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일회(一期一會), 그 일이 생애에 다 한 번 뿐인 일이다. 사람과의 만남 등 기회를 소중히 하여야 한다. 순간순간에 살아있음을 느끼고 순간순간에 새롭게 피어난다.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지금을 어떻게 사는가가 다음의 나를 결정한다. 매 순간 우리는 다음 생의 나를 만들고 있다”.
법정 스님의 말씀이다. 사람은 어떠한 순간에 접했을 때 매번 결심의 단계를 거쳐야만 일을 시작할 수 있고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한 노력의 방향을 설정할 수 있다. 단 한번의 결심이 개인의 인생 행복뿐만 아니라 국가 지도자는 국민의 행복까지 결정지을 수 있다.
우리의 인생살이에도 마찬가지이다. 대학 진로 문제, 배우자를 결정하는 결혼문제, 직업 선택 속에서 사업의 선정 문제까지 모든 것이 대부분 마지막의 결심에 따라 진행된다. 더군다나 필자처럼 군 지휘관으로서 단 한 번의 순간 결심은 전투에서 승패를 가름하게 된다. 더 나아가 귀한 부하들의 목숨까지 책임져야 한다. 그래서 지도자의 결심은 숭고하고 두렵고 신중하고 외로운 과정이다.

◇ 국가 지도자의 잘못된 결심과 공군 오폭 사고를 보며...
국가 지도자 결심의 최종은 무엇을 목표로 하는가? 두말할 것 없이 그것은 국민 삶의 행복일 것이다. 그래서 더욱 국민의 행복을 결정하는 지도자는 개인의 앞날보다, 개인의 안위보다 국민을 생각하고 국가 미래를 걱정하는 결심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작년 12,3 불법 계엄은 TV 생중계를 통해 생생하게 전 국민이 목격했지만, 시간이 지나니 하나둘씩 그들의 행동이, 그날의 잘못된 결심이 정당화되고 국민의 행복을 위한 행위였다고 반전시키려 하고 있다. 분위기를 차츰 기울여지도록, 오히려 폭력을 행사한 편이 정의의 용사처럼 인정받으려 여론과 세몰이를 하고 있다.
국민을 불안하게 하고 국민 삶의 행복을 빼앗아 간 미안함은 한마디도 없었다. 반쪽에게만 단합해야 한다고 억지 주장을 하고 있다. 본인이 결심한 순간의 결심은 모든 것이 옳았고 국민 행복은 아랑곳없이 함께 행동한 집단들의 고초만을 걱정하는 지도자에게 우리는 우리의 행복을 맡겨야 하는 현실이 서글프다.

지난 3월 6일 경기도 포천에 연합훈련을 하는 한국군 공군 KF-16 전투기에 의해 MK-82 폭탄 8발을 오폭하여 포천 시민과 군인 포함 31명의 부상과 민가 142가구 등 막대한 재산 피해까지 입히는 폭탄 오폭 사고가 발생했다. 최신의 공군기에 최정예 훈련 과정을 이수한 조종사이었지만 창군이래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범하여 어수선한 시기에 또 한 번 국민으로부터 신뢰감을 져 버리는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가장 기본적인 표적 좌표를 잘못 입력한 채 폭탄을 싣고 작전에 나가는 조종사는 어떤 결심으로 민간인 지역에 폭탄을 투하했을까? 좌표 입력 과정을 3차례 이상 확인하는 절차도 이행되지 않았고, 그러한 과정을 채크하는 지휘관의 결심 체계도 이행되지 않았다. 이는 안전의식 결핍과 직무 유기, 기강해이가 빚어낸 총체적 난국에서 나온 결과물이다.
당시 승진훈련장에는 합참의장과 한미 연합군사령관이 훈련을 참관하고 있었다고 한다. 조종사는 순간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인지하였지만, 정해진 시간에 맞추어야 한다는 절대복종의 시나리오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잘못된 결심을 실행하고야 말았다. 스스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하고 무조건 따라야 하는 상명하복의 뿌리 깊은 조직특성이 나타낸 결과이다.
어쩌면 12,3 불법 계엄에 동조한 일부 장군들의 행태와 비슷한 조직문화의 쌍둥이 격이다. 조종사를 비롯한 관련자의 잘못된 결심이 평온한 포천 시골 어르신들의 행복을 앗아갔고, 수많은 민간인과 군인들에게 부상의 아픔을 안겨주었다. 그 아찔한 순간으로 인한 주민들의 행복은 좀처럼 회복하기 힘들 것 같다.
그 어르신들이 바라는 행복은 무엇이었을까? 아마 평범한 생활에서 소박한 기쁨과 만족감을 느끼며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이었을 것이다.
◇소박한 행복을 누가 빼앗아 갔나?
포천 주민들이 느끼는 행복의 기준은 무엇이었을까? 흔히들 행복의 기준을 몇 자로 정리하기는 힘들지만, 아마 다음과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첫째는 일상을 살아가며 마음의 자유스러운 상태를 만들어가는 과정, 즉 개인적으로 건강하고 경제적으로 안정되며, 소박한 환경에서 편안하게 긴장하지 않고 자유로움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들이 느끼는 두 번째 행복의 기준은 작은 일에서 얻는 성취감으로 자신의 주위 사람과 어울려 이웃을 형성하며 일터를 만들어가는 어울림이었을 것이다. 때가 되면 농사짓고, 때가 되면 어울려 쉬고 이웃과 형제처럼 살아가는 모습이 행복이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들이 느끼는 행복은 세상 사람과의 관계, 자식들과의 관계 속에서 일상을 살아가며 가까이서 관계를 맺는 만남이 행복이었을 것이다. 포천 주민들 행복의 목표도 거의 비슷했을 것이다.
한순간 시골 주민들이 느끼며 가꾸어가는 행복을 잘못된 결심과 잘못된 시스템이, 그리고 잘못된 무사안일이 그들의 행복을 빼앗아 가버린 것이다.
◇실패한 지도자가 지닌 속성들
행복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 ‘Happiness’는 우연이라는 어원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일상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수많은 것들 속에서 우연히 다가온 행복을 빼앗아 가는 것은 우연히 잘못된 우연한 결심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최근의 몇 가지 사례에서 찾을 수 있다.
이렇게 빼앗긴 행복의 원인을 이제 우리 스스로 본인 내면에서 찾아야 한다. 자기만이 최고라는 자만과 도취, 남을 배려하지 못하는 이기적인 관계, 자기중심으로 결심하며 밀어붙이는 아집, 혼자만의 능력을 고집하는 외통수, 잘 알지도 모르면서 3척(아는 척, 있는 척, 잘난 척)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는 무지한 특성이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이다.
본인뿐만 아니라 조직원의 행복을 원하는 마음가짐의 첩경은 자신과의 싸움에서 ‘항복’하는 길이다. 국가의 지도자는 주위의 유혹을 거절하고 조직을 떠날 때 부끄러움이 없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떠날 날을 계획해야 한다.
본인이 최고이고 남의 의견은 틀렸다는 낡은 지식, 국민은 모르고 자신만이 체험한 것이 최고였다고 여기는 진부한 체험들, 술 한 잔 먹고 남을 비방하는 등 자신에게 익숙해 버린 젖은 습관들, 얻은 권력을 놓치기 싫어서 씹고 있던 껌도 버리기 아까운 욕심들, 끼리끼리 편 짜서 아웃의 무리는 무시해 버리는 철저한 편 가름, 이 모든 것들이 현재 우리가 가까이서 경험하고 분노를 느끼는 현실이다. 실패한 지도자는 오히려 우리 국민에게 떠맡긴 짐들이다.
◇지도자가 조직을 떠날 때 새겨야 하는 마음
필자는 2015년 1월, 39년간의 군복무를 마치고 전역하는 날 후배들에게 이런 말을 남기었다.
"전투 군인으로서 가장 행복했을 때는 군 조직을 떠날 때 유혹에 휘말리지 않고, 정당하고 합법적인 지휘력을 행사한 내 자신의 자존심에 당당하고, 군 선·후배와 훗날 우연히 만났을 때 반갑게 맞이하며, 서슴없이 인사를 나눌 수 있는 추억을 남기고, 내가 군복을 입고 몸담았던 조국과 군조직, 함께 생사를 같이 한 전우들에게 감사함을 느낄 때 행복했노라.”
순간적으로 잘못된 결심을 최소화하며 그 기준을 부하의 안전과 행복을 잘 지키려고 노력했던 그 순간들을 간직하고 싶다. 최근 지도자의 잘못된 결심을 바라보며 노병은 군복을 벗은 지 10여 년이 지났지만 명심한다. 순간적으로 무지하고 잘못된 결심은 나뿐만 아니라 국민의 행복마저 빼앗아 간다는 것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