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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4월 11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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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세상이 시끄러울수록 중요한 가벼운 대화

 

“당신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잘 지내시길 바랍니다”

 

◇ 인생을 바꾸는 짧은 대화

 

이란 전의 긴장과 갈등처럼 세상이 굉음으로 가득할수록 더 절실해지는 것은 거창한 담론 이 아니라 일상의 소박한 대화다. 전쟁과 정치의 언어는 사람들을 갈라놓지만, “잘 지내세 요?”라는 한마디는 서로의 관계를 다시 이어 붙인다. 뉴스는 불안을 키우지만, 짧은 안부는 사람의 마음을 누그러뜨린다.

 

세상이 클수록 우리는 작아지고, 세상이 거칠수록 말은 무뎌지기 쉽다. 그렇기에 지금 필요한 것은 더 큰 목소리가 아니라 더 따뜻한 한마디, 더 깊은 주장보다 더 잦은 안부다.

 

뉴욕타임스의 한 칼럼니스트는 하루의 규칙을 하나 세워두었다고 한다. 매일 다섯 사람에 게 짧은 안부를 건네는 일이다. “당신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잘 지내시길 바랍니다.” 길지 않은 문장, 무심히 흘려보낼 수도 있는 말이지만, 그는 그것을 습관처럼 반복한다고 했다.

 

대단한 결심도, 거창한 철학도 아니다. 그저 사람과 사람 사이에 끊어지기 쉬운 실을 매일 한 번씩 묶어두는 일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 주변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다. 계절이 바뀌면 꽃 사진 한 장과 안부를 묻는 이가 있다. 주말 산책길에서 마주친 하늘을 공유하는 이도 있다. 별다른 용건 없이 “요즘 어떠세요?”라고 묻는 이들도 있다.

 

그들의 메시지는 한결같이 가볍지만 오래 남는다. 우리는 종종 그들의 이름을 떠올리며 미소 짓는다. ‘아~ 이 사람은 나를 잊지 않았구나!’ 가벼운 대화는 흔히 하찮게 여겨진다. 생산적이지도 않고 당장 무언가를 바꾸지도 않는다. 그러나 인간의 삶은 그렇게 단단한 것들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일상을 떠받치는 것은 눈에 잘 띄지 않는 가벼운 접촉들이다. 엘리베이터 안에서의 짧은 인사, 길 위에서의 눈인사, 휴대전화 화면에 뜨는 몇 줄의 안부, 그것들이 쌓여 관계를 만들고 감정을 지탱한다.

 

만약 어느 날부터 그런 소식이 뚝 끊긴다면 어떨까. 처음엔 무심히 지나칠지 모른다. 그러나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진다.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닐까?’ ‘혹시 내가 무심했나?’ 우리는 그 부재를 통해서야 비로소 가벼운 대화의 무게를 깨닫는다. 사소한 것이 사라질 때 비로소 그것이 사소하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집안의 대소 사를 앞두고 연락처를 정리해야 할 때 짧은 일상적 인사를 나누지 않았던 것을 후회할 수 있다.

 

◇참말이면서 거짓인 “잘 지네요. 고마워요

 

요즘처럼 세상이 시끄러울수록 이런 생각은 더 또렷해진다. 뉴스는 끊임없이 불안을 전하고, 화면 밖에서는 갈등과 소음이 멈추지 않는다. 전쟁의 포성, 정치의 언어, 서로를 향한 거친 말들이 일상의 공기를 무겁게 만든다. 그럴수록 사람들은 점점 더 말을 아끼고, 마음을 닫는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럴 때일수록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말, 더 잦은 안부, 더 가벼운 대화다. 필자는 최근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자체 단체장이나 지방의회 의원 후보들의 카톡이나 메시지를 이따금 받는다. 정제된 문장과 공손한 인사가 담겨 있다.

 

대개는 그냥 읽고 지나치지만 짧게 답장을 보낼 때가 있다. “수고 많으십니다. 승리하세요”라고. 그러면 상대방은 내 신분을 확인했는지 어땠는지 모르지만, 정중한 답과 고맙다는 말을 덧붙여 조금 더 밝아진 톤으로 짧은 인사를 해온다. 그 간단한 왕복 속에서 서로의 하루가 조금은 덜 고단해진다. 그 것으로 충분하다.

 

앞에서 언급한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는 자신이 살아 오는 동안 대략 50만 명에게 안부를 물어본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그들도 자기에게 똑같은 질문을 했고, 모두 같은 대답을 기대했다고 한다.

 

“잘 지내요. 고마워요” 그런데 이런 대화는 이상하지만 참이면서 동시에 거짓이라는 점 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상대방이 “잘 지내냐?”고 묻고 있지만 솔직히 나는 “괜찮지 않다”는 것이다. 아내가 아프고 친구 들이 무서운 속도로 세상을 떠나고 있으며 관절염도 재발 했다.

 

세상사는 순탄치 않게 마련이니까. 걱정 없이 지내는 날이 얼마나 되랴! 우리는 늘 잘 지내는 게 아니다. 몸이 아플 때도 있고, 마음이 무너질 때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대개 “네, 잘 지냅니다”라고 답한다. 그것은 거짓말이라 기보다 바람에 가깝다. 그렇게 말함으로써 정말로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 그리고 상대를 안심시키고 싶은 배려, 그 짧은 문장에는 생각보다 많은 뜻이 담겨 있다. 상대방이 굳이 물어봐 주었기에 나는 괜찮은 척하는 것이다.

 

괜찮다는 대답은 상대방이 기대하고 듣고 싶어 하는 대답이다. 나는 상대방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고 그 기대 덕분에 묘하게 고양된 기분을 느낀다. 잠시 우리는 스스로 만들어 낸 허구 속에서 만족스럽게 살아간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그 허구를 현실로 만들어 간다. 그러니 “잘 지내세요?”라는 말은 미묘하게 사람을 고귀하게 만든다.

 

거창한 윤리나 도덕을 들먹이지 않아도, 우리는 서로의 안부를 묻고 답하는 과정에서 조금씩 더 나은 사람이 된다. 누군가를 기분 좋게 했다는 사실은 작지만 분 명한 기쁨을 남긴다. 그리고 그 기쁨은 다시 다른 사람 게로 이어진다. 그렇게 관계는 확장되고 삶은 조금 더 따 뜻해진다.

 

◇ 사소한 대화는 삶을 지탱하는 숨은 위안

 

더 중요한 것은 이런 대화가 우리를 필요한 곳으로 이끈다는 점이다. 가벼운 메시지 하나가 뜻밖의 연결을 만든다. 오래 연락이 끊겼던 친구와 다시 이어지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의 신호를 알아차리게 된다. 깊고 진지한 대화는 준비가 필요하지만, 가벼운 대화는 문턱이 낮다.

 

그래서 더 많은 문을 연다. 우리는 흔히 ‘의미 있는 말’을 하려고 애쓴다. 그러나 때로는 의미를 내려놓을 때 말이 살아난다. 쓸모를 따지지 않고 건네는 한마디, 목적 없이 나누는 웃음, 이유 없이 보내는 사진 한 장. 그런 것들이야말로 삶을 지탱하는 숨은 기둥이다.

 

세상은 여전히 소란스럽다. 큰 목소리들이 서로를 덮고, 빠른 말들이 깊은 생각을 밀어낸다. 그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의외로 단순하다. 조금 더 자주 안부를 묻고, 조금 더 쉽게 답하고, 조금 더 가볍게 말을 건네는 것. 거창한 변화는 아닐지라도, 그것이 우리를 서로에게 이어주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잘 지내고 계시죠?” 오늘 누군가에게 짧은 메시지 하나를 보내보는 것은 어떨까? 그 말 한마디가 생각보다 멀리 그리고 험한 세상을 오래도록 헤쳐 나갈 수 있게 만드는 삶의 위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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