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 1일 서울 중구 정동 국토발전전시관에서 시공능력평가 순위 10대 건설사 대표들과 간담회 자리를 가졌다. 이재명 대통령이 건설현장 사망사고에 대해 건설면허 취소까지 언급하며 건설사들의 안전 관리 의식 고취를 강조하는 상황에서 마련된 자리다. 정부도 주택 공급 대책 발표를 앞두고 있어 건설사들의 협조도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어서 상호 대화가 필요했을 것으로 보인다.
새 정부는 주택공급대책이 나오면 건설사들이 신속하게 아파트를 지어주길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건설사들 입장에서는 무조건 많이 짓는다고 회사의 이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어서 부담일 수밖에 없다. 원재료 가격, 인건비 등을 고려해야 하는 데다 안전 기준도 기존보다 더 강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중대재해처벌법이 실질적으로 작동하지 않아 산업재해 감소효과가 거의 없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주요 요인 중 하나로 피의자에 대한 처벌 지연이 꼽혔다. 피의자 기업들이 대형로펌을 통해 적극적으로 대응에 나서면서 재판이 지연되는 사례가 많다는 것이다. 피의자 권리라는 측면에서 당연한 일이라고 여길 수 있지만 책임을 회피하려는 의도로도 읽힌다. 전체 산업계 사망사고의 절반이 건설업종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건설사들의 적극적인 법적 대응도 상당히 많을 것으로 풀이된다.
신속하게 안전하게 주택을 공급하려는 정부의 취지와 이를 실행하는 역할을 하는 건설사들 사이에 입장차는 분명히 존재한다. 복잡하게 얽힌 퍼즐을 가장 현명하게 풀어낼 묘수를 찾을 필요가 있다.
◇ 중처법 위반 혐의점 방어에 최선 다하는 건설사
3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비공개로 진행된 간담회는 정부가 향후 정책 방향을 설명하고 건설업계 애로사항을 청취하는 자리였다.
간담회에는 삼성물산, 현대건설, 대우건설, DL이앤씨, GS건설, 현대엔지니어링, 포스코이앤씨, 롯데건설, SK에코플랜트, HDC현대산업개발의 대표이사가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건설사들이 정부의 주택 공급 방안을 듣고 현행 주택 건설 과정에서 겪고 있는 제도적 어려움을 호소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현재 건설사들은 정부의 강력한 처벌 방침에 대해 압박을 느끼고 있다. 제도적인 뒷받침이 아쉽다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안전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비용이 드는데 공공공사의 경우 공기를 압박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불만을 토로한다. 재건축·재개발 조합들도 책임준공확약으로 빠른 시공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공사비도 현실적이지 않다는 게 업계 공통된 시각이다. 불법 하도급 문제에 있어서도 기업에 관리·감독 권한을 주지 않으면서 모든 책임을 원청에게 전가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부실한 프로젝트 파이낸싱(PF)도 부담이다.
한편, 건설사들은 안전 관리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10대 건설사들은 최고안전관리책임자(CSO) 제도를 운영하고 있으며 매번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조사에 성실히 임하고 과실이 있다면 책임을 지겠다고 약속한다. 문제는 그럼에도 사망사고가 줄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일각에서는 건설사들이 안전 사고 예방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처벌을 회피하는데도 더 큰 노력을 기울이는 모순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국회입법조사처는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중처법)의 입법영향분석 보고서를 발간했다. 이 보고서는 2022년 1월 27일부터 시행된 중처법이 시행 3년 동안 입법 취지대로 작동하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재해자 수는 시행 전인 2021년 12만2,713명에서 2024년 14만2,771건으로 늘었으며, 사망자 수는 2021년 2080명에서 2024년 2098명으로 늘었다.
전체 사건 1,252건을 전수조사 한 결과 73%가 ’수사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6개월 초과 처리 비율은 50~56.8%, 무죄비율은 10.7%로 일반형사사건 무죄 비율(3.1%)로 수사 속도와 처벌 수준에 상당한 문제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처벌 수준도 약하다. 집행유예율은 85.7%로 일반 형사사건 집행유예율 35.5%의 2.3배로 확인됐다. 47건의 징역형 유죄 형량 평균은 1년 1개월로 이 가운데 42건이 집행유예 처분을 받았다.
◇ 중처법 처벌 지연되면 피해자·유족 정서적 위험
중처법은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 등에 안전과 보건 확보 의무를 부여하고, 의무를 위반해 사망사고을 발생시킨 경우 이들을 처벌하는 규정이다. 문제는 책임자 처벌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고용노동부가 중처법 적용 대상에 포함한 사고 건 수는 1,252건으로 이중 276건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 중 121건을 기소했고 올해 7월까지 중처법 위반 사건에 대한 1심 판결은 53건에 그쳤다.
또한 전체 수사 대상 건 수의 73%인 917건이 현재 조사 중이다. 입법조사처는 처벌이 지연될 경우 “수범자에게는 법 억지력이 떨어질 우려가 있고 사회 전반적으로 법 집행력에 대한 신뢰를 훼손할 위험이 있는 등 부정적인 영향이 있을 수 있다”고 짚었다.
최근 1심 재판에서 피고인 측이 대형 로펌을 선임하는 경우가 점차 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러한 기업의 적극적인 법적 대응으로 각종 이의 제기, 자료 제출 지연, 의견서 제출 등을 통해 수사가 지연되면서 피해자와 유족의 법적·정서적 불확실성에 놓이게 된다는 분석이다.
이로인해 수사기관은 기업의 법적 대응에 보다 정교한 법리 검토를 해야 하고, 증거 수집의 절차와 내용에 대하여 엄밀성, 충분성, 타당성 등을 과도하게 갖추어야 하는 부담을 갖게 된다. 결국 기업의 적극적인 법적 대응에 수사기관이 전문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면, 중처법의 입법 취지인 산업재해 예방 및 책임자 처벌이 악화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이번 조사는 산업군 전체가 대상이지만 건설업계도 이러한 분석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25년 2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통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업종별 사망사고 건수는 ▲건설업 138명 ▲제조업 67명 ▲기타업종 82명으로 나타났다. 전체 287명 중 48%가 건설업 현장에서 목숨을 잃었다.
실제로 중처법 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가장 많이 받은 업종도 건설업이라는 조사 결과도 있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이 지난 6월 발표한 ‘기업 규모와 업종 특성을 고려한 중대재해처벌법 개선 방향(건설업을 중심으로)’ 보고서에 따르면 중처법 시행 이후 지난 3월 17일까지 선고된 판결 37건 중 건설업 유죄 판결이 17건으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제조업 15건, 기타업 5건 순서로 나타났다. 건설업에서 사망사고가 가장 많이 일어나는 만큼 대형 로펌을 고용해 소송전을 벌이는 기업들 중 건설사들이 상당한 부분을 차지할 것이라는 것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이재명 정부 주택 공급대책은 속도에 방점을 찍을 가능성이 높다. 이 대통령은 취임 후 가진 첫 번째 기자간담회에서 “기존에 계획된 신도시가 많이 남아 있고 상당한 규모인데 공급이 실제로 안되고 있다”며 “기존 계획돼 있는 것을 그대로 하되 대신 속도를 빨리할 생각”이라고 밝힌 바 있다.
기존보다 정부 발주 공사, 민간 재개발·재건축이 활성화될 가능성이 높고 빠르게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건설사들의 부담도 늘어날 전망이다. 건설 현장도 많아지는 만큼 안전 대책도 기존보다 강화해야 하고 속도도 높여야 한다. 건설사들이 사망사고를 낼 때마다 공통적으로 하는 말은 “성실히 조사에 임하고 과실이 드러나면 처벌을 달게 받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뒤에서는 책임을 회피하려는 소송전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 외에도 영업정지 처분을 받으면 또한 행정소송 등으로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관례인 것으로 알려졌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건설사들이 대형로펌을 고용해 법적 대응에 나서는 것은 일반적”이라며 “법적 책임 회피라기보다는 안전 관리 문제를 꼼꼼히 따져보겠다는 취지”라고 말했다. 이어 “정당한 법적 대응 조차도 책임 회피로 비춰지는 만큼 건설업은 사망사고 많은 업종이라는 인식이 바뀔 수 있도록 업계가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