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성범죄 근절 핵심, 인식 변화와 처벌 강화
인터넷 보안 메신저 텔레그램 속 여성 성 착취 동영상 사건, 이른바 ‘n번방’ 사건이 터진 이후 가해자와 공범에 대한 신상 공개 논란과 함께 가장 큰 이슈가 된 것은 이들에 대한 처벌 수위였다. “n번방은 판결을 먹고 자랐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그동안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이 지금의 ‘n번방’ 사태를 만들었다는 지적이다. 청소년성보호법 제 11조는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을 제작·수입 또는 수출한 자는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하도록 돼 있다. 법정형으로는 무기징역도 가능하다. 하지만 현실은 관대했다. 90% 정도는 실형이 아닌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최근 ‘n번방’ 핵심 운영자 ‘켈리’는 항소심을 포기하며 징역 1년이 확정됐다.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 9만개를 소지하고 2,590여개를 판매해 8,700여만원을 챙긴데에 대한 처벌이 다. 당연히 텔레그램 ‘n번방’ 사건과 같은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규제강화의 필요성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n번방 사건’은 알려진 대로 텔레그램 대화방에서 ‘n번방’이라는 이름으로 디지털 성착취물 공유한 사건이다. ‘박사’로 알려진 운영자 조주빈은 미성년자가 포함된 여성들의 성착취 동영상을 제작해 가상화폐를 받고 유포한 혐의로 공범 13명과 함께 검거됐다. 피해자는 총 74명이며, 이 중 16명이 미성년자였다.
또 ‘n번방’ 사건의 심각성은 웹하드, 다크웹, 디스코드 등 새로운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한 디지털 성착취물의 제작·유포는 갈수록 주도면밀해지고, 조직적으로 확대·진화 하고 있는 데에 반해 영상이 한 번 퍼지면 찾아서 삭제하기 어려워 피해가 지속적이라는 점이다. 여기에 디지털 성 착취물 제작·유포의 범죄성에 대한 가벼운 인식으로 앞서 ‘켈리’의 경우처럼 솜방망이 처벌까지 문제가 되고 있다. 결국 디지털 성범죄 근절의 핵심은 인식을 바꾸는 것과 처벌을 강화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세계 각국 디지털 성범죄 처벌 입법화
우리나라를 비롯해 해외 주요국의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처벌 규정을 살펴보자. 대부분 성 착취물에 대해 디지털 성범죄 관련법에 근거해 규율하고 있는데, 미국의 경우 ‘비디오관 음방지법’(Federal Video voyeurism Prevention Act of 2004) 과 ‘연방법’에서 디지털 성범죄 처벌조항을 두고 있다.
영국은 ‘성범죄법’(Sexual Offences Act 2003)과 형법, 아동보호법 (Protection of Children Act 1978)에서 불법촬영과 유포에 대 한 처벌을 규정하고 있다. 특히 호주는 최근 여성, 아동·청소년에 대한 불법촬영과 유포, 성착취 근절을 위해 ‘아동성착취에 관한법‘(Combatting Child Sexual Exploitation Legislation Amnedment Bill)을 제정해 시행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n번방’과 같은 여성, 아동·청소년의 디지털기기의 불법 촬영과 유포에 대해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과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등에서 규율 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보면 성폭력처벌법 제14조에서는 성적 욕망,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촬영물의 반포, 판매, 임대, 제공, 전시, 상영에 대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했다.
또 ‘아동·청소년성보호에 관한 법 률’ 제11조에서는 아동·청소년 음란물 제작, 유통에 대해 무 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영리목적의 판매, 대여, 배포, 전시, 상영은 10년 이하의 징역, 알선한 자는 3년 이상의 징역, 소지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처벌 법안에 ‘성 착취’ 개념 포함시켜야
하지만 우리나라와 주요국들이 디지털 성범죄를 다루는 것을 비교하면 ‘성착취 개념’이 법안에 반영돼 있지 않고, 디지털성 착취물 접근·시청 등에 대한 규제와 처벌강도, 피해차 단과 피해자 보호제도가 미흡하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현행법은 일부 디지털 성범죄를 경미한 범죄로 간주해 수사와 처벌의 실효성이 떨어지며, 실제 피해자 보호 및 피해 차단을 위한 게시물 삭제와 관련한 법적, 행정적 조치가 미흡하다고 비판하고 있다. 따라서 20대 국회 종료 전 혹은 21대 국회가 개원하면 발 빠른 입법적인 조치를 통해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개념 확립부터 처벌 강화까지 신속히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와 관련해 전윤정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디지털 성착취 개념의 입법화 ▲소지·시청·접근 단계적 처벌강화 ▲ 피해차단·보호 위한 사법·행정제도 도입 ▲국민 법감정에 부합형사·사법절차 ▲상시적 감시·신고체계 마련 등을 강조했 다. 우선 지금 카메라 촬영물과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의 용어와 정의에 대해 경미한 범죄로 인식하게 한다는 비판적 지적과 함께 아예 디지털 성착취 개념을 법률에 도입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포르노그래피 등 이미지에 기반한 학대의 개념은 2008년부터 국제사회에서 본격적으로 제기돼 왔다. 이에 따라 성적인 이미지의 동의 없는 촬영, 배포를 ‘학대’의 한 유형으로 정의하고 피해자와 관련된 사람을 위협·협박하고, 조종하기 위해 사용된 것을 성적착취(sexual exploitation)로 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국회에는 ‘아동·청소년이용 음란물’을 ‘아동·청소년성착 취음란물’로 변경하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 지난해 11월 발의돼 국회 여성가족위원 회에 회부돼 있다. 개정안 제안이유는 “우리나라 수사기관이 단순히 ‘수사결과 발표 및 검거’라는 표현으로 아동 대상 성범죄, 특히 아동음란물에 대한 수사기관의 안이한 인식을 나타내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어 “현행법은 ‘아동·청소년 이용음란물’을 아동·청소년 등이 등장해 성교행위 등의 성적 행위를 하는 내용을 표현하는 것으로서 필름·비디오물 등을 통한 화상·영상 등의 형태로 된 것을 말한다”며 “그러나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음란물은 그 자체로 아동·청 소년에 대한 성착취 및 학대를 의미한다. 막연히 아동·청소년을 ‘이용’하는 음란물의 의미로 가볍게 해석되는 경향이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을 ‘아동·청소년성착취음란물’이라는 용어로 바꿔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이 ‘성착취·성 학대’ 임을 명확하게 하고 중대 범죄로서 정의를 명확히 하겠다”고 설명했다.
처벌 규정도 강화해 ‘아동·청소년이 용음란물’ 알고도 소지한 사람은 기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서 6개월 이상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상향했다. 특히 ‘단순 소지도 공범’으로 처벌하도록 했다. 또한 현행법이 성인과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불법촬 영, 유포, 소지 등에 있어 처벌을 구분해 다르게 정하고 있지만, 영상에 대한 시청과 접근에 대해서는 별다른 규제가 없는 점도 문제다.
주요 국가들은 디지털 성 착취물 피해의 심각성, 지속성, 확장성을 고려해 다운로드를 포함한 접근과 시청, 관음에 대해서도 처벌규정을 두고 있다. 아울러 가해자 처벌 뿐만 아니라 실제 피해 차단을 위한 게 시물의 삭제와 같은 대책도 중요하다. 유포 후 이뤄지고 있는 현행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삭제조치가 효율성과 신속성을 인정받고 있지만, 법원이나 행정기관의 업체에 대한 처벌 등의 절차가 보완돼 성 착취물의 무제한적인 확대와 유포에 적 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형사·사법절차 역시 개선돼야 한다. 디지털 성착취물을 영리 목적으로 유통하고 수익을 얻는 경우, 함정수사 등을 이용한 검거를 가능하게 하고, ‘n번방’과 같이 유통업자나 제작자 등 죄질이 심각한 경우 적극적으로 신상을 공개하며 수익금의 몰수, 추징 등 규정의 개선해야 한다. 특히 국민의 법 감정에 부합하는 법원의 양형기준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국민 법 감정 부합하는 대안 마련 시급
전 조사관은 “디지털 성범죄는 웹하드, 다크웹, 텔레그램 등을 통해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들며 기존의 상식과 법체계를 넘어서 일어나고 있어 특별법 형태의 도입이 필요하다 는 의견도 있다”라며 “영국과 호주에서는 관음 행위에 대한 법률이 가해자 관점에서 협소하게 정의돼 경미한 처벌에 머 물러 있다는 비판이 제기돼 최근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접근과 태도를 피해자 관점으로 전환하는 중”이라고 언급했다.
이어 “호주의 2018년과 2019년의 디지털성범죄관련법의 개정은 디지털 성착취물에 대한 강경한 대응과 피해차단·보호를 중심에 두고 있다”라며 “우리도 이러한 견해를 적극적으 로 참고해 입법적 공백을 메우고, 국민법 감정에 부합하는 정책적 대안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MeCONOMY magazine May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