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15일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오클라호마(Oklahoma) 주의 Durant 고등학교를 방문해서 한국의 교육을 극찬하였다고 한다. 칭찬한 내용을 간단히 소개하면, “한국에서는 교사들에게 의사만큼 봉급을 주고, 교육(교사)을 최고의 직업으로 여긴다”였다. 우리의 가장 가까운 우방이기도 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강한 나라의 대통령이 우리 교육을 칭찬하였다니 고무될 만하다.
오바마 대통령이 이번에 처음 우리나라의 교육을 칭찬한 것은 아니다. 2011년 3월에는 버지니아(Virginia)주의 Kenmore 중학교를 방문하여 “한국의 교사는 국가 건설자(nation builders)로 알려져 있다. 미국에서도 교사들을 한국의 교사들처럼 존중하여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고 한 적이 있다.
한국의 교육에 대하여 여러 번 칭찬을 한 것을 보면 우리나라 교육에 대한 강한 인상은 여전한 것 같다. 서양 교육의 역사에서도 교사의 역할을 매우 중요시한 기록이 있다. 1871년 프랑스와 독일 사이에 벌어진 보불전쟁(普佛戰爭)에서 프랑스는 독일에게 크게 패하였다. 그 이후 프랑스 정치가 레옹 강베타(Leon Gambetta)는 의무교육의 필요성을 주장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 “이번 전쟁은 독일 교사들의 승리였지만 프랑스의 교사들은 다음 전쟁에서 승리하여야 한다.”
다시 미국의 얘기로 돌아가 보자. 미국이 어떤 나라인가! 3억명이 넘는 인구에 다양한 인종과 다양한 언어, 그리고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국가다. 경제 뿐만 아니라 여러 부문에서도 세계 1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나라다. 소련연방 체제가 붕괴된 1990년대 이후에는 글로벌화가 급진전하면서 세계의 경찰이라고 불릴 정도로 미국의 영향력은 더욱 강해지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글로벌화(Globalization)를 미국화(Americanization)라고 부르는 것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우리교육이 과연 미국의 대통령에게 칭찬을 들을 수 있을까?
정보력은 또 얼마나 대단한가!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정확한 정보수집능력을 자랑하는 NSA(National Security Agency)와 최첨단 정보기기를 보유하고 있는 나라이다. 정보력을 가늠할 수 있는 한 가지로 인공위성 수만 보더라도 확연히 국력의 차이를 알 수 있다.
미국의 CSSI(Center for Space Standard & Innovation)가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인공위성 수에서는 1957년에 스푸트닉 1호(Sputnik 1)를 최초로 쏘아올린 러시아가 1천450개(2012년 10월 기준)로 1위이다. 미국은 러시아보다 한 해 늦은 1958년에 최초의 인공위성 엑스플로어 1호(Explorer 1)를 쏘아 올렸고, 인공위성 수에서도 1천113개(2012년 10월 기준)로 비교 열세이기는 하지만, 러시아가 소비에트 연방 시대의 인공위성을 포함한 숫자인 것을 감안하면 미국이 단연 톱이다(참고로 2012년 10월을 기준으로 할 경우 각국의 인공위성 수는 3위 일본 134개, 4위 중국 133개, 5위 프랑스 56개이며, 우리나라는 11개로 16위임).
이처럼 정보력이 뛰어난 미국이 사실과 다른 정보를 대통령에게 주어 그런 평가가 있었다고는 예상하기 힘들다. 왜냐하면 모든 사회현상을 과학적으로 이해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으며, 합리성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미국이므로 대통령의 한마디 한마디도 과학적인 증거가 뒷받침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오바마 대통령의 칭찬에 고무될 것만은 아니다. 너무 극과 극으로 평가가 나뉘는 교육 현실을 다면적으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과연 우리가 미국 대통령에게 칭찬을 듣는 교육을 하고 있는가를.
짧은 기간에 이룩한 교육적 성과는 인정해야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의 교육이 개선되어야 할 필요성을 우리나라와의 비교를 통하여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우리나라보다 교육적 성취가 높은 나라도 있는데 굳이 우리나라를 선택하여 칭찬의 대상으로 한 것에 대하여는 그 내용이야 어떻든 자랑할 만하다. 미국의 공교육은 우리보다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1900년이 되기 전까지 미국의 모든 주에서 의무교육제도를 도입하였으므로 2004년에야 겨우 중학교 의무교육을 완성한 우리나라와 비교할 바가 못 된다. 교육재정 등 교육조건도 우리나라에 비하여 크게 나쁘지 않다.
초등학교를 기준으로 할 경우 1인당 연간 교육비도 1만958 USD로 우리나라의 6천976 USD에 비하면 월등히 높다(OECD Education at a Glance 2014). 많은 민족과 인종을 가진 다문화 국가이기 때문에 사건과 갈등이 늘 표면화되어 있으면서도 사회는 대체적으로 잘 유지되고 있다. 많은 색깔을 가진 나라이므로 더 채색 좋은 그림이 그려지는 것 같아 존경스러움 마저 생긴다. 하나의 언어로 소통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수많은 언어가 사회생활에서 혼용되므로 어떻게 의사소통이 되고 정보공유가 되는 지가 신기할 따름이지만 정보유통도 생각보다 빠르다.
필자도 여러 번 경험을 하였지만 미국에서 거리 쇼핑을 하거나 패스트 푸드점에 가서 영어로 그럴듯하게 주문을 하는 상상을 하였다가는 실망하기 일쑤이다. 그런데도 사회는 잘 유지되는 것을 보면 한 개의 언어로 소통하면서도 간혹 막히는 구석이 많은 우리와 비교하면 의외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미국에서 고급 정보기술이나 네트워킹 시스템이 많이 개발되는 것도 이러한 사회적 구조가 반영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통합하기 어려운 사회인 것 같으면서도 오히려 통합에 가속도가 붙는 사회이다. 사회적 치유 능력과 자정노력도 대단한 것 같다.
교사의 사회적 대우를 칭찬한 것일 뿐
최근 인종 간의 갈등이 안타까운 사건으로 이어지는 등 사회가 불안한 측면도 가지고 있지만 많은 젊은이들은 미국에서 공부하기를 희망하고 미국에서 영원히 살기를 원하는 젊은이들도 적지 않다. 학교 중퇴율도 다른 나라에 비하여 높고 대학진학률도 그렇게 높지 않은데 세계의 석학들이 모여 있고 세계의 지식이 생산되는 곳이다. 그런데 오바마 대통령은 우리나라의 교육에서 배워야 한다고 하였다. 우리나라에서 배워야 할 점이 없는 건 아닐 것이다.
미국에서 흑인이나 남미계 이민자들의 학교이탈현상이나 학력저하가 사회적 문제가 되어 있는데 한국인을 포함한 아시아계 이민자들의 성적은 백인 못지않게 뛰어나므로 아시아의 교육이 대단한 것만큼은 사실이다. 아울러 정량적 측면에서 보아도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은 미국이 부러워할 만하다. 고등학교까지는 거의 완전 진학률을 보이고 있고, 대학 진학률도 80%가 넘으니 말이다. 그런데 오바마 대통령이 칭찬한 교사의 급여는 다른 나라에 비하여 매우 높다.
대학에서 교육을 전공하고 국가자격을 취득하고 그 어려운 임용시험을 거쳐 교사가 된다. 교사는 단순한 근로자가 아니라 어린이나 청소년들의 개성과 인격 형성에 큰 역할을 하는 인생의 안내자이다. 그러므로 낮은 대우를 받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미국 교사들의 높은 이직률, 낙후된 지역의 교사 부족현상 등을 생각한다면 엄청난 경쟁률과 교사가 되고나면 정년까지 안정된 생활이 가능하며 사회적 대우도 뒤처지지 않는 우리나라 교원은 부러움의 대상일 수 있다.
교사가 받는 대우만큼이나 학생들이 개성과 가치도 대우받아야...
그런데 미국의 교사 급여가 우리나라보다 월등하게 낮은 것일까? 2012년 유네스코 조사자료에 의하여 초등학교 교사경력 15년을 기준으로 비교해 보자. 우리나라 교사의 연간 급여는 4만6천338 USD이고 미국은 4만5천226 USD이다. 일본은 4만4천788 USD로 우리나라와 미국보다 급여 수준이 낮은 걸로 나타나고 있다.
1인당 명목 GDP 비율로 놓고 본다면 우리나라는 159.2%이고 미국은 95.9%이다. 일본도 132.8%로 높은 편이다. 세 나라를 비교대상으로 할 경우 우리나라 교사들은 국민 평균 수입에 비하여 많이 높은 편이며 미국은 상대적으로 낮은 대우를 받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미국이 1983년에 위기에 선 국가(A Nation at Risk)를 발표한 이후 학교의 책무성(accountability)을 확보하는 대신에 교원 단체의 비협조를 무마하기 위하여 급여 인상 등 교사들의 사회적 지위를 상당한 수준으로 개선하였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에 비하여 낮으니 교원들의 대우만을 놓고 본다면 오바마 대통령의 한국 교육 평가는 틀리지 않다. 그러나 우리나라 교육에서 교원 개개인의 자질과 능력에 왜 문제가 없겠는가? 국가 자격을 가지지 않는 자는 교사가 될 수 없는 폐쇄된 임용구조, 학생들의 교육적 성취와는 무관한 책무성 구조, 국가공무원으로서 누리는 안정성, 자기 방어적 집단으로서 교원단체 등은 종종 교육에 관한 한 권리의 주체이면서도 객체에 불과하게 취급당하는 학생과 학부모를 실망하게 하고 있다.
우리 교육이 경쟁력을 가지려면 교육이 개방되고 교육적 활동이 개방되고 교직 입직이 개방되어 교육에 경쟁력이 도입되어야 한다. 그리고 교원 간, 학교 간 경쟁력을 통하여 교육력을 강화하여야 한다. 교육력 이란 좋은 고등학교, 명문대학에 진학시키는 것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한 개인이 자기 생활에 만족하면서 글로벌 사회에서 경쟁력 있게 살아가는 대한민국 국민이 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많은 교육개혁을 하면서도 진정 해야할 개혁은 하지 못하는 것이 이상할 따름이다.
MeCONOMY Magazine August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