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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외교 협상의 선행 모범 사례

 

지금 대한민국 사람들의 주요 관심사는 조기 대선에서 누가 대통령에 당선되는지에 쏠려 있다. 그것은 당연하다. 2022년 5월 취임한 윤석열 전 대통령이 보여준 모습에 대한 국민적 실망이 크기 때문이다. 또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 세계 많은 국가를 상대로 던져놓은 관세 폭탄도 차기 대통령에 대한 기대감을 키우는 요소다.

 

그렇지만, 대통령이 모든 것을 다 해결할 수는 없는 일이다. 장관이나 차관급 협상 대표들이 할 일이 있다는 것도 세상의 이치다. 그러므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전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어려운 관세 협상에 나선 정부 대표들의 어깨가 무겁다는 것은 의심할 필요가 없다. 한국 정부 대표들이 어려움을 느끼는 것은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와도 싸워야 하지만 국내 정치 차원에서도 매우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기존 대통령이 파면되는 바람에 과도 정부가 미국과의 협상을 담당해야 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앞으로 40일 정도만 지나면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하는 것을 알면서도 협상 타결을 적극 추진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어려운 조건에서 협상에 나선 정부 대표들을 도와줄 방법은 마땅치는 않지만, 과거 엄청나게 어려운 상황에서도 외국과의 협상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둔 사례를 돌이켜본다면 협상 전략이나 전술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가장 먼저 거론해야 하는 외교 협상의 모범 사례는 993년 진행된 고려와 거란의 전전 협상이다. 당시 협상 과정을 재구성해 보자.

 

993년은 고려 제6대 국왕인 성종 임금 13년에 해당한다. 당시 고려 북방에 위치한 거란이 왕실 외척 집안의 전쟁 영웅인 소손녕을 사령관으로 삼아 고려를 침공했다. 이에 맞서 고려는 평양에 전쟁 사령부를 차리고 대책 방안을 논의했다.

 

그런데 고려 고위 관리들 가운데 다수는 거란의 군사력이 너무 강력하다면서 맞서 싸우는 것은 하책이고 항복하는 것이 상책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런 의견이 무조건 엉터리라고 볼 수 없는 것이 소손령의 협박 내용을 보면 거란군이 80만 명이어서 고려가 도저히 상대할 수 없다는 부분이 포함돼 있다.

 

그러나 항복에 반대한 관리도 존재했다. 그중에 유명한 사람이 바로 서희 장군이다. 서희 장군은 ‘거란군이 왜 침공했는지 이유도 명백하지 않은 상태에서 먼저 항복하는 것이 옳지 않다’면서 ‘거란의 침공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선결과제라고 지적하고 그러기 위해 거란군에 협상 대표를 보내야 한다고 건의했다.

 

성종은 좋은 의견이라면서 거란의 침공 의도를 파악하는 임무를 누가 수행할 것인지 질문했다. 그러나 신하들 가운데 다수가 서 장군이 의견을 냈으니 서 장군이 가라고 등을 떠밀었다. 결국 서희 장군이 협상 대표가 돼서 거란의 전쟁 사령부를 방문하게 됐다. 그러나 서희 장군은 거란 사령부에 도착하고 협상장 안내를 받고는 화를 내면서 불만을 토로했다. 거란의 회의장을 보니 남북 방향으로 테이블이 배치됐고, 소손녕은 상석인 북쪽 의자에 앉고 자신은 하석인 남쪽 의자에 앉게 돼 있는데 이는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동양 사상에서 북이 상급자가 남은 하급자인데, 소손녕은 거란왕을 대리하고 자신은 고려왕을 대리하는 만큼 상하로 구분하게 앉을 것이 아니라 동서 방향으로 대등하게 앉아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이후 서희 장군은 거란 진영 밖에서 야영을 하면서 거란의 태도 변화를 촉구했다. 결국 소손녕이 협상 테이블을 동서 방향으로 변경함으로써 공식 협상이 시작됐다.

 

협상이 시작되자 소손녕은 과거 고구려가 만주와 한반도 일대 대제국인데, 거란이 바로 고구려를 계승한 대국인 만큼 소국인 고려는 거란에 조공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서희 장군은 그것은 잘못된 말이라면서 적극 반격에 나섰다. 서 장군은 고구려의 후신은 고려로 나라 이름 자체가 고려로 동일하다고 강조했다.

 

고구려는 장수왕 시기에 고려로 국가명을 변경한 바가 있어서 궁예나 왕건 태조도 고려라고 표기한 것이다. 서희 장군은 또 고려는 평양을 서경으로 지정해서 고구려 후신이라는 점을 강조했다면서 그에 비해 거란은 고구려를 계승했다는 표시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거란이 원하는 것이 조공이라면 고려는 조공도 할 수 있지만, 고려와 거란 사이에 거주하는 여진족 때문에 조공 사절단을 파견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소손녕은 고구려 계승 문제에 대해서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단지 고려 사신이 거란으로 조공을 올 수 있도록 여진족을 해당 구역에서 몰아내는 작전을 전개했다. 그 결과 평안도가 한국 영토로 남게 된 배경이 된다.

 

또 하나 한민족 역사 중에서 가장 위대한 외교 협상을 꼽으면 고려 제24대 국왕 원종 사례를 거론할 수 있다. 원종은 국왕 취임 전인 1259년 부친이고 국왕인 고종의 명을 받아 몽골 제4대 황제인 뭉케 칸을 만나 항복 절차를 밟기 위해 지금의 베이징 근처를 여행 중이었다.

 

그러나 신장 위구르 지역에서 전쟁을 지도하던 뭉케 칸은 고려 태자가 도착하기도 전에 사망하는 일이 벌어진다. 뭉케 칸이 사망하자 그의 형제 가운데 막내인 아릭부케가 제5대 칸으로 즉위했는데, 형제 중에 두 번째인 쿠빌라이가 반기를 들면서 내전이 발생했다. 결국 고려 태자는 쿠빌라이와 아릭부케 둘 중에 누구에게 항복을 해야 할지 알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다. 이때 고려 태자는 과감하게 쿠빌라이 편을 들었고, 쿠빌라이는 쌍수를 들어 환영하면서 고려 태자에게 최대의 혜택을 베풀겠다고 약속했다.

 

그 덕분으로 고려는 국가 보전 및 국명 유지, 왕씨 혈통 존중, 각종 조공과 병력 차출 의무에서 면제를 받게 됐다. 만약 고려 태자가 아릭부케를 지지했다면 고려 왕씨는 아마도 왕통이 끊어졌을 가능성도 있었다. 한순간의 외교 협상이 국가 운명과 씨족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고려 태자는 어떻게 해서 쿠빌라이를 지지했을까. 고려사는 그 배경을 자세하게 기술하지 않고 있지만, 미뤄 짐작하면 세 가지 정도 특징을 꼽을 수 있겠다.

 

첫째, 전쟁으로 승부가 나는 세상인 만큼 고려 태자는 군사력을 중시했다. 둘째, 사전에 정보 수집 활동을 통해 쿠빌라이 군사력이 압도적이라는 점을 확인했다. 셋째, 쿠빌라이는 권력의 정당성 측면에서 동생인 아릭부케에 비해 결함이 많았던 만큼 고려의 협력을 절실하게 필요로 했다는 점에 주목할 수 있다. 실제로 쿠빌라이는 고려 태자의 항복 의사 표시에 대해 “고려는 만 리나 되는 큰 나라로 예전에 당 태종도 함부로 제압하기 어려운 나라였는데, 오늘 고려 왕자가 나에게 와서 항복하니 이는 하늘의 뜻이다”라면서 기뻐했다.

 

서희 장군의 외교 협상 사례와 원종의 외교 협상 사례를 보면 몇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국내 정치적으로 강고한 군사력이 배후에 깔려 있었다. 둘째 외교 협상 상대의 강력한 위세에 눌리지 않고 배짱을 부리면서 협상에 임했다.

 

이와 관련해 협상 대표는 협상의 주요 변수가 되는 사안에 대해 상당히 높은 수준의 지식을 보유하고 협상에 임했다. 셋째, 협상 상대의 약점과 협상 목표에 대해 매우 신빙성이 높은 정보를 확보하고 있었다. 넷째, 협상 상대도 반드시 취약점을 안고 있는 만큼, 당장은 어려워도 협상 태도는 훈장을 받을 만한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처럼 고려 시대 외교 협상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중요한 교훈을 준다. 트럼프 행정부의 통상 압박 속에서도 우리 협상 대표들이 정확한 정보와 전략을 바탕으로 침착하고 당당하게 임한다면, 지금의 위기도 돌파할 수 있다. 외교는 힘과 설득의 균형이며, 국익을 지키기 위한 치밀한 준비와 배짱이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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