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의 고백이 전 세계를 열광케 하고 있다. 책은 자신의 삶을 고통스러울 정도로 상세히 기억해내며 ‘아버지의 죽음’과 만나는 과정을 경이로울 정도로 집요하게 풀어낸다. 진력날 정도로 디테일한 묘사가 지독하게 중독적인 독서체험을 선사한다.
이 작품은 운명에 저항한 아킬레우스나 부조리함에 맞선 뫼르소 같은 주인공을 내세우지 않는다. 다만 평범한 ‘일상’을 아주 치밀하게 묘사함으로써 일상의 비일상성, 즉 일상이 가진 가치를 발견한다. 서양 문학의 변방에서 서양 문학의 중심에 파문을 일으켰다. 바로 노르웨이 작가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의 ‘나의 투쟁’이다.
크나우스고르의 이력은 ‘나의 투쟁’ 이후 완전히 변했다. 40년의 삶을 모두 담아낸 그의 자화상 같은 소설은 노르웨이에서 기이한 성공을 거두었다. 총인구 500만명인 노르웨이에서 50만부 이상이 팔렸다. 노르웨이에서 대성공을 거둔 후 전 세계 32개국에서 잇따라 출간됐다.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 중국, 일본에까지 상륙했다. ‘가디언’ ‘런던 리뷰 오브 북스’ ‘르몽드’ 등 유력 언론들의 극찬이 이어졌으며 뉴욕 타임스는 ‘올해의 꼭 읽을 만한 책’으로 뽑았다. 노르웨이 최고 문학상인 브라게상은 물론이고 독일 [디 벨트] 문학상, 이탈리아 말라파르테상 등을 받았다. 특히 미국 평단은 2012년 노벨 문학상 후보로까지 올렸다.
새로운 ‘리얼’, 모든 문학적 도식을 거부하다
‘더 뉴요커’는 발터 벤야민의 말을 인용해 ‘나의 투쟁’을 “진실하고 지혜로운 서사”라 평했다. 이는 고통스러울 정도로 솔직하게 자신의 삶과 기억을 써내려간 크나우스고르에 대한 헌사다. 이야기를 극적으로 다듬지 않고 아름답게 치장하지 않으며 비극적으로 상처 주지 않은 글쓰기는 어느새 진실한 ‘고백’으로 승화한다. 그 고백의 중심에 ‘죽음’이 있다. ‘나의 투쟁’ 제1권은 죽음에 대한 크나우스고르의 성찰로 시작한다.
흥미로운 것은 바로 새로운 ‘리얼’의 중독성이다. 아주 어렸을 적 TV 뉴스에서 사람 얼굴처럼 생긴 ‘무언가’를 보고 아버지에게 말한 일, 고등학생 시절 몰래 술을 마시기 위해 터무니없는 계획을 짜던 일, 처음으로 여자와 사랑을 나눈 일, 엉터리 기타 실력으로 밴드를 결성한 일 등 누구나 경험했을 평범한 ‘일상’이 파편적으로 연속된다. 어떠한 꾸밈도 없다. 역설적이게도 이 사소한 기억들이 작가를 아버지의 죽음으로 이끈다.
많은 해외 언론도 [나의 투쟁]을 리뷰하며 이 기이한 중독성을 언급했다. 휘몰아치는 파토스도, 카타르시스를 느낄 극적인 반전도 없다. 이에 대해 크나우스고르는 이렇게 말한다. “나의 초점은 온전히 나의 이야기의 진실에 도달하는 데 있다. 객관적인 의미에서 진실이 아니라 기억하는 방식에서... 그래서 내 글은 순진한 문장으로 가득 차 있다.” 결국 ‘나의 투쟁’의 중독성은 진실함에 있다는 설명이다. 수줍게 자신의 기억을 더듬어가며 이야기를 풀어내는 진실함. 전 세계 32개국 독자들을 열광시킨 이유치고는 소박하다.
MeCONOMY Magazine February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