업체의 보안 의식을 강화하려는 목적으로 제정됐다.
방사청이 이 법에 따라 감점받은 HD현대중공업과 KDDX 수의계약을 맺을 경우 방산업체의 신뢰성과 도덕성 훼손은 물론, 국가안보에도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보안감점을 받은 업체도 주요 사업을 수주할 수 있다는 선례를 남길 경우, 향후 방산업계 전반에 보안규정을 소홀히 여기는 풍조가 확산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방산관련 한 전문가는 이 문제에 대해 “수의계약을 선택하면 2006년에 시작한 방위사업청이 20년 간 쌓아놓은 원칙이 무너지는 것"이라며 "이렇게 되면 앞으로 경쟁하는 의미도 없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방산분야는 공정경쟁이 기반이 되어야 한다"며 "국내에서는 공정하게 경쟁하고 해외에서는 힘을 합쳐야 K방산의 미래가 밝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한편, 방사청 관계자는 수의계약 논란에 대해 M이코노미뉴스와의 통화에서 “아직까지 결정된 건 아무것도 없다”며 “가장 합리적인 사업 추진 방안을 찾기 위해 분과위에서 1차로 논의하고 논의된 내용을 바탕으로 4월 방추위에서 최종 결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