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산하 구호 기구들과 여러 민간단체도 한국인의 구호 활동에 나섰다. 국제난민기구(IRO)는 피복과 재봉틀, 기계류, 의료품을 전달했고, 유엔아동기금인 UNICEF는 우유와 담요, 피복류를, WHO는 의약품을 구호품으로 지원했다. 더불어 특기한 사항으로 미국의 기독교와 사회봉사 단체들의 구호 물품이 많았다는 점이다. 기독교 자선단체인 CWS는 미국 내 37개 기독교 단체의 연합조직으로 비타민과 피복류를 지원했다. 가톨릭 구호단체인 NCWC와 미국 퀘이커 기독교 자선기관인 AFSC도 구호품을 전쟁 중에 보내왔다. 미국의 민간국제구호단체인 CARE는 전쟁 기간뿐만 아니라 전쟁이 끝난 뒤에도 1966년까지 아동 급식과 농촌 지역 식량 배급 등에 총 4천만 달러를 지원했다. 미국에서는 순전히 전쟁 피해를 입고 있는 한국인만을 위해 일반 시민과 노동자, 교회 대표자들이 결성한 ARK Inc(Relief for Korea, Incorporated)란 민간구호단체도 있었다. ◇ 휴전 이후 경제 재건과 개발에서도 유엔의 도움 컸다 유엔한국민사지원사령부는 전쟁 후에는 한국민사지원처 (KCAC)로 변경되었다. 1953년 7월부터 활동을 개시한 민사지원처는 농업, 통신, 전력
오늘날 대한민국은 경제와 과학기술, K-한류 등에서 세계인의 찬사를 받고 있고 세계 는 우리나라를 배우려고 하고 있다. 이런 자랑스런 대한민국은 지금으로부터 70여 년 전 유엔의 품속에서 태어나고 곧이어 터진 6·25전쟁 중에 유엔의 많은 나라가 전해준 구호품으로 생명을 얻고 허기진 배를 채웠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유엔과 한국」을 저술한 최동주 숙명여대 교수는 “한국과 유엔은 같은 해인 1945년에 사실상 나란히 출범했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이어 대한민국은 유엔으로부터 나라 세우기, 전쟁 구호, 경제 재건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면에서 지원을 받는 첫 수혜국이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아래 내용은 「유엔과 한국 1945-1973」을 참고삼아 서술했다. 식민지 한국은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았지만 남과 북은 각각 미군과 소련군의 군정 아래서 통일된 나라를 세우려고 미-소 공동위원회를 설치하며 논의했으나 모두 결렬됐다. 신생 대한민국의 건국 문제는 결국 유엔으로 넘겨졌다. 1947년 11월 14일 유엔총회의 결의에 따라 결성된 유엔 한국 임시위원단(UNTCOK)이 1948년 1월 7일 입국했다. 임시위원단 참가국은 호주, 캐나다, 중국(오늘날
지난 20세기 후반 수출주도성장이 성행하게 된 배경에는 미국이 2차세계대전의 패전국인 독일과 일본의 전후 복구와 냉전 시기 소련의 세계 확장을 저지한다는 배경이 있었다. 그 이후 한국과 대만도 전후 식민지에서 독립한 신생국의 경제를 도와준다는 컨센서스가 있었고, 수출 규모도 그리 크지 않았다. 일본의 수출 물량은 너무 크고 무지막 지하였으므로 미국은 직접적으로 제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현재 중국의 수출 물량은 전성기 시절 일본의 수출량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이를 감당해야 하는 미국 경제는 허약할 대로 약해진 상태다. 지금 미국 경제가 좋아 보이는 것은 고금리정책과 AI 붐으로 인한 착시에 가깝다. 한 마디로 속빈 강정이다. 미국이야말로 제조업이 거의 붕괴된 상태이고 막대한 나랏빚을 돌려막기를 하는 실정이다. 지금은 미국은 노동자들이 못살겠다며 노조들이 강성화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바이든 정부가 계속 집권하든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하든 마치 일본과 한국이 그 옛날 전후 복구했듯이 국가 경제의 근본을 되살리는 데 주력해야 할 처지에 있다. 유럽 경제는 미국보다 더 참담하다고 할 수 있다. 너무나 오랫동안 사회주의 복지 체제에 정부도 국민도
한국의 무역전략 모색 중국의 수출 밀어내기가 미국과 유럽뿐만 아니라 인도, 브라질 등 각국으로부터도 강력한 대응을 끌어내고 있는 모양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중국의 자동차 수출은 지난 4년 만에 5배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태양광 패널은 세계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한때 저임 후발 국가들에 내줬던 가구 수출도 급증하고 있다. 부자나라든 가난한 나라든 모두 중국의 수출 폭증으로 자국의 산업과 시장이 무너지지 않을까 공포를 느끼고 있다. 중국 공장들은 로봇을 이용한 생산으로 저가 공급을 실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중국은 나머지 전 세계 공장 로봇을 다 합친 것보다 많은 로봇을 공장에 설치한 것으로 전 해지고 있다. 한 마디로 수출 ‘인해전술’로 세계 각국의 내수 시장과 생산 기반을 초토화할 기세다. 중국은 미국과 유럽의 관세와 규제 압박을 피하기 위해 멕시코와 동남아를 통한 우회 전략을 취하고 있다. 그럴 뿐만 아니라 수출 물량을 작은 다발로 포장해 관세를 피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인터넷몰을 통한 직구 수출이다. 작년에 중국 전기 자동차들이 수출 물량에서 테슬라를 앞서자, 테슬라도 역시 저가 공세로 반격에 나서고 있다. 세계
글로벌 기업은 ‘1등의 저주’에 빠지기 쉽다. 근래 애플의 경영 행보를 분석해보면 이들 국내 3개 기업의 혁신 비결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애플이 시가총액 1위를 기록하며 잘 나갈 때는 시장의 칭송을 한 몸에 받았지만, 시총에서 MS에게 밀리고 애플카를 포기하겠다고 발표하자 온갖 조롱과 비판을 듣고 있다. 타이탄 프로젝트라는 코드명으로 불린 애플카 개발만큼 언론에 장기간에 걸쳐 갖가지 추측성 보도를 자아낸 기사는 없었던 것 같다. 애플카 개발은 2014년부터 시작됐다. 하지만 애플 특유의 비밀주의와 완벽주의 문화에 갇혀 전모가 드러나지 않았다. 타이탄 프로젝트는 2018년경에는 5천 명의 개발자들이 고용되기도 했으며 일 년에 10억 달러씩 개발 10년간 1백억 달러가 넘는 거액이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애플카 개발 10년의 역사를 살펴보면, 세계 최강의 미국 기술기업의 강점과 약점을 읽어낼 수 있는 것 같다. 애플카 개발의 가장 큰 문제점은 너무 오랫동안 개발에만 매달리고 있었다는 점일 것이다. 기존 자동차기업이었더라면 신제품을 내놓고 소비자의 피드백을 받아가면서 업그레이드해가는 과정을 선택했을 터이다. 하지만 스마트폰 만드는 기업으로서는 그런 과정을
- SK하이닉스 HBM, 삼성전자 AI폰, 현대 기아 EV 작년에 선보이기 시작한 한국의 3개 혁신제품이 다크호스로 부상하고 있다. SK하이닉스의 HBM 메모리와 삼성전자의 AI폰, 현대 기아의 전기차, 아이오닉 시리즈와 EV 시리즈다. SK하이닉스가 삼성전자에 한발 앞서 엔비디아에 HBM(고대역폭 메모리)을 공급함으로써 일약 반도체 업계의 기린아로 떠올랐다. 반도체 기술의 속성상 일단 앞서가면 추격자가 이를 쫓아가는 데에 애를 먹는다. AI는 GPU(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가 필요한데, GPU에 특화된 메모리가 HBM이다. 삼성전자 도 HBM을 개발했다가 팀을 해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와 비슷한 시기에 HBM 개 발을 시작한 SK하이닉스는 HBM에 승부수를 던진 끝에 선두를 치고 나간 것이다. HBM은 김정호 카이스트 교수가 연구실에서 최초로 개발했기 때문에 메모리 강국인 한국 반도체 기업들이 선점한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여러 가지 사업을 하는 삼성전자가 잠깐 주춤하는 사이에 메모리만 생산하는 SK하이닉스가 리스크를 걸고 집중한 결과다. SK하이닉스는 지난 3월 19일 5세대 고성능 메모리인 HBM 3E를 양산해 엔비디아에 납품한다고 발표했다.
인도도 미·중 대결의 수혜국으로 부상 중국의 인구를 추월한 인도가 세계 시장으로 주목받는 것은 당연한 터에 중국과의 디리스킹디(de-risking/국제정치에서 적대적이지 않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위험 요인을 줄여나가는 전략) 후보지로서 각광을 받고 있다. 인도는 28개 주와 8개 연방 직할지로 나뉘어 있는 바와 같이 지역마다 독자성이 강하다. 애플과 테슬라가 인도 시장 진출을 서두르고 있다. 인도와 중국, 러시아,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이 포함된 브릭스는 신흥경제 강국들의 모임 성격이었는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행위와 뒤이은 중-러 간 밀착은 브릭스의 국제적 위상에 마이너스로 작용할 게 틀림없다. 다시 말해 인도와 브라질이 굳이 미국과 유럽의 반감을 사면서까지 브릭스 활동에 열을 낼 이유가 없는 셈이다. 인도에 필요한 것은 값싼 러시아산 석유보다 미국과 유럽, 일본의 자본과 기술이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푸틴 종신 집권은 유럽을 강하게 만들 것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전까지 유럽 세계는 현실에 대한 불안감과 미래에 대한 암울함이 짙은 안개처럼 깔려 있었다. 유럽은 미국과 경쟁하고 떠오르는 중국에 맞서기 위해 EU의 희망찬 깃발을 올렸지만 추진되
미·중 대결 격화와 일본 경제는 밀접한 함수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언급하는 전문가들은 많지 않다. 지정학 전문가들은 그 함수 관계를 눈치채고 있지만 거시 경제학을 전공한 이코노미스트들은 알고 있다손 치더라도 숫자로 얘기할 수 없는 영역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 것 같다. 세계 무역량은 장기적으로 성장할지 모르지만, 단기적으로는 고정돼 있다. 우리나라가 석유와 천연가스 수입량의 일부를 중동에서 미국으로 돌리면 중동 산유국들의 수입은 줄고 미국의 수입은 증가한다. 하지만 세계의 석유와 천연가스 무역량은 변하지 않는다. 수입 감소분을 가격 인상으로 보전하고 싶겠지만 현재는 재생에너지의 비중이 증가하고 있고 최대 수입국인 미국이 최대 수출국이 됐고, 낮은 가격으로라도 팔고자 하는 산유국들이 존재하는 상황이다. 세계 무역 품목 중 거의 유일하게 무역량의 순증가가 예상되는 제품인 반도체를 예를 들어보자. 미국이 AI 산업을 주도하고 있기 때문에 HBM 메모리와 AI 반도체의 수요가 폭증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과 일본의 반도체 기업들이 중국과의 손실분을 만회하고 이제 막 도약하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아무튼, 큰 시각으로 보면 반도체와 같이 크게 성장하는 품목을 제
영국에서 한국독립에 관한 관심은 영국 언론인들에 의해 활발하게 제기됐다. 데일리 메일의 맥켄지 기자는 1906년 한국의 의병 활동을 취재 보도했고, 「한국의 비극(Tragedy of Korea)」, 「한국의 자유를 위한 투쟁(Korea’s Fight for Freedom)」 등의 저술을 발간했다. 정치평론가인 제롬은 한국의 독립요구에 무관심한 국제연맹을 비판하는 글을 실었고, 조셉 그레브는 한국의 기독교인에 대한 일본의 박해를 폭로했다. 임시정부로부터 런던주재 외교원으로 임명된 황기환은 맥켄지 기자와 협의해 의원과 교수 등 60여 명이 참여한 ‘한국친우회(The League of Friends of Korea)’를 1920년 10월 26일 발족했다. 한국친우회 발족대회에서 사회자인 하원의원인 뉴먼 경은 “자유와 정의를 위하여 분투하고 있는 한국민족을 구제할 수 있는 중대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모였다”고 밝혔다. 이 대회에서 ”한국민족의 정의와 자유를 획득하기 위한 운동에 대하여 동정적 원조를 제공할 것, 한국의 기독교 전도에 대한 자유를 옹호하는 노력을 기울일 것“을 결의했다. 영국 하원은 정부 관계자를 출석시킨 가운데 1920년 4월 한국의 국제연맹 가입,
독립운동은 무장투쟁 노선과 외교 선전 노선의 두 방향으로 이뤄졌다. 이 두 노선은 상호 보완하면서 그 역할을 다해왔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광복을 맞이하게 된 영향과 효과를 어느 노선의 기여도가 더 컸다고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굳이 말을 한다면 외교 선전 노선에 대한 그간의 역사적 평가와 서술이 지나치게 소홀히 다뤄진 점이있다고 하겠다. 아마도 무장투쟁은 안중근, 윤봉길, 이봉창 의거와 청산리와 봉오동 전투 등에서 알 수 있듯이 극적인 요소가 풍부한 반면, 외교 및 선전 노선은 명백한 셩과를 내지 못한 가운데 장기적으로 진행됐던 원인도 있을 것이다. 한국독립을 향한 외교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과 더불어 전개 상해 임시정부는 1920년 5월 시정방침에서 외교 선전 활동의 목표를 밝히고 있다. 즉 일본의 침략주의가 세계평화의 화근이 되고 한국의 독립이 세계평화에 필요하다는 점, 일본과 맺어진 을사늑약 등 조약의 부당성과 1919년 3.1운동 시기에 행해진 일본의 비인도적 행위를 각국에 알리며, 한민족이 독립국민으로서 자격이 충분함을 실증 자료로써 선전한다는 목표였다. 당시 미국과 영국, 프랑스, 소련 등 열강들은 조만간 일본이 세계평화의 화근이 될 거
민간의 소프트 파워 육성 : 변화와 개혁, 발전은 지식과 기술만으로는 부족 지식과 기술을 가지는 것만으로는 사람이나 조직, 국가가 변화되고 개혁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식은 기본이고 기술의 추격은 사실 굉장히 어려운 것은 아니다. 그 기술을 가지고 시장에서 촉망받는 제품과 서비스,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만들어내려면 믿음과 신념이 있어야 하고 훨씬 복합적인 화학적 일 문화가 필요하다. 현대 심리학은 과거 종교적 윤리보다 훨씬 정교해졌지만, 현대인을 전혀 변화시키지는 못하고 있다. 현대 심리학은 그저 먹고 좋은 ‘사탕’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종교는 믿음을 수반하기에 현대 심리학과 비교해 소박하고 거칠지만 타락하고 극악한 죄를 지은 사람들도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며 새로운 인간으로 거듭나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인간은 믿음을 가질 때 위대해진다. 인간이 아무리 똑똑해도 믿음이 없으면 그저 생존을 위해 살아가는 동물과 비슷한 인간일 뿐이다. 나약하고 평범한 인간도 믿음을 가질 때 그는 놀라운 일을 해낼 수 있다. 중국과 러시아와 같이 국가가 개인과 조직을 극도로 통제하는 사회에서는 수동적인 일 문화 때문에 창의성과 자발성이 발휘되기 어렵다. 이런 곳에서
지난해 11월 12일, 104세로 숨진 한 미국 할머니의 장례 소식에 미국인들이 존경과 애도를 표시했다. 엘리너 오토는 22세부터 70년간 항공기 리벳공으로 열정적으로 일하다가 95세에 그녀가 작업했던 C-17기의 공장이 폐쇄되면서 그 일을 떠나게 됐다. 미국이 진주만 공격을 당한 후 본격적으로 전시 상태에 돌입하자 항공기 생산 공장들도 군입대로 떠난 남성 일자리에 여성들이 대거 충원하게 된다. 22살 된 이혼녀 엘리너는 당시 하고 있었던 타이피스트보다 두 배 많은 임금에 리벳공을 자원했다. 그녀에게는 부양해야 할 아기와 어머니가 있었다. 리벳은 두 개의 금속판을 떨어지지 않게 박는 금속 핀의 일종이다. 전통적으로 힘들고 따분한 작업으로 남자들이 해오던 일이었다. 그녀는 첫날 배우고선 거뜬하게 그 작업을 해냈다. 전쟁이 끝나고 남자들이 돌아오자 전투기 공장에서 일했던 여성들은 떠나게 됐다. 그녀는 한동안 비서, 식당에서 일했으나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러던 중 1951년 라이언 항공사에 서 리벳공 일자리를 얻으면서 활력을 되찾는다. 리벳공은 그녀의 천직이었다. 그 후 맥도널드 더글러스, 보잉사 등을 거쳐 95세까지 일했다. 부고 기사를 보면 2015년 C-
미국 AI 기술력의 유일한 경쟁국으로 알려졌던 중국의 실상이 드러나면서 미국의 AI 주도권 장악은 거의 확실시되는 것 같다. 그러나 첨단기술력이란 초기에 승자의 이익을 독차지할 수 있으나 추격자들이 기술력을 빠르게 따라잡을 수 있다. 추격자들의 기술 습득이 이뤄지고 나면 그다음부터 수익 창출형 비즈니스 모델을 얼마나 개발해내고 계속적으로 공급하고 운영할 수 있는 능력에 의해 경쟁력이 좌우된다. 또 AI는 산업과 생활 모든 분야에서 적용될 수 있기 때문에 이제부터 시작이다. 한국은 신속하게 각 산업과 생활, 사무 영역에 적용하는 기기와 서비스 모델을 선도적으로 개발해야 한다. 한국은 당장 AI 반도체 개발과 공급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폭발하는 AI 반도체 수요에 대응하고 기존의 하드웨어적 기술력은 강화하는 한편 상대적으로 부족한 소프트웨어 경쟁력을 끌어올려야 한다. 미국의 제조업은 전반적으로 코스트가 높아서 수출 경쟁력 회복까지는 못 갈 것 같다. 다만 관세를 무겁게 매겨 외국산이 진입하지 못하면 내수용으로 공급하는 데는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제조업의 높은 코스트는 가격 상승으로 전가될 것이기 때문에 과연 제조업 육성과 보호 정책이 실제로 경제적 효과를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해 7월 폭스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대만이 중국의 침공을 받으면 방어할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 직접적인 답변을 회피하면서 “대만은 우리의 반도체산업 전부를 빼앗아 갔다”고 말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대통령으로 재임할 때나 지금이나 사실 여부는 그리 중요시하게 생각하지 않고 편향된 인식과 계산과 감정에 충실한 발언을 내뱉는 것 같다. 그에게 ‘외교’라는 수식어는 어울리지 않고 직설적 화법으로 관심을 최대한 끌어서 본인이 원하는 효과를 얻고자 하는 일종의 충격 화법을 즐겨 사용하는 것 같다. 근래 나토 동맹국들에 대한 발언은 너무 비뚤어져 대만에 대한 언급은 그래도 ‘양반 발언’ 아닌가 하는 헛웃음이 나온다. 방위비 분담을 잘 안 하는 나토 동맹국들은 방어해 줄 필요가 없을 뿐 아니라 러시아가 공격하도록 부추길 거라는 말에 어안이 벙벙하다. 트럼프 대통령 재임 당시에는 유럽 나토 국가들의 방위비 분담이 형편없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미국의 대통령 후보로서 발언으로는 너무 지나쳤다. 대만 반도체에 대한 트럼프의 발언은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에 대해서도 같은 인식을 하고 있을 거라는 짐작을 가능케 한다. 미국과 같은 압도적인 기술 및 자본 우위를
조선은 근본적으로 왕이 최종 결정권을 쥐고 있는 전제왕권체제이다. 조선은 일본과 서구열강의 체제를 받아들여서 부국강병의 길을 내디뎌야 했지만, 군주가 권력을 백성들과 공유한다는 데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다. 아마도 조선왕조가 멸망하지 않았으면 미국식 공치제는커녕 영국식 입헌군주제까지도 갔을까에 대해 의심스럽다. 입헌군주제도 한참 뒤에나 이뤄졌을 것 같다. 개화파 대신들은 감히 군민 공치지는 감히 입에 올리기도 조심스러워 했고, 고종은 권력을 공유한다는 관념을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했다. 고종은 대신들과도 국론을 의논할 상대였지, 그들에게 권력을 나누고 공동책임을 진다는 생각에는 이르지 못했다. 「한국 근대국가의 형성과 갑오개혁(왕 현종 저)」에 따르면 초대 주미공사를 지낸 박정양은 전제 군주제를 기반으로 행정과 입법, 사법제도의 삼권분립이 가능하나, 의회제 도입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개화파 고위 관료였던 김윤식도 민주정보다 군민공치가 더 낫다고 하면서도 기존의 군주제 아래서도 군주의 결단만 있으면 군민공치제와 유사한 정치 운영이 가능한 것으로 평가했다. 김윤식은 ‘체제’와 ‘정치 운영’ 사이의 차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거나 아니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