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른바 ‘더 내고 더 받는’ 국민연금 개혁안이 18년 만에 국회를 통과한 가운데 후폭풍이 청년세대에서 거세게 일고 있다.
재정의 불확실성과 젊은 세대의 부담 가중으로 ‘청년독박’, ‘연금개악’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개혁안이 통과되자마자 여야 3040세대 의원들은 집단 보이콧을 선언하며 나섰고, 24일 주요 대학 총학생회는 ‘국민연금 공동행동’을 발족하며 ‘국민연금 개혁안’이 세대 간 갈등으로 확산되는 모양새다.
23일 당파를 뛰어넘은 30~40대 의원들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가뜩이나 국민연금에 대한 청년세대의 불신이 큰 상황에서 이번 결정으로 세대 간 불균형은 더 커지게 됐다"며 "국민연금의 지속가능성을 강화하지도 못했다. 청년세대와 청소년,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미래세대에게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고 토로했다.
한국대학총학생회공동포럼도 24일 국회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연금개혁은 2030 청년세대에게 더 큰 부담을 주고 기성에게 혜택을 집중시키는 구조로 개편됐다"며 "'더 내고 더 받자'는 슬로건을 내걸고 있지만 더 내는 세대와 더 받는 세대가 달라지는 연금 제도의 본질을 고려하지 않았다. 기성세대는 당장의 소득대체율 인상으로 혜택을 보고 있지만, 그 부담은 고스란히 후세대인 청년들에게 전가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기에 더해 연금연구회는 25일 국민연금법 개정안에 대한 긴급 성명서를 발표하며, 대통령 대행에게 ‘연금 개악법에 대한 거부권 행사’까지 요청하고 나섰고 여권 주요 대선주자들도 이에 힘을 실으면서 ‘국민연금 개혁안’이 세대 간 갈등으로 점점 더 격화되는 양상이다.
◇ 청년세대 짓밟는 개혁안 vs 청년들에 득 되는 개혁안
20일 국회에서 통과한 국민연금법 일부개정안에는 ▲보험료율 9%→13% ▲소득대체율 40%→43% ▲연금 국가지급 보장 명문화 ▲출산 크레딧 50개월 상한 폐지 ▲군 복무 크레딧 6개월→12개월 등의 내용이 담겼다.
보험료율(내는 돈) 인상은 1998년 이후 27년 만이다. 개정된 보험료율은 2026년부터 매해 0.5% 상승해 2034년에는 13%까지 인상된다. 올해 기준 41.5%인 소득대체율(받는 돈)은 내년부터 43%가 적용된다.
이번 개혁안에 대해 대다수 2030 청년세대는 국민연금이 고갈시점에 다다른 만큼 보험료율을 올리자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당장 혜택을 보는 노년층과 같은 보험료율을 납입하는 것은 조세형평에 어긋난다며 개혁안을 폐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25일 국회전자청원에는 ‘청년세대를 짓밟는 국민연금 개혁안 폐기’라는 제목의 국민청원이 올라왔다. 청원인은 국민연금 개혁안에 대해 “2030세대의 목소리가 담기지 않은, 국민연금의 부담을 청년세대에 지우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망치는 개악”이라며 더불어 “대통령이 공석인 상태에서 각계각층의 목소리와 의견수렴이 되지 않아 절차적 흠결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소득대체율을 당장 내년부터 올리는 것은 노년세대에게만 혜택을 주는 것 아닌가. 그리고 나이대별 납부율에 차등을 주는 대안은 왜 적용하지 않냐”고 반문하며 국민연금 개혁안을 원점부터 재논의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개혁안에 젊은층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정부와 전문가들은 개혁안이 오히려 청년들에게 득이 되는 개혁이라고 해명하고 나섰다.
이기일 복지부 제1차관은 24일 KTV에 출연해 국민연금 개혁안은 청년들을 위한 개혁이라고 설명했다. 이 차관은 논란이 되고 있는 소득대체율 인상에 대해 모든 연금 가입자에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며 "제가 35년 가입했고 나머지 5년 보험료 납부가 남아있다고 치면 그 5년에 대해서만 인상된 소득대체율이 적용되는 것으로 나머지 35년은 각기 해당연도에 따른 보험료와 소득대체율이 있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달리 말하면 이미 보험료를 낸 분들은 거의 해당이 없고 앞으로 낼 분들, 즉 청년들의 경우에 소득대체율이 3% 인상 효과가 있다"고 덧붙였다.
보건복지부 국민연금정책과 사무관도 M이코노미뉴스와의 통화에서 소득대체율은 각자가 보험료를 낸 연도의 소득대체율을 적용받는다고 설명했다.
김용하 순천향대 경제학과 교수도 연금개혁을 청년을 위해 하는 것이지 노년을 위한 게 아니라고 말하며 ”나이가 많은 분들이 은퇴하기 전에 보험료율을 올려서 더 많은 보험료를 내고 퇴직하게 하는 게 세대 간 형평성 측면에서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 미래세대 정책 논의에 참여... "연금특위 청년구성 확대"
‘국민연금 개혁안’으로 그동안 잠재되어 있던 세대 간 갈등이 수면위로 올라온 모양새다. 국회 정책 논의에서 청년세대가 배제되고 있음에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다.
개혁안에 반기를 든 3040 여야의원들은 이번에 통과한 연금개혁안이 청년 세대가 배제된 점을 문제 삼았다. 이들은 “국회 평균 연령이 57세여서 세대적으로 매우 불균형한 구성”이라며 “수년 내 수급 대상이 될 정치인들이 자신 세대가 받을 돈을 인상하면서 보험료 인상 부담은 젊은 세대에 떠넘겼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구성될 연금특위는 현재 합의한 13명에서 20명으로 늘리고, 30·40대 의원이 절반 이상 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금연구회도 “청년세대의 의견이 철저히 배제된 연금 개편안 논의는 정치적 및 재정적 지속 가능성을 저해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논란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은 24일 기자들과 만나 "청년층의 부담을 덜기 위해 연금개혁 특별위원회에 3040세대 의원들이 들어갈 수 있도록 여야 지도부와 국회의장 등에게 전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연금개혁 특별위원회는 국민의힘 6명, 민주당 6명, 비교섭단체 1명, 위원장은 국민의힘이 맡는 형태로 총 13명으로 구성돼 있다. 박 위원장은 국회 재의결을 통해 청년 의원 참여를 추가 확대하는 방향으로 특위 구성을 개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25일 국민의힘도 청년들의 목소리를 수용하기 위해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연금특위)에 당내 30·40대 의원들을 집중 배치한다고 발표했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 후 기자들에게 "미래 세대의 목소리가 잘 반영될 수 있도록 절반 이상은 30대로 보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반쪽짜리 개혁안... 근본적인 개혁으로 이어져야” 지적도
이번 개혁안이 2007년 이후 답보 상태였던 국민연금 개혁 논의에 물꼬를 텄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진전으로 평가되지만 이번 모수개혁만으로는 기금고갈 시점을 약 9년 늦추는데 그쳐 근본적인 개혁을 위한 논의가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현재 국민연금은 일하는 젊은 세대가 낸 보험료로 수급자에게 연금을 지급하는 ‘세대 간 부양 방식’으로 저출산·고령화 시대로 넘어가며 지속 가능성이 떨어지고 있어 문제다.
국민연금 개혁안에 대한 젊은층의 반발은 연금 부담은 커지면서 혜택을 못 받을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금 돌려막기식 시스템에서 벗어나 근본적인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 의견이다.
이재섭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는 이번 개혁안에 대해 출발부터 실패가 예견된 연금개혁이라고 꼬집었다. 윤석열 정부와 여야당이 노후빈곤이나 노인자살이 부실하게 설계되고 왜곡 운영되어온 공적연금제도 때문이라는 문제의식이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재섭 대표는 “이번 개혁은 청년들을 이용해 정치적 입지를 다지려는 모습이 뚜렷하지만 이번 숙의토론에서 청년들은 보험료를 더 내더라도 자신들이 은퇴했을 때 적절한 연금을 받기를 원하고 있다”며 “연금보장을 위해 국가의 재정책임을 적정하게 지도록 하는 방안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 대표는 100년이 넘어 진화해온 서양 복지국가들을 참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서양국가들은 70~90%까지 올랐던 연금 소득대체율을 서서히 낮추면서도 연금 수준을 보완해주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면서 “국가가 공적연금의 재원부담 주체임을 선언하고 30%이상의 예산지원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그 국가 재정으로 고등교육, 돌봄, 실업, 출산, 양육 등 소득활동에 어려움을 겪는 기간 동안 보험료를 어떻게 다양하게 지원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노인들 뿐 아니라 언젠가 은퇴하게 될 청년들의 삶의 안전을 위해서도 제도의 안전보다 사람의 안전을 우선해 설계되고 운영되는 공적연금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