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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상규 박사> 전문지식의 위기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전국이 불안과 공포에 싸여 있다. 국민들의 활동도 갈수록 위축되고 있다. 학생들의 개학이 미뤄지고 설령 개학을 하더라도 활발한 교육활동은 당분간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미래에 회의적인 생각을 하는 꿈나무들이 많을 텐데, 이번 일로 위축되지 않도록 기성세대의 격려와 미래에 대한 희망예감을 주려는 노력이 필요한 때다. 이러한 역할은 정치와 정부, 각계의 전문가가 앞장서야 한다.


레토릭과 전문지식


21세기에 접어들어 최대의 변화는 인터넷의 발달로 인한 정보의 홍수이다. 정보화는 편리한 측면도 많지만, 오랜기간에 축적된 지식이 경시되는 측면도 많다. 근거가 부족하고 인터넷에 떠도는, 게 중에는 20세기에 습득했던 시대착오적인 가벼운 지식이 더 세력을 얻고 있다. 달변가 정치가나 유튜버, 방송으로 얼굴이나 이름이 알려진 소위 사회 지도층들이 증명력 없는 정보를 올바른 지식으로 오해하게 하거나 사회규 범처럼 규정해버리는 레토릭(겉으로는 그럴듯하게 포장돼 있지만, 내용은 없는 담론)은 이미 사회의 권력이 되고 있다.

 

19세기 영국에서 산업혁명의 성과로 자동차가 등장했다. 당시 마차를 이동수단으로 하던 사회에서 이러한 변화를 받아 들이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기존의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자동차의 속도를 마차 속도 정도로 제한하고 각종 규제를 하는 등 변화와 기존 질서와의 사이에 긴장관계가 만들어졌다. 100년도 더 지난 지금 자동차의 발달로 인간이 희생되는 일이 자주 있지만 우리들의 생활에는 더 많은 편리함과 산업의 동력을 제공하고 있다.

 

그런데 컴퓨터와 인터넷을 기반으로 20세기 중반부터 꾸준히 발전해 온 정보화산업은 21세기에 접어들어 디지털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하는 사회질서를 만들어냈는데, 100년 후에 사회에 어떤 변화를 만들 것인가? 자동차보다는 더 해로운 모습으로 사회에 충격을 줄 것이라는 회의감도 든다. 지금도 우리나라 지방에 가면 글을 잘 모르는 고령자가 있으므로 완벽한 정보화사회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유치원생만 되면 스마트폰을 가지는 시대가 됐다.

 

인터넷의 검색엔 진을 기반으로 한 산업이 끊임없이 생겨나고 있으며 과거 노동을 기반으로 하던 산업은 한 사람 한 사람이 기업이 돼 생산을 하는 지식산업으로 변했다. 다만, 지식산업이 정보산업 쪽에 너무 편중되고 있다. 산업구조가 급속히 개편돼 오프라인을 기반으로 하던 비즈니스는 사양산업이 되고, 온라인을 기반으로 하는 마케팅이 서서히 그 영역을 급속히 넓혀가고 있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사회는 사람과 사람들의 관계 속 에서 성숙해 가는데, 사람과 사람이 마주칠 일이 점점 줄어 들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산업구조, 경제체계, 사회문화, 마케팅 등 사람들의 생활기반의 기초가 변화하고 있지만, 더 큰 문제는 정보의 손쉬운 습득이 가능해 진정한 지식추구 의지는 점점 사라지 고 있다는 점이다. 자기의 노력으로 오랜 시간이 걸려 성취한 전문지식보다 과거부터 사회적 영향력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구지식, 인터넷에 떠도는 가벼운 정보를 화려하게 장식하는 비전문가들이 청소년들에게는 더 편하게 받아 들여지는 것이 문제다. 수십년의 연구와 실무를 경험해 지식을 겸비한 전문가의 제언이 가벼운 지식으로 치장한 사람들의 코멘트와 평등하게 취급되는, 오히려 아마추어의 달변이 더 바른 지식으로 수용되는 착시효과가 일반화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상업주의와 공공성 


정보화 시대는 인간의 생활에 네거티브한 환경을 급속히 만들고 있다. 여론조작이니 가짜뉴스니 요사이 빈번하게 출현 하는 이슈는 차치하고 두 가지만 지적하면 ‘미끼정보’와 ‘사이버 범죄’다. 지금 우리나라는 코로나19 문제로 국가가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질병이나 국민들의 건강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정보를 공신력 있는 기관인 의료계나 정부가 신속하고 정확하게 전달해 국민들을 안심시키고 생활이 정상적으로 돌아가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런데 인터넷 검색창에 ‘코로나19’, ‘신종코로나’ 등의 키워드를 입력해 검색해보면 제일 먼저 나타나는 것이 개인이 운영하는 카페나 블로그다. 블로그나 카페의 인지도를 높여 마케팅을 하고자 중요한 정보를 미끼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한편, 국민들이 간절히 필요로 하는 의료계나 정부의 발표 자료는 인터넷을 상시 사용하는 사람이 노력해서 찾지 않으면 발견하기 힘들 정도다. 인터넷 검색엔진의 운영이 공공목적이 아니므로 상업성을 버리라는 주장은 어렵지만, 국가가 위기에 처하고 국민이 불안할 때 가장 정확한 정보를 신속히 제공하는 것은 바로 시대가 요청하는 인터넷의 공공성이 아닐까 싶다.

 

또 한 가지는 정보사회의 발달로 인해 늘어나는 사이버 범죄로, 많은 사람이 피해를 입고 있다. 2019년에 우리나라에서 인터넷을 이용한 사이버범죄 발생건수는 18만건으로, 2014 년과 비교해 64%가 증가했다. 발생범죄 중에는 정보통신망 이용범죄가 84%에 이르고 있으며, 전체 범죄건수에 대한 검 거율은 73%에 불과하다(경찰청, 전체 사이버 범죄발생·검거 현황). 검거율은 수사력의 문제가 아니라 범죄수법이 시시각각으로 진화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와 일본 간에 통계 기준에 차이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인근 일본의 사이버 범죄 발생이 연간 1만건 정도인 것과 비교하면 얼마나 정보사회의 이단아가 우리나라에서 극성을 부리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스마트폰은 유치원생도 가지는 생활도구가 돼 있으며 공중 파 방송이나 오프라인 잡지에 의존하던 매스미디어는 더 세분화되고 새롭게 출현해 유튜브,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 새로운 플랫폼이 생겨나고 있다. 새로운 기술이나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생기면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는 공유된 문화가 있어야 하고, 정부기관은 정보의 사용으로 피해를 입는 국민이 생기지 않도록 사전 조치로 법률과 제도를 정비하고 사후조치로 피해구제를 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한데 정보로 인한 피해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더닝 크루거 효과


러시아 및 핵전략 전문가이자 미국 해군대학 교수인 톰 니콜 라스(Tom Nichols)는 2017년의 저서 『전문지식의 죽음(The Death of Expertise)』에서 재미있는 사례를 소개했다. 워싱턴 포스트지는 러시아가 2014년에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에 대해 미국이 군사적 개입을 하는 것이 어떤지를 묻는 여론조 사(2014년)를 했다. 그런데 많은 응답자가 군사개입이 필요하다고 응답했지만, 우크라이나가 어디에 있는 국가인지에 대해서는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냉전체제의 상대방인 미국과 러시아는 유럽에서의 러시아 국경문제로 3차 대전까지 갈 수 있는 위기도 있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상시 군사분쟁이 있는 나라로, 유럽에서 국토면적이 가장 큰 국가임에도 군사개입을 지지하는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우크라이나를 지도에서 정확히 가려내지 못했다고 한다. 정확하게 가려낸 사람은 여섯 명 중 한 명꼴이며, 대학졸업자는 네 명 중 한 명 정도였고, 대부분은 우크라이나가 남미나 호주에 위치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고 한다. 니콜라스는 많은 사람들이 지식을 외면하고 배우기를 태만하는 지금이 위험한 시기라며, 많은 미국인들은 이러한 무지를 조롱하겠지만, 자신들의 능력을 너무 확신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더닝 크루거 효과’란 능력이 부족한 인물이 자신의 발언이나 행동에 대해 실제보다 높은 평가를 받는 것 같은 우월한 착각을 만들어내는 것을 말한다. 앞서 정보화 사회의 가벼운 지식을 레토릭이라고 했는데, 지금 인터넷에 도배가 돼 있는 정보나 지식은 진정한 지식이라기보다 레토릭이 많다. 전문가, 특히 겸허하고 우수한 전문가는 단정적으로 의견을 잘 말하지 않는다. 다양한 사례와 예외를 알고 있기 때문에 유보된, 신중한 의견을 말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하는 이슈나 테마에 관해서도 아주 단정적으로 의견을 발신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나라 행정부 장관들이 행정, 교육, 복지, 의료, 문화, 국토계획 등의 전문가가 아니라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임용돼 국정을 수행하면서 국민에게 막대한 영향을 주는 정책을 만들어낸다. 또 법과 제도에 의해 주어진 권력으로 공무원 조직을 쥐락펴락 하고 임명권자의 선호에 따라 정책을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더닝 크루거 효과’는 크게 나타날 수 있다.


관성적 전문성


위에서 니콜라스가 제기한 전문지식의 경시 문제는 단순히 지식의 깊이가 없는 사람이 아닌 전문가에게서도 나타날 수 있다. 정립된 지식이나 이론은 아니지만, 여기에는 ‘관성적 전문성’과 ‘감정적 전문성’이 있다고 본다. ‘관성적 전문성’은 특정 대학, 특정 그룹이라는 강력한 관성 때문에 생기는 전문성이다. 관성은 외부의 강력한 힘이 작용하지 않는 한 깨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감정적 전문성’은 학벌이나 사회에서 맺어진 인간관계 때문에 감정적으로 동조하는 현상이다.

 

우리나라는 1950년대 초등학교 의무교육이 완성된 이래 1980년대→1990년대→2000년대 순으로 중학교 교육, 고등학교 교육, 대학교육의 보편화가 이뤄졌다. 교육의 보편화란 모든 국민이 고등학교까지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진 경우를 말한다. 고등교육의 보편화는 고등교육 대상자의 50% 이상(외국의 연구에 의하면)이 대학에 진학을 하 는 경우이다. 우리나라는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빠른 시기에 높은 국민의 교육열, 중학교와 고등학교의 평준화라는 교육정책 등을 바탕으로 교육을 보편화를 이뤘다. 그런데 교육의 보편화는 역기능으로 ‘무지예찬’(無知禮讚)과 ‘대학의 서열화’를 더 뚜렷하게 만들고 있다.

 

대부분이 대학 에 진학하게 되면 한정된 지위를 두고 경쟁이 격화하므로 사회나 기업은 개개인이 가지는 능력보다 어느 학교 출신인지를 보고 뽑으려고 한다. 왜냐하면 평생 기업에서 일할 사람을 선발하려고 하면 많은 시간이 필요한데 기업이 그러한 시스템을 갖추기가 어려우므로 대학이 능력이 있는 인재를 뽑아 교육을 시켰다는 것을 전제로 직원을 선발하는 경향이 있다. 이를 ‘시그널링 효과’라고 하는데 교육의 보편화로 시그널링은 더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결과적으로 대학의 서열화는 가속화되고 특정대학 졸업장은 지식과 능력을 대신하는 문 화자본에 돼 그 자체가 사회의 권력이 됐다. 이런 가운데 사회의 중요한 영역에서도 관성적 전문성이 생긴다. 주로 전문가 그룹으로 분류할 수 있는 대학교원의 경우를 보자.

 

대학교원이 되기 위해서는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 석사→박사과정에 진학을 해야 한다. 이 경우 교수와 학생 간에는 특수한 관계가 만들어지고 학문적 동맹관계가 형성된다. 동맹관계는 단순히 동아줄처럼 계속 이어지는 학문적관계로 끝나지 않고 정부, 정치, 사회 등과의 관계를 통해 인센티브도 공유하게 된다. 따라서 동맹관계에 있는 사람들 간에는 강한 관성이 작용하고 있으며 스스로 동맹관계를 부수려고 하지 않는다. 빗대어 말하면 학계가 좁디좁고 폐쇄적인 구조이므로 동맹 관계에서 이탈하는 것은 전문가로서 사망선고나 마찬가지 다. 그래서 제자는 스승의 이론이나 지식이 설령 잘못됐더라도 수용되게 되고 결과적으로 학문은 정체될 수 밖에 없다.

 

◀김상규

도호쿠대학 대학원(석사과정)에서 공공법 정책을, 와세다대학 대학원(박사과정)에서 교육학을 전공했다. 저서로 『민족교육: 일본의 외국인 교육정책과 재일 한국인의 교육적 지위』(2017년), 교육의 대화(2017년)가 있으며, 재일본대한민국민단문화상(2011년)과 한국교육학회 운주논문상(2016년)을 수상했다.

 

MeCONOMY magazine March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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