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주기의 개정, 그리고 ‘현실 적합성’으로의 전환
일본의 교육과정인 학습지도요령은 약 10년 주기로 개정된다. 이는 단기적인 정책 변화에 흔들리지 않으면서도 장기적인 사회 변화에 대응할 수 있도록 설계된 제도적 장치다. 한편 한국의 교육과정 개정은 과거에는 주기적(전 면) 방식이었으나, 현재는 수시 개정을 원칙으로 하되 대략 5~7년의 주기를 두고 개편이 이뤄지고 있다.
일본의 이러한 주기적 개정 방식은 교육의 연속성과 안정성을 유지하는 동시에 시대 변화에 따른 조정 가능성을 확보하는 역할을 해왔다. 따라서 2027년을 목표로 진행되고 있는 이번 개정 역시 형식적으로는 기존과 동일한 정기적 개정의 연장선상이다.
학습지도요령 개정 협의에 2017년과 2027년 개정 모두 참여하고 있는 츠쿠바대학교의 카라키 키요시 교수와의 인 터뷰에 따르면, 이번 개정은 이전과는 다른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2017년 개정이 교육의 목표와 방향을 재정립하는 데 중점을 뒀다면, 이번 개정은 그 목표가 실제 학교 현장에서 얼마나 구현되고 있는지를 점검하고, 구현되지 못하는 원인을 분석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다. 즉, 관심의 중심이 이론적 설계에서 실행 가능성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문부과학성 중앙교육심의회 논의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다양화’, ‘포섭’, ‘실현 가능성’이라는 용어는 이러한 변화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이는 교육이 더 이상 이상적인 모델이나 평균적인 학생을 전제로 설계될 수 없으며, 실제 교실의 다양한 조건을 전제로 재구성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정책 수준에서 공유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결국 이번 개정은 새로운 교육 내용을 제시하기보다는 이미 설정된 교육 목표가 현실 속에서 작동할 수 있도록 그 조건을 재설계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이번 개정은 ‘방향 설정형 개혁’이 아니라 ‘현실 적합형 개 혁’이라는 특징을 지닌다.
◇교실의 실태: 한 학급 안의 ‘구조적 다양성’
문부과학성 자료 가운데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오늘날 한 학급이 어떤 학생들로 구성되어 있는지를 구체적인 수치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자료는 초등학교 35명, 중학교 40명이라는 실제 학급 규모를 기준으로, 교실 안에 이미 얼마나 다양한 배경과 조건의 학생들이 함께 존재하고 있는지를 시각적으로 제시한다. 추상적으로 ‘학생의 다양성이 커지고 있다’고 말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다양성이 실제로 한 교실 안에서 어느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는지를 눈에 보이게 만든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 그림은 초등학교 한 학급 35명, 중학교 한 학급 40명을 사람 아이콘으로 표현하고, 그 안에 어떤 학생들이 어느 정도 포함되어 있는지를 색깔별로 구분해 보여준다.
예를 들어 분홍색은 ‘집에 있는 책의 수가 적고 학력이 낮은 경 향이 보이는 학생’, 초록색은 ‘학습 또는 행동 측면에서 어려움을 겪는 학생’, 파란색은 ‘등교 기피 경향이 있는 학생’과 ‘등교 거부(결석) 학생’, 주황색은 ‘집에서 일본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 학생’, 베이지색은 ‘특별한 재능이 있는 학생’을 가리킨다.
그림의 핵심은 특정 소수 집단을 따로 떼어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학생들이 하나의 교실 안에 동시에 공존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데 있다. 즉 오늘날의 학급은 단일한 특성을 가진 학생들의 집단이 아니라, 서로 다른 교육적 필요를 지닌 학생들이 함께 배우는 공간이라는 점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자료다.
초등학교의 경우, 약 12.5명으로 전체의 35.6%에 해당하는 학생이 ‘집에 책이 적고 학력이 낮은 경향’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는 단순한 가정환경 통계가 아니다. 가정 내 학습 자원의 차이가 학생의 학업 경험과 성취에 실제로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학습 결과가 오로지 개인의 능력이나 노력만으로 설명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지표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학교는 이미 출발선이 서로 다른 학생들을 전제로 교육을 운영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또한 초등학교에서는 3.6명(10.4%)이 학습이나 행동 측면 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고, 4.1명(11.8%)은 등교 기피 경향을 보이며, 0.7명(2.1%)은 실제로 결석 상태에 해당하는 것으로 제시된다. 여기에 집에서 일본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 학생이 1.0명(2.9%), 특별한 재능을 가진 학생도 0.8명 (2.3%) 포함되어 있다. 이 수치를 종합해 보면, 오늘날의 교실은 단지 ‘학력이 다양한 공간’이 아니라 언어 환경, 정서·행동 특성, 출석 상태, 재능과 강점까지 모두 다른 학생 들이 함께 존재하는 복합적인 공간임을 알 수 있다.
중학교에서는 이러한 경향이 더욱 뚜렷해진다. ‘집에 책이 적고 학력이 낮은 경향’을 보이는 학생은 15.7명으 로 39.2%에 이르며, 등교 기피 경향이 있는 학생은 4.1명 (10.2%), 실제 결석 상태의 학생은 2.7명(6.7%)으로 나타난다. 집에서 일본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 학생은 1.3명 (3.2%), 학습 또는 행동 측면에서 어려움을 겪는 학생은 2.2명(5.6%), 특별한 재능을 가진 학생은 0.9명(2.3%)으로 제시된다.
특히 주목할 점은 초등학교보다 중학교에서 등교 관련 어려움이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는 점이다. 이는 학교생활의 요구가 높아지고 평가와 경쟁의 압력이 커질수록, 기존의 학교 시스템에 적응하기 어려운 학생들이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이 그림이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이제 교실은 더 이상 ‘평균적인 학생’을 기준으로 상정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 다. 과거에는 평균을 중심에 두고 일부 학생을 예외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이 가능했을지 몰라도, 지금은 그 예외가 결코 소수가 아니다. 오히려 다양한 배경과 조건을 지닌 학생들이 교실의 일반적인 모습이 되었고, 다양성 자체가 교육과정 설계의 출발점이 되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러한 점에서 이 자료는 단순히 학생 구성의 변화를 설명하는 통계가 아니라, 왜 교육과정 개정 논의에서 ‘다양화’ 와 ‘포섭’이 핵심어로 떠오르는지를 보여주는 근거라고 할 수 있다.
동일한 내용을 동일한 속도와 동일한 방식으로 가르치는 교육은, 이미 현실의 교실과 맞지 않는다. 학생들 이 처한 조건이 서로 다른데도 교육과정이 여전히 하나의 평균적 모델만을 상정한다면, 그 교육은 일부 학생에게만 효과적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크다. 결국 교육과정은 학생 들의 차이를 사후적으로 보완하는 수준을 넘어, 처음부터 그러한 차이를 전제로 설계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개인의 역량에서 구조적 조건으로: 2017년 개정과 2027년 개정의 본질적 차이
2017년 개정 교육과정은 일본 교육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전환한 중요한 계기였다. 이 개정에서 도입된 ‘자질·능력’ 개념은 교육의 초점을 단순한 지식 전달에서 문제 해결과 활용 중심의 역량으로 이동시키는 역할을 했으며, ‘주체적· 대화적·깊은 배움’이라는 구호를 통해 수업 방식의 변화까지 요구하였다. 이는 지식 기반 사회에서 요구되는 학습자의 모습을 반영한 것으로, 학생을 수동적인 지식 수용자 가 아니라 능동적으로 의미를 구성하는 존재로 재정의했 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지닌다.
그러나 이러한 개혁은 여전히 개인 중심적 관점에 기반하고 있었다. 교육은 학생이 어떤 능력을 갖추었는지를 중심 으로 설계되었으며, 그 능력은 개인의 노력과 학습을 통해 형성될 수 있다는 전제를 깔고 있었다. 다시 말해, 교육과 정은 ‘무엇을 길러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제시하는 데 집중되어 있었다.
반면 2027년을 목표로 한 이번 개정 논의는 이러한 전제 를 근본적으로 수정하고 있다. 앞서 살펴본 교실의 실태는 동일한 교육과정이 모든 학생에게 동일하게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같은 내용을 배우더라도 가정 환경, 언어 환경, 그리고 축적된 학습 경험이 다른 학생들은 전혀 다른 학습 결과를 보이게 된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교육과정은 더 이상 목표만을 제시하는 수준에 머물 수 없다.
이제는 그 목표가 실제로 구현될 수 있는 조건까지 함께 설계해야 하는 단계로 나아가고 있 다. 즉, 교육은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라는 질문을 넘어, “그 배움이 누구에게, 어떤 조건에서 가능한가”를 함께 묻는 방향으로 전환되고 있다. 이 변화는 교육의 책임을 개인의 노력에서 교육 환경과 제도라는 구조적 조건으로 확장시키는 중요한 전환이며, 이번 교육과정 개정의 본질적 특징을 형성한다.
이러한 흐름은 제도적 차원에서도 분명하게 나타난다. 문부과학성이 제시한 ‘배움의 다양화 학교’의 확대는, 변화된 문제 인식이 실제 교육 시스템 설계 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위 그림은 ‘배움의 다양화 학교’가 특정 지역에 국한된 실 험적 시도가 아니라,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정책임을 보여준다. 지도에서 표시된 녹색 영역은 해당 학교가 설치된 지역을 의미하며, 2024년 대비 2025년에 그 범위가 더욱 넓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학교 수는 2024년 35개교에서 2025년 58개교로 증가했으며, 지정 도시와 도도부현의 수도 함께 확대되었다. 이는 단순한 수적 증가를 넘어, 국가 차원에서 해당 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 음을 시사한다.
또한 자료에는 학교 유형(초·중·고), 분교 및 분실형 시설, 공공시설 활용 형태 등 다양한 운영 방식이 함께 제시되어 있다. 이는 ‘배움의 다양화 학교’가 하나의 획일적인 모델이 아니라, 지역의 상황과 학생의 필요에 따라 유연하게 설계되는 구조임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동일한 제도를 전국에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학습 환경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설계되고 있는 것이다.
이 학교들은 기존 학교 시스템에 적응하기 어려운 학생들 -예를 들어 등교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이나 학습 참여가 지속되지 않는 학생들-에게 새로운 학습 경로를 제공한다. 특히 수업 시간, 학습 방법, 교육과정 운영을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정해진 틀’ 중심의 학교와는 다른 접근을 취하고 있다. 주목할 점은 이들이 기존 교육과정을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교육과정을 다양한 방식으로 실현하려는 시도라는 점이다.
이는 이번 교육과정 개정이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를 바꾸기보다는,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와 ‘어떤 조 건에서 학습이 가능하도록 할 것인가’에 초점을 두고 있음 을 보여준다. 결국 ‘배움의 다양화 학교’의 확대는 특정 학생을 위한 예외적 조치가 아니라, 교육 시스템 전체가 다양성을 전제로 재구성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는 2017년 개정이 개인의 역량에 주목했다면, 2027년 개정은 그 역량이 형성되는 조건 자체를 재설계하는 단계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언어 다양성의 확대와 교육의 재구성: 다문화 사회로의 전환과 구조적 투자
문부과학성 자료에 따르면 일본어 지도가 필요한 학생 수는 지난 10년 사이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으며, 이를 위한 교육과정과 학교 체계 역시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러한 증가가 외국 국적 학생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일본 국적을 가진 학생 가운데에서도 일본어 지원이 필요한 학생이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으며, 이는 일본 사회가 단순히 ‘외국인 증가’의 단계가 아니라, 다문화·다언어 사회로 구조적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자료를 보면, 외국 국적 학생은 2014 년 5788명에서 2023년 3만7715명 으로 약 6배 이상 증가했으며, 일본 국적 학생 역시 1238명에서 6839명으로 크게 늘어났다. 특히 이러한 학생들을 지원하기 위한 학교 수가 같은 기간 1396개교에서 6394개교로 증가했다는 점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는 단순히 학생 수가 늘어난 것에 대응하는 수준을 넘어, 교육 시스템 자체가 언어 다양성에 대응하는 방향으로 재구성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표는 보다 중요한 변화를 드러낸다. 일본어 지도가 필요한 학생 가운데 실제로 특별 교육과정을 제공받는 비율이 크게 상승하고 있는 것이다. 외국 국적 학생의 경우 2014년 19.8%에 불과하던 비율이 2023년에는 65.3%로 증가했고, 일본 국적 학생 역시 15.7%에서 60.0%로 상승했다. 이는 과거에는 ‘필요는 있지만 충분히 지원되지 못했던’ 영역이, 이제는 제도적으로 적극 대응되고 있는 단계로 이동했음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교육의 과제가 단순한 문제 인식에서 실제 실행과 보장으로 전환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교육과정 설계 방식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교육은 더 이 상 단일 언어를 전제로 구성될 수 없으며, 서로 다른 언어적 배경을 가진 학생들이 함께 학습할 수 있는 구조를 필요로 한다. 이에 따라 학교 현장에서는 일본어 지도 교원의 확충, 모국어 지원, 개 별화된 교육과정 운영 등 다양한 방식이 도입되고 있으며, 교육과정은 점차 학생의 언어와 생활 배경을 포함하는 방향으로 확장되고 있다.
이 지점에서 교육의 의미는 한 단계 더 확장된다. 교육의 다양화는 단순한 교육 방법의 변화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지속 가능성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교육의 다양화는 단기적으로는 분명 추가적인 비용을 수반한다. 교원 확보, 지원 인력 배치, 교육 프로그램 개발 등 다양한 자원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이는 비용이 아니라 투자로 이해해야 한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학생들이 자신의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노동시장 참여 확대와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특히 등교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이나 학습 참여가 어려운 학생을 포용하는 것은, 이후 발생할 수 있는 사회적·경제적 비용을 사전에 줄이는 효과를 가진다. 교육 단계에서의 개입은 단순한 학습 지원을 넘어, 사회 전체의 리스크를 관리하는 기능을 수행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일본의 교육과정 개정은 단순한 교육 정책이 아니라, 인적 자본을 유지하고 확장하기 위한 장기적 전략으로 해석할 수 있다. 결국 이번 교육과정 개정이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다양화는 더 이상 대응해야 할 미래의 과제가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현실이며 교육의 출발점이다. 교실은 이미 다양 한 언어와 배경을 가진 학생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교육은 그 다양성을 전제로 설계되어야 한다.
일본은 지금 ‘모든 학생에게 동일한 교육을 제공하는 체계’에서 벗어나, ‘서로 다른 학생들이 함께 배울 수 있는 조건을 설계하는 체계’로 이동하고 있다. 이는 정책의 부분적 수정이 아니라, 교육의 개념 자체를 재구성하는 전환이다. 그리고 이러한 전환은 교육을 넘어 사회와 경제의 구조까지 변화시키는 힘을 가진다.
이제 같은 질문이 한국교육에게도 던져질 수 있다. 우리는 과연 ‘다양화된 교실’을 전제로 교육을 설계하고 있는가?
글 현재균 일본 아이치교육대학 조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