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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08월 11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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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농협, 유통개혁의 방관자인가, 주체인가

 

◇위기의 밥상 물가

 

최근 국무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농수산물 물가와 관련해 유통 구조의 문제가 유난히 심각해지고 있는데, 관리·감독이 부족한 것은 아닌가?”라고 질의했다. 이에 대해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일부 품목에서 독과점 구조가 존재하다 보니 관리·감독에 일정한 한계가 있다”며, “온라인 도매시장을 활성화해 유통 구조 전반을 효율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온라인 도매시장 확대만으로는 도매법인에 집중된 수탁권 독점과 가격결정권이라는 유통 권력의 구조적 병목을 근본적으로 해소하기 어렵다. 유통 개혁의 본질은 기술적 전환이 아니라, 권한의 분산과 거래의 투명화, 그리고 책임 있는 공공 유통체계의 구축에 있다.

 

2025년 상반기 우리나라 농산물 유통은 기후위기, 통상 압력, 유통 구조의 왜곡, 사회경제적 취약성 등 복합적 요인이 겹치며 전례 없는 불안정성을 드러냈다. 설 연휴를 전후로 1~2월에는 무・배추・당근 등 주요 채소류 가격이 평년 대비 30% 이상 급등했고, 외식비와 가공식품 가격도 함께 오르며 1인 가구와 저소득층의 가계 형편은 급격히 악화되었다.

 

3월 이후 본격화된 이상기후로 인해 채소 생산량은 급감하였고, 수입 농산물 의존도가 점점 높아졌다. 4월에는 미국산 사과 등 수입 확대 논의가 불거지면서 농민단체의 반발로 이어졌고, 통상 압력과 농가 보호 사이의 긴장이 본격화되었다.

 

이어 5월부터는 폭염과 가뭄으로 인한, 이른바 ‘기후플레이션’이 심화되며 수박, 오이, 배추 등 주요 품목 가격이 치솟았다. 6월에는 외식비와 HMR(Home Meal Replacement, 가정간편식) 가격까지 동반 상승하며 취약계층의 식비 부담이 40% 이상 증가했고, 7월에는 ‘수박 한 통 3만 원’이라는 상징적 장면이 부상하며 국민 밥상 물가 위기의 정점을 보여주었다.

 

◇농수산물 유통 체계의 병폐

 

농산물 가격 급등은 단순한 계절적 현상이 아니다. 불합리한 유통 구조와 기후위기, 통상 압력, 소득 격차가 맞물린 구조적 위기에서 온 결과다. 근본적인 유통개혁이 없다면 문제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농수산물 유통 체계는 산지와 소비지 도매시장이 제도적으로 분리 운영되며, 이중 가격 결정 구조, 즉 ‘두 번의 경매’가 일반화되어 있다. 이 구조는 농산물과 수산물 모두 유사하게 작동하며 생산자와 소비자의 권익을 동시에 침해하는 구조적 병폐를 낳고 있다.

 

우선 수산물의 경우, 통영・완도・포항 등 전국의 산지 위판장에서 수협 주도로 1차 경매가 이루어지고, 이 과정에서 일차적인 도매가격이 형성된다. 그러나 이 가격은 최종 소비자 가격이나 유통 기준가격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단지 ‘도매 원가’ 정도로 간주된다. 이후 동일한 품목이 서울 가락시장 등 소비지 도매시장에 도착하면 도매법인이나 중도매인을 대상으로 다시 경매가 진행되면서 가격이 재차 설정된다.

 

이때의 소비지 경매가는 산지 가격과 전혀 연동되지 않으며, 실질적인 가격 결정 권한은 도매시장 내 유통인에게 집중된다. 어민이나 수협은 이러한 소비지 가격 형성에 개입할 수 있는 통로가 없고, 소비자 역시 유통 단계별 가격 형성 과정에 대한 정보 접근이 어려워 가격 왜곡과 불신이 심화된다. 산지 위판 가격과 소비지 경매 가격 간의 비교・추적조차 불가능한 구조다. 이를 실시간으로 연계하는 데이터 기반 시스템의 부재는 가격 연속성을 철저히 단절시킨다.

 

농산물 유통도 이와 다르지 않다. 지난 6월 30일, 창녕 농협공판장에서 열린 대서종 마늘 초매식(初賣式)은 공판장 유통 시스템의 구조적 한계를 여실히 드러낸 사건이었다. 전국 마늘 생산량의 20%를 차지하는 창녕 지역 농민들이 정부의 수급 가이드라인에 따라 재배 면적을 줄이고 품질을 개선하는 데 협조했음에도 실제 거래 가격은 ㎏당 4,000원 이하로 형성되어 생산비에도 못 미쳤다. 농민들의 항의로 거래는 20분 만에 중단되었다. 정부의 중재에도 가격은 정부 제시 기준인 4,400원을 넘지 못한 채 마감되었다.

 

단순한 가격 문제가 아니라, 이 사건은 농협이 운영하는 공판장이 생산자 중심의 유통 플랫폼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다. 현재 마늘 유통에서 공판장을 통한 거래는 25%에 불과하며, 산지 유통인과 깐마늘 가공업체 등 소수의 과점 유통 세력이 전체 유통의 60% 이상을 장악하고 있다. 이들은 조직력과 자본, 정보력으로, 분산된 농가를 압도하고 사실상 가격 결정권을 쥐고 있다. 소비자는 공판장 가격의 두 배를 주고 마늘을 구매하고, 생산자는 생계조차 위협받는 기형적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중 가격 결정 구조는 출하자의 가격 예측력을 떨어뜨리고, 유통단계의 불투명성을 심화시키며, 불필요한 유통비용과 수수료를 중복적으로 유발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공판장을 통한 산지 가격 형성이 의미를 가지려면, 이후 거래 과정에서도 그 가격이 기준가격 또는 연동 기준으로 활용되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산지와 소비지 시장의 연계성이 단절되어 있고, 가격정보 제공 또한 일관성 없이 분절적으로 운용되고 있어 가격의 합리성과 공공성 모두 실종된 상태다.

 

◇ 농협이 나서야 한다

 

농협은 ‘농민의 협동조합’이라는 설립 취지에 걸맞게 유통의 공공성과 책임성을 확보하는 주체로 거듭나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역 농협공판장과 공영도매시장 내 농협공판장의 기능을 명확히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지역 농협공판장은 산지 중심의 출하 거점으로서 생산자 조직화와 물류 집하 기능을 수행해야 하고, 공영도매시장 내 농협공판장은 도심 소비지 중심의 유통 플랫폼으로서 계약재배 물량의 안정적 수급과 도매・소매 유통망을 연결하는 전략 거점이 되어야 한다.

 

특히, 공영도매시장 내 농협공판장은 기존의 도매법인 체계에서 탈피해 시장도매인으로의 전환을 추진하고, 정가・수의 거래와 계약재배 물량을 확대해야 한다. 이러한 농협 주도형 유통개혁은 단순히 수수료를 낮추는 수준에 머물러선 안 된다. 거래 정산 과정의 실시간 투명화, 생산비와 유통비를 반영한 기준가격의 고시, 공공급식・복지조달과 연동된 정책 기반 유통 플랫폼으로의 전환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 제22조②에 따라, 현행 법령으로도 농협공판장의 시장도매인 전환이 가능하며, 이를 기반으로 유통개혁을 현실화할 수 있다. 정가・수의 거래와 계약재배 물량 비중을 확대하는 한편, 거래 전 과정을 실시간 공개함으로써 책임 있는 공공 유통모델을 실현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처럼 분명하고 실현 가능한 개혁 방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농협 유통개혁은 번번이 좌초되는가. 무엇보다 첫 번째 이유는 제도 운영 주체의 기득권 구조와 유통 권한 집중 때문이다. 현재 도매법인과 일부 유통인들은 기존 경매제 구조에서 기득권을 한껏 누리면서 큰 이익을 거두고 있다.

 

정가・수의 거래 확대나 시장도매인제 도입, 기준가격 고시는 이들의 가격 결정권과 수익 구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이들은 강력히 저항하고 있다. 공영도매시장이 ‘공공’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폐쇄적이고 기득권화된 유통 구조가 고착되어 있는 것이다.

 

두 번째는 농협 내부의 구조적 한계이다. 농협은 전국 단위의 거대한 조직망을 갖춘, 농업 분야의 중추적인 조직이다. 그런데도 지역 농협과 중앙 농협 간의 이익 충돌과 유통 부문에 대한 전략적 리더십 부재로 인해 실질적인 개혁 실행에 소극적이다. 농민 조합원의 신뢰 회복보다는 경제사업 실적 중심의 경영평가 체계가 유지되면서 유통 플랫폼으로의 전환보다는 공급자 중심의 사업자적 사고와 행태가 반복되고 있다.

 

세 번째는 정부의 정책 의지 부족과 제도 설계 미흡 때문이다. 농산물 유통개혁은 단기 성과가 가시화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그래서 정치적 우선순위에서 밀리기 쉽고, 각 부처 간 역할 정립도 분명하지 않다. 특히 시장도매인제 도입이나 기준가격 제도의 정착 등은 법률상 가능하더라도 실행을 위한 구체적인 로드맵, 추진 매뉴얼, 인센티브 설계, 통합전산시스템 구축 등에서 정부의 주도력이 부족한 실정이다.

 

마지막으로, 사회적 공감대 형성 부족도 걸림돌이다. 유통개혁은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간다. 하지만 그 사이에 위치한 유통인・도매법인・시장조직 등 이해관계자들의 반발은 크고, 농민과 소비자는 개혁의 실체적 효과를 피부로 느끼기 어려운 구조에 놓여있다. 개혁의 정당성과 필요성에 대한 대중적 이해와 지지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정치권과 정부도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이처럼 농산물과 수산물 유통 전반에 뿌리내린 이중 경매 구조와 기득권 중심의 유통 시스템은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 굳어져 가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제도적 근거는 이미 존재하고, 기술적 인프라도 갖춰지고 있다. 무엇보다 국민의 먹거리 불안과 농민의 생계 위협이라는 절박한 현실이 개혁의 정당성을 충분히 뒷받침하고 있다.

 

남은 것은 오직 실행뿐이다. 알면 알수록 속 터지는 유통의 현실을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 농협과 정부, 그리고 정치권, 각자가 책임을 다할 때, 밥상 물가는 안정되고, 유통은 신뢰를 되찾으며, 농업은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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