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이코노미 김선재 기자] 두 아버지가 있다. 두 사람은 나라의 부름을 받고 군에 갔다가 한 국국제협력단(KOICA) 국제협력요원에 지원·선발돼 수천㎞ 떨어진 개발도상국에서 군복무를 하던 중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은 설동진·김영우 씨 아버지다. “나라가 부여한 의무를 다하기 위 해 군에 간 아들이 죽었는데 일반 사망이 말이 됩니까.”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식을 잃었다는 슬픔을 가슴에 안은 채 아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대한민국 국가와 슬픈 싸움을 이어가고 두 아버지를 만나봤다.
1995년부터 2013년까지 운영됐던 ‘국제협력요원’. 외교부 산하 정부 대외무상원조기관인 한국국제협력단(KOICA, Korea International Cooperation Agency, 이하 코이카)을 통해 해외 개발도상국에 파견, 해당 국가의 경제, 사회, 문화 발전을 위해 힘쓰는 이들이다. 대상은 현역 입영 자원 중에서 일정한 자격을 갖춘 인원을 선발해 보충역에 편입한 다음 4주간의 기초 군사훈련을 마치면 소집이 해제될 때까지 외교부 장관의 관리·감독 아래 해외 파견을 위한 직무 교육과 해외봉사활동을 하게 된다.
코이카에 따르면 2016년부로 완전히 폐지된 ‘국제협력요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1994년 1월)된 다음 해인 1995년 3월 28명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운영에 들어간 국제협력요원은 2013년까지 1,220명이 파견됐다. 이와 별도로 국제협력의사 220명도 개발도상국에 파견돼 봉사활동을 펼쳤다. 국제협력요원은 청년층에 인기가 많았다. 특히, 남성의 경우는 해외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병역의 의무도 수행할 수 있다는 것 때문에 지원자가 많았다. 고 김영우 씨와 고 설동진 씨도 이같은 이유에서 국제협력요원을 선택했다.
학업 문제로 병역을 계속 연기하다가 징집연령제한에 이르자 2002년 3월18일자로 징집된 고 설동진 씨(당시 만28세)는 육군 제20사단에서 기초 군사훈련을 받고 외교통상부(현 외교부)로 편입돼(병무청소집 34320-94) 코이카에 배속됐다. 이후 8주간의 적응훈련 및 직무교육을 받고 같은 해 8월9일 카자흐스탄의 까라간다시에 있는 까라간다 국립대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교수요원봉사단원으로 활동했다.
동진 씨가 배치된 까라간다시는 카자흐스탄 수도 알마아티에서 북쪽으로 1,300㎞ 떨어진 곳으로, 구한말 고려인들의 강제이주 최종 정착지의 끝 지점이다. 그의 아버지(설희태 씨)에 따르면 동진 씨는 파견돼 있는 동안 현지의 불안한 치안과 음식, 석회질 식수 등의 문제로 큰 스트레스에 시달렸다고 한다. 이후 전립선염과 피부병에 걸리자 파견 1년만에 일시 귀국해 자비로 병을 치료받은 후 복귀해 주어진 임무를 수행했다.
그러던 중 2004년 9월7일 복무기간 만료를 한 달 여 앞둔 시점에서 자택에 침입한 강도 2명에 의해 피살당했다. 동진 씨 나이 서른이었고, 아내와 네 살 난 딸이 있었다. 또 다른 희생자 고 김영우 씨는 2011년 3월 징집돼 논산훈련소에서 4주간의 기초 군사훈련을 마치고 동진 씨와 마찬가지로 외교통상부(현 외교부)로 편입돼 코이카에 배속, 8주간의 적응훈련과 직무교육을 받았다. 영우 씨가 파견된 곳은 스리랑카의 반다라웰라 기능대학 자동차분야 봉사단원이었다.
코이카 복무증명서와 공적조서에 따르면 영우 씨는 당시 자동차학과 강사로서 현지 학생들에게 자동차와 관련된 지식을 전수하고, 지역사회 일자리 창출을 위한 사업을 진행하는 등의 활동을 했다. 영우 씨가 활동했던 반다라웰라 기능대학은 스리랑카의 가장 가난한 주로, 우바주에서도 오지에 속하는 산간지역에 소재했다. 수도 콜롬보에서 6시간 정도 걸리는 곳이다. 현지에서 이같은 봉사활동을 펼치던 영우 씨는 2012년 10월6일 낙뢰에 맞아 23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고 말았다.
공무수행 중 사망했는데 일반 사망이라니요?
생떼 같은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을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까? 멀쩡했던 자식을 군대 보내놨더니 차가운 주검이 돼 돌아왔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찢어지는데 국가는 이들 부모에게 또 한 번 큰 상처를 안겨줬다.
“나라에 의해 징집됐고, 병역의무를 다하기 위해 국제협력요원을 선택해 봉사했다가 사망했는데 순직이 아니라 일반 사망이라는 겁니다. 심지어 사망 당시 신분도 민간인으로 처리 됐어요. 외교부 산하 코이카에서 근무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국가유공자 등록을 끝내 거부해 국립묘지 안장도 못했습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영우 씨의 아버지 김강현 씨는 분통이 터진다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당시 설동진 씨와 김영우 씨의 죽음은 언론에 크게 보도가 됐다. 김영우 씨의 빈소가 마련됐던 서울아산병원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과 김황식 전 국무총리, 강창희 전 국회의장 등이 조화를 보내 안타까움을 표했을 정도다. 아시아경제(2012년 10월12일 기사)에 따르면 김영우 씨 사망 후 강창희 전 국 회의장은 박승춘 전 보훈처장을 면담하면서 “국가를 위해 일하다 숨진 코이카 단원들을 국립묘지에 안장하는 방안을 마련해 줄 것”을 당부하며 “코이카 단원들은 국가를 위해 일한 것으로 공무수행 중에 순직한 것으로 봐야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설동진 씨가 사망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보훈처는 법적 근거가 없다는 점을 들어 국가유공자 등록을 거부했다. 2012년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김일생 당시 병무청장은 “국제협력요원인 고 김영우 씨의 시신을 국립묘지에 안장하는 데 대해 국가보훈처는 현행법상 국가유공자 선정과 국립묘지 안장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면서 “이에 따라 국제협력요원의 지위 재검토 등 국제협력요원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국가유공자에 선정되도록 하는 방안과 상훈법에 대한 훈장 추서 후 국립묘지 안장 방안 등을 외교통상부(현 외교부)와 협의 중에 있다”고 밝혔다(금강일보 2012년 11월7일 기사).
이때도 국립묘지 안장은 결국 이뤄지지 못했다. 설희태 씨와 김강현 씨는 자식을 잃었다는 슬픔에 빠질 틈도 없이 정부와의 긴 싸움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벌써 15년입니다. 이게 나랍니까? 세금도 내기 싫고 이 나라에서 살기도 싫어요. 청와대 앞에서 분신자살이라도 하고 싶어요. 동진이, 영우 모두 의식이 건강하고 올바른 아이들이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사람이 먼저라고 하잖아요. 소중한 생명이 죽었는데 국가가 나 몰라라 하면 이게 개죽음이지 뭡니까. 내 자식의 명예를 찾아줄 겁니다. 이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대한민국 정부와 싸울 겁니다.” 설희태 씨는 울분을 토하며 눈시울을 적셨다.
국가유공자법 제4조, 병역법 제26조 제1항·제75조
설동진 씨와 김영우 씨가 국가유공자로 등록돼 국립묘지에 안장되지 못하는 이유는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국가유공자법)과 병역법에서 국가유공자 대상을 군인과 경찰 등으로 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국가유공자 대상에 ‘국제협력요원’이라는 말이 없어서 국가유공자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 보훈처의 입장이다.
국가유공자법 제4조는 ‘적용 대상 국가유공자’를 밝히고 있다. 그에 따르면 국가유공자가 될 수 있는 대상은 ▲순국선열 ▲애국지사 ▲전몰군경 ▲전상군경 ▲순진군경 ▲공상군경 ▲무공수훈자 ▲보국수훈자 ▲6·25참전 재일학도의용군인 ▲참전유공자 ▲4·19혁명 사망자 ▲4·19혁명 부상자 ▲4·19 혁명 공로자 ▲순직공무원(국민의 생명·재산 보호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직무수행이나 교육훈련 중 사망한 사람) ▲공상공무원(국민의 생명·재산 보호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직무수행이나 교육훈련 중 상이를 입고 퇴진한 사람, 상이 정도가 국가보훈처장이 실시하는 신체검사에서 상이등급으로 판정된 사람) ▲국가사회발전 특별공로순직자 ▲국가 사회발전 특별공로상이자 ▲국가사회발전 특별공로자 등 총 18종류로 구분된다.
병역법에서는 제75조(보상 및 치료)에 해당 내용이 담겨 있다. 현재 시행 중인 병역법을 봐도 좋지만, 보다 정확한 이해를 위해 구 병역법(법률 제7186호, 2004년 3월11일 시행)을 보도록 하자. 해당 병역법 제75조(보상 및 가료)은 국가유공자법에 의해 보상을 받을 수 있는 대상을 ▲군복무(징집 또는 소집돼 관계공무원의 인솔하에 집단 수송 중인 경우 포함)중 전사·순직한 사람의 유족과 전상·공상 또는 공무상 질병으로 인해 전역되거나 병역이 면제된 사람 및 그 가족(제1항) ▲제26조 제1항 제1호의 규정에 의한 공익근무요원(현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 중 순직한 사람(공상 또는 공무상 질병으로 사망한 사람 포함)의 유족과 공상 또는 공무상 질 병으로 인해 제2국민역에 편입되거나 병역이 면제된 사람 및 그 가족(제2항)으로 정했다.
또한 제2항의 ‘순직한 사람’에 대해서는 ‘국가유공자법’ 제4조 제1항 제5호의 규정에 의한 순 직군경의 유족, ‘공상 또는 공무상 질병으로 인해 제2국민역에 편입되거나 병역이 면제된 사람 및 그 가족’은 ‘국가유공자법’ 제4조 제1항 제6호의 규정에 의한 공상군경과 그 가족으로 정의했다. 또한 구 병역법 제26조 제1항 제1호는 공익근무요원의 업무를 ‘국가기관·지방자치단체·공공단체 및 사회복지시설의 공익목적에 필요한 경비·감시·보호·봉사 또는 행정업무 등의 지원업무’로 정했다.
결국 군인과 경찰, 사회복무 요원으로 근무 중 사망하거나 다친 사람만 국가유공자가 될 수 있다는 것으로, 국제협력요원은 사회복무요원과 마찬가지로 보충역에 해당하지만, 처음부터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법이 잘못됐다면 고쳐서라도 한(限) 풀어줘야
설동진 씨의 유족들은 동진 씨 사망 후 3년 후인 2007년 3월20일 수원보훈지청장을 상대로 국가유공자 유족등록을 신청했다. 이에 대해 수원보훈지청장은 같은 해 6월29일 병역법 제75조 제2항이 국가유공자법에 의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공익근무요원의 범위를 규정하면서 병역법 제26조 제1항 제4호 소정의 국제협력요원을 제외했다는 이유로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설동진 씨 유족들은 수원지방법원에 2007년 8월7일 병역법 제75조 제2항이 위헌이라며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했다. 2009년 8월31일 수원지법은 이를 받아들여 10월7일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한 줄기 희망의 빛이 보이는 듯 했지만, 그로부터 약 1년 뒤인 2010년 7월29일 헌재는 5대4로 ‘합헌’ 결정을 내린다.
헌재는 유족이 제기한 병역법 제75조 제2항 중 ‘제26조 제1항 제1호의 규정에 의한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 중 순직한 사람의 유족’이라는 부분이 자의금지원칙에 입각한 평등권을 침해했는지 판단했다. 헌재는 ▲국제협력요원은 강제된 병역의무 안에서도 스스로의 선택이 작용했다는 점 ▲공익근무요원(행정관서요원)과 국익 추구 방법이 다르다는 점 ▲ 국제협력요원은 소집이 취소돼도 소집 이전의 신분으로 돌아가 현역병 혹은 공익근무요원(행정관서요원)으로 복무할 수 있다는 점 ▲국제협력요원은 국제협력요원법에서 직접 규율한다는 점 등을 들어 공익근무요원(행정관서요원)과 국제협력요원을 서로 다르게 취급하는 것은 자의적이지 않고 평등권도 침해되지 않는다고 봤다. 결국 법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반면, 조대현, 김종대, 이동흡, 송두환 등 당시 재판관들은 소수의견을 통해 공익근무요원(행정관서요원)과 국제협력요원을 서로 다르게 취급하는 것은 평등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봤다. 소수의견을 낸 재판관들은 “같은 공익근무요원인 행정 관서요원과 국제협력요원간 병역의무 성격 및 병역의무 이행에 따른 공헌, 희생의 내용이 다르다고 보기 어렵다”며 “따라서 행정관서요원은 순직한 경우 국가유공자로 대우하고, 국제협력요원은 대우하지 않는 것은 평등원칙 위반”이라고 판단했다.
설희태 씨는 “이 법에 근거해 똑같이 징집됐는데, 총을 들고 전방, 일선에서 죽은 사람은 국가유공자가 될 수 있고 우리는 왜 될 수 없는지 이해할 수 없다”면서 “이런 제도를 만들고 운용한 것이 나라인데 너무 옹졸하고 편협한 생각이 든다. 법이 잘못됐으면 고치고 한을 풀어줘야 하는데 그 누구도 자기 자식이 아니라고 외면한다. 어떻게 국가를 믿고 자식을 군대에 보내겠냐”고 비판했다.
부처 간 ‘핑퐁게임’ 반복
15년 넘게 이어진 정부와 유족들의 긴 싸움은 새 정부가 들어섰는데도 여전히 답답한 모습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이후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기치 아래 불합리하게 이뤄졌던 과거 관행들을 바로 잡는 행보를 보이고 있지만 부처 간 핑퐁 게임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국가유공자 문제와 관련, 이번 정부에서 이뤄진 ‘김훈 중위’ 와 ‘세월호 참사의 단원고등학교 기간제 교사’에 대한 순직 인정 및 국립묘지 안장이 대표적이다.
‘김훈 중위 사건’은 1998년 2월24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JSA) 내 지하벙커에서 관자놀이에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된 김훈 중위(당시 25세)의 사망 원인을 둘러싼 대표적인 군 의문사 사건이다. 당시에는 ‘자살’로 결론이 났었지만, 현장감식 두 시간 전 이미 자살보고가 이뤄졌고, 현장이 훼손됐었다는 점들이 밝혀지면서 초동 수사 부실 논란과 함께 타살 가능성이 제기됐다.
지속적인 타살 가능성 제기와 대법원의 판결, 국가인권위원회의 ‘순직 인정’ 권고에도 불구하고 ‘자살’ 입장을 바꾸지 않았던 국방부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2017년 8월31일 중앙전공사상심사위원회에서 19년 만에 김 중위의 죽음을 ‘순직(사망 형태 불명의 사망)’으로 인정했다. 그리고 같은 해 10월28일 김 중위의 유해는 대전 국립현 충원에 안장됐다.
단원고 기간제 교사의 순직 인정 및 국립묘지 안장은 문 대통령이 작년 스승의 날 이들의 순직 인정을 지시한 지 43일 만에 이뤄졌다. 주무부처였던 인사혁신처는 이를 위해 공무원연금법 시행령을 개정, 시행령 제2조 적용대상 ‘국가 또는 지자체 정규 공무원 외의 직원으로서 인사혁신처장이 인정하는 사람’에 ‘4·16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에 따른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포함시켰다. 개정안은 같은 해 6월27일 국무회의를 통과했고, 지난달 17일 대전국립현충원에 안장됐다.
반면 징집돼 국제협력요원으로 파견됐다가 사망한 이들에 대한 국가유공자 인정 문제는 여전히 답보상태다. 코이카에 따르면 국제협력요원으로 파견됐다가 사망한 사람은 총4명(자살 1명 제외)이다. 그러나 병무청·보훈처·외교부 등 관계 부처는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핑퐁게임’만 반복될 뿐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외교부가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나머지 부처들이 소극적이다 보니 제자리걸음의 연속이다.
국가 보훈처 “병역법 개정은 병무청 소관”
국가보훈처 관계자는 이 문제에 대해 “현행법이 국제협력요원을 국가유공자 대상으로 포함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심사대상이 아닐뿐더러, 헌법재판소에서 이 부분에 대해 합헌결정이 났기 때문에 병역법이 개정되지 않고서는 어렵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이 관계자는 “공익근무요원과 국제협력요원이 유사함에도 불구하고 공익근무요원은 국가유공자·보훈 보상대상자 심사 대상자 요건에 해당되는데 왜 국제협력요원은 해당이 안 되느냐는 것이 위헌심판의 핵심인데, 5대4로 합헌이 됐기 때문에 현행법이 적법하다는 것”이라며 “보훈처가 국가유공자 심사라든가 등록을 하기 위해서는 병역법이 개정돼 국제협력요원이 국가유공자·보훈보상대상자 요건에 해당돼야 하지만, 현재는 그렇지 않다. 병역법 개정은 병무청 소관”이라고 말했다.
병역법과는 별개로 국가유공자법을 개정해 국제협력요원을 대상에 포함하면 되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선행법인 병역법에는 없는데 국가유공자법에만 이 부분을 넣으면 법체계가 이상해진다”며 수동적인 입장을 전했다.
법조계 관계자 “정부 부처가 전향적인 입장 가져야”
법조계 관계자는 “헌재 결정문은 해당법이 형평성에 맞는지 여부를 고려해볼 때 해당 법령에 국제협력요원을 국가유공자로 하는 내용을 넣지 않았다고 해서 그것이 법적 평등성을 침해한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지 국제협력요원을 국가유공자로 인정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헌재 결정문을 갖고 관계 부처들이 이야기를 하는데, 숫자에서 졌을 뿐 소수의견이 결코 틀린 논리는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또한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을 수 있는 범위를 더 넓게 해 놓은 상황에서 다시 헌법소원을 걸었을 때 같은 결론이 나오리라고 장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면서 “여전히 국제 협력요원 제도가 존속됐다면 포함될 수 있는 요인이 보여진다. 법이 통과된다고 해서 국가유공자가 되는 것은 아니고 별도의 심사를 거쳐야 하는데, 그것조차도 막는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국내에서 근무하는 공익근무요원은 국가유공자로 인정을 받을 수 있고, 해외파견 나간 사람은 인정을 못 받게 돼 있는 것이 좀 우스운 점이다. 정부 부처가 전향적인 입장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고 충고했다.
병무청 “병역법 개정 필요성 느끼지 못해”
병무청은 국제협력요원에 대해서는 별도의 법이 있었으니 당시 보상규정이 필요했다면 국제협력요원법에 규정되는 것이 맞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즉, 병역법 개정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병역법에 대한 위헌법률심판 당시 병무청은 “병역법은 개별법이 없는 현역병과 공익근무요원 중 행정관서요원에 대한 보상을 제75조에 규정하고 있다” 면서 “따라서 국제협력요원에 대한 보상신청 대상법률은 이 사건 조항(병역법)이 아닌 국제협력요원법을 적용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힌 바 있다.
병무청 관계자는 “예전에 사고가 있었을 당시 검토가 돼서 병역법으로 보상이 어렵고 필요하 다면 국제협력요원법이 개정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부분이 있다”며 “내부적으로 검토가 되다가 국제협력요원 제도가 폐지가 되면서 이후 검토가 된 부분은 없다”고 전했다. 또한 “국제협력요원법도 폐지가 됐고, 병역법에서도 관련 규정이 다 삭제가 된 상태인데, 지금 개정을 한다고 해도 과거의 모든 사례를 보상할 수 있을지, 소급을 한다면 어디까지 할지, 국제협력요원만 인정을 할 것이냐, 병역법상 모든 대체복무자를 대상으로 할 것이냐 이런 부분들도 문제가 된다”고 부연했다.
유족, “우리는 아들을 군대 보낸 것이지 해외파견 보낸 거 아니다”
이와 관련해서 김강현 씨는 “국제협력요원으로 파견됐다가 소집이 취소된 사람에 대해서는 다시 데려와 현역병이든 공익근무요원이든 병역자원으로 써먹으면서 파견됐을 때는 나 몰라라 하는 것이 나라가 할 짓이냐”며 “우리는 아들들을 ‘군대’에 보낸 것이지, 해외파견 보낸 것이 아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외교부 “관련 부처에 지속적으로 협조 요청”
외교부는 국제협력요원으로 파견됐다가 사망한 이들을 국가유공자로 인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보고, 관련 부처에 지속적으로 협조를 요청하고 있다. 외교부 관계자는 “국제협력요원이 현재 없어진 제도이기 때문에 법을 개정하는 부분에 있어 기술적인 어려움이 있는 것 같다”면서 “국제협력요원 제도가 없어져서 대상 자체가 특정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계속 존재를 했다면 이런 법을 만드는데 타당성이 있는데, 지금의 경우는 국제협력요원에 대한 내용을 포함시키는 것이 기술적으로 가능한지 모르겠다. 우리 입장에서는 충분히 실익이 있고 타당한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을 전했다”고 말했다.
국회를 통해 관련법의 개정을 추진하는 방법도 있지만, 정부 부처가 해당법 개정에 반대하고 나서면 법통과가 어렵다는 것이 국회 관계자의 설명이다. 결국 관계 부처의 입장이 가장 중요하다는 의미다.
부처 의지 중요, 국가유공자 개념·범위도 새롭게 바꿔야
이 문제는 15년 넘는 기간 동안 제자리걸음에 머물고 있다. 법의 내용이 사회 현실과 인식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으며 각 부처들 또한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관련법들이 지금까지 수십 차례 개정이 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사회 인식과는 괴리도 크다. 복무형태가 어떤 것이든 병역법에 근거한 나라의 징집 명령에 응소했고, 나라가 부여한 병역의무를 수행하던 과정에서 목숨을 잃었다면 국가가 나서서 이에 대한 적절한 보상과 대우가 수반돼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김훈 중위가 순직 처리돼 국립묘지에 안장될 수 있었던 것도 사건 발생 19년 만에 국방부가 입장을 바꿨기 때문이고, 단원고 기간제 교사들의 희생이 순직으로 인정받아 국립묘지 안장까지 갈 수 있었던 것도 관련 부처가 법까지 바꾸면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국가에서 징집 시킬 때는 ‘조국의 아들’, 복무 중에 죽거나 다쳐서 전역하면 ‘남의 아들’이 라며 누가 국가를 믿고 자식을 군대에 보내겠는가. 30~40년 전 정해진 국가유공자의 개념과 범위를 현실에 맞게 바로 잡고 국가유공자를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MeCONOMY magazine February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