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이코노미 문장원 기자> 올해 자율형 사립고등학교(이하 자사고)의 지정 취소가 잇따르고 있다. 자사고 지정평가는 5년마다 진행되는데, 6월 말 기준으로 재 평가를 받았거나 받을 예정인 자사고 24곳 중 벌써 3곳의 자사고 지정이 취소됐다. 지난 6월20일 전주 상산고와 경기 안산 동산고, 부산의 해운대고가 자사고 타이틀을 잃었다. 이러한 흐름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어느 정도 예상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당 시 ‘특수목적고의 일반고 전환’을 공약으로 내걸었고, 국정과제에도 반영했다. 자사고의 연이은 지정 취소에 교육계와 시민사회에선 자사고 도입 당시 불거졌던 ‘수월성 교육’과 ‘평준화 교육’ 논쟁이 재현될 조짐도 보인다. 자사고 정책과 개선 방향에 대해 살펴봤다.
MB정부의 산물 ‘자사고’
자사고는 기존 일반 사립 고등학교와 달리 교육과정과 학교 운영에 더 많은 자율권을 보장받는 학교다. 지난 2008년 이 명박 정부가 추진한 ‘고교다양화 300프로젝트’ 중 하나로 도 입됐다. 참고로 이명박 정부의 ‘고교다양화 300프로젝트’는 기숙형 공립고 150개, 마이스터고(산업수요 맞춤형 고등학 교) 50개, 자율형 사립고 100개 등 300개의 다양화된 고교 유형의 추진 계획을 제시했지만, 박근혜 정부 시절 자사고가 고교 서열화와 일반고 ‘슬럼화’ 현상을 부채질했다는 지적에 사실상 폐기됐다.
지금까지 자사고로 지정된 학교는 2010년부터 2015년까지 총 54개교다. 이 중 2018년까지 자발적으로 지정 취소를 신청하거나 기준미달로 재지정이 취소된 학교는 12개교다. 이들 12개교는 일반고로 전환됐다. 연도별로 살펴보면, 2010년 26개교, 2011년 25개교, 2013년 1개교, 2014년 1개교, 2015년 1개교가 지정됐다. 시·도별로 살펴보면, 서울이 27개교로 가장 많다. 그 뒤를 대구 4개교, 광주, 대전, 전북이 각각 3개교, 부산, 인천, 울산, 경기, 충남, 경북이 각각 2개교, 강원, 전남이 각각 1개교였다.
자사고의 재지정 또는 취소를 위한 평가는 학교별로 5년마다 실시한다. 2019년에는 서울과 전북 등 11개 시도에서 24개교 에 대한 재지정 평가가 실시 중이거나 예정에 있다. 6월 말 기준으로 벌써 전주 상산고와 경기 안산 동산고, 부산 해운대 고등에 대해 취소 결정이 내려졌는데, 재평가 자사고가 13개 교로 가장 많은 서울의 평가 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아 앞으 로 더 많은 자사고의 재지정 취소 사례가 나올 것으로 전망 된다.
또다시 불거진 ‘수월성 교육’ vs ‘평준화 교육’
연이은 자사고 취소 결정에 교육계와 시민사회에서는 ‘수월 성 교육’과 ‘평준화 교육’ 논쟁이 다시 불붙었다. ‘수월성 교육’ 은 뛰어난 학생을 선별해 뛰어나게 만드는 교육으로 요약할 수 있다. 반면 ‘평준화 교육’은 고교 서열화를 없애고 모든 고등학교에서 같은 수준의 교육을 실시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두 관점은 모두 긍정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으며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평준화 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나라에서도 수월성 교육이 병행되고 있다. 핀란드와 캐나다에서는 별도의 우수 학교를 만들지 않고 학교 안에서 학생들이 자기 능력에 맞춰 교육 기회를 부여받고 있다.
문제는 자사고와 일반고의 계열화다. 당초 취지에서 벗어나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집 아이들이 비싼 사교육을 받고 비싼 학비를 내야 자사고에 입학하는 현상이 보편화됐다. 그렇지 못한 아이들은 일반고에 진학할 수밖에 없다. 또 교육 과정의 자율성을 받은 자사고는 입시 위주의 교육에 몰입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는 것도 큰 차이를 불러온다.
전북교육청이 지난 6월20일 전주 상산고에 대한 재지정 취소 결정을 내리며 쟁점이 된 것 중 하나가 바로 ‘사회통합전형’이다. 사회통합전형은 입학정원의 일정 비율을 기초생활수급 권자, 차상위계층 등 사회적 배려 대상자로 뽑는 것이다. 상산고는 교육부 지정위원회 심의 과정에서 31개 평가지표 가운데 ‘사회통합전형’ 지표에서 4점 만점에 1.6점을 받았다. 상산고가 재지정평가 기준점인 80점에 0.39점이 부족한 79.61 점으로 탈락한 것을 놓고 보면 치명적인 부분인 셈이다. 하지만 상산고는 처음부터 자립형 사립고에서 출발해 자율형 사립고로 전환했기 때문에 사회통합전형 선발 의무가 없다. 교육청이 의무사항이 아닌 사회통합전형 선발을 상산고에 무리하게 적용했다는 반발이 나오는 이유다.
한국교총도 상산고의 자사고 취소 결정에 “불공정하고 불평등한 행보”라고 비판했다. 하윤수 교총 회장은 6월25일 연임 기자회견에서 “평준화 교육과 고교체제 변화에만 경도돼 교 육을 ‘평둔화’(平鈍化)시키고 있다”고 했다. 하 회장은 “우수 학생들의 해외유출이 심각해 수월성 교육을 위해 도입한 것이 자사고”라며 “교육의 다양화와 기회 확대, 질 높은 교육 제공이라는 다양한 특수목적고등학교의 도입 취지”라고 했다.
반면 상산고를 비롯한 자사고 지정 취소를 찬성하는 입장에선 교육의 평등과 고교 서열화 등을 언급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자사고는 고교서열화체제 강화, 입시교육 기관화, 학부모의 교육비 부담, 고교입시를 위한 사교육 팽창 등의 문제로 공교육 파행을 낳았다”며 “자사고 폐지 공약은 대다수 대선 후보가 공약으로 내세울 만큼 국민적 지지가 높았던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특권학교는 폐지되고 모두가 평등한 교육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교조 전북지부 등 28개 지역교육단체가 참여한 ‘상산고, 자사고 폐지·일반고 전환 전북도민대책위원회’ 역시 입장문에 서 “자사고는 연간 학비가 1,000만원이 넘는 부자들의 귀족 학교로 부모의 돈에 의해 아이들의 우열이 결정되고 나아가 부모의 신분을 세습시키는 수단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교육부는 시도교육청의 결정을 존중해 자사고 재지정 취소에 동의하고 자사고뿐만 아니라 외고, 국제고 등의 특권학교 폐지를 선언해야 한다”고 했다.
자사고가 입시학원처럼 변했다는 지적도 있다. 이범 교육평론가는 지난달 27일 YTN 라디오 ‘이동형의 뉴스 정면승부’와 가진 인터뷰에서 “상산고가 의대를 많이 보내서 문제가 아니다. 의대를 보낸 방식이 재수 종합학원을 방불케 하는 수능 위주의 교육을 많이 시키는 것”이라며 “그것이 진짜 자사고의 설립 취지와 맞는 것이냐, 자사고에 학생 선발권을 줘 서 성적 좋은 학생을 뽑아서 그에 상응하는 특색 있는 교육을 하라는 것인데, 그런 취지에는 별로 부합하지 않는 교육이라고 본다”고 지적했다.
이 평론가는 “제가 상산고에 다니는 학생들도 인터뷰를 많이 해봤다”며 “상산고의 수업은 전체적으로 상당히 고질적인 수능 문제풀이, 주입식 교육에 가까운 수업들이 많다. 그래서 학생들도 자연히 그냥 수능 위주로 뽑는 전형으로 대학에 들어가게 된다”고 했다. 이어 “그러면 결국 이것이 우리가 자사고에 특권을 주면서까지 옹호해야 하는 바람직한 미래 교육의 방향인가? 대한민국 교육에 크게 기여했다고 볼 수 있나? 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자사고를 둘러싼 또 다른 쟁점들
자사고 폐지에 대한 찬반 주장과 함께 현행 자사고 제도 자체가 가지는 문제들을 살펴보자. 우선 학생·학부모 수요에 비해 자사고 수와 학생 정원이 많다는 점이다. 앞서 살펴본 것 처럼 자사고 지정이 취소된 12개교는 지원자 수 감소 등이 그 이유였다. 2018년 4월 기준으로, 자사고 43개교(4만2,280 명)는 (구)자립형 사립고에서 전환된 자사고의 학교 수(7개 교)와 학생 수(5,516명)에 비해 학교 수는 약 6배 많고, 학생 수는 약 7.7배 많다.
다음은 특정지역 편중 현상이다. 현재 지정된 자사고의 50% 이상이 서울에 편중돼 있다는 것이다. 서울에는 2010년 14개교, 2011년 13개교 등 총 27개교의 자사고 설립됐는데, 지난 4월 기준으로 22개교가 운영 중이다. 이는 전국 자사고 42개교 중 52.4%에 달하는 수치다. 특정지역에서 자사고 비중이 커지면 해당지역의 일반고에 대한 인식이 상대적으로 낮아져 결과적으로 자사고·특목고에 대한 입시경쟁 과열과 사교육 비가 증가라는 악순환이 반복될 우려가 있다.
특히 현행 자사고의 학생 선발 방법이 일반고에 비해 성적이 우수한 학생을 우선적으로 선발할 수 있는 특혜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도 계속되고 있다. 자사고는 학생을 선발할 때 필기시험을 금지하고 있지만, 중학교 내신 등 성적 또는 실력이 반영된 입학전형을 실시하고 있다. 서울 등 대부분의 시 도에 서는 1단계 전형을 추첨 방식으로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2단계 전형 등 자기소개서나 면접 등을 실시하는 과정에서 중학교 내신 등 성적이 우수한 학생이 선발되고 있고, 이에 대해 건학이념에 부합하는 인재선발 및 육성 등 자사고 정책의 도입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또 자사고의 학생선발 시기와 관련 일반고(후기 실시)에 비해 자사고(특목고 등과 함께 전기 실시)에 대한 우선 선발을 허용해왔고, 이에 대해 자사고가 성적 우수 학생을 우선 선발 하도록 보장하는 특혜라는 지적도 있다. 이런 지원 방식은 일반고에 대한 학력 저하 및 학생·학부모의 기피 현상을 야기해 자사고와 일반고 사이 서열화를 심화시킨다는 것이다.
이에 정부는 지난 2017년 자사고 선발 시기를 일반고와 동일한 후기로 변경하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해 시행했다. 자사고 학교법인들은 크게 반발하며 헌법소원까지 제기했지만 기각됐다. 헌법재판소는 “동시 선발 조항은 동등하고 공정한 입학전형의 운영을 통해 ‘우수 학생 선점 해소 및 고교서열화를 완화’하고 ‘고등학교 입시경쟁을 완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상산고의 경우처럼 입시 위주 교육에 대해서도 교육과정 운영의 자율성을 일부 제한하거나 재지정 평가 등을 통해 정책 목표에 부합하는 교육과정이 운영되도록 관리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아울러 교육 기회의 불평등성 해소를 위해 사회통합전형 대상자에 대한 학비지원(수업료와 입학금, 기숙 사비 등)을 확대하고, 학교 적응을 지원하는 학사 운영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자사고와 일반고 함께 발전하는 방안 모색해야
자사고는 무조건적인 폐지의 대상이 아니다. 수월성 교육과 평준화 교육이 양립 가능하듯 자사고의 장점을 살려 일반고 와 경쟁하며 발전할 필요가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 6월 현안분석 보고서에서 “적정규모의 자사고와 일반고가 함께 경쟁하며 발전하는 고교체제 구축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대통령의 자사고 대선 공약은 설립목적 달성이 어렵다고 판단되는 특목고·자사고를 단계적으로 일반고로 전환하고, 일반고와 특목고 및 자사고 를 고교입시 단계부터 공정하게 경쟁해 일반고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 일반고의 경쟁력을 회복시키겠다는 것으로 해석 된다”고 밝혔다. 이때 공정한 경쟁의 전제는 우수 학생 우선 선발 등의 특혜 폐지가 포함된다.
다만 보고서는 “고교평준화제도 아래에서 자사고를 일반고 로 일괄 전환할 경우 특정 지역(서울 강남 등) 또는 특정 고교가 그 역할을 대신하게 될 우려가 있다”며 “이로 인해 전체적인 일반고의 경쟁력 강화라는 목표 달성이 어려울 수 있다” 고 했다. 그러면서 “이를 종합적으로 고려한 일반고와 자사고 의 균형 있는 발전 방안을 마련해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MeCONOMY magazine July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