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부가 2031년 이후 온실가스 감축량을 아예 설정하지 않은 것은 국민의 기본권을 충분히 보호하지 못해 헌법에 어긋난다는 헌법재판소 전원일치 판결이 나왔다. 아시아에서 최초로 나온 결정이다. 쟁점은 한국 정부가 탄소중립 기본법과 시행령, 국가 기본계획 등에서 정한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목표치가 적정한지였다.
정부는 2030년의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배출량 기준 40%만큼 감축하겠다고 정했지만, 그 이후로는 아무런 기준도 마련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헌재는 “2031년부터 2049년까지의 감축 목표에 관해 그 정량적 수준을 어떤 형태로도 제시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과소보호금지 원칙을 위반했다”며 “기후위기라는 위험 상황에 상응하는 보호조치로서 필요한 최소한의 성격을 갖추지 못했다고 할 것”이라고 했다.
기후환경단체 플랜1.5는 헌재가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면서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 대해 판시한 내용을 따르려면 이 같은 수치를 목표로 잡아야 한다는 분석을 담은 보고서를 9월 24일 발표했다. 헌재의 판결문에서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 대해 “과학적 사실과 국제적 기준에 근거하여 전지구적 감축노력에 기여해야 할 우리나라의 몫에 부합해야 한다”는 조건을 제시했다.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라 해당 조항은 2026년 2월 28일까지만 효력이 인정된다. 정부와 국회는 개정 시한까지 헌재 취지를 반영해 보다 강화된 기후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지구 평균기온 1.5℃ 오르면 ‘연간 어획량’ 150만톤 감소, ‘해수면’ 77㎝ 상승
그렇다면 지구 온난화의 부메랑이 이제 우리의 일상을 침범하고 있는데 에너지를 절약하고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탄소중립 실천을 하고 있는가.
탄소중립이란 ‘탄소 순배출량’을 제로로 만드는 걸 의미한다. 탄소 배출량과 탄소 흡수량이 같아야 가능한 목표다. 2015년 유엔 회원국들은 그 유명한 ‘파리 협정’을 통해 탄소중립 시점을 2050년으로 잡았다.
2050년이 가까워질수록 정부는 ‘탄소감축량’을 늘릴 수밖에 없다. 유럽연합(EU)을 포함해 195개국은 2015년 파리 협정을 통해 온실가스(탄소) 감축안을 통과시켰다. 목적은 지구 온도 상승 억제, 온도 상승 억제를 위한 국가별 계획 평가, 개발도상국에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자금 지원 등이다.
파리 협정에선 1850~1900년 지구 표면 평균 온도 ‘13.5도’를 기준으로 삼았다. 2023년 지구 평균 온도가 14.98도였으니, 파리 협정의 기준으로 따져보면 1.45도 오른 셈이다. 여기서 ‘온도 상승 억제’란 문구를 살펴보면, 산업화 이전 대비 섭씨 1.5℃를 기준점으로 잡았다.
지구 평균기온이 1.5℃ 오르면 연간 어획량이 150만톤(t)이 줄어든다고 한다. 우리나라 2023년 한해 어업량(367만8000t)을 감안하면 엄청난 양이다. 또한 해수면은 높아진다. 2100년까지 온도가 1.5도 오르면 적게는 26㎝, 많게는 77㎝까지 해수면이 상승한다.
실제 온실가스 배출로 지구 온도가 1℃ 올라갈 때마다 지상과 바다의 물 증발속도도 빨라진다. 유럽우주국(ESA)에 따르면, 오늘 날 26억명이 극심한 물 부족을 경험하고 있는 2050년에는 35억명이 이를 전망이다. 해양환경공단의 해수면 상승 시뮬레이터를 보면, 우리나라의 해수면이 34㎝ 상승하면 3448명이 침수 피해를 겪는다. 해수면이 72㎝까지 올라가면, 침수 피해자가 1만3563명으로 3.9배가 된다.
멜버른대·퀸즐랜드대 등에서 참여한 국제 공동 연구진은 “배리어 리프와 주변의 수온이 1960년부터 올해까지 해마다 상승해, 지구 온난화 파리협정 목표인 1.5도 이내로 제한하더라도 현재 산호초의 70~90%(백화현상)가 사라질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온실가스 감축률 2018년의 67% 수준으로”...정부와 기업의 의지는?
결국 우리는 헌법재판소의 기후소송 헌법불합치 결정 취지를 충족하려면 2035년까지 국가 온실가스 감축률을 2018년 배출량의 약 67%로 정해야 한다. 이에 국내 비영리 기후단체 플랜1.5는 “헌재 취지를 따르면 2023년까지 감축률을 2018년의 66.7%로 정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내놓기도 했다.
플랜1.5가 말한 근거 기준은 1850년 이후 누적 배출량 비중에 따른 감축 필요량을 의미하는 책임주의 원칙에 따라 산정한 온실가스 감축 비율은 51.9~94.3%, GDP 비중에 따른 감축 필요량을 의미하는 역량주의에 따른 감축 비율은 83.8%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플랜1.5는 정부가 지난 6월 동해안 영일만 석유 및 가스전 신규 개발 계획안은 온실가스 감축과 배치되는 ‘역주행’이라고 지적했다. 이 프로젝트에 추산한 석유와 천연가스가 합계 140억 배럴이 채굴된다고 가정하면 온실가스 배출량은 약 47억7750만 톤에 달한다. 2022년 기준 한국 전체 국가 배출량 6억5450만 톤의 7배에 달하는 양이라는 게 플랜1.5의 분석이다.
이들은 정부의 대처에 대해 “기후위기 상황을 고려하면 이번 프로젝트는 환경적 측면뿐만 아니라 경제적 측면에서도 타당성이 없다”고 지적하며 “2035년 이후 사업이 본격화되면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달성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플랜1.5의 최창민 변호사는 “대한민국은 온실가스 배출 측면에서도 연간 배출량 5위, 1인당 배출량 6위, GDP당 배출량 4위로 그 책임이 막중하므로, 우리나라의 감축목표는 전세계 평균 감축률보다는 높은 수준으로 설정되어야 CBDR/RC(차별적 공동책임과 각자의 능력) 원칙에 부합한 것으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라며 이같이 강조했다.
◇“연간 소비량 15% 이상 줄이겠다”는 시민과 ‘공짜 탄소’를 원하는 기업체
지난달 20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발간하는 보건복지포럼 9월호에는 ‘복지국가 환경변화에 대한 시민 인식 비교 연구’ 결과들이 실렸다. 연구원은 미국, 영국, 독일, 이탈리아 등 10개국 대학 연구진과 함께 해당 국가 시민들 총 2만1862명을 설문조사해 환경 변화에 대한 인식을 분석했다.
그 결과 한국인들은 소비를 줄여 지구온난화 추세를 늦추는 것에 우호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지구온난화 방지를 위해 줄일 수 있는 연간 소비량을 15% 이상 줄일 수 있다고 답한 한국인은 54.9%로, 이탈리아(57.8%)에 이어 두 번째로 많았다.
이런 흐름과는 다르게, 2021년 7월말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 현 한국경제인협회)는 한국이 유럽연합과 유사한 탄소배출권 거래 제도를 운영한다는 이유로 ‘유럽연합 탄소국경세 적용 면제국에 한국을 포함해 달라’는 내용으로 유럽연합 의회에 편지를 보냈다. 또한 지난해 11월 기획재정부(이하 기재부)는 보도자료에서 기재부 차관이 유럽연합 게라시모스 토마스 조세총국장을 만나 “한국이 엄격한 탄소배출권 거래제 운영 국가인 만큼 한국 기업에 불필요한 부담을 가중시키지 말 것”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전경련의 탄소국경세 면제 요구에 유럽연합은 답을 하지 않았고, 정부의 기업 부담 최소화 요청도 진전이 없다. 유럽연합 탄소국경세 부과 기준인 탄소배출권 제도는 공짜 탄소를 없애 온실가스를 줄이는 게 목표다. 아울러 투명성, 완전성, 신뢰성 등의 기준을 충족하고 있다. 한국의 탄소배출권이 유럽연합과 호환되기 위해서는 이런 유럽연합 기준에 부합해야 한다.
탄소배출권 컨설팅 기업 ‘에코아이’는 지난 9월 3일 국회에서 개최된 배출권거래제 토론회에서 ‘한국에서 탄소배출권 누적 잉여량’이 2024년 9990만 톤이고, 내년에는 1억 3034만 톤이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처럼 한국 정부는 700개에 달하는 온실가스 다(多) 배출 기업을 대상으로 배출권 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실제 대상 기업들에 대해 탄소 배출량 이상으로 탄소 배출을 용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기업들은 별다른 감축 노력을 안해도 불이익이 없고 ‘탄소 감축’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에너지 전환 등에 관한 사회적 합의·정부 탄소중립 접근방식 대전환 필요
문제는 이처럼 한국 정부가 제공하는 ‘공짜 탄소’의 혜택을 기업이 누리는 동안에 투자 자본들은 떠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유럽연합에서 시작해 미국과 영국, 일본 등으로 확산되는 ‘탄소국경세’의 공세에서 한국 제조업들이 살아남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9월 초 중국 정부는 유럽연합의 탄소국경세를 고려해 ‘중국의 탄소배출권 거래제’에 철강, 알루미늄, 시멘트를 추가한다고 발표했다. 2026년까지 적응 기간을 거쳐 2027년부터 본격적으로 해당 품목에 탄소 가격을 부과한다고 했다. 탄소배출권 거래제에 신중했던 일본 정부 역시 2023년 7월 ‘녹색 전환 추진 전략’을 발표하면서 탄소가격제를 본격 도입하고 있다.
아시아개발은행연구원 백승주 전 부원장은 “일본 정부는 철강, 알루미늄 등 제조업의 녹색 전환을 위해 10년간 20조 엔(약 184조 원) 이상의 전환채권을 지원한다. 이 전환채권은 탄소가격제인 배출권 거래제와 연동되어 있다. 전환채권의 혜택을 얻기 위해 소극적이던 740개 이상의 일본 기업들이 이 배출권 거래제에 참여하고 있다”라고 했다.
한국도 적정한 탄소 가격 정책과 대담한 탈탄소 지원 전략을 병행해야 할 때다. 일본처럼 탄소가격제와 연동한 대규모 ‘녹색전환채권’ 도입이 하나의 방법으로 보인다.
공공 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 정책으로 도내 기후 대응 기여하고 있는 심재성 경기환경에너지진흥원 기후에너지본부장은 “한국이 탄소중립 정책이 뒤처진 이유는 에너지 전환 등에 관한 사회적 합의와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할 계기가 없었기 때문”이라며 “경기도는 기관 컨설팅 외에 찾아가는 환경교육, 전력자립·에너지융자 등을 담은 ‘에너지복지사업’ 추진하고 있다. 타 정부기관과 지자체도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도록 지금보다 더 많은 힘을 보태야한다”고 강조했다.
플랜1.5 최창민 변호사는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에도 여전히 과거 2030 NDC(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수립하는 과정에서 사용된 ‘선형감축경로’를 반영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지만, 이는 2018년 배출량과 탄소중립 목표연도인 2050년 배출량을 연결한 직선 위에서 중간목표를 도출하는 임의적인 방식으로 헌재가 제시한 과학적 사실과 국제적 기준이라는 조건에 전혀 부합하지 않으므로 폐기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최 변호사는 “정부가 향후 감축경로를 기존과 같이 ‘선형 경로’로 설정하면 헌재 판결 전과 다를 바 없어진다”며 “헌재가 강조한 과학적 사실과 국제 기준을 고려하고 실제로 탄소중립이라는 목표를 달성하려면 접근 방식이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결국 정부는 2031년부터 2050년까지의 탄소감축량 목표치를 최대한 구체적으로 설정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탄소 배출량을 산업적 측면에서 얼마나 줄일 수 있을지, 또 전략 발전 구조는 어떻게 바꿔야 할지 등을 치열하게 논의해야 한다. 분명한 것은 동해안 영일만 석유 및 가스전 개발과 같은 방식의 접근은 지금의 기후 위기를 이겨낼 수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