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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0월 13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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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화


[대피안내 방송이 들리지 않는다?] 소리의 비밀, 대한민국 음향 시스템의 불쾌한 현실



[M이코노미 이홍빈 기자] 대중이 이용하는 시설에는 대부분 음향설비가 갖추어져 있다. 공항·기차 역·콘서트 홀 그리고 강의실, 하지만 정적이 흐르는 상황이 아니라면 웬만해선 스피커를 통해 나오는 소리를 정확하게 알아듣기 힘들다. 만약 화재가 발생하거나 위급한 상황이 일어나면 어떻게 될까? 사람들의 비명소리와 각종 사이렌이 시끄럽게 울어대는 상황에서 비상 안내방송이 잘 들릴까? 방송에서 안내하는 방향으로 대피해야 하지만 방송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이 오히려 위험지역으로 이동한다면 그 피해는 누구의 책임인가? 우리 삶에 있는 듯 없는 듯 녹아 들어있는 음향시스템,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최악’이라 혹평하는 대한민국의 음향현실의 실태 속으로 들어가 보았다. 

주방에서 한창 요리를 하던 중 관리실에서 전파하는 희미한 스피커 소리가 들려온다. 거실로 뛰어가 스피커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지만 도통 알아들을 수 없다. 결국 관리실에 전화를 걸어 무슨 내용의 방송이었는지 물어 볼 수밖에 없다. 출근시간 플랫폼을 따라 길게 늘어서 있는 사람들 속에서 열차가 오는 방향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리고 지지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어느 플랫폼인지 모르지만 어디에선가 방송이 흘러나온다. ‘지금 들어오는 열차는 …행입니다’. 걸어가는 사람들의 구두 굽 소리, 전화통화를 하는 사람의 목소리, 역을 지나치는 다른 열차 소리에 안내 방송은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 출근시간 열차 시간표를 꾀고 있기에 방송이 신경 쓰이지는 않지만 옆에서는 초행길로 보이는 여행객이 이리저리 기웃기웃 거리고 있다. 방송을 제대로 듣지 못했나보다.

소리의 종류와 명료도

우리는 소리라는 단어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한글로 소리라는 단어는 하나밖에 없다. 하지만 영어로 소리를 풀어쓰면 어쿠스틱(Acoustic), 오디오(Audio) 그리고 사운드(Sound)로 나뉜다. 어쿠스틱은 다른 장치를 사용하지 않은 수학적·물리적인 순수한 음향이다. 오디오는 사람이 들을 수 있는 음역내의 음파를 전기신호로 변환한 음향이다. 마지막으로 사운드는 우리가 음(音)이라고 부르며, 사람의 청각기관을 자극하는 주파수 대역을 가진 파동이다.

이처럼 소리는 특성에 따라 3가지로 종류가 구별된다. 하지만 실제로 사람이 듣고 구별할 수 있는 소리는 사운드 밖에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소리가 우리의 귀에 잘 들릴까라는 질문이 생겨난다. 전문가들은 잘 들리는 소리는 명료도가 높은 소리라고 말한다. 소리를 구성하는 요소에는 직접음, 반사음, 소음이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보자. 당신은 지금 학생들로 가득 찬 강의실에 앉아있다. 강의실 앞에는 교수가 서 있고 주변은 조용하다. 그리고 교수가 강의를 시작하고 교수의 입에서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때 교수의 입에서 나온 소리가 곧장 우리의 귀에 도달하는 것을 직접음, 온 사방으로 퍼진 교수의 목소리가 벽이나 바닥을 통해 튕겨진 다음 우리의 귀에 도달하면 반사음 그리고 교수의 강의를 받아 적는 학생들의 필기소리는 소음이 되어 우리의 귀에 들린다. 만약 교수가 강의를 하는 도중 옆자리에 앉아 있는 다른 학생들이 떠들기 시작한다면 교수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게 된다. 이때 교수의 음성 명료도가 낮아졌다고 할 수 있다. 즉 명료도가 높은 소리는 주변 소음이 제거된 상태에서 직접음과 반사음이 귀에 얼마나 잘 도달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우리는 음성 명료도의 중요성을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다.

강의실에서 펼쳐지는 불공정 게임

오랜 기간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던 TV프로그램인 ‘가족오락관’에는 노래가 흘러나오는 헤드셋을 끼고 상대방이 말하는 내용을 전달하는 게임이 있었다. 이 게임에서 출연자들은 폭탄을 들고 있었고 문제를 못 맞히거나 시간이 초과되면 폭탄이 터졌다.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던 이 게임이 현재 우리나라의 음향 시스템과 닮아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대림대학교 방송음향영상과의 교수이자 한국방송장비진흥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김재평 교수는 한국의 음향 시스템에 대해 “국민소득이 2만 달러가 넘어가고 문화수준이 높아지면 자연스레 좋은 소리를 찾게 되지만 우리나라의 청각 산업은 여전히 후진국”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아이러니 하게도 우리나라는 수입음향장비의 세계 7대 시장에 손꼽힌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음향기기들을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다는 말이다. 좋은 장비를 쓰는데도 왜 우리나라의 청각 산업을 후진국이라고 표현 했을까. 김재평 교수는 “대한민국의 학생들은 모두 불공정 게임을 하고 있다”고 표현했다. 학생들이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학교 강의실에 실내음향 특성과 방송음향시스템의 설비기준이 없어서 수업을 듣는 학생이나 또는 토익, 오픽 같은 어학 시험을 치루는 학생들의 성적은 운에 맡길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음성 명료도 학업에도 영향 미쳐

암스트롱 월드 인더스트리의 Kenneth P. Roy가 2010년 발표한 ‘Green Rating Systems and Classroom Acoustic Design’이라는 논문은 강의실 에서의 다양한 음향인자와 학업성취도와의 밀접한 관계를 역설하고, 특히 저학년 학생의 경우 학습정보 습득에 있어 명료도 높은 음성의 전달이 학습정보의 인지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알리고 있다. 이에 미국 교육학계에서는 비슷한 학업 수준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한 학급의 학생들에는 모든 멀티미디어를 동원한 수업을 진행했지만 음성 명료도는 고려하지 않았고, 다른 학급의 학생들에게는 다른 멀티미디어를 제외한 채 음성 명료도만 높인 강의를 진행했다. 강의가 시작되고 처음 몇 주간은 멀티미디어 학급 학생들의 학습 성취도가 높았다. 하지만 2개월 이후 음성 명료도를 높인 학급 학생들의 학습 성취도가 멀티미디어 수업을 진행하는 학급 학생과 비슷해졌고, 한 학기가 끝나고 실험이 종료 되었을 때는 음성 명료도를 높인 학급의 학생들의 학습 성취도가 더 높았다. 이 실험을 통해 음성 명료도가 학업에 영향을 미친다는 결과가 입증됐다. 강의실 음향성능에 대한 연구는 1980년대 전후부터 시작되었다. 국내외에서 지속적으로 이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지만 우리나라는 이를 간과해 왔다. 김재평 교수는“현재 미국을 비롯한 해외선진국들은 화장실을 제외하고는 모든 시설에 음성 명료도 설비가 다 갖추어져 있다”며 한국 음향 설비는 외국의 화장실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부끄러운 음향 설비 기준

건물이나 시설에 화재가 발생하면 신속히 비상방송을 전파하고 사람들을 대피시켜야 한다. 화재가 발생하면 사람들은 모두 출구를 향해 달려갈 것이다. 하지만 비상출구로 가는 길목에 또 다른 위험요소가 있다면 어떻게 될까. 비상방송 없이 화재 사이렌만 울린다면 이런 상황이 벌어지지 말라는 보장을 할 수 없다. 하지만 사이렌 소리와 사람들의 비명소리에 비상방송이 잘 들릴까? 각종 소음이 넘쳐나는 화재현장에서 비상방송을 제대로 알아듣기는 힘들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비상방송설비 화재안전기준에 의하면 확성기의 음성입력이 3W(실내는 1W)이상, 확성기는 각층마다 설치하되, 하나의 확성기로부터 다른 확성기까지의 수평거리는 25m이하가 되도록 하고 있다.



국민안전처 중앙소방본부소방제도과 관계자의 대답도 똑같았다. “현재 우리나라의 비상방송 설비는 2004년 제정된 법령의 기준에 따라 확성기의 출력과 거리만 규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음성 명료도와 관련해서는 별다른 조항이 없다고 말했다.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으로 불리는 국가에서는 명료도 중심의 비상방송 설비를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왜 아직까지 준비가 안 되어 있냐고 질문하자 관계자는 “미국의 경우 비상방송 설비가 명료도 중심으로 설정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미국의 비상방송 설비가 다 좋은 것은 아니다. 명료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건물설계와 내장재 등이 다양한 설비가 설치되는데 오히려 이런 것들이 화재를 진압하
는데 있어서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미국의 기준에 맞출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청각 문화사업, 관심기울여야

비상방송을 제외하더라도 많은 사람이 오가는 장소에는 음성명료도와 관련한 국제 기준이 필요하지 않을까? 2018년에는 평창에서 동계올림픽이 개최된다. 세계 각국의 다양한 선수와 관람객이 한국을 찾아온다. 하지만 지금 한국의 음향 시스템으로 외국 손님을 맞아야 하는 현실이 부끄러워진다. 2016년 3월28일 기준 한국의 GNP는 2만7천340달러다 선진국을 구분 짓는 2만 달러를 넘어선지 오래 되었고, 세계 7위에 손꼽히는 국제 음향시장이지만 아직도 우리의 청각 문화 사업은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있는 듯 없는 듯, 우리의 일상에 녹아있는 소리와 음향시스템, 또렷하게 잘 들리는 소리를 위해 지금이라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MeCONOMY Magazine June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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