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플랫폼을 둘러싼 사회적 관심과 입점 업체들의 합리적인 상생 방안을 마련하고자 정부 주도의 ‘배달플랫폼-입점업체 상생협의체(이하 상생협의체)’가 출범했지만 반쪽짜리 상생안이라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지난 15일 국회에서 열린 ‘배달앱 생태계와 수수료 민간 자율에만 맡겨도 되나’라는 주제의 토론회에서는 건강한 배달앱 생태계 조성을 위해 배달앱 상생협의체가 자영업자의 한계비용을 고려한 배달앱 수수료 캡을 협의하고 혜택을 본 사람이 비용을 지불하는 합리적 거래 관행을 구축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성훈 세종대학교 교수는 ‘배달앱 상생협의체 성과 및 제언’이라는 주제 발표에서 지난해 민관 상생협의체 결과 수수료 차등화 합의안이 마련됐지만, 수수료율이 높은 최상위 구간이 배달 매출 대부분을 차지하는 35%에 달하고 부담도 오히려 높아졌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실효성이 부족해 주요 단체가 퇴장하는 등 추가 대책이 필요하다”며 “배달앱 시장은 시장의 수요와 공급이 가격결정에 반영되지 않고 소수의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결정하는 독점적 경쟁기업 간의 경쟁적 협력 게임”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배달앱 업체들은 자체 생산·유통 시스템이 아닌 입점 업체 생태계에 무임 승차해 시장을 장악하고 있고, 입점 업체들은 선택권이 없어 종속화가 더욱 심화된다는 분석을 내놓으며, 배달앱 상생협의체가 ▲배달앱 수수료 상한 개선, ▲적정 수수료·배달비 제시, ▲경영 가이드라인 제시 등 배달플랫폼 기업들의 영역과 역할을 더욱 고민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상생협의체는 지난해 7월 3일 정부가 발표한 ‘소상공인‧자영업자 종합대책’의 일환으로 출범했다. 이후 총 12차 회의를 열고 거래액 기준 상위 35% 입점 업체는 중개수수료 7.8%·배달비 2,400~3,400원, 상위 35~80%에 대해서는 중개수수료 6.8%·배달비 2,100~3,100원을 차등 부과하는 방안을 도출하고, 80~100%에 대해서는 중개수수료 2.0%·배달비 1,900~2,900원을 부과하는 방안을 노출했다. 그러나 프랜차이즈 업계는 배달 비중이 큰 업체들에 돌아가는 혜택이 거의 없는 ‘생색내기 상생안’이라며 수수료율 상한 5% 요구를 고수하고 있다.
◇폐업 100만 명 육박...소매업·기타서비스업·음식업이 1~3위
한국경영자총연합회가 지난해 12월 27일 발표한 ‘최근 폐업사업자 특징과 시사점’을 보면 2023년 폐업사업자는 98만 6천 명으로 100만 명에 육박했다. 특히, 폐업사업자 중 ‘사업 부진’을 이유로 폐업한 사업자 비중이 절반(48.9%)에 달해, 2010년(50.2%) 이후 가장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폐업자 유형별 분석에서도 매출 규모가 상대적으로 영세한 간이사업자의 폐업률이 13%로 일반사업자 8.7%와 법인사업자 5.5%보다 더 높았다. 코로나로 타격을 입었던 2020년 대비 간이사업자 수는 36.4% 늘어났으며 3년 연속 폐업자 수가 증가한 유형도 간이사업자가 유일했다. 폐업한 사업자들의 폐업 이유로는 48.9%가 '사업 부진'이라고 답했다.
사업 부진을 폐업 사유로 꼽은 간이사업자는 55.3%, 개인사업자는 49.2%, 법인 사업자는 44.6%로 집계됐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측은 최근 내수 부진과 누적된 최저임금 인상 등 인건비 부담으로 중·소상인들이 경영난을 버티지 못하고 폐업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 배달앱 수수료 정부의 적극 개입 필요
배달앱 시장은 수수료 책정 시 시장경제원리가 작동하지 않고 입점 업체와 이용자가 증가할수록 인하 요인이 발생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유사한 특성을 가진 신용카드 수수료는 카드사 이익이 급성장했을 때 정부와 정치권이 수수료 인하를 위해 적극 나서면서 2007년부터 2022년까지 계속 인하했던 만큼 배달앱 수수료도 카드 수수료와 같이 시장 자율로 해결되기 어려운 만큼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지철호 법무법인(유) 원 고문은 ‘배달앱 수수료 인하 방안, 신용카드 수수료 인하 사례와 비교’ 주제의 발제에서 “과도한 배달앱 수수료 수준에 대해 아무런 대책이 없다”고 지적하며 “과도한 배달앱 수수료가 인하되도록 현행 공정거래법 위반 여부를 적극 검토해 대응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배달앱 시장은 공정한 거래가 어려운 독과점 시장이라고 강조한 그는 “이미 공정위 의결을 통해서도 입증된 사실로 시장 점유율이 1개 사업자 50% 이상 또는 3개 이하 사업자 75% 이상인 경우, 시장지배적 사업자로 분류하는 공정거래법에 따라 현 3개 사업자가 이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신용카드 수수료 인하 시사점은 카드 수수료가 시장 원리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정부가 개입한 것”이라며 “적격비용 제도를 만들어서 수수료 인하에 개입한 사례”라고 덧붙였다. 신용카드 수수료는 적격비용 산정을 통해 결정되는데, 과도한 할인 혜택과 마케팅 비용 등은 반영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 핵심이라는 분석이다.
그는 “단기적으로는 공정거래법상 시장지배적지위 남용 행위 여부를 엄정히 조사해서 시정토록 해야 하고, 중장기적으로는 온라인플랫폼법 제정 등 입법 규제를 통해 수수료 결정·유지·변경의 방법, 절차 등에 관해 규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플랫폼법은 수수료 결정방법에 관한 규정이지 수수료에 대한 상한선 규제는 아니다”라는 주장도 덧붙였다.
◇ 자율 규제 방안 발표했으나 큰 실효성이 없어 법제화 요구 커져
성백순 장안대 교수는 ’배달앱 수수료 상한제 및 온플법 등 입법 정책 방안‘이라는 주제 발제를 통해서 공정한 수수료 비용 구조 정착, 갈등 구조 제거를 통한 가맹사업 활성화를 위해 배달플랫폼 관련 입법 마련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정부가 2023년 배달플랫폼 분야 자율 규제 방안을 발표했으나 큰 실효성이 없어 법제화 요구가 커지고 있다고 분석한 그는 ▲배달 수수료 상한제 도입, ▲투명한 배달 수수료 구조 공개 의무화, ▲입점 업체 간의 차별적 수수료 및 비용 부담 금지 등 법제화를 추진 등을 제안했다. 이와 함께 ▲상호협력 의무, ▲가맹점주 협의체 등 소상공인 보호 의무. ▲불공정거래 방지 등 협력 관리 규제 등 다양한 입법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성 교수는 현행법상 부동산 수수료에도 상한선이 정해져 있고 신용카드에서 한도 내에서 협의하도록 설계가 돼 있는 만큼, 배달앱도 상한선을 정해주면 훨씬 더 효율적이고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 가변적 수수료, 변동 수수료 등이 배달앱 3사 주된 수입
이어진 토론 시간에는 성백순 교수를 좌장으로 김상식 한국프랜차이즈산업협회 정책사업실장, 김주형 먹깨비 대표, 고인혜 공정위 플랫폼공정경쟁정책과장이 규제 입법 필요성과 방안에 대한 열띤 토론을 이어갔다.
김상식 정책사업실장(한국프랜차이즈산업협회)은 “정부 민간 협의체와 상생화를 하기보다는 근본적으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며 “중개수수료 5% 상한제를 도입하고 우대 수수료를 도입하자”고 주장했다. 또 “공정거래법 적용을 받는 여러 가지 산업 분류가 있는데 각자 공정한 법률 규제 법률을 갖고 있다”며 “플랫폼 산업이라는 게 가맹 산업이나 대리점 산업 못지않게 큰 산업인데도 불공정 이슈가 계속 지금 나오고 있는 만큼, 정부와 국회가 나서서 제도적 근거를 마련해 달라”고 요청했다.
김주형 배달앱 대표(먹깨비)는 “배달비가 2,900원에서 3,400원으로 올랐는데 수수료를 내린다고 해도 배달비 500원 올리는 것은 그들의 수익”이라며 “쿠팡은 어떠한 제재도 받지 않고 50%까지 광고비를 책정할 수가 있다. 광고비, 가변적 수수료, 변동 수수료가 그들의 주된 수입이 될 것이다. 입법을 통해 수수료를 제한한다고 해도 독과점 플랫폼들은 수익을 극대화할 수가 있는 장치들이 얼마든지 있다”고 지적했다.
고은혜 공정거래위원회 플랫폼 공정경쟁정책과장은 “토론회에서 지적한 내용들을 무겁게 받아드린다. 충분히 고민해 향후 업무 과정에 반영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플랫폼의 핵심 가치는 소비자, 사업자 등 이해관계자를 상호 연결하는 것으로, 공정거래법 개정안뿐만 아니라 유통업법 개정안 등 발의된 법안들에 대해 국회 입법 논의 과정을 충실히 지원하고, 특히 지난해 11월 발표한 자율 규제 방안이 차질 없이 이행될 수 있도록 공정위를 포함한 관계 부처에서도 지속해서 지원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 배달앱 3사(배달의민족·쿠팡이츠·요기요) 서면 통해 입장 전달
이날 토론회 참석 대신 배달앱 3사(배달의민족·쿠팡이츠·요기요)는 서면을 통해 입장을 전달했다. 배달의민족 측은 “지난해 7월부터 배달플랫폼·입점업체 상생협의체에 참석해 이해관계자와 발전적 방향을 모색하고자 노력했다”며 “상생협의체를 통해 배민은 세부 정책을 확정하고 내부 시스템 변경 검토를 통해 오는 2월부터 상생안에 따른 수수료 인하를 시행키로 하고 이를 대외적으로 공개했다”고 밝혔다.
쿠팡이츠는 “적자 상황의 후발주자임에도 업계 차등 수수료 상생안을 추진하는 것뿐만 아니라 제외되는 매장 없이 모든 자영업자가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할 예정”이라고 전했고, 요기요 측은 “향후 1년간 입점 매출액 하위 40% 입점업체가 내는 주문 중개수수료 20%를 포인트로 페이백 할 예정”이며 “소비자 영수증에 입점업체가 부담하고 있는 중개수수료, 결제수수료, 배달료를 올 1분기 내에 표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날 토론회를 주관한 한국프랜차이즈산업협회 나명석 수석부회장은 “지난해 배달앱 상생협의체가 내놓은 상생안은 전국 가맹점주협의회 등 2개 단체가 최종 합의에서 중도 이탈하여 절차적 정당성이 부족하고 대부분의 외식 프랜차이즈 가맹점은 되려 부담이 늘었다”며 “토론회가 배달앱 비용 인하 및 수수료 상한제 도입 등 합리적인 개선 방안을 모색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토론회 주최자인 이정문 의원은 “이제는 조삼모사식의 미봉책이 아니라 배달플랫폼의 독과점 구조를 깰 수 있는 근본적 해결책이 필요한 시점이다”라며 “시장지배적인 독과점 사업자의 횡포를 막을 국회 차원의 법과 제도 마련에 속도를 높여 배달플랫폼 생태계가 공정하게 상생할 수 있도록 국회 차원에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소회를 밝혔다.
한편, 이날 토론회는 이정문·김현정·민병덕·이인영·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동 주최하고, 한국프랜차이즈학회, 한국프랜차이즈협회가 공동 주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