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맑음동두천 13.8℃
  • 맑음강릉 15.8℃
  • 맑음서울 15.1℃
  • 흐림대전 13.2℃
  • 흐림대구 13.2℃
  • 흐림울산 14.0℃
  • 흐림광주 12.2℃
  • 흐림부산 14.6℃
  • 흐림고창 11.4℃
  • 흐림제주 16.3℃
  • 맑음강화 12.3℃
  • 흐림보은 12.6℃
  • 구름많음금산 13.0℃
  • 흐림강진군 12.9℃
  • 흐림경주시 13.2℃
  • 흐림거제 12.9℃
기상청 제공

2025년 11월 12일 수요일

메뉴

오피니언


농업인의 날, 식량주권과 국민급식을 잇다

 

11월 11일은 ‘농업인의 날’이자 ‘가래떡 데이’다. ‘土(흙 토)’ 자는 ‘十’과 ‘一’로 나눌 수 있어 11이 겹친 11월 11일을 농업인의 날로 정했다.

 

흙과 농업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흙의 가치와 농업의 본질을 되새기는 한편, 가래떡의 함의를 통해 먹거리의 소중함을 되짚어봄 직하다. 흙은 단순한 물질이 아니다. 생명의 토양이자 그릇이며, 그 위에서 자란 곡식은 한 나라의 식량주권을 지탱한다.

 

쌀 한 톨이 밥 한 그릇이 되고, 밥 한 그릇이 공동체의 힘이 된다. 흙에서 연유한 이날은 단순한 기념일이 아니라, ‘한 나라의 밥상’을 지탱하는 생명의 날이다. 흙이 없으면 밥이 없고, 밥이 없으면 나라가 없다. 그 진리를 잊지 않는 것이 오늘의 농정이 지향해야 할 출발점이다.

 

◇ 쌀 한 톨의 무게는 우주의 무게

 

기후위기 시대에 쌀농사가 불안정해지면 식량주권이 흔들리고, 식량주권의 불안정은 곧 국민 생존의 불안으로 이어진다. 기후위기 속에서 식량 생산을 담당하는 농민 보호를 위해 투입하는 재정은 결코 세금 낭비가 아니다.

 

통계청 「2023년 농가경제조사」에 따르면, 농업소득은 연평균 1,114만 원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농자재·비료·기름값 상승으로 실질소득은 계속 줄고 있다. 반면, 농가당 평균 부채는 4,500만 원을 넘어섰다. 생산비는 오르고 판매가격은 제자리이거나 하락하는 구조에서는 생계유지를 위해 농민이 빚으로 농사를 짓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결국 적정 쌀값의 보장은 단순한 가격정책이 아니라, 농민의 생존선이자 식량주권의 최소 조건을 마련하는 일이다. 쌀 한 톨의 무게는 우주의 무게이며, 쌀값은 곧 농민의 값이다. 농민을 존중하지 않는 나라는, 결국 국민의 건강도 지킬 수 없다.

 

농업소득이 무너지면 농민이 떠나고, 농민이 떠나면 논이 사라지며, 논이 사라지면 국민의 밥상과 국가의 식량 자립도 함께 흔들린다. 기후위기 시대에 생산 기반을 지키는 일은 식량 보험이며, 농민이 계속 농사를 지을 수 있게 하는 것이 곧 국가의 식량주권을 지키는 길이다.

 

물론 농업만이 아니라 농촌 자체가 지속가능해야 한다.

 

통계청 「2024년 귀농어·귀촌인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귀촌 인구는 42만 2,789명으로 전년보다 5.7% 증가했다. 귀촌 가구 수도 31만 8,658가구로 4% 늘며 3년 만에 반등세를 보였고, 30대 이하 청년 귀농인의 비중은 13.1%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귀촌인은 도시에서 농어촌으로 이주해 새로운 삶과 일터를 꾸린 사람들을 말한다. 이들 중 농업에 직접 종사하지 않는 사람도 적지 않지만, 그들이 만들어내는 지역 공동체의 회복력은 농촌의 경제·문화적 기반을 다시 세우는 데 큰 역할을 한다. 귀촌의 증가는 단순한 인구 이동이 아니라 농촌의 회복력(resilience)을 보여주는 신호다. 도시의 사람과 농촌의 흙이 다시 연결될 때, 식량주권은 비로소 지속가능해진다.

 

◇ 식량주권을 위협하는 구조적 모순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은 42%, 곡물자급률은 20% 수준에 머물고 있다. 그중 단백질 자원의 핵심인 콩은 자급률이 30%대에 불과하다. 정부는 매년 18만 5천 톤 이상의 TRQ(저율관세할당) 대두를 수입하며, 실제 조달가(㎏당 1,700원)보다 낮은 1,400원의 단가로 공급한다. 이 같은 ‘수입콩 할인’에만 550억 원 이상의 세금이 쓰이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보조가 국산콩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재고 부담’과 ‘수요 부진’을 이유로 전략작물로 육성하던 국산콩 재배면적은 오히려 줄고 있다. ‘세금을 들여 수입콩을 싸게 풀고, 국산콩 생산은 줄이라’는 모순된 행정이다. 콩 자급률을 2027년까지 43.5%로 높이겠다고 하지만, 이 추세라면 목표 달성은 요원하다.

 

두부·된장·두유 등의 상품을 통해 콩은 충분히 국내산 프리미엄이 작용할 수 있는 작물이다. 가격 경쟁력만 확보된다면 소비 확대 가능성이 크다. TRQ 대두의 공급 단가를 현실화하고, 국산콩 가공·유통 인프라를 확충하며, 공공급식과 사회복지 부문에서 국산콩 사용을 확대해야 한다. 국산콩의 소비 확대는 단순한 농정이 아니라, 먹거리 안전과 국민급식의 질을 높이는 일이며, 식량주권을 실천하는 첫걸음이기도 하다.

 

◇ 먹거리 안전은 먹거리 기본권의 핵심

 

수입 대두의 대부분은 GMO(유전자변형농산물)이다. 우리나라의 GMO 수입 비중은 대두 76%, 옥수수 27%, 유채 30%에 달한다. 이들 작물은 제초제 저항성을 높이기 위해 글리포세이트(glyphosate)를 사용하는데, 그 사용량은 지난 40년간 미국에서 250배, 전 세계적으로는 10배 이상 증가했다.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글리포세이트를 인체 발암 가능 물질로 분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여전히 ‘부분표시제’만 시행 중이다. 가공 후 DNA가 검출되지 않으면 GMO 표시 의무가 면제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제도는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할 뿐 아니라, 먹거리의 투명성과 안전성을 약화시켜 오히려 불안정한 식품 구조를 고착화한다.

 

“없는 사람은 부정한 식품도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이 과거 발언은 국민의 먹거리 기본권과 안전권을 정면으로 부정한 말이다. 먹거리는 소득의 문제가 아니라 생명과 안전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모든 국민은 돈의 많고 적음과 상관없이 안전하고 건강한 음식을 먹을 권리를 가진다.

 

이재명 대통령이 경기도지사 시절 도입한 ‘경기 먹거리 그냥드림 코너’는 이러한 철학에서 출발했다. 코로나19 시기, 생계 위기에 처한 시민들을 위해 푸드마켓·복지관·노숙인시설 등 지역 복지망을 통해 식료품과 생활용품을 무료로 제공한 정책이다.

 

‘그냥드림’은 단순한 시혜가 아니라 “누구도 굶지 않게 하겠다”는 사회적 약속이었다. 코로나 이후 잠시 중단되었지만, 이제 중앙정부가 ‘그냥드림’이라는 이름 그대로 재정비해 전국 확산을 추진하고 있다. 복지의 지방 실험이 중앙정부 정책으로 발전한 이 사례는, 먹거리 복지가 시혜가 아닌 국가적 책무임을 확인시켜 준다.

 

◇ 국민급식, 한 나라의 밥상을 하나로

 

2026년 학교 및 군대 급식 관련 예산은 10조 원을 넘는다. 학교급식 8조 원, 군 급식 2조 원 외에 복지·의료·보육·산업 급식 예산까지 합치면 그 금액은 더 늘어난다. 하지만 이 막대한 예산이 교육부·농림축산식품부·복지부·식약처로 나뉘어 흩어져 있다. 같은 세금을 내고도 지역·기관별로 식사 수준이 다르고, 운영 기준도 제각각이다.

 

이제는 ‘국민급식’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공적인 급식을 하나로 통합해야 한다. 국민급식은 학교·군대·복지시설·산업단지 등으로 흩어진 급식을 하나의 체계로 묶어 누구나, 어디서나, 어떤 신분이든 동일한 품질의 식사를 제공받게 하는 시스템이다.

 

이는 복지·농업·유통·물가·식량안보를 잇는 통합 전략이며, 농민에게는 안정된 판로를, 소비자에게는 신뢰할 수 있는 식재료를 제공하며 지역경제를 순환시키는 선순환 구조를 만든다.

 

국민급식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식재료 공급망이 튼튼해야 한다. 전국 32개 공영도매시장이 그 역할을 할 수 있다. 공영도매시장은 이미 검수·정산·물류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이 시장들을 국민급식 허브로 지정하면, 학교·어린이집·군부대·복지시설·산단까지 식재료가 하나의 공공 네트워크로 연결된다.

 

공영도매시장을 포함한 국민급식 시스템을 체계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국민식탁위원회(가칭)’ 같은 기구를 설치해 부처별 예산과 기준을 통합 관리해야 한다. 이 위원회는 표준 단가와 품질 기준을 마련하고, 공동조달·물류 통합 시스템을 구축하며, 원산지·영양·가격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개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국민이 직접 감시하고 참여하는 데이터 기반 급식체계를 통해 급식의 투명성과 공공성을 함께 높여야 한다. 이는 단순한 행정 개편이 아니라, 복지·농업·유통·기후·식량안보를 하나로 연결하는 국가 통합 전략이다. 한 나라의 밥상을 하나로 묶는 일, 그것이 바로 국민급식의 핵심이자 농정혁신의 시작이다.

 

 

◇ 식량주권과 먹거리 복지를 잇는 국민급식

 

기후위기 속에서도 굳건히 흙을 지키고 농사를 짓는 농민들이다. 그들의 노고가 있어 밥상이 있고, 그 밥상 위에 아이들의 웃음이 있다. 아이들이 언제든 과일을 먹고, 엄마가 안심하고 밥상을 차릴 수 있는 나라, 그 나라의 근간이 바로 국민급식이다.

 

‘농업인의 날’을 맞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밥 한 그릇 속에 담긴 흙의 무게와 농민의 땀이다. 흙은 생명의 바탕이고, 농사는 생명을 이어가는 일이며, 국민급식은 그 생명을 국민 모두의 권리로 확장하는 제도다.

 

식량주권이 흙과 농민을 지키는 일이라면, 먹거리 복지는 도시와 국민의 식탁을 지키는 일이다. 한쪽이 무너지면 다른 한쪽도 설 수 없다. 그러므로 식량주권은 먹거리 복지의 기반이며, 먹거리 복지는 식량주권의 완성이다. 국민급식은 이 두 가지를 하나로 잇는 제도적 다리이며, 흙에서 밥상으로 이어지는 대한민국의 미래다.

 

 




HOT클릭 TOP7


배너





배너

사회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