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이스라엘-이란 간 전쟁(이하 전쟁)의 불확실성이 이어지는 가운데 한국은행이 오는 10일 금융통화위원회(이하 금통위)를 열고 기준금리를 결정한다. 증권가에서는 고유가와 1500원대 환율에 대한 부담으로 인해 기준금리 동결을 결정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7일 현재 국제유가는 100달러대, 환율은 1500원대를 유지하고 있다. 유가 급등은 국내 민생경제의 물가 상승의 주요 원인이다. 환율 상승은 한국은행이 통화정책에서 ‘금리 인하’를 선택하기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이 같은 금리 동결 전망의 구체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한은은 지난 2월까지 6회 연속 기준금리를 2.5%로 동결한 상태다. 이번에도 동결 흐름을 이어갈 것이라는 게 시장의 분석이다. 경제 불확실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한은의 신중한 통화정책 기조에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게 금융권의 중론이다.
환율 상승은 금리 인하 선택을 어렵게 만든다. 전쟁이 발발한 이후 1400원대 박스권에 머물던 원·달러 환율은 장중 1530원까지 돌파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7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전쟁 여파로 물가 상승에 대한 경계감도 커지고 있다. 특히 급등한 국제 유가가 물가 상승 위기감을 더하고 있다. 최근 브렌트유와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각각 배럴당 109달러, 111달러 수준까지 올랐다.
한은이 기준금리 인상을 선택하기에도 한국 경제 상황은 녹록지 않다. 반도체를 비롯한 일부 업종에 경기 회복을 내맡기는 성장 양극화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달 한국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2.1%에서 1.7%로 하향 조정했다.
◇ “진짜 변수는 미국 금리”…한은, 먼저 움직이기 어렵다
증권가에서는 우선 금리 동결 가능성이 높은 이유로 전쟁 여파를 꼽는다. KB증권은 ‘4월 금통위 Preview. 신중한 매’ 리포트에서 “금통위 기준금리 발표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제시한 협상 데드라인이 지난 시점인 만큼 전쟁 불확실성이 높다는 점에서 한은은 만장일치로 동결을 결정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경기 하방 압력이 높았던 2025년 1월에도 한은은 정치 이벤트의 전개 양상에 따라 불확실성이 높다는 이유로 동결을 결정한 바 있다는 것이다.
물가 상승도 주요한 이유로 꼽았다. 리포트는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4월부터는 물가가 본격적으로 상승 국면에 돌입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연말까지 서부텍사스산원유(WTI)가 110달러를 유지할 경우 휘발유와 경유가 물가에 미치는 영향(1.55%), 유류세 인하 정책 등을 적용해도 물가는 1.35%포인트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종전이 이뤄지더라도 국제유가는 중동 산유국의 에너지 시설 타격으로 인한 생산량 하락,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대기 중이던 유조선들이 해협을 통과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전쟁 전 수준보다 높은 가격 수준이 오래 유지될 수 있다고 판단된다”고 짚었다.
또한 환율 상승은 물가의 상방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견해다. 한은은 환율이 10% 상승할 때마다 물가가 0.2% 상승한다고 추정하고 있다.
주택 가격도 고려 요인이다. 아파트 가격은 강남 주요 지역에서만 하락 추세가 나타나고 있지만 15억원 미만의 다른 지역 아파트 가격은 상승세가 가파르다는 점에서 한은은 여전히 부동산 시장에 대한 우려를 가지고 있다.
다만 26조2000억원 규모의 전쟁 추경은 경제의 하방을 상쇄할 수 있고 삼성전자의 1분기 영업이익이 57조2000억원을 기록했다는 점은 경기 개선을 기대하게 만든다고 분석했다.
임재균 KB증권 애널리스트는 “물가와 환율에 대한 우려가 확대되고 부동산 가격에 대한 우려도 있는 만큼 한은은 매파적 스탠스를 유지할 전망”이라며 “다만, 한은이 매파적인 모습을 보이더라도 시장에 반영되는 것보다는 더 매파적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휴전 또는 종전 협상이 이뤄지면 물가 및 환율에 대한 우려는 일시적이라는 시각이 있을 수 있지만 양측인 이란과 미국 모두 협상 테이블에 앉아 있는 만큼 신중한 스탠스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 “금리보다 유동성”…한은 자산 구조도 변수
한은의 금리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또 다른 변수는 미국 금리라는 분석도 나온다. IBK투자증권은 ‘Focus on Week: 늘어지는 전황, 가장 부담스러운 것은 늘어나는 빚과 금리’ 보고서에서 이번 중동 리스크 국면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로 미국 금리를 지목했다.
단기적으로는 유가와 환율, 증시가 더 눈에 띄지만, 시장과 경기의 방향을 더 길게 좌우할 변수는 결국 미국의 재정 부담 확대와 그에 따른 금리 상승 압력이라는 분석이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미국 정부의 재정 부담이 커지고, 이는 하반기 이후 미 금리의 추세적 상승 압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진단이다.
미국 금리가 다시 위로 열릴 가능성이 커진 상황에서 한국은행이 먼저 금리를 내리기는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하할 경우 한·미 금리차 확대 우려가 커질 수 있고, 이는 원화 약세와 외환시장 변동성 확대로 연결될 수 있다. 최근처럼 지정학적 리스크가 높은 국면에서는 이런 부담이 더 크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또한 IBK투자증권은 전쟁 장기화가 미국의 재정적자 확대→미국 금리 상승→신용불안 압력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고 봤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지금은 전쟁 뉴스에 가려져 있지만 우리는 가장 중요한 구조적인 위험 요인은 사모신용위험으로 대표되는 신용위험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신용위험의 현실화는 투자와 고용 그리고 소비에 제동을 걸고 조정을 유발함으로써 경기와 금융시장의 상승을 마감시키는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한국은행이 시중 유동성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특히 한국은행의 자산 구조에서 국내자산 비중이 낮다는 점이 통화정책 대응력을 제약하는 핵심 요인으로 지목됐다.
주요국 중앙은행은 대체로 국채 등 자국통화 기반 국내자산 비중이 높은 편인데, 한국은행은 상대적으로 국내자산 비중이 낮다는 것이다. 해외자산은 외화 유입에 따라 수동적으로 늘고 줄 수밖에 없지만, 국내자산은 중앙은행이 필요에 따라 보다 능동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 결국 대외 충격이 닥쳤을 때 통화정책이 실제 시장 안정 효과를 내려면, 국내자산을 통해 유동성을 공급할 수 있는 구조가 중요하다는 해석이다.
이재형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한국은행의 자산이 증가할 때 원화 유동성이 안정될 수 있다”며 “단기적으로 역외에서의 외화 자금 유입과 외환보유고 증가, 원화 환율 안정이 유동성 안정의 신호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좀 더 긴 시각에서는 한국은행의 국내자산 비중 확대가 금융변수 변동성 완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그는 “원화 유동성 공급 여력이 정상화되기 전에는 원화 약세와 외국인의 숏포지션 확대 움직임은 원화 장기금리 변동성 확대와 장기금리 상승이 불가피할 것”이라며 “금리의 추세적 전환은 정책금리 변동보다는 주요국 중앙은행의 자산 확대 시기와 강도를 통해 타진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