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라 안팎이 어지럽다. 전직 대통령들이 구속돼 있으면서, 또는 외부 활동이 제한된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광화문과 국회 앞에선 시위가 그칠 새가 없다. 제조업 노조에서 건설노동자들까지 파업을 벌이고 있다. 거리와 시장 바닥을 일터로 삼아 새벽부터 늦 은 밤까지, 혹은 24시간 불 켜놓고 일하는 자영업자들이 ‘못 해 먹겠다!’고 난리다. 기업가들은 기업가들대로 숨 막힐 것 같은 규제에 분을 삭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우리 경제는 미중 무역전쟁과 일본의 수출규제라는 악재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다. 실로 내우외환에 처해 있는 지금, 복잡한 정치경제학적 처방보다 우리 역사에서 지혜를 찾아보는 일이 더 현명하지 않을까 여겨진다. 때마침 숭실대 철 학과 곽신환 교수가 올해 정년퇴임을 앞두고 한국철학사상연구소에 '19세기 조선과 정역사상'이란 역작의 논문을 썼다. 그를 연구실 에서 만났다. 정년퇴임하는 교수들 중에 전공 책을 불태운 뒤 전공과 완전히 결별하는 이들도 있다고 들었다. 이와는 달리 정년 후에 더욱 공부에 매진하는 교수들도 있다고 하는데 곽신환 교수는 후자인 듯하다. 앞으로 쓸 책 제목 10여개를 써놓고 있으며 곧 ‘율곡’에 관한 신간이 나올 거란다
우리나라는 유교가 들어오기 전에도 예 정신이 돈독했다. 중국으로부터 동방예의지국이라고 칭송 받았을 정도로 조선 선비들의 예절 지킴은 각별했는데, 오늘날에는 그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자랑스런 우리 예 정신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전통의 예 정신이 어떻게 사라졌는지, 회복 방안은 무엇인지 살펴본다. 조선을 ‘성리학의 나라’였다고 말한다. 성리학이란 안으로는 덕을 닦고 밖으로는 예를 실천하는 것이라고 간단히 요약할 수 있다. 덕과 예는 손바닥의 양면과 같다. 조선은 덕과 예로서 백성을 다스리려는 왕도정치를 구현하고자 했다. 덕은 수양을 중시하는 것이다, 조선의 선비들은 수양 정신은 참으로 대단했다. 예는 존비와 귀천, 장유, 친소의 차별성으로 나타났다. 이 ‘차별성’이 결국 문제가 되고 말았다. 고조선 이래 우리나라가 건강하게 간직하고 있던 예 정신이 법전화된 중국 예제가 들어오면서 흔들리게 된 것이다. 예학 연구가 김시황 선생의 저서 「한국예학연구논고1(동양 예학회 간)을 보면 조선 시대 예속의 뿌리를 이룬 「주자가 례」는 고려 말에 전래됐다. 「주자가례」는 남송의 주자가 편찬한 책이다. 이것은 고려말 안향이 성리학과 함께 들여 온 것이라 한다
우리나라 태극기와 훈민정음이 주역의 원리에 의해 만들어진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주역 전문가인 이선경 박사에 따르면 주역 원리를 상징하는 태극 문양은 삼국시대부터 사용되었다. 이 박사는 경주 감은사와 문무대왕 수중릉 사이에 있는 이견대(利見臺) 주역 건 괘에 나오는 이견대인(利見臺人)에서 따온 것이라고 말했다. 공자는 점서였던 주역에 통찰력 있는 「계사전」을 첨가 했다고 전한다. 주역은 성현의 반열에 오른 공자가죽 간의 가죽 끈이 끊어질 정도로 심혈을 기울여 읽었다고 해서 더욱 유명해진 경전이다. 조선의 선비치고 주역을 탐독하 지 않은 자가 있었겠는가. 뛰어난 선비일수록 주역에 일가견을 가지고 있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퇴계도 몸을 해칠 정도로 주역을 공부했으며 독자적인 견해를 글로 남겼다. 정다산은 중국의 주역 대가들이 펼쳐온 논지와는 다른 접근법으로 「주역사전」 「역학서언」 등의 역작을 썼다. 정다산은 ‘주역사전은 내가 하늘의 도움으로 얻은 문자들이니 결단코 인력으로 알기 힘들고, 깊이 헤아린다고 도달할 수 있는게 아니다. 이 책을 깊이 읽어 오묘한 뜻을 깨닫는 자손과 붕우들을 천재일우로 만난다면 곱절로 사랑할 것이라’고 고백했다. 다산은
<M이코노미 이상용 수석논설주간> 요즘 서구사회를 보면 거대한 바다 위에서 돛대가 꺾이고 키도 부서진 채 표류하고 있는 범선을 보는 듯하다. 서구사회를 지탱해왔던 교회가 세속적 이데올로기의 공격을 받고 신자들이 무더기로 떠나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 서구의 전통적 가치가 무너진 자리에 지금 ‘전투적인’ ‘개인 인권’ 주의가 신성불가침의 교리마냥 기세를 떨치고 있다. ‘가족애’는 시골에서나 가야 볼 수 있을 듯하다. 극단적이고 왜곡된 개인주의가 ‘절대 가치’인양 활보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뉴질랜드 이슬람사원 학살테러에서 보듯이 이슬람의 극단주의와 화이트 내셔널리스트의 극단주의가 정면충돌하고 있다. 한 세대 전만 해도 서구적 공동체 가치가 우리의 본보기가 된 적도 있었지만 이제 그런얘기를 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증오와 적개심으로 폭력화되는 서구사회를 보면서 조화와 상생, 공동체와 인간관계를 중시해 온 한국의 전통적 정신과 가치가 새삼 소중하게 느껴진다. 흔히 서구대학에서 공부하고 온 학자들이 현대사회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을 한국과 동양의 전통에서 찾으려고 해왔다. 그러나 그들은 찾아내지 못하고 갈수록 오리무중에 빠진 것 같다.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