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치인 가운데 기술과 산업의 흐름을 비교적 냉정하게 바라보는 인물이 있다. 바이든 행정부에서 상무부 장관을 지낸 지나 레이몬도 여사다.
그녀는 최근 뉴욕타임스 오피니언에 기고한 글에서 의미심장한 경고를 했다. 인공지능이 촉발할 노동 시장 변화로 미국이 다가올 경제적 충격을 지금의 방식으로는 견뎌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기업과 정부가 역할을 분명히 나눠서 기업은 인공지능 경제에 필요한 기술을 정의하고, 그 기술이 실제 일자리로 이어지는 경로를 만들어야 하며, 정부는 노동자가 빠르게 새로운 일자리로 이동할 수 있도록 교육 인센티브와 사회 안전망에 투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기업과 교육계 사이의 장벽을 허물고 고용주들이 교육 과정(커리큘럼) 설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국가는 졸업해 봤자 시대에 뒤떨어질 위험이 있는, 기간이 길고 비용이 많이 드는 학위에서 벗어나, 교육과 취업을 연계하는 짧고 저렴한 학점 이수 과정에 초점을 맞춰 가야 한다”라면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공공과 민간 사이의 새로운 타협임”을 역설했다.
다시 말해서 기술의 속도가 너무 빨라 국가(공공)와 기업(민간)의 역할을 다시 정리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 문제는 특히 샘 올트먼이나 에릭 슈미트 같은 기술 지도자들도 반복해서 언급해 왔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떨까?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나라는 더 절실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기술 발전 속도에 비해 제도와 합의가 늦다. 미국은 정부와 기업, 대학이 오래전부터 역할을 나누어 왔다. 예컨대 인터넷의 초기 기술은 정부 연구기관에서 나왔고, 이후 민간 기업이 상업화를 이끌었다. 이런 전통 속에서 “공공이 기초를 만들고 민간이 확장 한다”는 암묵적 합의가 존재한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기술 도입과 산업화에서는 빠르지만, 공공과 민간의 역할 규칙을 정하는 사회적 합의는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둘째, 인공지능이 노동 시장에 미칠 충격이 더 클 수 있다. 우리나라 경제는 제조업과 사무직 비중이 높은 구조다. 인공지능이 번역, 회계, 법률 보조, 디자인 같은 지식노동까지 빠르게 대체하거나 보조하기 시작하면 중산층 직업 구조 자체가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미국에서 논의되는 기본소득, 데이터 권리, AI세 같은 아이디어가 우리나라에서도 결국 등장할 수밖에 없다.
셋째, 플랫폼 기업과 국가 사이의 균형 문제다. AI 시대에는 데이터와 계산 능력을 가진 기업이 국가만큼 큰 영향력을 갖는다. 미국에서도 거대 기술기업과 정부의 관계를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 가 중요한 정책 주제가 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기술 기업의 성장과 공공의 책임 사이에서 새로운 균형을 찾아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
결국 질문은 AI 시대에 국가는 무엇을 책임지고 기업은 어디까지 역할을 해야 하는가? 이다. 기술은 민간이 더 빨리 발전시키지만, 그 기술이 사회 전체에 미치는 충격을 관리하는 것은 결국 공공의 몫이다. 그래서 인공지능 시대의 핵심 과제는 기술 경쟁이 아니라 사회적 합의-기술과 사회가 함께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새로운 사회계약-의 속도일지도 모른다.
산업혁명 이후 여러 차례 기술의 물결이 있었으나 사회는 그때마다 새로운 합의를 만들어 왔다. 노동법, 사회보험, 공교육, 직업 훈련 제도 같은 것들이 그런 타협의 산물이다. 로봇 인공지능 시대 역시 예외가 아니다.
우리나라는 그 변화에 대비할 창의성과 역량을 가진 사회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인공지능과 로봇이 바꾸어 놓을 노동의 미래를 준비하기보다 주식 가격과 같은 단기적 투기 열풍에 시선이 쏠려 있다면,기술혁명은 기회가 아니라 또 하나의 사회적 충격이 될 수밖에 없다.
공동의 미래를 준비하려는 사회적 의지를 모으고 그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진정한 리더의 출현을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