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편』 우리가 잘못하는 자전거 정책, 네덜란드는 알고있다 사적공간인 자동차보다 자전거의 개방성을 선호하는 국민들 전체 인구 1700만 명보다 많은 2300만대의 자전거가 주요 교통수단인 운하와 풍차의 나라 네덜란드. 물길과 육로로 전국을 이어왔던 이 나라의 교통정책이 친환경 탄소중립 시대를 맞아 자전거 중심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네덜란드에서 여담이지만 운하 바닥을 준설할 때 가장 많이 나오는 쓰레기가 자전거다. 국토는 절반이 해수면보다 낮다. 면적은 남한의 40%에 불과하지만 개방적이고 실용적인 두 단어로 요약되는 이 나라 사람들은 타고난 조선술과 항해술로 바다로 진출했다. 그래서 17세기에는 세계에서 으뜸가는 해양강국으로 발돋움했다. 댐을 쌓아 바닷물을 막아 간척지를 만들면서 세계에서 내놀라 하는 치수(治水)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현대에 들어와 최첨단 물류와 농업 그리고 제조업을 바탕으로 한 무역과 상업 활동으로 1인당 국민소득이 6만 천 달러, 우리나라의 2배가 넘는다. 네덜란드인들이 자신들이 구축해 온 자전거 인프라를 축하하고 싶은지 어떤지 모르겠으나 여하튼간에 네덜란드는 두 바퀴 자전거로 굴러가는 나라의 전형(典型)처럼 보인다-사농공상처럼 도로의
『제8-2편』 탄소중립 자전거 도시의 세계화를 꿈꾼다...네덜란드 자전거 대사관 네덜란드 자전거 대사관(Dutch Cycling Embassy)이라는 이름은 불과 6개월 전에 들었던 우리였다. 자전거 대사관? 자전거로 외교를 하는 곳인가? 생전 듣고 보도 못한 생소한 이름이었다. 이같은 기구가 네덜란드를 세계 1위의 자전거 나라로 만든 것이 아닌가 싶어 찾아가봤다. 자전거 대사관은 위트레흐트 역에서 10분정도 걸어가면 서울의 청계천만한 폭의 수로(水路)옆에 있다. 수로(水路)가를 따라 5~6층 건물들이 나란히 서 있는데 대사관은 중간 위치에 있는 5층 건물에 있다. 그 건물 3층 높이에 「Dutch Cycling Embassy」라는 영어 간판이 겸손하게 붙어있다. 2011년에 설립됐다는 이 단체는 범세계적으로 유명한 60여개의 자전거 관련 기업이나 기관 과 제휴하고 있으며 네덜란드의 선진 자전거 도로 다이어트 기술 등의 노하우를 국내외 고객을 상대로 컨설팅을 해주고 있다. 이 단체가 발행한 팜플렛에 의하면 설립 첫해부터 지금까지 ▲미국의 워싱턴 DC. ▲핀랜드 Joensuu. ▲노르웨이 Aukra&Molde, ▲프랑스의 Montreuil, ▲필리핀의
합성생물학의 도움으로 파지 치료법은 수십억 달러 산업으로 부상할 듯 지난 2015년, 캘리포니아출신의 한 정신과 의사가 휴가 차 이집트에 갔다가 Acinetobacter baumanni라는 항생제 내성물질을 가지고 돌아왔다. 그는 파지요법으로 목숨을 구했는데 역학(疫學)전문가인 그의 부인, Steffanie Strathdee가 시련(試鍊)에 대해 책을 씀으로써 파지의 인지도를 높였다. 저자는 파지 요법이 미래 어느 때인가는 합성생물학의 도움으로 자본주의적 생산 여건에 맞춰진 수십억 달러 산업이 될 수 있다고 예견하고 있다. 하지만 이 예언은 확실하지 않다. 우리는 결국 1%만이 접근할 수밖에 없는 맞춤 생산식 파지 요법을 가지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도, 약제 내성질환으로 고통을 받는 적잖은 환자들에게 효과가 있는 파지 공식(화학식)을 개발하는 일조차 어려울 수 있다. 부분적이긴 하지만 파지가 아무 박테리아나 먹지 않는 너무나 식성이 까다로운 생명체이기 때문이다. 파지는 또한 1940년대와 50년대 서양의 유전학 연구에 서 핵심적인 선수들이었다. 왜냐하면, 파지는 비교적 단순한 생명체로 보였고, 아주 빠르게 번식했기 때문에 냉전시대 과학자들에게 그것
『제8-1편』 36만의 네덜란드 중소도시가 '세계 1등 자전거도시'로 된 까닭은? 자전거가 지나가면 무조건 멈추는 자동차 우리가 묵는 암스테르담 숙소에는 욕조가 없었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고 싶었지만 샤워로 만족해야 했다. 1회용 용품은 전혀 보이지 않았으며 세면대 선반에 얹어놓은 수건 3장이 전부였다. 대신 아침 식사는 마음에 들었다. 메뉴라야 빵과 햄, 치즈. 향이 나는 오이와 토마토가 전부였지만 지극히 신선했다. 아침식사를 하는 식당 유리창 밖에선 비가 그치고 맑은 햇살이 비쳤다. 그러다가 하늘에서 검은 구름이 빠르게 밀려와 다시 비를 뿌렸다. 변덕스런 날씨였지만 저 멀리 자전거 도로와 운하의 물길을 따라 자전거로 출근하는 사람들이 가을 수채화를 그리고 있었다. 나는 그들이 부러웠다. 자전거 길이 없어 숨 막히는 전철을 타고 다닐 수밖에 없는 한국에서의 내 처지가 가련했으니까. 오늘 우리는 열차를 타고 네덜란드 중부에 있는, 세계 최고의 자전거도시라는 위트레흐트 주의 주도(州都)인 위트레흐트시와 네덜란드 자전거 대사관(Dutch Cycling Embassy)을 찾아갈 것이다. 아침식사를 끝낸 우리는 숙소에서 운영하는 자전거 대여 서비스를 이용했다. 두
『제7-1편』 미사일보다 자전거가 무기인 나라, 네덜란드 세계 최초의 항공사 네덜란드 KLM의 미사일 트라우마 우리나라 시간으로 2023년 9월 19일 밤 22시 50분. 인천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행 네덜란드 KLM(코닝크룰 루후트화트 마츠핫페이의 네덜란드어 약자. 영어로 Royal Aviation Company, Inc. 왕립 항공사)이 탑승 직전에 갑자기 운항이 취소됐다. 영문을 모르고 웅성대던 100명 이상의 승객들은 한참 뒤에야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간에 전쟁이 터졌기 때문이라는 말을 전해 들었다. 이상했다. 다른 항공사 소속 여객기는 오늘 모두 이상 없이 출항한 터였는데 가장 늦은 시간에 출항하는 KLM만 취소됐으니까 말이다. “그럼, 두 나라가 전쟁 끝내기까지 못 가는 거야?” 옆에 있던 승객이 탄식하듯 혼자 말을 했다. “아닐 겁니다. 항로를 조정하거나 다른 항공사로 대체해 주지 않겠어요?” 나는 자못 의젓한 척 그에게 기다려보자며 여유를 부렸다. 하지만 내 예상은 빗나갔다. 항공사 직원들이 승객 전원을 입국 절차를 밟게 해서 공항을 나오게 한 뒤 인근 호텔에 투숙시켰다. 새벽 3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잠 못 이루고 뒤척이던 나는 갑자기 몇
『제6편』 4대강 자전거 길에 역참(驛站)을 허(許)하라! 행복을 찾아 떠나는 4대강 자전거 길...내 마음에 풍경을 녹이며 “국민이 행복할 수 있다면 그렇게 되도록 도와주는 건 국가의 의무다. 자전거법도 그렇고 4대강 자전거 길 등 2천여km에 달하는 국토종주 자전거도로를 만든 것도 마찬가지다. 안전하고 편하게 자전거를 타게하고, 국민이 행복을 느끼도록 해서 서로 소통하는 밝은 사회를 만들기 위함이다. 신혼 때 행복에 겨워 세상이 다 아름다워 보이듯, 자전거를 타면 나름대로 각자의 행복을 느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진다고 한다. 개인의 역경을 이겨내는 힘이 되고 상대를 배려하고 이해하는 마음을 길러 준다는 장거리 자전거 여행, 세계적인 4대강 자전거 길을 국민 행복의 길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우리는 서울에서 출발해 한강 자전거 길을 달리며 경기도 여주 초입에서 하룻밤을 자고 월요일 오전 초가을 햇살을 듬뿍 받으면서 한강 자전거 길(132km)을 달렸다. 하행선 오른쪽에 보이는 남한강은 최근 수량이 늘었다가 준 듯 했다. 강물은 길이 525미터 경기도 여주보(驪州洑)에 갇혔다가 높이 2~3미터의 낙차(落差)를 가진 12개의
『제5편』 안전하고 편리하다면 이렇게 재미있는 자전거를 왜 안타겠어요? 가슴을 뛰게 만든 덴마크의 자전거 길 “자전거 천국이야. 어떻게 자전거 길을 이처럼 편하게 만들 수 있는 거지?” 10여 년 전 나홀로 자전거 유럽 여행을 하던 그녀는 덴마크의 북부 항구도시 프레데릭스하운를 시작으로 덴마크를 종주하는 동안 그런 궁금증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영국의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노르웨이, 스웨덴을 자전거를 타고 오는 동안 전혀 감지하지 못한 편안함과 안락함이 타면 탈수록 마음과 몸에 전달되고 있었다. 건물이나 지붕의 색깔이야 덴마크도 북유럽 나라들과 별 차이가 없었지만 자전거 도로만큼은 타는 이로 하여금 만족과 여유로움을 느끼게 하는 것이었다. 대학생 시절부터 국내외로 자전거여행을 숱하게 다닌 그녀였지만 덴마크의 자전거도로처럼 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의 안락(安樂)한 길을 일찍이 경험할 수 없었다. “그래 맞아, 내 몸이 감전된 것처럼 찌릿찌릿 한 것은 결국 이거였어. 지금까지 이런 길을 내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다는 것이지. 상상도 못했던 자전거 길을 만났으니....와, 이런 경험은 처음이야.” 그녀는 이상적인 남자를 만난 듯이 가슴이 쿵쿵 뛰고 있었다.
『제3편』 영종도가 국제도시라뇨? 자전거 길도 관리하지 못하면서... 당신이 요령껏 알아서 찾아가쇼! 지난 일요일 폭염 경보가 발령된 최악의 날씨에 저는 취재차 인천광역시 중구 영종도에 자전거를 타러 갔다가 죽다 살았습니다. 사고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저의 계획은 오전 11시 서울 마곡나루에서 공항철도를 타고 인천공항 제1터미널에서 내려 영종도 해안 자전거 길을 따라 을왕리 해변까지 갔다 올 작정이었습니다. 원래는 이곳 지리를 잘 아는 분이 저와 동행하기로 했었는데 갑자기 집안 일이 생겨 못 오는 바람에 졸지에 나 홀로 라이더가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혼자면 어떻습니까? 영종도의 자전거 길이 잘 되어 있다고 들은 터라, 혼자서도 괜찮을 줄 알았지요. 제가 영종도에 간다고 하니, 주변 분들은 최근 공항철도가 일반 자전거(접이식 제외)를 휴대하지 못하도록 했고 주말에 이용하려면 반드시 사전 예약을 해야 한다고 일러줄 뿐 그곳 자전거 도로 상태를 지적하지 않았습니다. 사전에 자전거 도로 상태를 알아보지 못한 것은 저의 불찰일 수도 있습니다만, 명색이 세계에서 4번째라는 인천공항을 가진 영종국제도시의 자전거 도로가 이토록 불편하고 형편없을지 저는 상상조차 못했습니다.
>> 2편에 이어서 >> van Tullenken이 옳을지 모른다. 다른 물질-합성물질, 화학제품 그리고 변질방지제-은 가공과정에 사용되어 과소비를 조장하는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는 주장 말이다. 그리고 진짜 피자와 냉동피자와의 결정적인 차이는 비용이다. 이 책에서 논의되고 있는 신선한 피자 파이는 냉동피자보다 600%이상의 비용이 들어간다. 1900년대에 음식비용은 전형적인 미국인 가정 예산에서 43%를 차지했다. 오늘날 우리는 일반적으로 10%이하를 지출하고 있다. 고도가공 식품의 저렴함은 음식비 지출이 줄어든 이유의 일부분을 차지한다. 사람들은 음식 값이 쌀 때 더 많이 먹는 것일까? 아니면 음식을 싸게 만드는 가공기술이 우리를 속여 더 많이 먹도록 하는 바람에 더 싼 음식을 먹는 것일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모호하고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van Tullenko의 설명은 결국 우리를 병들게 하는 어떤 음식에서 핵심적인 부분은 이익을 위해 가공된 음식이라는 사실이다. 저급한 재료는 음식을 더 싸게 만들기 위해 사용되는데 그 이유는 저비용이 소비를 증가시키기 때문이다. “설령 음식이 과잉소비가 되도록 설계가 되었더라도 그것을 생산하는데
『1편』에 이어서 >>> van Tullenken은 주로 비만의 문제에 초점을 맞춘다. 특히 1980년대 이후 급속히 증가하게 된 주요 원인은 환경이 바뀐데 있었으며, “그와 동시에 고도 가공 식품과 드링크 제품 의 생산과 소비가 급속히 증가한데 있다”고 주장한다. 사람들은 오랫동안 가공 식품이 체중을 늘리고 건강에 나쁘다고 걱정해 왔다. 심지어 1900년대 초기에도 미국 농림부는 이런 게 매우 걱정되어 격리된 자원봉사자들을 대상으로 2주 동안 계속해서 첨가제와 보존제가 범벅된 음식만 먹도록 하고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보았다 (결과는 엇갈렸다). 인공 첨가물, 보존제와 색소의 사용은 2차 대전 이후 극적으로 치솟아 이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률이 미국 의회에서 제정되기까지 했다. 이 책에서 예시하는 고도 가공 식품 가운데 인공합성의 버터, 코카콜라와 사카린을 포함한 몇몇 제품은 1900년대 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 시기보다 더 이르진 않아도 이 책의 반복되는 모티브 (주제)로 사용하는 Coco Pops는 거의 50년 전에 선을 보였다. 실제로 1960년대까지 오늘날 고도 가공 식품으로 분류될 수 있는 식품이 도처에 만연했다.
우리들은 초-가공(超 加工) 식품에 인이 박혀 있는 듯이 보인다. 의사이자 과학자, 저널리스트인 크리스 반 툴렌켄(Chris van Tullenken)이 몸에 안 좋은 줄 알면서도 초-가공 식품에 빠진 현대인의 심리를 저널리스트적 관점에서 파고들었다. 회반죽 가짜 빵을 비난했다가 마을에서 쫓겨난 ‘그램 크래커’의 실베스터 그램 오늘날, Sylvester Graham(1794~1851)은 자신의 이름이 붙은 크래커로 아주 유명한 사람이다. 전성기 때 Graham은 몸에 좋은 음식에 관한한 영향력 있는 작가였고 강연자였다. ‘mobbed-떼 지어 몰려들다’란 말은 그가 연설할 때 이따금 일어났던 일을 묘사하기 위해 만들어진 게 분명하다. 결혼의 순결과 가정 요리를 옹호하다가 그는 mobbed란 글자 그대로 떼 지어 몰려든 남편들과 빵집 주인들에 의해 마을에서 쫓겨났다. 1837년의 한 논문에서 Graham은 대단히 심각한 문제를 경고했다. 일반인들이 먹는 빵과 상업적인 빵집이 사용하 는 저급한 밀가루는 농부들이 흙에서 최대한 수익을 짜내 기 위해 의도적으로 생산한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런 밀가 루 빵은 영양성분이 떨어지는데다 제빵 업자들이
『제2편』 자전거 탄소배출권을 팔러 가는 날 “하늘의 이산화탄소 농도가 405PPM이라고요? 그게 뭔 말이죠?” 자전거를 세우고 휴식을 취하던 나는 먼 하늘을 보다가 함께 자전거 여행에 나선 동료 라디더에게 물었다. 그가 날 어떻게 이해시킬까 난감한 표정을 짓다가 말했다. “공기 중에 이산화탄소가 405PPM이 있다는 말은 공기 분자 100만개 중에 405개의 이산화탄소 분자가 들어있다는 소리입니다. 1PPM은 0이 여섯 개, 백만 개 중 하나입니다. 1958년에 처음으로, 하와이 마우나로아 화산섬에서 측정을 했는데 315PPM이 나왔어요." "그 이전인 1850년에 확인한 이산화탄소 수치도 있는데. 당시 빙하에 구멍을 뚫고 캐낸 긴 원통 모양의 코어(glacier core)에 갇혀있는 기포를 분석해 측정해 봤더니 285PPM이었습니다. 그랬던 수치가 산업화이후 오늘날 405PPM으로 급상승했고, 여기에 더해 매년 2PPM씩 높아지고 있는 것이죠.” “그것 때문에 지구의 온도가 올라가는 이유가 뭐죠?” 내가 물었다. 태양에너지로 뜨거워진 지구는 불덩어리가 될 텐 데 지구 스스로 열을 대기로 방출해 지구 온도를 조절해 왔는데 지금은 이산화탄소가 너무 많아서 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