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위사업청이 한국형 차기구축함(KDDX) 사업을 진행하며 사업자 선정에 HD현대중공업과의 수의계약을 고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되고 있다.
KDDX는 국내 기술로 선체와 이지스 체계를 모두 건조하는 첫 번재 국산 이지스함 사업이다. 총 6척을 건조할 예정으로 사업비는 7조8000억원이 들어간다.
당초 지난해 6월 ‘KDDX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업체를 선정해 건조에 들어갈 예정이었지만 방사청의 특정업체 특혜논란과 HD현대중공업의 기술유출 유죄판결로 한화오션과의 갈등이 심화돼 1년가량 지연되고 있다. 지난 2월 산업통상자원부는 KDDX 사업자로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을 지정해 두 업체가 경쟁하고 있다.
방사청은 17일 사업분과위원회를 열어 KDDX 사업자에 대해 ▲수의계약 ▲경쟁입찰 ▲ 공동개발 등 3가지 사업 방식을 놓고 논의를 진행했지만 결론을 내지 못했다. 이후 27일 다시 모여 논의하려 했지만 이마저도 취소됐다.
조용진 방사청 대변인은 25일 국방부 정례브리핑에서 “KDDX 사업 방식에 대한 위원들의 의견 차이가 너무 커서 27일 열려고 했던 사업분과위원회를 취소했다”면서 “조속한 시일 내에 함정 업계 간 상생협력 방안을 추가로 보완해 논의한 후 두 달 뒤 방위사업추진위원회에서 결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수의계약 강행 위한 꼼수? 방사청, 보고안건으로 ‘슬쩍 처리시도' 논란
방사청은 '기본설계 업체가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를 한다'는 기존 관행에 따라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HD현대중공업이 기본설계를 담당했기 때문에 수의계약으로 하는 것이 맞다는 논리다.
하지만 지난해 7월 방사청이 HD현대중공업과의 수의계약을 추진하려 할 당시 방사청 일부 직원이 "군사기밀 탈취 및 유포로 유죄판결을 받은 업체와 수의계약을 하는 것이 과연 맞냐"며 이의제기해 문제가 된바 있다.
이번 분과위에서도 이 문제가 불거진 것으로 알려졌다. HD현대중공업과의 수의계약을 밀어붙이려는 방사청과 수의계약 위법가능성, 공정경쟁을 문제 삼은 민간위원들이 팽팽히 맞섰다는 후문이다.
민간위원들은 방위사업법보다 국가계약법이 상위법이기 때문에 HD현대와 한화오션이 복수업체로 지정된 이상 수의계약은 위법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불어 HD현대중공업 직원들이 군사기밀 탈취 및 유포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아 보안감점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수의계약이 가능하냐는 의문도 제기됐다.

이와 함께 이번 회의에서 방사청의 일방적인 HD현대중공업 편들기가 노골적으로 드러났다는 비판도 일었다. 분과위에서 안건을 상정할 경우 보고안건과 심의안건으로 나뉘는데 방사청이 심의안건으로 올려야 할 'KDDX 사업자 선정방식'을 보고안건으로 올려 은근슬쩍 수의계약을 통과시키려했다는 것이다.
분과위 관계자는 “방사청이 KDDX 사업추진방안을 놓고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 기본계획안’에서 수의계약으로 가야한다고 보고를 했다”면서 “중요한 핵심쟁점 사항을 보고로만 끝내고 수의계약을 하겠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방사청의 이런 행태에 위원들은 “왜 자꾸 이렇게 분란을 일으키고 특정업체에 혜택을 주는 듯한 의견으로 밀어붙이느냐”고 크게 반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방산 전문가들은 사업분과위원회에서 문제제기를 하는데도 수의계약을 밀어붙이는 방사청의 태도에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한 방산 전문가는 “위원회는 다수결이 아니다. 논의를 통해 합의를 도출한다”고 설명하며 “그래서 위원들이 반대하면 합의가 안 된다. 그걸 알고 있는 방사청이 왜 그렇게 수의계약을 고집하는지 모르겠다”고 혀를 내둘렀다.
◇ 한화오션 불법도용, ‘불입건’으로 의혹 해소... 방사청 무리한 수사의뢰 ‘역풍’
방사청은 지난해 말부터 한화오션의 개념설계 불법 보관·도용 의혹을 제기하며 이를 문제 삼아 왔다. 하지만 최근 국군방첩사령부가 한화오션과 관련한 의혹을 불입건 처리하면서 무리하게 수사를 의뢰한 방사청에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복수의 군 소식통에 따르면 한화오션의 개념설계 보고서 불법 보관 의혹에 대해 ‘입건 전 조사’를 진행하던 방첩사는 최근 방사청에 해당 사안에 불입건 처분을 통보했다.
군 관계자는 “2012년 방사청과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간 ‘KDDX 개념설계 계약체결’ 당시 군사기밀보호법 지침과 훈령에 원본을 보관하는 것이 위반이라는 법적 근거가 없고, 계약서에도 원본을 제출하라는 규정이 없다는 점에서 방첩사가 불입건 결론을 내린 것”이라고 밝혔다.

또 방사청이 제기한 ‘기본설계 내용 일부가 개념설계 보고서와 동일하다’는 이유로 불법 도용 혐의를 씌운 것도 편파적인 주장이라는 지적이다. 방첩사도 해당 사안은 군사기밀보호법상 문제가 아닌 보안상의 문제이기 때문에 방사청이 자체 결정할 부분이라고 선을 그었다.
방사청은 2021년 위 사안에 대해 보안심사위원회의 논의를 거쳐 ‘문제없음’으로 종결 처리한 바 있다. HD현대중공업의 기본설계 제안서에도 개념설계 보고서와 유사한 내용이 다수 발견됐지만, 쟁점화되지 않았다.
익명을 요구한 방산 전문가는 “HD현대중공업의 군사기밀 탈취 및 유포는 유죄판결을 받은 범죄행위였다”면서 “반면 한화오션의 보안문제는 방첩사가 수사도 들어가지 않았는데, 방사청이 이를 동일선상에 놓으려는 의도성이 다분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관례에 따른 수의계약을 추진하기 위해 두 업체가 모두 ‘도덕성’에 흠결이 있다고 부각시킨 것으로 보인다”며 “방사청이 수의계약을 위해 일방적인 ‘편들기’를 했다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고 꼬집었다.
◇ KDDX 적기전력화, “방사청·HD현대 수의계약 고집에 지연”
KDDX 사업은 단순한 함정 건조를 넘어 향후 20년간 국내 방산시장 주도권을 좌우할 전략적 사업이다. 함정의 적기전력화는 해상경계작전의 완전성 제고를 위해 필수적 요소로 군 사업에 있어서 중요한 사안으로 꼽힌다.
KDDX 사업 지연은 작전수행 능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고 한국 해양방산의 국제경쟁력과 관련 산업발전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방산업계 안팎에선 방사청의 우유부단함이 지연의 원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분과위 민간위원들이 지적한 문제에 해결할 의지가 없고 오로지 수의계약만 고집하고 있어 ‘KDDX 사업’이 지연되고 있다는 비판이다. 또 방사청이 민간위원을 상대로 한 사전설명회에서 지적받았던 사안을 17일 위원회에 그대로 들고 오면서 관행에 기대 편의적인 행정 처리를 고집하는 태도가 문제라는 지적도 받고 있다.

지난 17일 분과위에서는 이런 방사청의 태도로 'HD현대중공업 직원의 군사기밀 탈취 범죄로 인한 수의계약 가능여부 법리 검토', 'KDDX 사업에서 두 업체가 상생 협력할 수 있는 방안' 등을 고려한 안건을 다시 내놓기로 하면서 끝이 났다.
KDDX 사업에 공정성 논란이 지속되고 있음에도 HD현대중공업 또한 수의계약을 고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HD현대중공업은 ‘특별한 사유가 없을 시 기본설계 사업자가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 사업권을 수의계약으로 맡는다’는 관행에 따라 자사가 단독으로 사업을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한화오션은 산업통상자원부가 양사 모두를 KDDX 방산업체로 복수 지정한 만큼 경쟁입찰 또는 공동개발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한화오션은 “이번 분과위 안건 보류는 그동안 일방적으로 추진된 ‘수의계약’ 사업방식의 부당성을 다시한번 보여준 것”이라며 “KDDX 사업은 경쟁입찰 방식이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다만 전력화 지연 우려 극복과 K-해양방산 경쟁력 제고를 위한 공동계약 방안에도 대승적으로 협력하겠다”면서 “방사청의 올바른 판단을 기대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