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APEC 정상회담을 계기로 이재명 대통령과 젠슨 황 엔비디아 대표가 만나 인공지능(AI) 시대에 필수요소인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GPU) 26만장 확보를 약속받았다. 하지만 GPU 사용에 앞서 선행될 과제들이 있다. AI 기술의 확산을 위해서는 데이터센터의 확대설치되어야 하고, 데이터센터의 증설로 전력 수요가 급등할 것에 대비해 전력망 확충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는 이달 5일 이재명 대통령과 만난 손정의 회장의 발언 “한국은 AI 규모에 비해 데이터센터 구축 규모가 작다”는 지적과도 일맥상통한다. 우리나라의 AI 활용 규모는 미국, 중국, 싱가포르, 영국, 프랑스의 뒤를 이어 세계 6위(영국 토터스미디어, 2024) 수준이다.
이 평가에서 우리나라는 AI 개발, 정부 전략, 인프라 부문에서는 강하지만, 법·제도, 규제 정비 등에서는 35위로 평가가 낮았다. 또 미국 하버드대 벨퍼센터의 ‘전략기술지도’ 보고서에서도 한국의 AI 경쟁력은 글로벌 9위 수준으로 나타났다. 이는 인재 및 투자 부족이 주요 과제로 지적되고 있다.
◇데이터센터 수도권 과밀 현상 제한하는 정부
정부가 데이터센터의 수도권 집중을 제한하는 정책 기조를 유지하면서 전력계통 안정, 재난 위험 분산, 지역균형 발전을 목표로 한 제도적 장치를 강화하고 있다.
산업통상부는 데이터센터가 화재·지진 등 재난 위험과 전력망 불안정, 지역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해 전력수요·계통 평가제를 도입하고 대규모 전력사용 시설 입지의 사전 검토제도를 확대했다. 또 전남·강원·제주 등 지방자치단체와 협력해 데이터센터 유치를 장려하며, 전력 인프라 확충과 인력 양성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지방정부의 움직임에 기업의 유치 경쟁도 촉진되고 있다. 수도권 데이터센터 비중은 2022년 76.3%에서 2024년 72.9%로 감소했다. 그러나 여전히 신규 데이터센터의 60% 이상이 수도권에 있어 정책 효과는 제한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그 이유로는 첫 번째 쟁점이 전력계통 안정성 문제다. 데이터센터는 전력 다소비 시설로 연중 항시 운영되며 막대한 전력을 소모한다. 특히 AI 데이터센터는 GPU 동기화로 전력 사용량이 급증해 전력망에 과부하를 주고 송·배전망 확충 부담을 키운다. 안정적 전력 공급을 위해서는 대규모 투자와 기술 대응이 필수다. 신재생에너지는 간헐성이 높은 점도 문제다. 실제로 국내 데이터센터 전력수요는 2029년까지 41.5GW로 증가할 전망인데, 이는 원전 30기에 해당하는 규모다.
두 번째는 재난 위험 분산 필요성이다. 수도권에 데이터센터가 집중된 상황에서 화재나 지진이 발생하면 데이터 손실, 인터넷 지연, 금융·통신 마비 등 사회 전반에 큰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2022년 10월 카카오 데이터센터 화재 당시 금융·교통·상거래·커뮤니케이션 전반에 걸쳐 국민 생활에 직접적인 불편이 발생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세 번째는 지역균형 발전 측면이다. 데이터센터는 클라우드·AI·메타버스 등 신산업의 핵심 인프라로, 특정 지역에 편중될 경우 디지털 경제의 불균형을 심화시키고 지방 발전 기회를 제한한다. 그러나 민간 기업은 고객 접근성, 네트워크 인프라, 전문인력 확보의 효율성을 이유로 수도권 입지를 선호해 정부 정책과 시장 간 엇박자가 발생할 수 있다.
◇수도권 전력 수요의 지방 분산 위한 법적 근거 마련
국회는 지난해 6월 분산에너지활성화특별법을 시행해 수도권 전력 수요의 지방 분산을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이 법은 수요지 인근에서 전력을 생산·소비하는 분산형 에너지 시스템을 활성화하기 위한 것이다.
주요 내용은 △분산에너지 정의 및 사업 범위 설정 △사업자 등록제 △설치 의무제 △전력계통영향평가 △특화지역 지정 △요금 차등제 근거 마련 등이다.
신규 데이터센터 건립 시 한국전력이 공급 가능성을 먼저 검토하고, 산업부 전력정책심의위원회가 지역사회 수용성·재정 기여도·고용 효과도 평가한다. 이 과정에서 수도권 신규 데이터센터는 사실상 엄격한 심의와 제한을 받게 된다.
이 정책은 전력 안정성과 재난 위험 분산, 지역균형 발전을 동시에 달성하는 장기 전략으로 평가된다. 다만 민간 기업의 수도권 선호가 강해 지방의 인프라 확충, 제도적 유인책, 지역 경쟁력 강화가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탄소중립 목표 달성, 친환경 데이터센터 전략 중요
데이터센터 운영의 가장 큰 문제는 전력 수급과 탄소 배출이다. 생성형 AI 확산으로 전력 사용량이 폭증하고 있으며,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30년까지 전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현재보다 2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AI 전용 데이터센터는 일반 시설보다 4배 이상 전력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역시 2038년까지 전력 수요가 5배 이상 증가해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와 2050 탄소중립 전략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
데이터센터 확산은 국가 기후·에너지 계획과의 정합성 문제도 안고 있다. 프랑스 등 일부 국가는 전력 사용량 상한선을 두고 초과 시 신규 건설을 제한하는 모라토리엄 제도까지 논의 중이다. 정부와 국회는 데이터센터를 재생에너지와 연계해 효율을 극대화할 것을 주문하고 있으며, 네이버 춘천 데이터센터는 외기 냉방과 AI 기반 관제 시스템으로 전력사용효율(PUE)을 1.09까지 낮춘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정책도 친환경 중심으로 변환되고 있다. 올해 시행된 분산에너지활성화특별법과 내년 시행될 AI 기본법은 데이터센터 에너지 관리 강화를 목표로 한다. 일정 규모 이상의 전력 사용시설은 에너지 사용량의 일정 비율을 분산에너지로 충당해야 하며, 불이행 시 과징금이 부과된다. 이는 수도권 집중 억제와 지방 에너지 자립도 제고, 송전망 투자비용 절감 효과를 기대한다.
데이터센터 지역 분산을 위해서는 비수도권 인력 양성과 인프라 확충이 필수적이다. 장기적으로는 AI·클라우드 등 신산업과 연계해 지방 경쟁력을 높여야 하며, 재생에너지 조달(PPA), 에너지저장장치 연계, 냉각기술 혁신 등 친환경 정책 마련도 병행되어야 한다. 국가 차원에서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를 탄소예산 내에서 관리하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
◇산·학·연, AI 시대 데이터센터 생태계 구축에 머리 맞대야
기후에너지환경부가 데이터센터 확산 정책과 관련해 전력 인프라 구성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전력산업정책과 사무관은 “정부는 데이터센터 확충과 관련해 송전망 적정성과 전력 수요 증가 여부를 전력수급기본계획 수립 과정에서 검토할 방침”이라며 “아직 기업들로부터 구체적인 수요 규모가 제시되지 않았지만, 정책적 노력에 따라 데이터센터가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수도권 내 신규 데이터센터 건립은 정부의 지역 분산 정책 때문에 쉽지 않지만, 계통영향평가 결과 전력망에 부담이 없다고 판단되면 가능하다”며 “다만 정부는 원칙적으로 전력 수급이 쉬운 지방으로의 분산을 적극 유도하고 있으며, RE100 등 친환경 전환 요구에 맞춰 지방 입지를 선호한다”고 설명했다.
현재까지 수도권에서 지방으로 이전한 사례는 없지만, 정부는 향후 지방에 데이터센터가 들어설 경우 필요한 설비 계획을 제시할 방침이다.
김경백 전남대 AI학부 교수는 “데이터센터가 과거에는 웹서버나 코로케이션 서비스 중심이었지만, 국내 AI 산업이 성장하면서 GPU 기반의 고성능 연산을 지원하는 AI 데이터센터가 핵심 인프라로 자리 잡고 있다”며 “클라우드 산업법 개정 이후 KT, 네이버클라우드, NHN 등 주요 기업들이 데이터센터 사업을 확대하며 산업 기반을 넓히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국내 데이터센터의 70% 이상은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다. 이는 인력 수요와 네트워크 인프라가 수도권에 몰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력 생산지는 전라도(재생에너지)와 동해안(원자력) 등 지방에 분산되어 있어 전력 수급 불균형 문제가 발생한다. 수도권 중심의 데이터센터 확장은 전력망 부담을 키우고, 지역 분산 필요성을 높이고 있다.
김 교수는 “정부는 데이터센터를 지방으로 확산시키려는 기조가 있다”면서도 “단순히 인프라만 확충해서는 안 되고, 네트워크 고도화, 정주여건 개선, 운영 지원 서비스, 응용서비스 기업과 인력 확보 등 종합적인 생태계 조성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데이터센터 확충을 위해 각 지역에서 활용 가능한 사업과 서비스를 발굴하고, 인력·기업·연구소의 전력적 배치도 중요하다”며 “특히 실증사업으로 규제를 완화하고, 기업과 대학을 매칭해 인력 양성과 산업 활성화를 동시에 추진하는 것이 지방 확산의 핵심 전략”이라고 말했다.
전남권에서는 NHN클라우드의 데이터센터 유치 시도가 무산된 사례가 있었지만, 최근 민간기업은 전력 수급 안정성과 기반시설을 이유로 지방을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다. 한국인터넷진흥원 등 공공기관과 연구조직이 지방에 들어서면 AI 연구와 산업 생태계 활성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김 교수는 “향후 대학-연구소-기업이 연계된 지역 연구 생태계를 강화하고, 청년 인재들이 지역 대학에서 연구소로 이어지는 구조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결국 데이터센터 확충은 단순한 인프라 건설을 넘어, 지역 생태계와 연구조직 활성화, 인력 양성, 실증사업 지원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정부와 지자체, 학계, 연구계가 머리를 맞대는 전사적 노력이 뒷받침될 때 AI 산업의 균형 발전과 지속 가능한 성장이 가능할 것이다.
◇전력 정책과 인력 수급, 지역 균형 발전, 동시에 해결해야
한편, 한국데이터센터연합회는 정부의 데이터센터 확충 정책에 대해 효율성 측면에서 긍정적 평가를 내렸다. 연합회는 개별 전산실 100개보다 대형 데이터센터 1곳이 전력 소모 면에서 훨씬 효율적이라며, 이는 여객기·화물선 대형화와 같은 맥락이라고 설명했다.
데이터센터 운영비의 상당 부분은 전력 소비에 집중되며, 건설 단계부터 효율성과 안정성이 최우선으로 고려된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한국전력이 유일하게 전력을 공급하고, 재생에너지 활용은 총량과 지속가능성, 시설 제약 등으로 현실적 어려움이 크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지방 확산을 유도하고 있지만, 연합회는 기업 고객에 따라 접근성과 인프라가 우수한 수도권에 몰릴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지방은 인력 확보가 어렵고 정주여건 부족으로 근무 기피 현상이 심각하다는 것이다. 연합회는 데이터센터 확충이 효율성 측면에서 필수라면서도, 전력 정책과 인력 수급, 지역 균형 발전이라는 과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데이터센터에서 제기되는 전자파 등 위험성은
한편 데이터센터 건립 과정에서 주민들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항목은 전자파, 소음, 열섬현상, 환경영향, 화재 위험 등으로 조사됐다. 특히 전자파가 주민 반발의 주된 원인으로 꼽히자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과 함께 올해 8~9월 국내 데이터센터와 병원·쇼핑몰 등 고압전선에서 발생하는 전자파 세기를 측정해 9월 말 결과를 발표했다.
측정 결과, 데이터센터 6곳의 전자파 세기는 인체보호 기준 대비 1% 내외 수준으로 모두 낮게 나타났다. A시설은 0.96mG(0.11%), B시설은 3.57mG(0.43%), C시설은 2.03mG(0.24%), D시설은 2.06mG(0.25%), E시설은 6.36mG(0.76%), F시설은 5.50mG(0.66%)였다.
같은 기준으로 병원은 5.63mG(0.68%), 쇼핑몰은 1.61mG(0.19%), 컨벤션센터는 8.59mG(1.03%), 호텔은 9.74mG(1.17%)로 나타나 데이터센터가 상대적으로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과기정통부는 국민 불안을 완화하기 위해 서울·경기권 데이터센터에 ‘전자파 신호등’을 설치·운영하고 있다. 신호등은 청색(50% 미만), 황색(50~100%), 적색(100% 초과)으로 표시해 실시간 전자파 정보를 직관적으로 제공한다. 정부는 효과가 높은 이 장치를 데이터센터뿐 아니라 주요 생활시설 등 갈등 지역에 확대 설치할 계획이다.
정부는 장기적으로 데이터센터를 친환경·저소음·저전력 시설로 전환해 지역사회 수용성을 높이는 과제도 추진할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