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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공단 신화를 만든 ‘할 수 있다’ 정신

-한국 정신문화를 찾아서(46)

 

1960년대와 1970년대, 그리고 1980년대까지 풍미했던 ‘하면 된다', '우리도 할 수 있다’라는 말을 누가 맨 먼저 꺼냈을까. 절망에 빠진 한국인들에게 ‘할 수 있다’는 정신을 실질적인 일과 행동으로 불을 댕긴 사람은 누구일까.

 

박정희 정권이 막 들어선 시기는 경제와 산업의 방향을 어디로 잡아야 할지 무척 고심하던 무렵이었다. 6.25전쟁 이후 원조 경제로 겨우 나라 살림을 꾸려가던 이승만 정권과 민주당 정권의 경제팀들은 나름 노력을 많이 기울였다. 당시 자료를 보다 정밀하게 연구한 최근의 저술에 따르면 인플레이션과 같은 큰불을 끄고 전후 복구 사업은 마무리돼 가고 있었다. 하지만 미국 원조는 줄어들어 경제의 흐름을 잡고 산업 정책에서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할 시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코오롱 그룹 창업주인 이원만 회장은 1962년 국가재건최고회의로부터 코리아하우스에서 열리는 박정희 재건 최고회의 의장 주재 경제간담회에 나오라는 통보를 받았다. 당시 이원만 회장은 경제인협회 이사였다. 아래 내용은 이원만 코오롱 창업주의 자서전 「나의 정경 50년」에서 인용했다. 박정희 의장은 참석한 경제계 인사들 앞에서 간담회를 소집한 이유를 설명했다.

 

“혁명의 필연성은 여러분이 다 아실 것입니다. 여기서는 혁명을 한 우리나라가 지금부터 어떻게 부강할 수 있느냐에 대해서 경제인 여러분의 의견과 지혜를 듣고 싶습니다. 우리나라가 과연 잘 살 수 있느냐. 남쪽의 반만이라도 잘 살 수 있느냐. 잘 살아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겠습니까? 우리나라는 농업국가로 나가야 합니까? 공업 국가로 나가야 합니까? 상업 국가를 해야 합니까? 어떻게 살면 되겠습니까? 여러분이 기탄없는 말씀을 해주십시오.”

 

 당시는 아직 박정희 의장이 소장 계급장을 달고 있던 살벌한 분위기 탓인지 침묵이 흐르다가 박 의장이 독촉하자 경제인들이 발언하기 시작했다.

 

“각하, 우리나라는 제반 여건을 보아 농업국가로 나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지하자원이 없으니 다른 도리는 없고 북구의 덴마크처럼 농업국가로 발전시켜야 합니다.”

 

여러 사람이 “옳습니다”라고 찬성했다.

 

찬성하는 편에 선 한 사람이 “전력을 기울여 산을 개간하고 농토를 넓혀야 합니다. 우리가 인구는 많은데, 이것을 인적자원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는 외국에서는 모두 기계로 공산품을 만드는데, 아무런 기술도 없이 많은 인구만 가지고 무슨 수로 당해낼 수 있겠느냐 하는 취지의 말을 했다.

 

구로공단에서 생산된 가발 그러고는 발언이 나오지 않았다. 하고 싶은 말을 꾹 참고 있던 이원만은 테이블을 탕! 치고 손을 번쩍 들고 일어섰다. 의장! 하고 고함치듯 소리를 지르고 발언을 신청했다. 엄숙하고 무거운 분위기에 겁도 없이 고함을 질렀댔으니 의외의 돌발 행동에 순간 모두가 웃었다.

 

“경제인이라고 하면 창의를 발휘하여 안 되는 일도 되도록 해야 하는데, 처음부터 소극적으로 안 된다고 하면 어떡합니까. 그래서는 우리 백성들을 굴속에 밀어 넣는 것과 같습니다. 농업은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농업만으로는 국제사회에서 낙제생이 됩니다. 우리가 잘 살 수 없습니다. 농공병진 정책을 써서 상품을 외국에 수출하여 달러를 벌어들여야 합니다.”

 

“아까 어느 분이 지하자원이 없으니까, 아무것도 못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지하자원이 없어도 얼마든지 해나갈 수 있습니다. 가까운 예로 일본을 보십시다. 일본이 지하자원이 있어서 저렇게 발전하고 있습니까. 일본에는 석유도 없고 철광도 없습니다. 그런데 세계가 놀라 나자빠질 정도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자원이 없어도 공장을 일으켜 발전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나라를 농업국가로 만들어 국민을 어디로 끌고 갈 작정입니까. 평생 가난의 때를 못 벗는 백성을 만들 작정입니까.”

 

“일본인들은 두뇌를 써서 돈을 벌고 있습니다. 일본인은 인적자원밖에 없었습니다. 우리 국민은 두뇌가 일본인보다 나았으면 나았지 못하지 않습니다. 과거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 우리 국민인데, 우리나라에는 인적자원이 많습니다. 그 인적자원을 활용하면 얼마든지 외화를 획득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희망이 봄 아지랑이처럼 내 눈앞에 황홀하게 보입니다. 우리나라 산천은 전부 돈입니다. 모래 한 알 자갈 한 개 조개껍질 하나, 돈 아닌 게 없습니다. 전부가 황금빛입니다. 우리나라 공중에 황금이 주렁주렁 달려 있습니다. 달러가 우리나라에 앉으려고 꿀벌처럼 빙빙 돌고 있습니다.”라고 신들린 듯 열변을 토했다.

 

좌중에 앉은 2백여 명의 사람들이 와!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자 박정희 의장은 손짓하며 “조용히 들읍시다. 이치에 맞는 말씀입니다”라며 듣기를 청했다.

 

이원만은 1904년 경북 영일생이다. 그는 당시로서는 늦은 나이인 29세에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대학에 다니다가 중퇴하고 철물공장에서 막일을 했다. 그러다가 작업복과 작업모에 회사 이름을 새기고 광고와 홍보 문구를 새겨넣는 아이디어가 퍼뜩 떠올랐다. 이원만은 즉시로 이 아이디어를 가지고 창업해 대히트를 치고 큰돈을 벌었다. 지금은 어느 회사나 근무복과 작업복에 회사 이름을 새겨 넣는 것은 당연하게 여기지만 이원만이 일본에서 처음으로 그것을 실행에 옮겨 큰돈을 벌었던 것이다. 1957년 한국 나일론 주식회사를 설립했다.

 

1962년 당시 이원만은 기업도 창업해서 성공했고 한민당 청년부장, 민주국민당 대구시위원장과 제5대 참의원을 지내며, 경제계와 정계를 오가던 58세의 베테랑이었다. 이에 비해 박정희 의장은 45세의 군인으로 경제 현장을 잘 모른다고 봐야 한다.

 

이원만은 더욱 흥분하여 말을 이어갔다.

 

“지금은 국가의 백년대계를 세우는 귀중한 시간입니다. 중농정책을 말할 때가 아닙니다. 농공병진을 내세우고 공업 국가로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잘 살아가자면 협동을 잘해야 합니다. 우리가 잘 살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협동 정신이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습니다...우리는 오토메이션(기계화)이 없어도 손으로 하면 됩니다. 임금이 싸잖습니까. 싼 임금으로 손으로 하는 제품을 만들어 팔면 됩니다.”

 

이원만은 테이블에 놓인 쟁반과 스푼, 포크를 들고 말을 이어갔다.

 

“여러분, 이 양식기들은 오토메이션이 아니라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습니다. 우리는 쟁반 접시를 만들 수 있습니다. 우리 선조는 고려청자와 이조백자를 만들었습니다. 그것은 중국 것보다 우수했고 일본인들은 우리 도공을 잡아가서 도자기 굽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 일본이 지금 도자기를 만들어 전 세계에 팔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세도모노(瀬戸物) 세도야키(瀬戸焼)라고 칭하면서 마치 자기네들의 특허처럼 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동양 위생이라는 회사는 그것으로 수세식 변기를 만들어 전 세계에 수출하고, 전 세계의 어디에 가도 일본의 노리다께 식기가 범람하고 있습니다...원료도 우리 것을 쓰고 있습니다. 하동에 가면 그 원료가 무진장으로 있습니다...이 원료를 우리가 써서 우리가 생산하면 됩니다. 지금 부산 영도에 조그만 공장이 있습니다만 자본을 투하하여 대규모의 공장을 만들어 일본처럼 전 세계에 위생도기와 쟁반 접시를 수출하면 1억 달러는 벌 수 있습니다. 이래도 오토메이션이 안 돼서 공업을 못한다고 말씀하십니까.”

 

“이 포크와 나이프도 일본인들이 만들어 전 세계에 수출하고 있습니다. 포크와 나이프는 기계로 찍고 손으로 깎고 닦아서 만드는 것입니다. 말하지만 오토메이션을 한다고 해도 마무리 공정에서는 사람의 손이 드는 것입니다. 그 임금이 일본이 헐하니까 전 세계에 팔고 있습니다. 일본의 쯔바메 시는 백만에 가까운 인구입니다만 순전히 스푼과 포크 등 양식기를 만들어 먹고 삽니다. 이것을 우리가 왜 못 만듭니까. 스텐레스를 가다에 찍어서 닦아서 광만 내면 되는 거예요. 우리나라 사람들의 손재주는 일본 사람을 능가합니다...우리 임금은 일본보다 쌉니다. 왜 못합니까. 우리도 스푼과 포크를 만들어 전 세계에 수출하여 수 억 달러를 벌 수 있습니다.”

 

박정희 의장은 더욱 진지하게 말을 듣고 있었고, 이원만은 말문이 터진 듯 땀을 흘리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계속했다.

 

“무엇이든지 전부 수출이 됩니다. 머리를 쓰면 수출이 안 되는 것은 없습니다. 가령 우리 인체를 위해서부터 더듬어 봅시다. 먼저 가발을 얘기해 보지요. 가발은 큰 기계가 필요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 연소한 부녀자들이 손으로 만들면 됩니다. 지금 전 세계의 시장에서 가발을 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만들기만 하면 즉각 수출되고 달러가 굴러들어 옵니다. 서양 여자들은 파마하는 데에 시간이 걸리고 돈이 들기 때문에 그것을 절약하기 위해 가발을 애용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그저 절약하는 목적뿐만 아니예요. 노란 것, 금발, 은빛, 회색, 까만 것 등 대여섯 가지를 사다 놓고 기분 내키는 대로 번갈아 씁니다. 흑인들은 또 곱슬머리가 싫어서 일부러 가발을 쓰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수요는 무진장이란 말씀입니다.”

 

이원만은 가발에 이어 안경, 와이사츠, 넥타이, 양복, 가죽 허리띠, 내의 메리야스, 양말, 구두, 시계, 완구 등을 예로 들어 차례로 설명해 갔다. 이것들은 구로공단이 설립되면 서 모두 실현됐다.

 

이원만 코오롱 창업주의 공적은 무엇보다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정신을 박정희 대통령에게 확신시켜준 점이다. 박정희 대통령과 경제관료들은 이와 같은 ‘할 수 있다’는 정신을 실행에 옮겼다. 그 첫 결실이 우리나라 최초의 수출공단인 구로공단이었다. 구로공단은 경공업 수출 단지로서 수출 한국의 기적을 견인해 냈다. 수많은 여공의 땀과 눈물이 서려 있는 곳이 구로공단이었다. 구로공단은 그 후 경제발전에 따라 통신과 IT와 디지털 단지로 변모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하면 된다. 할 수 있다’는 정신은 중동 건설신화와 중화학 공업과 방위산업의 성공으로 이끄는 원동력이 됨으로써 한국 경제를 선진국의 반열에 우뚝 서게 만든 일등 공신이었다. 나아가 ‘할 수 있다’는 정신은 노동 여건 개선과 민주화 투쟁의 에너지가 됐다.

 

오늘날, 무역으로 먹고사는 한국은 자유무역을 부정하는 트럼프 신정부의 출범과 대규모 물량 공세로 세계 무역 시장을 교란하고 있는 중국을 앞에 두고 커다란 위기에 처해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하면 된다. 할 수 있다’는 소중한 정신 유산을 간직하고 있는 한 조금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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