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글을 창조하는 인간의 기량(技倆)과 뇌력(腦力)를 돕는 인공지능 글을 표절하고 시험 중에 부정행위를 저지르고 거짓 정보를 퍼뜨린다. 「ChatGPT」 같은 새롭고 강력한 인공지능 도구(이하 도움이)가 출현하면서 원래, 이 기술이 의도하지 않았던 결과가 나오면서 인간사회에 미칠 파장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으며 그런 기술을 사용하는데 따른 윤리적 책임 소재를 놓고 토론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AI 도움이들은 이제, 우리 생활의 일부가 된 것처럼 보인다. 「ChatGTP」가 지난해 말 혜성처럼 등장한 후 마이크로소프트는 100억 달러를 자사 「chatbot」을 만드는 실험실, 「Open AI」에 투자했다. 경쟁사의 위협을 보면서 구글도 조직과 인원을 재편성했다. 이러한 기술의 점진적인 영향을 고려해 보면, 지금은 책임감 있게 그 기술의 혜택을 어떻게 누릴 것인지에 대해 초점을 맞출 때다. 많은 AI 전문가들과 컴퓨터 과학자들은 이러한 도움이들이 인간에게 주요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고, 그 서비스는 결코 해롭지 않을 것이라는 데 동의하고 있다. 그렇다면 도움이들은 우리가 쓴 글을 어떻게 보완해 줄 수 있을까. 이런 맥락에서 보면 그러한 도움이가 나왔어도 우
'인공지능 AI의 미래...AI를 부리는 인간? AI를 따르는 인간?' 여러분은 어느 쪽인가? 오픈 AI의 「샘 올트먼」 최고경영자는 최근 “GPT-4의 안전문제에 대해 신중하고 엄격하게 대처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우리는 GPT-5를 개발하지도 않고 있으며 그럴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미 나와 있는 인공지능만으로도 3-D 프린팅은 미래 제조업의 혁명을 몰고 올 게 확실한 가운데 스토리텔링 등 창의적인 분야에서의 인공지능 활용 논란은 뜨겁다. 그렇다면 인공지능 AI는 그들을 창조한 인간의 모태(母胎)를 부수고 자기들을 따르라고 할 것인가? 이에 대한 인간의 대처방법은 무엇인지 최근 뉴욕타임스에 실린 3편의 글을 소개하고자 한다. <제1편> 잘못을 일상적으로 저지르는 인공지능 AI 갑작스레 우리는 새로운 종족과 얼굴을 맞댄 듯이 인공지능 AI가 스마트 폰 스크린 위에 뜬 모습을 보고 있다. 지난 몇 달에 걸쳐 AI 쳇봇들은 미국의 소셜 미디어(웹사이트와 소프트웨어) 공급 망 속으로 솜에 잉크 스며들 듯 퍼졌다. 그것들이 몰고 온 악몽은 한 사람의 입에서 이 사람, 저 사람의 입으로 그리고 전체로 전사(傳寫)되어 퍼지면서 19세기 비평가
흙속 미생물의 내뿜은 이산화탄소를 흙속에 저장해야 흙속의 미생물이 탄소화합물 등의 유기물을 먹고 나면 이산화탄소가 발생한다는 게 문제다. 생명체가 무엇인가를 먹었으니 배설을 해야 하는 건 당연한 생리현상이다. 그들이 내 품은 이산화탄소는 흙속에 그대로 저장되어 있어야 정상이다. 그러나 그들을 덮고 있는 흙을 농사를 짓기 위해 갈아엎는다거나 작물을 수확을 한 뒤 흙 표면을 그대로 방치해 둘 경우, 흙속에 갇혀있던 이산화탄소가 때를 만난 듯이 흙속에서 빠져나와 대기 중으로 달아나 버린다. 1에이커(1224평)에 사는 옥수수 밭의 흙속 미생물들은 이산화탄소를 얼마나 배출할까? 놀랍다. 이들이 배출하는 이산화탄소의 양은 건장한 25명의 남성이 일할 때 내뿜는 양보다 훨씬 많으니까. 그러니까 식물이 광합성을 위해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15%를 흡수한다고 해도 여러 이유에 의해 흙속 미생물이 방출하는 이산화탄소 양이 많아져 지금처럼 대기 중에 이산화탄소 등의 온실가스가 축적되고, 결국 기후위기를 일으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기 중에 쌓여 떠도는 잉여탄소를 어떻게 해서든지 원래의 고향인 흙으로 되돌려 보내야 한다. 그렇지만 지금과 같은 농사방법이나 흙의 생태계가 온전치
지난달, 전남 구례군에서 필자는 ‘유기농업의 원조는 한반도’라는 강의를 했다. 요지는 “흙이 살아야 대기 중의 거대한 잉여탄소를 흙 속에 저장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강의가 끝나자 참석자들 몇 분으로부터 질문이 있었다. 그 중 한 분은 “죽어가는 흙을 살려야 하는 건 알겠는데 어떻게 살리는가?”라고 물었다. 이에 대해 필자는 “우리 조상들이 4천년 이어온 자연농법의 데이터를 수집해 오늘날의 과학 기술과 접목시켜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런 내 답변이 시답지 않았나 보다. 흙을 살려 어떻게 탄소를 저장하겠다는 말인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눈치였다. 그래서 흙이 살아야 탄소를 저장할 수 있는 이유를 생물학적으로 접근해 미래의 농법(農法)이 어떻게 변해 갈 것인지를 3회에 걸쳐 알아보고자 한다. 살아있는 거대한 음(陰)의 세계 흙은 살아 있는 거대한 음의 세계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30cm 깊이에 1㎡의 건강한 흙 속에는 6백억 개의 박테리아를 비롯해 10억 개의 곰팡이, 5천 마리의 원생동물, 천만마리의 선충류, 그리고 15만 마리의 진드기, 10만 마리의 톡토기, 200마리의 지렁이 등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는 온갖 생명체로 가득하다. 이들 또한 탄소를
누구나 말을 할 줄 알지만 모두가 말을 잘 할 수 있는건 아니다. 글도 그렇다. 연설교육을 받았던 안 받았던 사회적으로 성공했던 안 했던, 누구나 연단에 서면 떨리고 횡설수설하기 십상이다. 소설까지 쓴다는 인공지능 AI가 그런 일을 대신할 수 있다고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들이 써 주는 원고에선 감동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인간만이 가진 감동적인 말글을 어떻게 만들어야 나를 돋보이게 하고, 다른 이들의 생각을 내가 원하는 대로 이끌어 갈 있을까? 「데일 카네기」의 『성공대화론』을 중심으로 21세기 최고 경쟁력이 될 말과 글의 신적(神的) 영역으 로 모험을 떠나보자. 첫 문장, 첫마디가 중요하다. 처음부터 청중의 호기심을 자극하라! 청중 앞에 서면, 초보자의 경우 아마 앞이 보이지 않을 것이다. 심장은 쿵쾅거리고 다리가 떨린다. 하지만 당신의 초조한 심정은 아랑곳 하지 않고 청중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또는 불가피하게 일제히 당신에게 시선을 보낸다. 그들의 시선은 처음 5초간 집중되지만 그 다음 5분은 여러분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다. 흥미 없는 말이 나오면 곧바로 청중의 시선은 흐트러지기 시작한다. 그래서 모든 연설의 첫 마디는 흥미로운 내용으로 시작하지
기후만 놓고 보더라도 우리는 이미 다가올 것들을 예상하고 있다. 이를테면, 가뭄, 홍수, 그리고 가까운 과거에 일어났던 것보다 훨씬 더 극단적인 폭풍 등이다. 우리는 지난해에 일어났던 공급망의 붕괴가 주는 함의(含意)가 무엇인지를 보고 있다. 강이 너무 말라서 선박운행과 수력발전이 불가능했으며 핵발전소는 손상을 입었다. 인구문제만 놓고 보더라도 그렇다. 선진 공업국에서 출생률이 떨어지고 있으며, 중국의 인구는 기울고 있다, 예를 들자면 그렇다. 한국은 이런 순간에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생률을 기록했다. 기후변화처럼, 인구수의 변동은 근로 층과 나이든 층 사이의 사회적 계약을 팽팽하게 긴장시키는 것처럼 사회적 변동을 결정한다. 우리는 이 시대의 지정학적이고 경제적인 네트워크 경쟁을 하면서도 그런 관계를 가지고 지난 40년간의 세계화를 되돌려 놓고 있다. “프렌드쇼어링(국제 경제에서 우방 국가에 공급 망을 구축하는 것)”, 혹은 “생산품을 우호 국가로 이동시킨다”는 말은 새로운 용어이다. 탈세계화 뒤에 지정학적 힘은 기후변화와 인구수 변동으로부터 오는 스트레스를 더 증폭시켜 자원과 소비자를 확보하기 위한 광란의 경쟁으로 이끌 것이다. 우리는 기후변화, 인구 감소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라고 말한 『팡세』의 저자 블레즈 파스칼(Blaise Pascal,1623년~1662년)을 기억하시는지? 병약한 몸으로 태어나 39살에 요절한 그는 과학자나 수학자로 알려졌지만 사실 철학과 신학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했고 “예측하는 힘이 지배하는 것이다.”라는 말을 했다. 예측에 대한 그 짤막한 경구를 좌우명으로 삼아 성공한 사람들은 많고 많지만 초라한 주급 직원에서 신문사주로 성공한 영국의 로드 노스클리프 자작(子爵, 1865~1922)도 그 중 한 사람이다. 1921년 조선에 들렀다가 초가집을 보고 “아프리카 토인들도 저것보다 나은 집에 산다,”고 혹평을 했던 바로 그 사람인데 당시에 우리나라가 지금처럼 되리라고 예측하긴 어려웠던 모양이다. 미래에 대한 경제적 예측은 예측이라기보다 상상이라고 해야 옳을지 모른다. 최근, 미국의 실리콘 벨리 은행이 도산할 것이라고는 누구도 예측하지 않았다. 은행의 내재 가치가 잘못되었다거나 투자를 잘못했다면 모르되 투자자들이나 예금자들이 ‘왠지 이상한 것 같다’는 공포 심리의 헛소문이 SNS에서 돌더니 그런 사태가 일어난 것이었다. 중국에서는 최소한 6천5백만 채의 아파트가 사람이 살지 않는 유령주
예측하는 힘이 지배하는 것일까?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라고 말한 『팡세』의 저자 블레즈 파스칼(Blaise Pascal,1623년~1662년)을 기억하시는지? 병약한 몸으로 태어나 39살에 요절한 그는 과학자나 수학자로 알려졌지만, 사실 철학과 신학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했고 “예측하는 힘이 지배하는 것이다”라는 말을 했다. 예측에 대한 그 짤막한 경구를 좌우명으로 삼아 성공한 사람들은 많고 많다. 초라한 주급 직원에서 신문사주로 성공한 영국의 로드 노스클리프 자작(子爵, 1865~1922)도 그 중 한 사람이다. 1921년 조선에 들렀다가 초가집을 보고 “아프리카 토인들도 저것보다 나은 집에 산다”고 혹평을 했던 바로 그 사람인데, 당시에 우리나라가 지금처럼 되리라고 예측하긴 어려웠던 모양이다. 미래에 대한 경제적 예측은 예측이라기보다 상상이라고 해야 옳을지 모른다. 최근 미국의 실리콘 벨리 은행이 도산할 것이라고는 누구도 예측하지 않았다. 은행의 내재 가치가 잘못되었다거나 투자를 잘못했다면 모르되 투자자들이나 예금자들이 ‘왠지 이상한 것 같다’는 공포 심리의 헛소문이 SNS에서 돌더니 그런 사태가 일어난 것이었다. 중국에서는 최소한 6천5백만 채의 아
지방정부 처음으로 흙이 살아야 지구가 산다는 흙 살리기 운동을 펼치고 있는 전남 구례군은 지난날 28일 본지의 윤영무 보도본부장을 초청해「유기농업의 원조는 한반도」라는 강연회를 구례군민 2백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었다. 본지에 「흙의 반란이 시작됐다」는 글을 연재해 오고 있는 윤 본부장의 강연내용을 네 번째 시리즈로 싣는다.(편집자 주) 지구의 탄소 불균형이 기후위기의 원인 이산화탄소, 메테인(methane, 독일어 ‘메탄’의 영어 발음), 오존과 이산화질소 등으로 구성된 온실 가스는 지난 수백년 동안 흙과 물에서 자연적인 과정을 거치며 대기로 내뿜어졌다가 다시 자연적인 과정을 통해 원천지로 돌아오는 순환을 반복했습니다. 그래서 방출과 흡수가 균형을 유지할 정도의 온실 가스가 원천지로 돌아가는 한, 온실가스로 인한 기후변화 는 발생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대기 중에는 일정한 수준의 온실 가스가 필요합니다. 그래야 태양 복사열이 우주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아서 지구의 온도를 높일 수 있고, 그로인해 지구는 비가 오고 눈이 오는 날씨를 만들어낼 힘을 얻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못하면 지구는 1년 내내 얼어붙어 사람이 살 수 없을 것입니다. 대기 중 가스가
마스크 착용 의무를 공식 해제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마스크를 쓰고 다닌다. 나도 그렇다. 그냥 벗어버리자니 몸에 밴 습성을 깨기가 힘들었다. 예전 같으면 해방감으로 음식점으로 술집으로 몰려갔겠지만 오히려 손님이 줄고, 밤 11시쯤 되면 귀가를 해서 술집은 썰렁하다. 그동안 코로나로 매출이 떨어져 문을 닫았던 가게가 마스크 해제가 되었다고 다시 문을 열 것 같지도 않은 분위기다. 고물가 때문일까? 아니면 비신축적인 유물론의 특성 때문일까? 뉴욕 대학교의 폴 크루그먼 교수 이야기를 들어보자. 문제는 돈이 아니라, 공급량이야, 이 바보야 선적(船積) 컨테이너와 포탄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특징이 있다면 무엇일까? 속일 요량으로 질문을 하는 건 아니다. 정답은 이것이다. 두 가지인데, 지난 3년간 어 느 시점에서 공급량이 매우 부족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공급량 부족은 현대 경제를 왠지 불안하게 만드는 꺼림칙한 뭔가가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다. 그 꺼림칙한 뭔가는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 들이 생각했었던 것처럼 신축적이지 않다 는 것이다. 어째서 포탄은 신축적이지 못한 것인지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우크라이나 전쟁을 면밀히 추적해 왔
지구 대멸종을 다룬 소설은 대체로 지구가 멸망했거나 멸망하는 중으로 묘사되고 있다. 알 수 없는 재난으로 지구상의 거의 모든 생명체와 문명이 사라진 몇 년 후, 종말을 맞은 땅을 지나 바다를 향해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여행을 하는 코맥 매카시의 소설 《로드, The Road》가 그렇고, 핵 전쟁이후 바이러스에 감염된 인류가 흡혈귀가 되고 유일하게 인간으로 살아남은 주인공이 사투를 벌이는 좀비의 고전, 스티브 킹의 《나는 전설이다》까지 만신창이가 되어 언제든 대멸종을 맞이하게 될 거라는 암울한 현실에 바탕을 두고 있다. 지구가 물에 잠기는 대재앙을 다룬 소설 한편을 뉴욕타임스 서평을 통해 소개한다. 홍수에 잠긴 지구, 『The Deluge』 “우리가 죽은 뒤엔 무슨 일이 일어나든 나와 상관없다”며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하라는 투로 루이 15세가 그의 애첩 겸 정치고문인 마담 드 퐁파두르에게 재담을 던졌다. 왕이 왕실의 특권인 사방의 벽이 거울로 장식된 홀에서 그런 말을 하며 손을 흔드는 모습을 우리는 상상할 수 있다. 왕이 말한 그런 비유(比喩)는 틈새로 흘러나오는 물처럼 마치 우리가 죽은 뒤에 지구가 기후재앙으로 파멸하든 말든이라는 뉘앙스의 전조(前兆)인 듯하
음식물은 쓰레기가 아니다. 못 먹어서 버리는 아까운 인류의 생존자원일 뿐이다. 그런데도 식물에 쓰레기라는 말을 붙여 전 세계 전체 음식물의 3분의 1을 매립하거나 태워 없애고 있다. 그렇게 먹지 못하고 버리는 음식물은 우리나라에서만 연간 25조원에 달한다. 세계적으로 농산물의 원가가 치솟고 하루가 멀다 않고 음식물 가격이 오르고 있지만, 못 먹고 그대로 버리는 아까운 음식물은 줄지 않고 있다. 냉동실은 항상 꽉 차 있지만 검은 비닐봉지에 쌓아놓기 때문에 그게 어떤 것인지도 모른다. 결국은 아까운 전기료를 들여 꽁꽁 얼렸다가 쓰레기로 버린다. 버리는 음식물을 줄이고 재활용하기 위한 미국의 오하이오 주에 있는 한 도시의 노력을 소개한다. (뉴욕타임스, 2023년 1월 13일자, When a fourth grader monitors the garbage) 어머니가 버린 음식물을 보고 울어버린 어린 소녀 제니퍼 세비지는 저녁식사 거리를 찾느라 정신없이 분주했다. 냉장고 안쪽 깊숙한 곳에서 그녀는 여러 재료의 소로 채운 고추 용기를 발견했다. 아주 오래된 거였다. 그게 거기에 있는 걸 몰랐다. 그녀는 낮은 신음 소리를 내고 더 생각할 것 없다는 듯이 수백만 미국인들이
관행농업으로 인한 지력(地力) 상실과 기후위기로 우리나라 지역특산 농산물의 한계선이 무너지고 있다. 지역 특산물과 역사 유적지 등을 브랜드로 만들어온 각 지역의 지역적 특징도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다른 지역과 차별화 된 브랜드를 만들어 지역경제를 활성화 시킬 수 있을까? 인도 영화팬들이 스위스로 몰려간 이유 2010년 하버드 리뷰(Harvard Review) 1~2월호에 실린 전면광고의 헤드라인은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유일한 렉서스 공장은 일본 밖에 있습니다” 이 광고주 는 렉서스나 모회사인 도요타가 아니었다. 캐나다 온타리오 주였다. 이 잡지 광고에는 또 “기업 친화적인 바레인”, “크린 에너지 그린 테크놀로지 + 신선한 발상-왜 기업들은 아일랜드에 뿌리를 내리는가?”, “북아메리카에서 가장 좋은 개인 은행-Northern Trust”,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IAA 국제회의를 놓치지 마시라” 이외에도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 그룹의 절제된 광고도 실렸다. 그런데 이 광고는 본문 대신 그들의 호텔이 소재하고 있는 세계의 도시 이름으로 채웠다. 우리는 소비자가 브랜드를 보는 순간 어느 지역을 떠올리게 할 수 있을까를 설명하려고 한다. 만다린 오
서로 다른 구성원들의 갈등을 설득과 동의를 통해 조정해야 하는 민주주의는 정치가들의 말에 의해 작동된다. 그러므로 정치인의 말은 품격과 논리, 그리고 설득력을 갖춰야 한다. 그렇지 않고 저속하고 비논리적이며 감정에 치우치면, 상처가 증오가 되고 적대감으로 바뀐다. 상대진영을 공격하고 깎아내리기 위해서 천한 말을 사용하고도 부끄러운 줄을 모르는 요즘 정치인들의 언어로 인해 사회가 분열하고 있다. 인류의 긴 역사를 통해 인구에 회자(膾炙)되는 감동적인 연설을 복기(復記)해 봄으로써 우리 국민을 감동시키고 사회를 단결시킬 수 있는 정치적 언어를 찾아보고자 한다. 민주주의를 완성한 아테네의 정치지도자 페리클레스 기원전 431년, 지금으로부터 2453년 전. 그리스의 도시국가 아테네는 스파르타와의 전쟁(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전사한 젊은 아테네 청년들을 포함한 전몰장병을 추도하는 장례식을 열었다. 관례에 따라 장례식에서는 마지막 순서로 아테네를 대표하는 시민의 연설을 들을 차례였다. 그때 투구를 쓴 긴 얼굴의 페리클레스가 연단을 향해 오르자 운집한 시민들이 물을 끼얹은 듯 조용했다. 다른 연설 때 같으면 그의 이름을 연호했을 터였지만, 오늘은 전몰자 추도 장례식이다.
“아 세상에 저걸 어쩌나” 튀르키예에서 일어난 지진 뉴스를 보던 나는 탄식이 절로 터져 나왔다. 고층 콘크리트 건물이 여기저기에서 와르르 주저 않고 먼지 폭풍이 일어났다. 건물 밖에 있다가 혼비백산한 사람들은 피했지만 건물 잔해에 묻힌 사람들은 잠잠했다. 갑자기 28년 전, 삼풍백화점의 붕괴현장이 떠올랐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저런 지진이 일어난다면 어쩌지? 고층 아파트, 댐, 터널과 철도. 내진 설계가 되었겠지 설마? 고가도로가 엿가락처럼 휘였던 일본 고베지진에서 많은 건물들이 버텨 낸 게 그나마 내진 설계가 돼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엉킨 실타래 같았다. 나는 갑자기 팍팍한 고물가경제는 고사하고 하늘에서 맴돌다 내리 꽂는 번개처럼 불가항력 앞에서 내 목숨을 건사할 수 있는 것일까해 뇌 회로에서 불꽃이 튀기 시작했다. 어디 지진뿐인가. 전염병과 전쟁, 하루가 멀다 않고 북한이 쏘아대는 미사일도 그렇고 내가 아무리 조심해도 피할 수 없는 재앙이 알고 보니 도처에 잠복돼 있었던 것이었다. 어르신들은 늘 “매사 조심해라, 살얼음판 걷듯 살아야 한다”고 하셨다. 아무리 조심하고 조심해도 실수는 일어나고, 뜻밖의 사고를 당하는 게 인생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