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산물유통공사의 수출입 정보(KAT)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농산물과 축산물 그리고 임산물을 합한 농림축산식품의 2020년 연간 수입액은 342억 7천9백만 달러다. 우리 돈으로 약 41조 원이다. 이는 수입액 1위인 원유(수입액 803억 달러, 2018년 기준), 2위인 반도체(수입액 503억 달러, 2020년 기준)에 이어 세 번째 규모다.
농산물수입액에 국내 농업총생산액을 합하면 100여조 원, 이 중 5분의 1인 20조 원어치의 음식물을 우리는 못 먹어서 버리고 있다. 우리나라는 음식물을 낭비하는 것도 심한 데다 우리가 먹는 식품은 거의 외국에서 들여오고 있다. 이렇게 식량 작물에 대한 수입의존도가 높다 보니, 우리나라는 국제 농산물 가격이 오르면 국내의 물가가 급등하는 애그플레이션(agflation)에 노출되어 있다.
애그플레이션이란 농업(agriculture)과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로, 2007년 메릴린치(Merrill Lynch, 1914년에 문을 연 세계 최대 증권회사, Bank of America가 인수)가 「세계농업과 애그플레이션」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알려진 신조어다.
메릴린치 보고서는 애그플레이션이 일어나는 원인으로 ▲지구 온난화와 기상 악화로 인한 농산물의 작황 부진에 따른 생산량 감소 ▲바이오 연료 등 대체 연료 활성화 ▲농산물 경작지 감소 ▲육식 증가로 인한 가축 사료 수용의 증가 ▲중국과 인도 등 브릭스 국가들의 경제성장으로 인한 곡물 수요 증가 ▲국제 유가 급등으로 곡물 생산, 유통 비용 증가, ▲유동성 증가에서 비롯된 투기 자본의 유입 ▲식량의 자원화 등을 꼽고 있다. 실제로 코로나 19사태 이후 애그플레이션의 조짐이 나타나, 지난해부터 세계 곡물 가격이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지난 4월, 미국 시카고 상품 거래소(Chicago Board of Trade, CBOT)에서 옥수수 1부셀(bushel=약 27kg) 가격은 작년보다 30.82%↑ 소맥(밀)은 18.74%↑, 대두(콩)는 11.29%↑, 팜유(기름야자의 과육, 라면, 튀김류, 마가린, 쇼트닝, 비누, 화장품 등의 원료) 28%↑, 원당(原糖) 9%↑로 상승했다. 지난해 지구를 덮친 기록적인 더위 탓에 미국, 중국, 러시아, 유럽 등 주요 식량 산지 곳곳에서 폭염(暴炎), 집중호우, 가뭄 등의 기상 이변이 나타나 쌀과 밀 등 주요 작물 작황이 타격을 입었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코로나 사태로 인력난과 수송난이 겹쳐(최근 2천 달러였던 LA행 20피트 컨테이너 운임이 8천 달러까지 오르는 등 국제 해상운임이 코로나 이전보다 최고 9배까지 상승해, 수입 농산물 가격 인상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식량 공급망이 훼손되고 있다. 세계 최대 밀 수출국인 러시아가 자국의 밀 공급량이 줄어들자, 식량 보호 차원에서 수출을 억제 조치(措置)했다. 중국에서는 아프리카 돼지 열병(ASF)으로 1억 3천 마리의 돼지가 폐사해 이를 보완할 돼지 사료용 대두와 옥수수 등 곡물 수요가 늘어나면서 국제 가격이 상승했다.
유엔세계식량계획(WFP, World Food Programme)은 올해 “코로나 19보다 무서운 기근 바이러스가 인류를 위협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식량 인플레이션은 이제 현실”이라면서 식량 가격 상승세가 한동안 더 이어지리라 예고한다.
농축수산물은 기후조건, 재배 기간, 사육 기간이 필요해 수요공급이 단기간에 해결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식량자급률이 낮은 우리나라는 당연히 국제 식량 원자재 가격에 상당한 영향을 받는다.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밀은 국제 가격이 오르면 밀가루 업체가 밀가루 가격을 올리고 밀가루를 쓰는 식품기업은 라면, 빵, 과자 등 자사 제품 가격을 인상한다.
대두(콩), 옥수수 등 가축 사료 원료곡의 가격이 높아지면 돼지고기 등의 육류 가격이 오르는데, 이 같은 농산물 가격 상승은 모든 생활 물가에 도미노처럼 영향을 미쳐 애그플레이션을 가져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