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맑음동두천 25.8℃
  • 구름조금강릉 27.3℃
  • 맑음서울 26.6℃
  • 구름많음대전 25.0℃
  • 흐림대구 22.6℃
  • 흐림울산 23.8℃
  • 구름많음광주 24.8℃
  • 흐림부산 27.2℃
  • 구름조금고창 25.2℃
  • 제주 24.5℃
  • 맑음강화 25.7℃
  • 구름많음보은 24.4℃
  • 구름많음금산 25.9℃
  • 구름많음강진군 26.3℃
  • 흐림경주시 22.1℃
  • 구름많음거제 25.3℃
기상청 제공

2025년 10월 07일 화요일

메뉴

오피니언


민생을 살리는 ‘가격 조정 명령’

백혜숙 한국공공식료사회연구소 소장

 

◇ 왜 식료품 가격만 치솟나?

 

최근 국무회의에서는 이재명 정부만의 특징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다른 정부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모습이었다. 물가와 민생 문제를 환율이나 원자재 같은 외부 요인 탓으로 돌리지 않고, 국내 유통구조와 행정의 책임 문제로 직시하면서 구조 개혁을 통해 이를 해결하려는 태도를 보였다.

 

지난 9월 30일 국무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왜 식료품 물가만 이렇게 많이 오르냐”는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평균보다 1.5배나 높은 한국의 물가 구조를 지적하며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어 “식료품 물가가 본격적으로 오른 시점이 2023년 초부터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며, 왜 그 시점부터 가격이 급등했는지 근본적인 의문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아울러 ‘가격 조정 명령’ 검토를 지시하면서 “정부가 제대로 관리하고 지도하고 개입한다면 물가 상승을 상당 부분 완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 환율과 국제 원자재가 탓인가

 

대통령의 지적은 실제 통계로도 확인된다. 2023년 이후 물가 상승을 이끈 주요 요인은 농산물, 특히 신선식품과 과일 가격의 폭등이었다. 한국은행 보고서와 주요 외신 지표에서도 농산물 가격 급등이 인플레이션의 재가속 요인으로 반복 지목됐다. 도매시장의 거래 패턴은 “물량은 줄었는데, 거래 금액은 늘어난” 전형적으로 불합리한 모습이었다. 농민과 소비자가 동시에 손해를 보는 동안, 경매 구조와 수탁 독점에 기댄 도매법인만 이익을 본 것이다. 언론에 보도된 도매시장법인의 수익 급증 사례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런 구조적 문제를 외면한 채 물가를 단순히 환율이나 국제 원자재 가격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책임 회피에 불과하다. 대통령의 발언은 바로 이 지점을 겨냥한 것이었다. 구조적 문제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가 바로 바나나다. 바나나는 대개 CIF(운임·보험료 포함 가격) 조건으로 들어오기 때문에 이미 수입가격이 확정되는 품목이다. 환율이나 국제 시세가 변한다 해도, 국내에 들어온 시점에서는 가격이 비교적 명확히 정해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락시장에서는 바나나가 불필요한 경매와 ‘기록상장’이라는 절차를 거친다. 기록상장은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농안법)상 근거 없는 불법적 관행임에도, 도매법인과 중도매인들이 수수료 수익을 위해 사실상 관행적으로 운영해 온 방식이다. 이미 수입가격이 확정된 품목에 대해 경매를 반복하거나 기록상장을 강제하면서 유통비용이 중첩되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소비자가 안게 된다.

 

◇ ‘가격 조정 명령’의 필요성

 

더 큰 문제는 가락시장의 가격이 전국의 기준가격으로 작동한다는 점이다. 가락시장에서 형성된 왜곡된 가격이 곧 전국 소비자가격으로 굳어져 버린다. 이재명 대통령의 ‘가격 조정 명령’은 단순한 물가 대책이 아니다. 담합과 독과점 구조를 깨트리고, 불필요한 유통비용을 걷어내자는 얘기다. 유통개혁의 출발점이다.

 

글로벌 관세 전쟁으로 제조업 기반이 흔들리고 러스트벨트화 위험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가격 조정 명령’은 내수를 진작하고 민생경제를 안정시키기 위한 강력한 예방책이 될 수 있다.

 

‘가격 조정 명령’을 ‘농산물 공공유통 명령’으로 구체화하면, 농산물 유통구조에 대한 공공적 개입을 통해 국민 식비 부담을 줄이고, 농가 소득을 안정적으로 보장하며, 국제 통상환경 변화 속에서도 국민경제의 자립성과 회복력을 높일 수 있다.

 

‘농산물 공공유통 명령’은 국정과제인 ‘경매 중심 가격결정 시스템의 다양화’와 맞닿아 있다. 가격결정 시스템 다양화란, 공영도매시장에서 독점적으로 보장된 경매 방식만으로 가격을 정하는 구조에서 벗어나 유통업체의 구매가격 결정 방식 등 다양한 방법을 도입하는 것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발간한 『농산물 유통체계의 국제비교분석과 유통정책 개선방향(2/2차년도)』(2017)에 따르면, 대형 유통업체들이 구매가격을 정할 때 반영하는 평균 비중은 생산원가(공급업체 제안 가격) 33.2%, 산지 시세 26.3%, 도매시장 시세 23.7%, 동종업계 판매가격 14.4%, 기타 2.5%로 조사됐다.

 

도매시장 시세보다 생산원가와 산지 시세 반영 비중이 더 높았다. 보다 합리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이다. 이렇듯 이미 다양한 기준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도매시장 경매가 지나치게 절대적 기준으로 군림해 왔다.

 

따라서 앞으로는 생산비 기반의 기준가격을 제도화하여 농가의 경영 안정성을 보장하고, 가격 변동성에 따른 소비자 피해를 줄여야 한다. 이를 위해 AI 기반 가격추적시스템을 구축해 산지에서 소비지까지 가격 흐름을 실시간으로 공개하고, 정부 지원책이 실제 소비자가격 인하로 이어지는지 끝까지 추적·검증함으로써 투명성과 공정성을 강화해야 한다.

 

◇ 추적은 가능하다

 

기준가격과 연동되는 밥상 물가는 ‘경로’로 관리해야 한다. 사과 한 상자가 산지에서 얼마에 출하되어 도매시장에서 얼마로 거래되고, 최종적으로 소매 진열대에 얼마로 도착하는지, 그 흔적을 남기는 것이 물가 안정의 출발점이다. 지금처럼 장바구니 물가가 공포스럽게 여겨질수록 구호가 아니라 추적 가능한 가격 정보가 필요하다.

 

흔히 “농산물은 생물이어서 추적이 어렵다”고 말하지만, 상자 단위로 묶으면 충분히 가능하다. 이미 제도·인프라·데이터라는 세 가지 조건이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농산물 이력추적관리라는 제도적 기반이 있고, 산지유통센터(APC)는 집하·선별·포장·저장을 한곳에서 처리하는 인프라를 제공한다. 특히 스마트 APC 확산으로 QR·바코드 부착과 데이터 연동이 본격화되면서, 생산지 데이터를 표준화·디지털화할 환경이 마련되고 있다. 여기에 도매·소매 가격 데이터와 POS 단가, 시민이 제공하는 영수증과 가격표까지 결합하면 데이터의 그물코는 훨씬 더 촘촘해질 수 있다.

 

 

◇ 직거래의 시사점

 

물가와 농가 소득을 동시에 지키는 또 하나의 축은 직거래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의뢰로 ㈔농식품신유통연구원이 조사해 제출한 『2024년 농산물 직거래 유통실태조사 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상(上)품 기준 12개 대표 농산물의 유통비용률은 일반유통경로의 경우 49.7%(aT, 2022년 기준)에 달했지만, 로컬푸드 직매장은 16.7%(이하 2024년 조사 결과), 직거래 장터는 15.1%, 온라인 직거래도 26.0%에 불과했다.

 

일반 경로 대비 거의 절반 이하 수준이다. 직거래는 소비자에게는 가격 절감 효과를, 농가에는 소득 보전 효과를 안겨주는 ‘두 마리 토끼’ 전략이다. 그러나 직거래 경로의 비율은 4.5%(2021년 기준)에 불과하다.

 

이 효과를 전국 단위로 확장할 수 있는 핵심 경로가 바로 공영도매시장이다. 현재 전체 농산물 유통의 절반 이상이 공영도매시장을 통해 이뤄지고 있는 만큼, 여기에 직거래 방식을 도입한다면 훨씬 많이 농가의 소득을 보호하고 소비자의 장바구니 부담을 훨씬 더 줄일 수 있다. 나아가 유통비용 전체를 낮추는 구조적 개혁으로 이어질 수 있다.

 

공영도매시장은 전국 물가의 기준가격을 형성하는 핵심 유통 인프라다. 여기에 직거래 방식을 접목하면, 산지에서의 수집과 소비지로의 분산이 일원화된다. 산지에서 농산물을 모아오고, 도매시장에서 다시 흩어 공급하는 이중 구조를 해소하는 길이다. 불필요한 단계를 줄이는 만큼 유통비용은 절감되고, 물류 효율성은 높아진다.

 

◇ 변하는 유통 현실

 

이러한 지역 단위 직거래가 보여준 유통비용 절감 효과를 공영도매시장에서 제도적으로 구현한 것이 바로 시장도매인제(정가・수의 매매)다. 시장도매인은 산지 출하자와 직접 계약해 물량을 수집하고, 동시에 대형 유통업체나 소매상에게 맞춤형으로 공급한다. 시장도매인제 확대는 농가 소득 안정과 소비자 물가 부담 절감, 그리고 물류 효율화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고도 효과적인 선택지다.

 

유통구조 개혁은 단순한 거래제도의 변화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소비와 유통 환경이 빠르게 변하면서 산지 생산자 역시 새로운 요구에 직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생산자가 원하는 방식대로 출하하는 시대가 아니라, 최종 소비자나 대형 구매처가 원하는 형태로 맞춤형 농산물을 공급하는 시대다. 이에 따라 생산 계획과 상품화 계획, 판매 전략, 지원체계 전반이 생산자 중심에서 구매자 중심으로 전환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핵심이 되는 것이 바로 스마트 APC다. 기존의 계근, 계측, 선별, 포장, 냉장, 저장, 컨베이어 기기 등 주요 설비에 데이터 수집기를 부착해 실측 정보를 디지털 데이터로 변환하고, 이를 네트워크를 통해 서버에 저장하는 시스템이 구축되고 있다. 단순 기계화가 아니라,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과학적 유통 관리 체계로의 진화다.

 

도매시장 물류시설 역시 변화를 준비 중이다. 가락시장에서는 전자송품장 시스템과 연계해 산지에서 출하된 농산물이 도착하기 전, 하역장 위치를 사전에 안내받을 수 있는 물류 운송 시스템을 추진하고 있다. 출하자가 출하예고시스템에 농산물 및 거래 정보를 입력하면, 전자송품장이 작성·등록되고, 이를 바탕으로 도매시장은 최적 하차 정보를 생성해 출하자와 배송 차량에 제공한다. 물류 병목을 줄이고 효율성을 높이는 방식이다.

 

◇ ‘길’을 좇으면 답이 보인다

 

여기에 더해 우리나라 물류정보의 표준은 GS1(Global Standard No.1) 체계(상품 식별, 유통, 정보 교환을 위한 글로벌 표준 코드 체계)로 정해져 있으며, 이는 이미 다른 산업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농산물 유통도 이제 국제 표준 속으로 빠르게 편입되고 있다. 실제로 타 산업에서는 바코드와 RFID(Radio-Frequency Identification, 무선 주파수 식별, 일명 전자태그)에서 생성된 기초 데이터가 기업의 물류시스템으로 자동 수집되고, 물류기업들이 현장에서 즉시 활용할 수 있는 수준으로 빅데이터 관리가 이루어지고 있다. 농산물 유통 역시 이러한 혁신을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한다.

 

공공유통 명령, 생산비 기준가격, 직거래·시장도매인제, 스마트 물류 혁신까지, 이미 답은 뚜렷하다. 가격은 흔적을 남긴다. 길이 생긴다. 그 길이 표준 라벨과 데이터로 명징하게 드러나는 순간, 설명이 안 되는 가격은 유통시장을 압박하게 된다. 바나나가 흘러간 길, 사과 한 상자가 산지에서 소매 진열대까지 어떤 경로를 거쳤는지, 그 길이 드러나는 순간, 시장은 스스로 설명을 요구받는다.

 

 




HOT클릭 TOP7


배너






사회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