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에서는 아고라(agora)라고 불리는 광장에 시민이 모여 정치토론을 거쳐 중요한 의사결정을 했는데, 이를 두고 직접민주주의의 원점이라고 한다. 그런데 최근 특정 지역에 한정되지 않고 발생하는 폭풍우와 같은 ‘광장의 목소리’가 인터넷을 통해 시시각각으로 우리에게 전달되고 있다. 홍콩의 민주파에 의한 항의 데모, 프랑스의 연금제도 개혁 반대 데모, 그리고 지난해 가을 칠레는 지하철 요금 인상을 계기로 국민의 분노가 폭발해 국제회의가 중지되는 일까지 있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2019년의 ‘광장정치’의 분열은 우리 사회의 이념간 단층선을 더 두껍게 만들어 놓았다. ‘광장정치’의 여파가 첫 선거권을 가진 18세 청년들에게 미쳐 잠재성 많은 청소년들의 가치관이 특정 이념으로 채색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교육개혁의 중점 포인트
1983년 레이건 대통령은 미국 교육사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위기에 선 국가(A Nation at Risk)’를 발표했다. 교육전문가 들이 18개월 간의 연구와 현장조사를 거듭해 미국 교육문제 를 냉철하게 분석한 이 보고서를 계기로 미국 교육에 큰 변화가 시작됐다. 이 보고서는 국립교육달성도평가(National Assessment of Educational Progress, NAEP)에 의한 학업성적 저하가 원인 이다. 미국 학생들의 학력이 1960년대 이후 계속 추락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교육부 장관 벨(Terrel Howard Bell)은미국 교육의 문제를 냉철히 분석해 그 후 미국 교육개혁의 좌 표가 되는 위대한 문서를 작성한 것이다.
당초 레이건 대통령은 연방정부가 주의 권한인 교육에 관여하는 것에 부정적이어서 바로 2년 전 카터 행정부에서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창설한 연방교육부를 폐지하는 것이 선거공약이었지만 미국 교육을 위기에서 구출하기 위해 교육부 폐지 방침을 철회했으며, 교육의 방향도 보통사람(凡人)만 양산하는 교육에서 수월성을 중시하는 교육으로 전환하고 교육기관이 학생들 에게 일정한 학력을 달성하지 못하는 경우 책임을 묻고 페널티를 부과하는 강한 개혁을 단행했다.
우리나라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교육 담론이나 정부문서를 살펴보면 혁신, 정상화, 공공성, 투명성 같은 추상적이고 애 매한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정부의 입장에서는 무엇이 문제인지 잘 알텐데 개혁해야 할 대상은 무엇인지, 어떤 방법으로 개혁을 할 것인지 등의 방법론은 명확하지 않다. 공교육 정상화는 정부 문서의 해묵은 슬로건으로만 반복되고 있다. 새로운 교육프로그램은 수시로 만들어져 막대한 교육재정이 투자되고 있지만 성과는 불분명하다.
교육제도를 전국적으로 균일하게 만들어 교육행정의 통제와 감독을 강하게 하면 공교육은 정상화가 될 것이라는 의지는 더 강하다. 눈에 띄는 것은 사교육과 사립학교 등 비정부 부문에는 불법과 비 리라는 멍에를 걸고 그것을 개혁의 명분으로 하고 있는 것인 데 이는 수십 년 전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시대의 변화와 교육 간에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저출산 문제가 대두된 지가 수십 년이 되었지만 인구 문제교육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거나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가상공간에서의 정치가 청소년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도 정치교육에 대한 관심도 높지 않다. 대학진학 률은 세계에서도 최상위권이면서 노동생산성은 매우 낮은데 개혁의 관심은 학력향상보다 다른 곳에 집중되어 있는 것 같다.
앞으로 학령인구가 감소하면 인적자원도 그만큼 줄어 든다. 20세기는 노동력을 기반으로 이룬 산업화이지만 21세기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창의력과 도전정신이 경쟁력이 되는 지식산업시대이므로 인적자원이 줄고 개개인의 경쟁력이 떨어진다면 산업경제 규모는 예측 이상으로 축소될 것이다. 그러므로 시대에 맞는 교육과정, 학교교육의 다양화, 교원의 전문성 향상, 학교교육의 설명책임 강화, 교육행정의 체질개선 등이 교육개혁의 대상이며 아울러 계층 간, 지역 간 교육격차를 줄이는 방안도 깊이 고민해야 한다. 즉, 교육개혁의 포인트는 학생 개개인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학교교육은 무엇인지를 찾는 것이다.
교육의 중립성?
몇해 전인가 어느 지역에서 초등학생들이 학교 내에서 단체로 전직 대통령을 비방했다는 언론기사를 본 적이 있다. 지난해에는 서울 한 고등학교에서 교사들의 이념·정치 편향적 지도가 논란이 되어 언론과 소셜네트워크를 뜨겁게 달군 적이 있다. 부산 한 고등학교에서 한국사 중간고사에 교육과정에도 없는 정치편향 문제가 출제되어 교사가 징계를 받았다고 한다. 성장기에 있는 청소년들의 사상과 가치관을 한쪽으로 치우치게 할 수 있는 교육내용도 지적되고 있다.
지난해 공직선거법이 개정되면서 선거연령이 19세에서 18세로 하향 조정됐다. 세계적으로 18세가 되면 선거권을 주는 국가가 90% 정도며 대부분의 국가에서 18세의 청소년은 중등학교에 재학하고 있으므로 18세 선거권 부여를 두고 ‘교실의 정치화’, ‘학교의 정치화’ 등으로 바라보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특히 유튜브,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의 사회적 위력이 갈수록 높아져 가고 유치원생이라도 TV, 인터넷 등의 정치토론의 장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시대가 되어있는데 말이다.
에릭 슈밋 구글 회장의 말처럼 사람은 태어나면서 바로 제5의 권력인 디지털 권력을 손에 쥐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아날로그의 잣대로 디지털 시대를 재단하는 것 같아 어울리지 않는 주장이다. 하지만 교육의 중립성이 균형을 잃을 수 있는 위험성은 제도 상에 있다. 우리나라 헌법에서는 교육의 중립성을 선언하고 있으며 이는 특정 당파 및 계층 등이 교육에 관여하거나 교육이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되는 것으로 정치적 중립성, 종교 적 중립성, 이데올로기의 중립성 등을 말하는 것인데 사회제도를 둘러보면 헌법의 이념과는 거리가 먼 제도가 눈에 띈다.
한 가지만 예를 들면 교육의 중립성을 확보한다고 교육감 후보 자격에 정당 당원 배제 조항을 두고 있는 사례다. 지방교 육자치에 관한 법률 제24조는 교육감 후보자의 자격으로 ‘교육감후보자가 되려는 사람은 당해 시·도지사의 피선거권이 있는 사람으로서 후보자등록신청개시일부터 과거 1년 동안 정당의 당원이 아닌 사람’이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을 그대로 해석한다면 교육감 후보자가 되기 전에 뼛속까지 특정 이념을 가진 정당 당원으로서 어떤 일을 했든지 간에 1년의 공백 기간만 있으면 교육감이라는 지방교육행정의 책임자가 될 수 있다.
또한 평생 정당에는 가입한 적이 없지만 저술이나 방송이나 다른 사회활동을 통해 특정 정치편향이 뚜렷한 자일지라도 주민의 선택을 받으면 교육감이 될 수 있다. 선거연령이 18세로 하향 조정된 것을 두고 ‘교실의 정치화’가 될 것이라고 비판하기보다는 교육감이 정치적·이념적으로 중 립을 유지할 것인가, 학생들의 가치관과 인격형성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교원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할 것인가, 정치가 학교라는 교육공간을 이용하지 않는 방법은 무엇인가를 찾아야 한다. 이와 함께 중요한 것은 학교에서 바른 정치교육을 실시하는 것이다.
바람직한 정치교육은?
우리나라에서 정치교육이란 개념이 확립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현재까지 출판된 교재나 사전적 개념은 정치교육을 ‘정치의 교육’ 또는 ‘정치학의 교육’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교육적 관점에서 정치교육은 정치학의 교육과 분명 다르다. 정의하자면 ‘정치구조, 정책에 대한 학습을 바탕으로 학생의 발달단계에 맞춰 자신이 살고 있는 주변의 가까운 문제에서부터 현실사회의 제반문제까지를 자신의 문제처럼 생각하는 자세, 상대를 존중하고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면서 의사결정에 이르는 과정을 중시하고 아울러 사회참가로 이어지도록 하는 학습’이라 할 수 있다.
정치교육은 학교교육 단계별로 계열성을 가지는데 우리나라 교육과정에서 정치교육에 관한 내용을 도출하면 위 그림과 같다. 먼저 추구하는 인간상에 나타나는 정치교육은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세계와 소통하는 민주시민으로서 배려와 나눔을 실천하는 더불어사는 사람’이다. 이를 위해서 필요한 핵심역 량은 ‘지역·국가·세계 공동체의 구성원에게 요구되는 가치와 태도를 가지고 공동체 발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공동체 역량’이다.
이러한 추구하는 인간상과 핵심역량은 학교교육 단계에서 계열성을 가지는데 ▲초등학교는 기초적 정치교육 단계로 ‘규칙과 질서를 지키고 협동정신을 바탕으로 서로 돕고 배려하는 태도’ ▲중학교는 초등학교에서의 기초적 정치 교육을 더 확장해 ‘공동체 의식을 바탕으로 타인을 존중하고 서로 소통하는 민주시민의 자질과 태도’ ▲고등학교는 기초 적 정치교육을 더욱 심화해 ‘국가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을 바탕으로 배려와 나눔을 실천하며 세계와 소통하는 민주시민 으로서의 자질과 태도’를 함양한다. 즉 초중등교육에서 정치교육은 정치구조, 정책에 대한 기본지식을 바탕으로 민주시민으로서 바른 자질과 태도를 함양해 미래 대한민국의 주인공으로 성장하도록 하는 교육일 것이다.
18세가 되는 청년들에게
소설가 민태원은 ≪청춘예찬≫에서 “청춘!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청춘! 너의 두 손을 가슴에 대고 물방아 같은 심장의 고동을 들어보라. 청춘의 피는 끓는다. 끓는 피에 뛰노는 심장은 거선의 기관같이 힘 있다. 이것이다. 인류의 역사를 꾸며내려온 동력은 꼭 이것이다. 이성은 투명 하되 얼음과 같으며, 지혜는 날카로우나 갑 속에 든 칼이다.
청춘의 끓는 피가 아니더면, 인간이 얼마나 쓸쓸하랴?”고 했다. 먼저 18세가 되는 여러분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참정권이라는 권리를 얻었다는 것에 축하를 드리고 싶다. 곧 다가올 4월의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여러분은 자발적으로 특정 후보자에게 투표를 하고 다음의 대통령 선거에서도 유권자의 한 사람으로서 지위고하, 연령, 성별에 차별 없이 똑같은 한표를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인생에서 큰 변화가 될 것이다. 그간 정치권에서는 선거권을 18세로 하향 조정하는 것에 대해 각각의 정치적 셈법을 가지고 시시비비에 관해 말들이 많 았던 것도 사실이다.
앞으로 선거권을 가진 18세 청춘들의 입맛에 맞는 책임질 수 없는 정책이나 복지를 수 없이 쏟아낼 가능성도 크다. 여러분 중에는 부모든 교사든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념적이고 정치적 태도를 경험하거나 유튜브나 페이스북 같은 네트워크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정치편향적인 내용의 콘텐츠에도 쉽게 접근할 것이다. 또 광장정치에도 들러 그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어떤 것이 맞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혼돈했던 경험도 있을 수도 있다.
단언하건데 여러분은 기성세대의 이념적, 정치적 태도를 비판 없이 동의하거나 광장정치나 소셜네트워크의 선동에 채 색되어서도 안 되며 그럴 책임도 없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 가 있다. 여러분은 정치적이든 경제적이든 사회적이든 현재를 자신의 이익과 이해관계를 기준으로 바라보고 그 기준에 맞으면 동조하는 기성세대보다 더 현실세계의 판단에 냉철 함을 가져야 한다. 여러분의 심장은 우주비행을 시작하는 로켓의 엔진과 같이 힘차며 여러분의 머리는 아직 많은 지식을 담아야 할 정도로 공간이 충분하다.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은 경쟁력 있는 지식, 세계에서 활약하는데 필요한 용기와 도전 정신이며 미래를 통찰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다. 여러분 중에 많은 이는 지금의 현실에 비판적이고 다가올 가까운 미래도 불안하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라는 사실은 잘 알 고 있다. 그래서 도전적이고 용기가 필요한 일보다는 신분이 안정적이고 조직이 제도적으로 보호된 직장으로 발길이 향하고 있다는 점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여러분의 도전정신과 용기의 동력이 떨어지면 잠재성도 사장되고 인생의 기회도 그만큼 줄어든다는 사실도 알았으면 한다.
대한민국의 좋은 미래는 타협 능력과 사회적 공감을 가진 정치가, 좋은 정책을 만들고 시민의 권리를 보호하는 행정가,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전문가, 살기 좋고 아름다운 도시를 설계하는 도시계획가, 우주, 심해 등 미지의 세계를 탐험해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도전가, 좋은 식재료를 재배하는 농어업인, 맛있고 영양가 풍부한 음식을 조리하는 요리인, 재능있는 해학으로 국민에게 웃음을 주고 삶의 피로를 가볍게 해주는 예능인, 아이들의 미래를 열어주는 모범적인 교사, 불철주야 산업현장을 지키는 역군 등 사회 이곳저곳에서 역할을 하는 주인공들이 골고루 있어야 만들 수 있다.
전문성보다는 정치성에 더 우선권이 주어지는 정부 고위관료, 손에 꼽히는 대학을 졸업 하거나 20대 초반에 취득한 자격증 하나만 있으면 정치, 경제, 사회, 방송 등 이곳저곳을 자기 집처럼 옮겨 다닐 수 있고, 그중 일부는 사회제도를 악용해부와 권력을 세습하려는 행 태로는 국가의 밝은 미래를 기대하기 어렵다. 국가의 미래는 여러분이 주인공이며 지금 현실정치에 있는 사람들은 절대 책임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냉철히 인식해야 한다. 세금파티로 표를 모으는 현실정치의 부(負)의 유산은 미래에 여러분의 책임으로 전가되므로 냉철하게 세상을 바 라보면서 여러분의 내일을 향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상규
도호쿠대학 대학원(석사과정)에서 공공법 정책을, 와세다대학 대학원(박사과정)에서 교육학을 전공했다. 저서로 『민족교육: 일본의 외국인 교육정책과 재일 한국인의 교육적 지위』(2017년), 교육의 대화(2017년)가 있으며, 재일본대한민국민단문화상(2011년)과 한국교육학회 운주논문상(2016년)을 수상했다.
MeCONOMY magazine February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