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사회론 등 과학기술 예찬론이 우리사회 곳곳에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요사이 부쩍 매스미디어의 관심이 집중돼 있는 정보사회론, 스마트사회, 제4차 산업혁명 등은 과학기술이 가져올 미래사회에 무지갯 빛 환상을 갖게 하는 예찬론 그 자체이다.
소설가 민태원은 ‘청춘예찬’에서 다음과 같이 적었다. “청춘! 이는 듣기만 해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그는 청춘의 심장이 물방아 같은 고동이 치고 청춘의 끓는 피에 뛰노는 심장 은 거선의 기관과 같은 힘이 있다고 청춘을 그렸다. 그리고 청춘은 인류의 역사를 꾸려 내려온 동력이라고 최고의 찬사를 보냈다. 만약 그가 지금 이 시대를 산다면 청춘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보냈을까? 아마도 ‘청춘! 이는 듣기만 해도 가슴이 아파지는 말이다’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청춘의 심장은 물방아같이 고동치지 않고 아이러니하게도 청춘의 많은 시간을 과학기술의 산물인 가장 문명화된 기기 컴퓨터 앞에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앉아, 곧 멈춰버릴 자동 차 엔진처럼 부정기적으로 두근거리는 자신의 심장 소리를 느낄 것이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현실세계 다른 쪽에서는 정보과학자, 발명가, 미래학자들이 ‘인공지능! 이는 듣기만 해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라고 말하고 있 고 그들의 말은 우리 사회의 도그마가 돼가고 있다. 과거에는 현실 저 먼곳에 있는 상상 속의 세계를 그렸던 공상과학 소설(SF)이 마치 현실과 오버랩된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만들고 있다. 영국 출신 공상과학 소설 작가 찰스 스트로스(Charles Stross)는 지금 시작하려고 하는 과학혁명을 ‘아첼레란도 (accelerando)’라고 했다. 아첼레란도는 ‘점점 빠르게’라는 뜻을 가진 음악용어다.
아마도 우리 사회가 점점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데 이에 적응하지 못할 때에는 서서히 더워지는 물에서 죽어가는 개구리와 같은 운명이 될지도 모른다는 은유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이 과학기술만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는 데에 한계가 있다. 우리들에게 더 시급한 걱정거리가 너무 많다는 사실이다. 저출산 문제는 금방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사회 양극화는 계층사회로 이전하는 양상이다. 그리고 계층 간의 단층선도 더 두꺼워지고 있다. 어쩌면 가까운 장래에 격차사회보다 더 가혹한 계급사회가 도래하지는 않을지 걱정이 앞선다.
증폭돼가는 과학기술 지상주의
인류 사회는 수렵에서 농업으로, 그리고 산업사회를 거쳐 정보사회로 편성되고 있다는 ‘편성원리’는 역사학자나 문화인류학자, 사회학자, 경제학자 등이 대체로 동의하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앞으로 인류가 살아가는 사회가 과학이나 기술, 이 두 가지가 결합한 과학기술에 의해 편성될 것이라는 편협적인 생각은 금물이다. 개개인의 자유와 권리, 공동체 문화, 정치적 통합, 경제적 평등 등 수많은 사회 편성 원리가 모순 없이 기능했을 때 세대교체의 충격을 줄이면서 사회가 안정적 으로 유지·발전할 수 있다.
과거사회의 도그마는 종교, 철학 등 인간의 정신적 가치와 관련이 있는 것들이었다면 지금은 과학기술이라는 도그마가 대세일 수 있다. 과학기술의 도그마는 사회 곳곳에서 이데올로기처럼 기능하고 있으며 어떤 사람들에게는 복음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과학기술에는 결정적인 결함과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몇 가지 사례만 봐도 여실히 들어난다. 2016년에 있었던 브렉 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선거에서 영국 국민들의 지성이 어느 방향으로 모아질 것인가를 최첨단의 정보기술은 예측하지 못했다.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되리라는 예측도 못했고 프랑스에서 장마리 르팽의 딸인 마린 르팽이 비록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에서 패배했지만 왜 많은 사람들이 포플리즘에 열광하는지도 설명해주지 못했다.
우리나라 국회에서 거의 매일같이 보수와 진보가 팽팽하게 대치하고 있는 상황도 과학기술은 문맹이나 다름없으며, 더 시야를 확대해 보면 영국처럼 유럽연합에서 이탈할 국가는 앞으로 없을 것인가, 이슬람 무장단체인 IS가 언제까지 지속할 것인가, 러시아 푸틴 대통령은 동아시아 안정에 어떤 도움이 될지, 중국의 시진핑 주석은 한반도의 평화에 어떤 역할을 할지 등 인류의 행복과 직결된 것들에 대해 과학기술은 설명조차 해주지 못할 것이다.
아프리카 니제르나 소말리아에서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 식량문제, 물문제, 질병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은 쉽게 예측할 수 있는 사실이지만, 과학기술이라는 건조한 지능은 인구를 줄이는 묘책조차 가지고 있지 않다. 우리 가까이에 있는 불편한 사실, 즉 미래가 걸려있는 저출산문제도 속 시원한 해결책을 주지 못할 것이다. 그 대신에 자동화된 기계 덕분으로 우리나라 청춘들의 실업난은 이미 절정에 달해 있고, 정치적 해결방법으로 한국형 뉴딜정책이 가속화된다면 공무원 수가 크게 늘어날 것이고, 국민들의 세금 부담은 더 커질 것이다.
과학기술이 발달해 인간이 편리해지는 측면도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인간이 과학기술을 이 용해 인간을 공격하는 일들도 많아질 것이다. 과학의 발달, 기술의 진보가 산업에서는 인간이 하는 일을 빼앗고 사회에서는 인간을 공격하는 범죄가 늘어날 가능성이 많아질 수도 있다. 오해가 없기를 바라는 것은 과학기술의 발달에 회의적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는 과학기술의 발달만큼 중요한 것들 이 많다는 주장이다.
풍요와 빈곤의 불편한 동거와 사회공동체 지반의 침하
베네수엘라 출신으로 런던경제대학 교수인 칼로타 페레스(Carlota Perez)는 기술경제 패러다임 변화의 시대적인 특징을 5단계로 세분화했다. 그녀에 의하면 제1단계는 1771년부터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이며, 제2단계는 1829년부터 시작된 증기·철도시대로, 이 시기에는 영국에서 유럽대국과 미국으로 기술혁명이 파급됐다. 그리고 제3단계는 1875년부터 시작된 철강·전기, 중공업시대로, 이 시기에는 미국과 독일의 기술혁명이 영국을 추월했다. 이어서 제4단계는 1908년부터 의 석유, 자동차, 대량생산시대로, 이 시기에는 미국에서 유럽으로 기술혁명이 파급됐으며 제5단계는 1971년부터의 정 보통신시대로, 미국에서 유럽과 아시아로 기술혁명이 파급됐다.
어찌됐건 간에 사회의 편성주기에 시간적 거리감은 있을지라도 정보통신시대 이전의 패러다임은 장기간에 걸쳐 선형의 변하였으므로 예측이 가능했지만 정보통신시대에 접어 들면서 변화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지고 예측하는 것도 어렵다. 공업사회는 노동력, 공장시설 등 물리적 공간이라는 한계를 가졌으므로 발달도 선형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미래사회는 무한대의 규모와 예측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진행된다고 과학자나 미래학자, 공상과학 소설 작가들까지 합세해 주 장한다. 예측은 빗나간 경우도 있고 그들이 틀리기도 했지만 맞는 것도 많았다.
1900년대에 SF 작가들이 공상처럼 그렸던 달나라도 인류는 1969년에 착륙했다. 혹성탈출, 외계인과 지구와의 전쟁, 우주 식민지 등을 다룬 상상력 풍부한 SF 작가들의 공상을 현 실화하기 위해 우주탐험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우리에 게는 꿈같은 얘기지만 민간우주여행도 2000년대 초에 이미 실현됐다. 언제일지는 알 수 없고 가까운 미래라는 수식어를 달수도 없지만 중산층이면 누구나 해외여행 패키지를 이용해서 미국이나 유럽을 다니는 것처럼 싼값의 우주여행이 가능할 날이 올 수도 있다.
지금까지 민간 우주여행은 막대한 비용때문에 가능하지 않았다. 2단계 로켓 중 총 비용의 약 70%를 차지하는 1단계 로켓을 한번 쓰고 나면 재활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최근 이를 재활용하는 기술이 상당히 진전 됐다. 비행기가 발달해 보통 사람이 해외여행을 싼값으로 다닐 수 있게 되기까지 100년 정도가 걸렸으므로 앞으로 보통 사람의 우주여행은 몇 백 년 후의 일이 되든지 특별한 사람 들만의 사치로 끝날 수도 있다. 이러한 풍요의 이면에는 소득격차, 지역격차, 고용격차, 교육격차, 의료격차, 건강격차, 정보 격차 등의 다중격차에 노출돼 있는 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 풍요와 빈곤의 불편한 동거가 사회공동체 지반침하로 이어지고 있고 이러한 사회구조가 고정화될 경우 인류사회의 균형을 파괴하는 내관이 될 수 있다.
경제성장 우선주의가 남긴 후유증
반복하지만 지금 우리사회의 담론이 정보사회론과 이노베이션론에 너무 치우친 감이 있다. 공상과학 소설에서 그려졌던 많은 일들이 현실화되면서 과학자, 미래학자, 경제학자들의 미래사회 변화 예측은 마치 블랙홀처럼 사람들의 관 심을 빨아들이고 있다. 196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 사이의 경제발전을 이룬 한국, 대만, 싱가포르, 홍콩에 대해 서구 선진국들은 아시아의 네마리 호랑이로 묘사했다. 많은 아시아국가들 중에서 열심히 노력해서 잘 사는 국가가 된 우리나라를 모델로 하고 싶어 하는 나라도 있다.
우리나라는 산업혁명을 주도한 국가도 아니었고 대량생산기술의 주축국도 아니었지만 제3차 산업혁명 이후 세계의 와일드카드로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그런데 패러다임이 공업사회에서 정보사회로 바뀐지 반세기도 지나지 않아 공업사회의 성공신화에 회의감이 몰려오고 고속성장의 후유증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지위경쟁은 더 가속화돼가고 있으며 그 지위를 선점하기 위한 경쟁이 엄마 뱃속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다. 국민들의 학력은 상승하고 있지만 취업은 더 어려워지고 생활기반의 불안정은 국민적·사회적으로 합의된 규범의 지반침하로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현상들은 과거 경제발전 과정에서 다소 위법에 있어도 국가발전의 총량에 이익이 있다면 관용적이었던 ‘빨리 빨리’의 유산일 수도 있다.
‘기계 우선주의 사회’에서 사람의 영역인 횡단보도를 건널 때 자동차를 피해 건너야 하고, 횡단보도와 인도가 오토바이의 영역으로 변해가는 무질서가 관행이 됐다. 아이러니하게도 국회에서는 수많은 입법을 계속하고 있으며 그 중에는 국민의 행동을 규제하는 입법이 다수 들어있다. 인간의 도덕이나 사회윤리에 의해야 할 것들이 법규범으로 차곡차곡 규제의 틀을 형성해 가고 있다. 이런식으로 나아가면 국민들은 법적구속에서 하루 일상을 보내야 하고 정부는 필요할 때 규제권을 행사해 국민들을 구속하는 행정만능주의 사회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앞선다. 국가의 역할이 늘어나면 국민들의 국가의존도는 더 강해질 것이고 자기책임으로 생긴 손해마저도 국가의 탓으로 돌리는 경쟁력 없는 사회가 될 수도 있다.
와일드카드 성공신화는 계속될 것이다!
디지털사회는 편성원리가 다르다. 인터넷을 예로 들어보자. 인터넷은 1994년에 상용화됐다. 1998년에는 구글, 2004년에 페이스북이 설립됐다. 2007년에는 애플이 아이폰을 발매하고 2010년에는 컴퓨터와 휴대폰, 인터넷이 융합한 스마트폰이 일반에게 보급됐다. 1980년대 컴퓨터가 개발돼 일반 대중에게 상용화된 기간은 불과 10년이다. 인터넷이 일반화된 것은 불과 몇 년도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컴퓨터와 인터넷과 전화가 융합한 기술은 인터넷 보급 후 채 5년도 걸리지 않았 다. 1990년대 중반 인터넷이 보급되기 시작한 후 약 10년 정도의 기간에 선진국의 국민 90%가 인터넷에 접속하는 시대가 돼 버린 것이다.
그렇지만 어느나라나 동일한 혜택을 누리는 것은 아니다. 글로벌 격차는 더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국가와 지역에 따라 발달의 격차가 생기는 것은 과학기술을 수용하는 능력이나 지식수준의 차이 때문만은 아니다. 정치적·사회적 요인도 크게 작용한다는 점이다.
마이클 피오 레(Michael Piore)와 찰스 세이블(Charles Sabel)은 기술 발전 에 정치적·사회적인 요인이 영향력을 준다며 ‘기술발전모델 (Branching Tree Model)’을 제시했는데, 그들의 논리에 의하면 미국이 전 세계에서 선구적으로 대량생산시대의 막을 열 수 있었던 것은 유럽이나 일본과는 달이 숙련직업인에 의한 크래프트 생산(수작업에 의한 물건의 생산)이 발달하지 않은 것도 큰 요인이었다고 한다. 토플러의 주장처럼 발전을 가로막는 사회의 장해는 자원이나 기술력보다는 법률, 제도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장인(匠人)을 숙련기술자로서 대기업이 채용해 제4단계(석유, 자동차, 대량생산의 시대)에 유럽 및 미국을 따라잡는 것을 목표로 했다. 급속한 경제성장을 달성했지만 정보사회의 이니시어티브는 잡지 못했다. 우리나라도 공업사회의 최종 단계에서는 성공을 이뤘지만 정보사회에서 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제5단계 정보통신 시대로의 패러다임 전환기에는 하이테크, IT 기술력을 바탕으 로 글로벌 기업이 탄생했다.
많은 와일드카드가 글로벌 기업으로 성공했다. 앞서 칼로타 페레스가 정리한 산업의 다섯 단계 패러다임을 참고로 할 경우 패러다임 변화 제1단계, 제2단 계는 영국이 주도했다. 그러나 철강, 전기, 중공업시대인 제3 단계에서 영국은 후퇴하고 미국과 독일이 리더십을 쥐었다. 그리고 제4단계 이후는 미국이 세계의 리더가 됐다. 과거 패 러다임의 변화와 주도국의 전략을 면밀히 분석하는 것도 앞으로 다가올 과학기술의 발달전환기에 있어 우리나라가 재 도약하는 데에 있어서 도움을 줄 것이다.
다만 제4차산업혁 명이라는 마법에 빠져 선진국의 모델을 무분별하게 차용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금 우리가 어느 정도의 위치에 서 있는지에 대한 냉정하고 엄격한 성찰을 바탕으로 미래에 대응할 수 있는 타당성 있고 실현가능한 비전과 전략을 마련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고유성을 유지하면서 지 속가능한 발전을 이루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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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호쿠대학 대학원(석사과정)에서 공공법 정책을, 와세다대학 대학원(박사과정)에서 교육학을 전공했다. 전공은 교육제도, 비교정책이다. 주요 칼럼·비평 으로 ‘우리 교육은 행복한가’, ‘교육, 무엇이 문제인가’, ‘글로벌 시대에 우리 교육을 생각한다’, ‘비범한 교육 현장을 기대하며’, ‘교육에 대한 바른 현상인식이 필요한 때’, ‘끼와 학력의 함수관계’, ‘트럼프의 야망: 위대한 미국, ‘속도일치의 법칙: 제4차 산업혁명 시대 를 대비한 이노베이션 방향’, ‘사립학교! 재평가되어 야 한다’ 등이 있으며, 저서로는 『민족교육』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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