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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정초원 칼럼> ‘따뜻한 말 한마디’ 보다 중요한 것


몇 달 전 성황리에 종영한 《응답하라 1988》에 나오는 정봉이는 선천적 심장병 환자다. 부모인 성균과 미란은 극중에서 가장 부유하게 나오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수술비를 벌기 위해 도배, 신문배달, 식당 등 밤낮으로 일하고 굶기까지 했던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복권 1등에 당첨됨으로써 극 전반적으로 수술비에 대한 걱정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그 집 지하 단칸방에 세 들어 사는 가난한 이웃으로 나오던 덕선이네가, 혹은 아들의 대학 등 록금을 대기 위해 아픈 몸을 이끌고 일하러 가야했던 선우네가 그 병을 앓고 있었더라면 극이 이처럼 따뜻하게만 흘러갈 수 있었을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수술비, 약값 걱정으로 이웃 간의 정과 골목의 낭만은 사라졌을 가능성이 높다.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과 우리의 삶


하지만 대안이 있다. 바로 국민건강보험이다. 당시는 전국민 건강보험이 정착되지 않아 진료비의 대부분을 가정에서 지불해야 했지만 지금은 건강보험이 진료비의 절반 이상을 부담한다. 이것이 바로 ‘건강보험의 보장성’이다. 다시 말해, 전체 진료비 중 건강보험이 지불하는 금액을 의미한다. 2014년 기준으로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은 63.2%이다.


건강보험이 제대로 정착되지 않았던 1988년 당시, 성균과 미란이 정봉이의 진료비로 약 1,000만원을 지불해야 했다면 지금은 약 1/3 정도인 368만원만 내면 된다는 것이다. 심장병과 같이 큰 병의 엄청난 진료비를 감안하면 건강보험이 있더라도 가정에서 부담해야 하는 금액이 적지는 않지만 건강보험이 없을 때와 비교하면 의료비 부담이 많이 줄어드는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강보험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은 그다지 좋지 않다. 2015년에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실시한 ‘건강보험제도 국민만족도 조사’에 따르면 종합만족도는 67.5점으로 전년에 비해 하락했다. 항목별로 보면, 건강보험 보장성을 가장 중요하게 인식하고 있으나 만족도는 52.9점으로 가장 낮고, 보험료의 적정성 역시 59.1점에 불과하며 이마저도 전년에 비해 하락했다.



건강보험료의 적정성에 대한 만족도가 하락한 것은 ‘건강보험 혜택 대비 가족 수준의 보험료 적정성’과 ‘보험료 부과의 공평성’에 대한 국민들의 만족 수준이 하락한 것이 주요 요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즉 지금의 국민들은 국민건강보험의 낮은 보장성으로 인해 의료보장의 혜택을 제대로 체감하지 못하는 가운데, 건강보험료 수준 자체에 대한 불만과 보험료 부과 체계의 형평성에 의문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 변화 추이


과거에 비해 국민건강보험이라는 의료보장 제도가 생겨서 의료비 부담이 완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건강보험이 그만큼 신뢰를 받고 있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보장성의 문제이다. 그렇다면 현재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이 어느 수준인지 살펴보아야 한다.

 

<표 1>에서 보다시피, 건강보험의 보장성은 지난 10년 동안 전혀 향상되지 않았다. 오히려 10년 전인 2007년 65%였으나 2014년에는 63.2%로 후퇴했다. 이로 인해, 2007년 국민들이 35%의 의료비를 부담했다면 지금 지불해야 하는 것은 36.8%로 1.8%p 늘어났다. 이처럼 보장성이 악화된 데에는 비급여 진료비 문제가 크다. ‘비급여’란 의료기술의 발전, 혹은 비싼 가격을 환자로부터 받기 위한 의료기관의 자체적 개발 등을 통해 새롭게 등장하여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의료 행위를 말한다. 지난 10년간 비급여 의료비는 연평균 10%씩이나 증가해왔지만 건강보험에서 포괄하는 부분은 많지 않았다.


특히 한 부분에서 급여화하더라도 다른 영역에서 또 다시 생겨나는 비급여 항목에 대한 통제는 쉽지 않다.

예컨대, 4대 중증질환에 있어 125개 비급여 항목을 급여화했지만 주사료, 수술료, 영상진단 및 방사선 치료료 등 다른 비급여 항목의 비중이 늘어나면서 그 효과를 상쇄했다. 결국 비급여 본인부담률은 2010년 이후 꾸준히 높아졌다. 비급여 문제는 전국민 건강보험이 제대로 정착되지 못한 시기에 비해 본인부담금을 30%대로 줄인 건강보험제도의 성과를 가리고 있다. 오히려 계속 늘어나고 있는 비급여 진료비에 대한 국민들의 부담이 가중되면서 비급여 진료비를 포괄하지 못하는 국민건강보험에 대한 회의감을 높이고 민간의료보험으로 눈길을 돌리게끔 만들고 있다. 비급여로 인한 국민부담이 이처럼 가중되는 가운데 건강보험료는 지난 10년간 꾸준히 인상되어 왔다.


<표 2>는 지난 10년간 건강보험료가 꾸준히 인상되었음을 보여 준다. 따라서 국민들이 체감하기에는 지난 10년간 의료비에 있어서 국민건강보험의 혜택은 미미하거나 오히려 비급여에 대한 부담만 늘어난 데 비해 소득에 서 빠져나가는 건강보험료는 나날이 가중되는 것으로 느껴지게 된다. 뿐만 아니라 은퇴·퇴직 후의 건강보험료 폭탄, 소득 있는 피부양자의 무임승차 등 현행 건강보험료 부과체계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은 국민건강보험에 대한 불신을 더욱 더 가중시켰다.


국민건강보험의 신뢰성을 높이는 길: 보장성 강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건강보험은 큰 병을 앓게 될 경우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 의료비를 건강보험 재정이라는 공동의 재원을 만들어서 함께 대비할 수 있도록 하는 효과적인 제도이다. 공공보험인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이 낮을수록 사람들은 민간 영역에서 자체적으로 이런 방식을 사용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민간보험이다. 그러나 민간보험은 수익성을 추구하는 영리 기업의 성격을 가지고 있기에 가입자들이 낸 보험료에서 운영비와 이윤을 가져가야 한다. 이로 인해 국민건강보험보다 가입자에게 불리한 구조일 수밖에 없다.


우리 국민들도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국민 인식도 조사에서 응답자의 85%가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약 80%가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을 전체 진료비의 70% 이상으로 높여야 한다고 응답했다. 국민들이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하는 것은 국민건강보험의 낮은 보장성으로 인한 불안한 미래를 스스로 해결해 보려는 불가피한 자구책인 것이다. 따라서 국민의 불안을 해소하고 국민건강보험에 대한 신뢰를 높이기 위해서는 보장성 강화가 필수적이다. 그렇다면 어느 수준까지 보장성을 높여야 하는가?


주요 외국의 건강권 보장 수준


국가들이 한 해 지출하는 의료비 중에서 공공재원이 차지하는 비중을 비교해보면, 각국이 국민의 건강권을 지키기 위해 어느 정도의 역할을 하는지를 알 수 있다. 우리나라는 2013년 기준으로 입원, 외래, 의약품 등 모든 서비스 영역에서 OECD 평균보다 뒤쳐질 뿐만 아니라 의약품을 제외하고는 최하위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북유럽 국가들의 경우, 입원, 외래 영역에서 대부분 80~90%의 보장률을 보이는 등 건강권 보장에 적극적으로 공공재원을 투입하고 있다.


물론, 각국의 상황이 상이하기 때문에 무조건적으로 외국의 기준을 따를 필요는 없다. 하지만 OECD 평균과의 현격한 격차는 우리나라가 경제 규모에 비해 국민 건강권에 무심하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국민들의 행복권 보장에 민감한 북유럽 복지국가들의 공공재원 비중이 80~90%에 이르는 것은 정부가 그만큼 국민들의 건강권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음을 상대적으로 방증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를 위한 재원조달 방안


<표 3>에서는 앞서 살펴본 OECD 평균 수준으로 공공재원을 늘리기 위해 추가적으로 필요한 금액을 추계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2013년 기준으로 98.3조원인 경상의료비 중에서 54.9조원이 공공재원에서 지출되고 있다. 의약품의 경우, OECD 평균과 얼마 차이가 나지 않음을 고려하여 입원과 외래에서만 공공재원을 OECD 평균 수준으로 늘릴 경우 16.6조원이 추가로 필요하다. 더불어민주당 기동민 의원의 건강보험 재정통계 현황 자료 분석 결과 에 따르면, 올해 8월말까지 국민건강보험은 누적 흑자가 20조 1,766억원에 이르렀다고 한다.


국민건강보험의 적립금이 이만큼 늘어났지만 보장률이 답보 상태인 것은 그만큼 정부가 보장성을 늘리는 데 힘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적립금을 보장성 강화에 사용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우려스러운 것은 20조원은 국민건강보험이 재정 적자를 겪은 2001년 이후 거의 10년간에 걸쳐 쌓인 금액이다.


즉 앞으로도 똑같은 흑자가 생길 것으로 예측할 수 없는, 일회성을 띤 재원인 것이다. 한 해 동안 공공재원 비중을 OECD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있어서도 16.6조원이 필요한 상황에서 적립금의 사용은 내년 한 해의 보장률을 다소 올릴 수는 있을지라도 내후년, 그리고 다음해의 보장률은 담보할 수 없게 된다.




약 7조원에 이르는 국고지원 또한 근본적인 재원조달 방안이 아니다. 2017년 예산에서 지원액을 축소한 정부의 조치는 법적으로 명시된 책임마저 회피한다는 측면에서 부당하다. 그러나 지금도 중앙의 재정 규모가 작아 복지 확대를 주저하는 상황에서 국민건강보험 지원액을 늘리기 위해서는 사실상 증세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가장 효과가 큰 것이 건강보험료율 자체를 높이는 것이다. 국민 인식 조사에서도 보장률을 높이기 위해 건강보험료를 추가로 부담할 의사가 없다고 응답한 사람은 18%에 불과했다. 이미 민간의료보험으로 월평균 30만원을 납부하고 있는 상황에서 민간의료보험보다 훨씬 적은 금액을 건강보험료로 더 낼 경우 보장성을 크게 확대할 수 있다.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을 높이기 위해 필요한 1인당 추가 보험료 등 조금 더 구체적인 자료에 대해서는 복지국가소사이어티에서 추계 작업을 실시했고 이후에 발표할 예정이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국민건강보험의 낮은 보장성과 보험료의 적정성에 관해 국민들의 만족도가 낮은 상황에서 건강보험료 인상이 부정적으로 느껴 질 수도 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보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늘 건강보험료 인상이 동반되어 왔다.


2007년 보장성이 65%까지 올라가게 된 데는 ‘본인 부담액 상한제, 희귀난치성 질환 입원비, 암 등 고액 중증질환의 보장성 강화, 만6세 미만 입원 아동 본인부담 면제, 장기이식수술 급여화, 입원 환자 식대 급여화’ 등이 실시되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보험 급여 항목을 늘리기 위해서는 건강보험 재정이 늘어나야 했기에 당시 건강보험료율은 어느 때보다도 인상폭이 높았다.

2001년 건강보험 재정 적자를 메우기 위해 직장가입자는 21.4%, 지역가입자는 15%의 건강보험료를 인상했다. 그 뒤에도 2002년부터 2008년까지 건강보험료가 각각 8.5%. 6.75%, 2.38%, 3.9%, 6.5%씩 인상되었다. 상대적으로 인상폭이 낮았던 2005년과 2006년에는 담배 부담금이 150원에서 354원으로 약 2.5배 인상되어 국고지원액이 크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이런 역사적인 경험은 지금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을 확대하는 데도 건강보험료 인상이 동반되어야 함을 시사하고 있다.


정봉이가 심장 수술을 한 《응답하라 1988》 8회에서는 “이 냉랭한 세상에서 그나마 살만하도록 삶의 체온을 유지시켜 주는 것은 따뜻한 말 한마디” 라는 나레이션이 나와 사람들의 가슴을 울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따뜻한 말 한마디’는 그 순간의 위로가 될 수는 있을지언정 지금도 어딘가에서 높은 입원비와 의료비로 고통을 겪고 있을 누군가의 걱정을 실질적으로 덜어줄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지금 중요한 것은 위로의 말 한마디가 아니라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을 획기적으로 확대하여 의료비 부담 자체를 경감시켜 돈에 의해 건강권이 좌우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연대이다.


MeCONOMY magazine November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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