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2.11 (월)

  • 맑음동두천 ℃
  • 맑음강릉 5.2℃
  • 맑음서울 1.6℃
  • 맑음대전 3.7℃
  • 맑음대구 4.5℃
  • 구름조금울산 5.2℃
  • 맑음광주 3.1℃
  • 구름많음부산 6.0℃
  • 구름조금고창 2.2℃
  • 흐림제주 4.3℃
  • 맑음강화 1.7℃
  • 맑음보은 2.2℃
  • 맑음금산 2.8℃
  • 구름많음강진군 3.3℃
  • 맑음경주시 4.9℃
  • 맑음거제 6.7℃
기상청 제공

이슈리포트


한국 정신문화를 찾아서

한국역사 속에 살아 숨 쉰 미륵신앙

 

<M이코노미 이상용 수석논설주간> 기독교 이전에 우리나라에 전해진 종교와 사상 가운데 가장 백성들에게 친근했던 믿음은 단연 미륵신앙이다. 그도 그럴 것이 궁핍하고 멸시받는 사람들이 선업을 쌓으면 기쁨이 가득한 도솔천으로 갈 수 있고 미륵부처가 미래에 인간 세상으로 내려와 중생들을 빠짐없이 구제해주기 때문이다. 머리 깎고 출가하여 범인으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힘든 수행을 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10선도를 지키면 된다는 것이다. 또 아득한 먼 미래일지라도 이 땅에 지상낙원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해주는 신앙이다. 10선도란 살생, 도적질, 간음, 거짓말, 이간질, 악한 말, 아첨, 탐욕, 성냄, 나쁜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계율이다. 모두 실천하기가 쉽지 않지만 차차 나이가 들면서 과오도 뉘우쳐 가면 못 지켜질 건 없다. 이에 비해 유교는 엄격한 도덕윤리를 내세우기만 하고 ‘위안’과 같은 감성의 소통이 부재했다. 사후세계의 천국도 없었다. 유교는 실행 면에서 신분적 차별을 극복하지도 못했다. 조선 유교 시대에 불교는 미륵신앙으로 생명을 이어왔다고해도 과언이 아닌 듯하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조 말까 지, 오늘날 민족종교에도 녹아 있는 미륵신앙을 살펴보지 않고서는 한국의 정신문화를 온전히 알 수 없을 것 같다. 이봉춘 천태불교문화연구원장을 서울 서초구 관문사에서 만났다.

 

Q. 한국 불교사에서 미륵신앙이 차지하는 위치와 의미는 무엇 인지요?

 

이봉춘: 불교에는 여러 신앙들이 있겠습니다만, 그 중에서도 아미타 신앙, 관세음 신앙, 미륵불 신앙이 특별히 대중과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민중들에게 미륵신앙은 미래의 희망이 되기도 하고 현재 삶의 의지를 북돋워주고 견인해 왔다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습니다.

 

Q. 삼국사기에 화랑을 용화향도라고 칭했다고 기록한 것을 보면 미륵신앙과 한민족의 고유 사상과의 어떤 관계가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해석하시는지요?

 

이봉춘: 삼국사기 김유신조에 용화향도라는 말이 처음 나옵니다. 김유신이 15세에 용화향도가 되어 따르는 이들이 복종했다고 했습니다. 삼국유사에 보면 김유신이 18세에 국선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용화’라는 말은 ‘용화세계’에서 온 것입니다. 미륵불이 지상으로 내려왔을 때의 세상은 유토피아로서 용화세계입니다. ‘향도’라는 명칭에 대해선 이견이 있습니다만 불교에서는 미륵 신봉자로 해석합니다. 부처님께 향을 사르고 예배를 드리는 무리라는 뜻으로 이해합니다. 진흥왕 때
‘국선’이라는 말이 등장하는데 이것도 신선과 연관 짓는 분들이 있는데 불교에서는 ‘선(仙)’을 부처라고 봅니다. 도교 또 신선도의 명칭이라고 보는 분들이 있으나 중국 불교에서나 한국 불교에서는 부처를 신선 선(仙)으로 불러왔습니다. 특히 미륵부처에 대해서 신선 선(仙)자를 썼습니다. ‘부처’를 한자로 번역하면서 딱 대응하는 단어가 없어서 신선 선(仙)자를 사용한 것이지요. 산스크리트어에서 한자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그런 용례가 많습니다. 그래서 국선을 나라의 신선이 아니라 나라의 부처님, 그 중에서도 나라의 미륵부처님으로 풀이합니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미륵선화 미시랑 설화의 내용을 보면 흥륜사 주지 진자 스님이 미륵부처 앞에서 미륵불이 화랑으로 나타나주기를 간절히 빌었습니다. 꿈속에서 만난 스님이 가르쳐준 대로 미시랑을 만나고 실제로 왕이 미시랑을 국선으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것을 보더라도 미륵신앙과 화랑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김유신이 15세에 용화향도, 화랑이 되었는데, 국선 밑에 귀족 자제들인 여러 화랑들이 있었고 그 화랑 밑에 수백 명의 낭도들이 있었
다고 합니다. 정확하지 않습니다만 김유신은 국선 밑의 여러그룹 중에 용화향도라는 그룹을 이끌고 있지 않았을까 추측 됩니다.

 

 

Q. 미륵신앙의 모습이 시대와 나라마다 달리했을 것 같습니다.

 

이봉춘: 미륵신앙은 부처님이 살아계실 때의 초기 불교부터 시작됩니다. 대승불교는 부처님이 돌아가시고 난 뒤 400~500년 후에 나타났습니다. 초기 불교 경전들을 아함경그룹이라고 합니다. 아함경 그룹 안에 전륜성왕경, 현우경이 미륵불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미륵신앙이 크게 번성하게 된 것은 초기 불교 경전 때문이 아니고 대승경전 때문입니다. 대승경전 가운데 미륵삼부경이라고 있습니다. 미륵이 이 세상에 온다는 얘기를 담은 미륵하생경, 미륵이 있는 도솔천으로 올라간다는 미륵상생경, 미륵이 부처가 되는 미륵 성불경 등 세 가지 삼부경입니다. 여기에서 6부경까지 확장됩니다.

 

초기 인도 불교경전을 보면 부처님이 미륵을 미래의 구세불로서 수기, 즉 예언을 합니다. 이 내용이 대승 시대에 와서 하나의 교리로서 자리를 잡은 것 같습니다. 그러면 왜 미륵부처 이야기가 여러 경전으로까지 발전하게 된 것일까를 생각해봤습니다.


어떤 진리나 가르침도 시류에 따라 쇠퇴해질 수 있습니다. 이런 것에 대한 미연의 대비, 방지, 각오를 위해 뭐가 필요할까 생각했을 것 같습니다. 불교의 가르침이 영원히 이어질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인가. 그런 의도로 미륵 경전이 만들어질 수 있겠고요. 또 희망을 점차 잃어가는 시대에도 구제의 희망을 지피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 아닌가 여겨집니다. 석가모니가 죽은 후에도, 불교의 가르침이 흐트러진 이후 에도 존속할 수 있는 교리가 필요한 까닭에 미륵 사상이 성립된 것 같습니다.


불교는 인도에서 아쇼카왕 시절에 크게 번성했습니다만, 나중에는 이슬람교에 의해 퇴조하지 않습니까. 중국에서도 불교는 많은 박해를 받았습니다. 초기부터 대선사들은 불교의 소멸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지요. 소위 말법시대에 불교를 어떻게 온존할 것인가를 염려했던 것이죠. 이런 과정에서 미래불로서의 미륵 경전의 성립과 발전, 대중들의 간절한 미륵신앙이 설명될 수있다고 봅니다. 다시 말해 미래에도 불교의 정법을 인식시키고 희망을 주는 목적으로 설했다고봅니다.


대승불교는 용수의 중관학파와 무착, 세친의 유식학파로 크게 둘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 유식학파의 논사들에게서 미륵불이 나타납니다. 무착과 세친은 형제인데요. 먼저 무착이 미륵으로부터 직접 설법을 듣고서 유식학파의 저술인 유가사지론를 펴냈습니다. 유식학파는 용수의 공(空) 사상과 대비해 요가 수행을 중시하는 파입니다. 학계에서는 미륵이 역사적 실존이 아니라는 주장과 역사적 실재 인물이라는 주장이 갈리고 있습니다만, 유식학파의 창시자인 미륵불을 직접 설하면서 미륵 신앙은 든든해집니다.


중국에서는 유교의 관념, 전통적인 사상과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강해 불교가 그다지 성행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북위와 전진 등 북방 민족들이 세운 중국 왕조에서는 불교가 크게 환영을 받습니다. 북위에서 미륵 신앙이 번창했습니다. 운강, 용문 석굴에 대형 미륵상이 조성되고 민간에서는 미륵상을 새긴 석비가 많이 세워졌습니다. 부처상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미륵부처상이 석가모니불에 거의 버금갈 정도로 많이 조성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당나라에 가면 미륵 신
앙과 민간 종교와 결합하게 됩니다. 당말과 오대 이후로 가면 배가 불룩 나오고 긴 눈썹과 귓불, 웃는 얼굴의 포대화상이 미륵불의 화신으로 여겨져 민중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중국역사에서 혼란기에 미륵불의 구세불 성격을 이용한 반란 세력들이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백련교도들입니다.

 

 

Q. 한국적 미륵신앙의 특징은 무엇을 들 수 있나요?

 

이봉춘: 미륵신앙이 중국으로부터 들어왔습니다만, 한국적인 특징이 뚜렷이 나타납니다. 불교가 전래된 삼국시대에 모두 미륵신앙이 성행하는 점, 또 반가사유상이 많이 조성된 점을 특징으로 들 수 있습니다. 신라의 반가사유상은 일본으로 전해집니다.


백제 무왕은 익산에 통일의 대업을 꿈꾸고 장대한 미륵사를 창건합니다. 백제는 남조의 동진에서 불교를 받아들입니다. 성왕 때 인도에 갔던 유학승인 겸익이 돌아오는데 왕이 나가 마중을 하고 겸익으로 하여금 미륵불광사를 짓게 했다는 기록이 보입니다. 그 절터가 어디인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신라는 고구려보다 150년이나 늦게 불교를 받아들입니다. 이차돈의 죽음을 계기로 불교를 맞아들인 신라가 처음 세운 절인 흥륜사에 첫 부처상으로 모신 게 미륵입니다. 첫 부처상을 미륵불로 선택한 상징성은 매우 크다고 봅니다. 진흥왕이 이전부터 있었던 여성들의 원화제를 없애고 남성들의 제도로 바꾸면서 이름을 ‘화랑’으로 고칩니다. 그러면 왜 화랑인가, 이것을 불교적인 입장에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화랑’은 요즘 말로 하면 꽃미남인데, 미륵불이 하생하는 유토피아 세상에서 사는 아름다운 ‘천동자’를 뜻하는 것으로 불교학자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추측이 가능한 것이 바로 진흥왕이 추구했던 전륜성왕의 통치이념입니다. 미륵불이 나타날 때의 왕이 전륜성왕인데 이상적인 통치자입니다. 전륜성왕은 백성들을 지배하기만 하고 착취하고 불편하게 하는 통치자가 아니라 오직 중생만 위해 권력을 사용하는 관념입니다. 다시 말해 보살적 제왕을 전륜성왕이라고 합니다. 진흥왕은 스스로 전륜성왕을 자처합니다. 진흥왕은 몸소 전륜성왕으로서 통치를 하고 미륵경전에 따라 왕위를 물려주고 스님이 되어 수행에 전념합니다. 진흥왕의 왕비도 왕을 따라서 승려가 됩니다.

 

전륜성왕의 모습을 보인 왕으로 인도의 아쇼카왕, 중국 양나라의 무제, 그리고 신라의 진흥왕 등 세 사람이 꼽힙니다. 미륵경전을 보면 미륵부처가 하생하는 시기를 56억년 후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만 진흥왕은 당대에 미륵부처가 내려오기 전 용화세계를 구현하려고 구체적으로 통치를 하고 모범을 보였다는 점에서 미륵신앙의 창의적 수용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통일신라에 오면 원측, 원효, 경흥, 태현 등 기라성 같은 스님들에 의해 학문적으로 성숙된 미륵교학이 꽃을 피웁니다. 이 당시 신라 승려들의 설법은 중국 승려들에 비해 조금도 뒤지지 않고 오히려 앞서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진표율사의 점찰법회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점찰법회를 통해 전생의 잘못을 참회하게 하는 운동을 펼칩니다. 진표율 사는 미륵불에게 기도하여 점찰법회를 참회불교운동으로 발전시키는 불사의 영감을 얻었다고 합니다.

 

Q. 미륵신앙은 조선조 말에는 민족종교에도 큰 영향을 미친 것 으로 보입니다. 미륵신앙의 어떤 면이 영향을 준 것이라고 생각 하는지요?

 

이봉춘: 조선조 말 이후 신흥종교에 미륵신앙은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큰 사건을 일으킨 일부 종교에서 미륵불을 들고 나왔습니다. 그런 신흥종교를 보면 구세불로서의 미륵상만 강조된 경향이 있습니다. 10선과 같은 계율을 지키고 자비를 실천하는 부분도 미륵신앙의 중요한 요소인데 그 부분이 소홀히 된 것 같습니다.

 

 

Q. 현재의 한국 불교는 미륵신앙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요. 천태종에서는 작년에 대광사에 미륵보전을 건립하고 미륵불을 모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어떤 뜻을 가지고 미륵불을 봉헌한 것인가요?

 

이봉춘: 불교는 워낙 스펙트럼이 넓어서 오늘날 미륵신앙의 위치는 그리 크지 않다고 봅니다. 그러나 미륵신앙의 역사성, 대중과의 친연성, 10선과 같은 계율성, 자비의 실천을 강조하는 성격 등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필요하다고 봅니다. 석가모니의 가르침이 희미해지는 세상에서 정법을 지키면 미래에 미륵불이 하생하여 중생을 구제할 것이라는 미륵신앙은 불교 종파를 초월하여 모두 염원하는 것입니다. 법화경을 신봉하는 천태종은 정법을 보호하고 후세에 잘 전해지도록 노력
하는 종단입니다. 그러므로 천태신앙과 미륵신앙은 같은 것을 발원한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습니다. 천태종을 중창하신 상월대조사님도 생활불교의 실천성을 강조해 복잡한 계율을 정리하여 10선계로 과감하게 개혁했습니다. 이런 면에 서 미륵신앙과 상통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미륵사상의 메시지는 한 마디로 현재에 대한 긍정성과 미래의 희망이 아닌가 한다. 오늘날 소득 3만불을 넘긴 시대에 왜이렇게 불평불만이 많은 것인가. 서울의 지하철을 타보면 모두가 성난 얼굴이다. 툭 건드리면 금방 욕설이 튀어나올 것같은 표정이다. 헬조선, 남녀혐오, 결혼기피 등은 부정적 의식의 산물이다. 미륵사상의 현대화가 어쩌면 이 시대의 정신적 피폐함을 치유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