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ID-19의 공습
인류는 유사 이전부터 여러 가지 감염병으로 고통받아왔다. 13세기 한센병, 14세기 페스트, 17∼18세기 천연두, 19세기 결핵, 콜레라, 20세기 이후 인플루엔자, 에이즈가 대표적
인 감염병이다. 이중에서 가장 인류에게 많은 희생을 준 것은 14세기(1347∼1351년)의 페스트와 20세기 전반(1918∼ 1920년)의 스페인 인플루엔자이다. 이 두개의 감염증은 세계 인구의 감소로 이어졌는데, 페스트로 인류는 7,500만명이 사망하였고 스페인 인플루엔자는 5,000만명의 희생이 있었다.
지난해 말부터 우리 사회 전반에 심각한 타격을 주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 COVID-19(COVID-19는 Coronavirus Disease 2019의 적색 글씨에서 유래한 용어)가 맹위를 떨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3월11일 팬더믹(Pandemic, 감염병의 세계적 대유행)을 선언했다. 4월26일 현재 전 세계에서 289만명이 감염되고 사망자는 20만명을 넘어섰다. 사망자가 가장 많은 국가는 미국으로 5만4,000명이며,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는 2만명을 훨씬 넘겼고 영국도 사망자가 2만명이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사람·물건의 국가 간 이동이 차단되고 국 내외의 경제활동은 억제상황이 되어있다. 국제금융시장의 불안정화가 지속되고 있으며, 기업의 자금사정이 악화되어 고용과 소득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사태가 수습된 후에도 경제의 저성장은 장기화할 수 있다는 비관적인 전망이 줄을 잇고 있다.
외국의 경제분석에 의하면 경제활동 억제 피크아웃이 6월 말이면 전 세계의 경제손실은 GDP의 2.2%에 해당하는 2,000조 원, 피크 아웃이 12월 말이면 GDP의 3.4%인 3,200조원의 경제손실이 생긴다고 한다. 경제손실보다 더 무서운 시나리오는 코로나바이러스 종식 후 국제사회에 생길 큰 파랑이다. 배타적풍조가 강해지고 감염원을 둘러싸고 미국과 중국의 대립으로 세계의 분단이 한층 더 가속할 것이라 는 우려도 한층 많아지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비관주의의 감염
1980년대 이후 급속하게 진전한 세계경제의 글로벌화라는 조류가 역류하여 자국보호주의로 나아갈 가능성 또한 크다. 강대국보다 약소국에 더 많은 피해가 예상되고, 특히 수 출에 의존하는 우리 경제도 그 파고는 피해가기 어렵다. 코로나바이러스는 IMF 위기보다 더 큰 충격을 우리나라에 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IMF 금융위기와 2008년의 리먼사태 때에는 국경이 열려있었는데, 이번에는 각국의 국경이 닫혔으며 언제까지 이러한 상황이 지속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경제의 타격과 그 후유증으로 인한 고용 불안정, 가계부채의 증가 등 생활 전반에 네거티브한 일들이 더 많을 것이라는 비관주의적 관점이 커지고 있다. 이번 코로나바이러스는 경제적 피해와 더불어 사회전반에도 많은 희생을 예고하고 있다. 신규채용 등 고용구조가 나빠지고 실업이 장기화할 경우 소득격차는 확대되고 결과적으로 사회의 분단 현상은 더 심하게 나타날 것이다.
한강의 기적을 이룬 나라라는 자부심을 쉽게 꺾어버린 사건이 IMF 외환위기였는데 IMF 외환위기라는 쓰나미는 우리 사회의 매커니즘과 국민들의 가치관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 지금 출생아 수가 적은 것도 IMF 외환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혼인 건수는 1991년 41만6,872건에서 IMF 위기 직후인 2000년에 33만2,090건으로 큰 폭으로 감소했으며, 거꾸로 이혼 건수는 1991년 4만9,205건에서 IMF 직후인 1998년 11만6,294건, 2003년 16만6,617건으로 크게 늘었다. 가정해체, 동반 자살, 현실 도피 등 우리에게 남긴 큰 상처가 어느 정도 아물기는 하였지만 20년이 더 지난 지금도 현실 세계의 이야기 속에는 그 흔적이 남아 있다.
사회현상을 보는 방법에는 낙관주의와 비관주의가 있다. 낙관주의 사고방식은 나쁜 일은 일시적이며 보편적이지 않다고 만사를 긍정적으로 보지만 비관주의는 자기 자신, 세계, 장 래에 대하여 생긴 나쁜 일은 영속적이며 보편적이라고 보는 사고방식으로 우울한 상태를 동반한다. 하지만 사회는 역동적인 측면이 강하므로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관건은 우리 사회가 비관주의라는 생각의 바이러스 감염을 최소화할 수 있는 비책과 치료요법을 가지고 있는가이다. 특히 비관주의라는 감염병은 한 가지 요법으로 치료가 어렵다는 사실 인식도 중요하다.
COVID-19와 학교교육의 위기
코로나 바이러스는 교육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유네스코(UNESCO)의 발표자료(2020년 4월24일)에 따르면 189개국에서 15억 4,000만명가량의 학생이 학교가 폐쇄되어 등교하지 못하고 재택교육을 받고 있다. 이는 전 세계 학생의 87.9%에 해당한다. 학교에 등교하여 교실수업을 하지 못하는 것 자체로 끝나지 않는다. 한창 성장하는 학생들의 심리적 패닉상태도 우려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바이러스는 블랙박스와 같았던 학교 와 교원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
정보인프라에 막대한 재정을 투입하였으며 각종 국제비교지표에서도 우위를 가진 대한민국이 미흡한 소프트웨어로 학기초 상당기간 혼란을 겪었다. 콘텐츠의 질적 측면도 부끄러운 수준이었다. 어느 대학에서는 국내.외 대학 및 기관에서 자발적으로 공개한 강의 동영상, 강의자료를 무료로 제공하는 서비스인 KOCW(Korea OpenCourseWare)에 6년 전에 공개된 다른 교수가 만든 교육자료를 수업자료로 활용하여 구설에 올랐다.
KOCW강의 콘텐츠는 엄격한 평가를 거친 것이 아니라 교원이 자발적으로 공개하는 것이므로 질 또한 담보할 수 없다. 그러니 등록금을 반환해달라는 학생들의 요구가 나올 수밖에 없다. 과거의 교실에서는 교원의 권위에 의문을 가지는 것은 엄금 되었으며 학생 간에 정보와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것조차도 부정행위가 되었다.
학생들에게 있어 능력이란 지식의 양이 었으며 개인의 경쟁력이란 졸업할 당시에 동료보다 성적이 더 우위에 있느냐 여부였다. 지식을 생산하기 위한 협동이니 보유한 지식의 공유이니 하는 개방적 사고는 필요하지 않았 으며 교양이나 특정 분야의 능력 유무는 전교에서 몇 등이라 는 서열보다도 중요하지 않았다.
이번 코로나바이러스 이후 교원들의 대처방식은 이러한 경직된 교육시스템에서 교육을 받고 교원이 되어 보호된 제도적권위를 학생들에게 맘껏 누렸던 사람들에게 체질화된 행동 양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20세기 후반 이후 학교의 제도적 권위에 의문을 던지는 사회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사회의 성숙, 학부모의 고학력화, 지식습득의 다양화 등으로 교원의 전문성 문제는 늘 도마 위에 올라 있고 그들의 권위는 도전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학교에서교원의 권위와 학생의 권리 간에 충돌 현상이 생기 고 있는 것도 이러한 사회현상과 무연이 아니다.
탈권위의 시대
우리나라 교육에서 이원적가치는 허용되지 않는다. 무엇이 교육인지, 교육적인가의 가치판단은 국가와 정치가 독점하 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결정된 가치의 행사는 학교가 독점하고 있다. 즉 학교는 ‘가치의 제도화’ 그 자체이다. 현재 사교육이 비판을 받고 있는 것도 ‘가치의 제도화’에 도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학교 교육이 본래의 역할을 잘하고 있는지, 과연 우리교육은 국제사회의 변화를 읽고 조류에 맞게 순항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들도 늘어나고 있다.
이반 일리치가 『탈학교론』에서 학교는 기회를 평등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기회의 배분을 독점한다고 비판한 현상들이 우리 사회에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산업사회의 발달과 함께 학력에 의해 결정된 성공이 고등교육의 대중화가 달성된 이후에는 출신학교에 의해 결정되는 현상이 더 심하게 생기고 있다. 학교교육의 권위에 도전하고 있는 것이 칸 아카데미 등과 같은 MOOCs(Massive Open Online Courses)이다. 이러한 온라인 교육 플랫폼은 우수한 교육 콘텐츠가 무료이거나 아주 적은 금액으로 제공하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세계에서 잘 알려진 각 분야 전문가의 엄선된 최신동영상 강의를 실시간으로 시청할 수 있다. 19세기 선진국에서 공교육이 도입될 당시부터 국민의 세금으로 학교운영비를 충당하는 것은 당연시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온라인 교육플랫폼은 기업이나 공익재단의 자금지원을 받아 운영하고 있으므로 국민의 세금을 투입할 필요가 없다. 나름대로 경쟁력을 갖추고 운영되는 자율형사립고를 폐지하기 위하여 한 학교당 수십억 원의 국민 세금을 낭비하는 우리나라의 위정자들에게 교훈이 되는 부분이다.
칸 아카데미는 2006년 구축되어 초기에는 창설자인 살만칸 개인의 비용에 의해 운영되었다. 현재 채널 등록자가 300만 명을 훨씬 넘어섰고 11억명 이상이 시청할 정도로 성장하였는데 개인이 운영하는 온라인 플랫폼이 미국의 명문대학인 스탠퍼드 대학이나 매사추세츠 공과대학 등이 운영하는 플 랫폼보다 더 많이 시청하고 있는 것이다. 칸 아카데미가 성장한 배경에는 빌 게이츠의 지원이 있었는데 빌 게이츠 재단으로부터 150만 불의 지원을 받았으며 9백만 달러 이상(2014 년 현재)의 지원을 받고 있다. 빌게이츠 재단 외에도 구글, 브 로드 재단 등 많은 글로벌 기업이 후원자로 나서고 있다. 150년 이상 제도적으로 보호된 학교라는 권위적 존재가 대안적 교육콘텐츠의 보급으로 도전을 받고 있는 것이다.
위기가 곧 기회
우리나라의 현대화과정에서 교육은 가장 신뢰받는 사회제도였다. 20세기 중후반 국가발전의 원동력은 교육이라는 믿음은 교육의 중앙집권화를 더 공고히 하였으며 학교를 더 관료 화하게 만들었다. 지금도 학교의 권위를 지키고자 교육감, 교 원단체 등이 자율형사립고와 같이 학교의 자발적인 노력으로 경쟁력을 생성하는 학교시스템에 부정적인 이유는 이러한 유연한 제도가 관료주의의 권위를 약화시키는 원인이 되 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계 최하위의 출산율이 말해주 듯 저출산이 지속되어 학령인구가 줄고 있는데 학교의 권위를 보호하고자 하는 발상이 유효할지는 의문이다. 15∼24세 인구는 2030년에는 2015년의 669만명에서 455만명으로 줄고 2015년에는 396만명으로 준다.
이 추계는 통계청의 중위 추계이므로 비관적인 관점에서 저위 추계로 나아간다면 훨 씬 더 줄어들 것이다. 간단히 계산해도 2030년이 되면 정원 5,000명의 대학이 약 170개가 줄어들어야 한다. 많은 교직원이 해고되고 고등교육에 관련되는 많은 산업은 축소될 수밖 에 없다. 교육제도를 독점하고 있는 국가가 일정 기간 고등교 육기관을 보호해 주겠지만 양적 축소사회에서 국가의 보호 에는 한계가 있다. 즉, 학교가 변하지 않고 국가의 제도 보호에 의존한다면 축소사회라는 파랑을 헤쳐나갈 수 없다. 결국은 대학의 경쟁력이 답인 것이다.
이번 코로나바이러스는 대학의 자기평가에 기회일 수 있다. 고도화되고 불투명한 미래에 필요한 인재를 학교 교육만으로는 기를 수 없다는 사회적 인식도 확대될 것이므로 학교 교 육의 신뢰를 쌓는 노력도 있어야 한다. 아울러 학교 교육의 경쟁력을 높이는 노력과 함께 획일적인 학교 교육의 대안으로 빌 게이츠나 구글의 MOOCs 후원처럼 기업의 사회적 공헌이 이루어져 학교 교육의 한계를 극복하는 다양한 방안이 만들어져야 한다.
학교 외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은 규격화되 고 관료적인 형식적 교육과는 달리 방과 후, 토요일, 일요일 등을 이용하여 자유롭게 도전하고 자신의 가능성을 찾아가는 교육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학교에서 치르는 시험에서 한번 실패하면 학교 교육의 전 과정에 영향을 미치고 사회의 진입에서도 네거티브하게 작용하지만 학교 외 교육은 실패해도 다시 도전하면서 자기를 발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아울러 학교가 가지지 못한 다양한 자원을 활용하여 교육을 지원하므로 문제해결학습, 발견학습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위기는 곧 기회이지만 위기를 기회로 활용 하지 못한다면 그 결과는 상상 이상으로 학교 교육 전반에 타격을 줄 수 있다.
◀김상규
도호쿠대학 대학원(석사과정)에서 공공법 정책을, 와세다대학 대학원(박사과정)에서 교육학을 전공했다. 저서로 『민족교육: 일본의 외국인 교육정책과 재일 한국인의 교육적 지위』(2017년), 교육의 대화(2017년)가 있으며, 재일본대한민국민단문화상(2011년)과 한국교육학회 운주논문상(2016년)을 수상했다.
MeCONOMY magazine May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