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이코노미 최종윤 기자] 지난해 9월2일 전남 영암군 대불산단 작은 공장에서 끔찍한 사고가 발생했다. 도장작업을 하던 박연채(50) 씨가 사고로 지게차에서 떨어진 H빔에 오른팔이 절단된 것이다. 박씨는 “분명 일용근로자로 일했는데, 개인사업자도 아닌 제가 도급업자로 둔갑해서 산재인정도 못 받았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본 사건을 취재했다.
“한 번도 늦은 적 없이 오전 8시 이전에 출근했죠. 점심은 사업주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식사했고요. 그런데도 사업주는 도급이라고 주장하니 ......”
민원을 제기한 박연채 씨는 각종 작업을 하면서 도급비 명목으로 돈을 받은 적도 없고 자신은 그 작업이 얼마짜리인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일을 시킨 사업주가 해당 공사에 대해서 언급자체도 하지 않았다는 것.
“제가 어떻게 도급업자입니까? 사고가 나니까 사업주가 갑자기 지게차 임대료도 지급하지 않고 있는 것 같아요. 저는 개인사업자도 아닙니다. 사업이 망한 이후로 공사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여기저기서 일하면서 하루하루 벌어먹고 살아요.”
사고가 발생해서 팔 하나를 잃었는데도 근로복지공단은 박씨에게 산재를 인정해주지 않았다. 신체 일부를 잃은 것도 억울한데 당장 살길이 막막해서 죽고만 싶다는 박 씨는 힘없는 사람은 이래저래 피해자로 살아야 하는 대한민국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겠냐며 분개했다.
해당 사건은 지난해 9월2일 오전 9시50분 경, 전라남도 영암군 대불산단 도장공장에서 H빔 도장작업 중 발생했다. 박씨가 지게차 포크에 실링바를 채워 H빔을 들어 올린 후, 지게차에서 하차해 H빔 위치를 조정하던 중 실링바가 터지면서 떨어지는 H빔이 박 씨의 오른쪽 팔을 강타한 것. 이 사고로 박 씨는 한쪽 팔을 잃었다. 이후 박 씨는 업무 중에 일어난 사고기에 산재보상이 될 줄 알고 신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근로복지공단 목포지사는 재해자 ‘박연채’를 (유)○○ 소속 근로자가 아닌 ‘도급업자’로, 또 (유)○○에는 근로자가 없다면서 ‘법 적용 제외사업’에 해당된다며 불승인 판정을 내렸다.
도급으로 계산할 수 없는 비 규격품 일이 대다수
박씨는 2008년에서 2016년도까지 직접 도장사업을 했지만, 불경기로 사업이 어려워지자 사업을 그만두고 2017년 5월경부터 일당으로 전국을 떠돌며 도장작업자로 일했다. 현 사업장에는 지인의 소개로 일하게 됐고 사업주 A씨의 공장에서 지게차, 페인트 등 사업주가 제공한 작업도구로 노무만 제공하면서 각종 도장작업을 해왔다.
“사업주랑 처음에는 도급으로 일을 했어요. 전복여과기 200~500개 정도 물량을 1개당 70만원을 받기로 하고 업무를 시작했었죠. 그러다 생각했던 것보다 물량이 안 나와서 그만 뒀죠. 그런 다음에 현장업무를 총괄하던 김상기(가명) 씨가 일당으로 계산해 준다고 해 그때부터 사업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했어요.”
해당 사업체는 대표인 사업주와 프리랜서 개념인 김상기(가명) 씨가 영업을 해서 계약을 따오면 그 일을 박 씨가 해당 도장업무를 도맡아 하는 구조였다고 한다. 계약에서부터 세금계산서 발행 등은 사업주가 담당했고 사업체의 물건 입출고, 지게차 운전, 공장 내 기계수리 공장 청소·정리 관리 등은 모두 박씨가 했다.
“사업장에서 전복여과기 도장작업, 배전판 도장작업, 테라스 도장작업, 데크주행빔 도장작업, 김건조기 도장작업 등 해당 사업장의 모든 일을 제가 다 했어요. 다른 직원은 없었으니까요. 그 일 자체가 대부분 규격품이 아니라서 도급으로 계산할 수 없는 일이에요.”
근로복지공단 목포지사 조사복명서에 따르면 김상기 씨는 “규격품 도장 외에 각종 철구조물, 등표, 조선 의장품, 체육관 철구조물, H빔 등 도장작업을 하면서 도급이나 월급으로 정산할 수 없어서 일한 날 수로 계산해 준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실제 지난해 3월경 사업주에게 재해자의 일당을 20만원 정도로 해야 된다고 사무실에서 사업주에게 말했다”고 진술했다.
실제 김상기 씨는 사업주에게 박연채 씨의 입금계좌와 인건비를 입금해 달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고. 김 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다른 업무들은 몰라도 내가 소개한 공사에 대해서는 탁상달력에 직접 일한 날을 체크해 임금을 계산했다”면서 “사고가 발생한 건도 인건비 계산을 위해 일한 날을 체크했다”고 말했다.
총 도장공사비 4,300만원 중 500만원 지급
… 업계 관계자 “누가 이 금액에 도급을 받냐”
업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재해자인 박 씨가 말했듯이 도급으로 볼 수 있는 전복여과기 도장작업의 경우 박 씨는 개당 70만원을 받았다. 이에 대해 박씨는 “해당 업무는 도급으로 거의 5대5 비율로 금액을 나눴다”면서 “사업주도 개당 60만원에서 70만원을 가져간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후부터는 계산부터 달라졌다. 박 씨가 진행한 업무 가운데 ‘◇◇도 유원지 디자인 조형물 제작설치’ 등의 도장용역은 총 공사금액은 4,300만원인데 박 씨가 받아간 금액은 500만원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이러한 금액을 도급비로 볼 수 있을까.
광주광역시에서 중견건설업체를 30년째 운영하고 있는 박기남 씨는 “누가 이런 금액에 도급을 받냐”면서 “이런 도급비 계산은 본적도 없고 실제로는 도급이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박 씨는 “만약에 불법하도급 문제를 별도로 하더라도 중간에서 일을 소개해 주는 경우라면 많아도 10%~15%만 가져가는 것이 건설업계의 관행”이라고 말했다. 더욱이 사업주 A씨는 그 어떤 출·퇴근 및 근태관리도 작업에 대해서는 지휘감독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지만, 박 씨의 주장은 달랐다.
“저는 실제 도장사업을 수년간 운영해 본 사람이라 단순히 납기 기일만 알려주면 모든 것을 혼자 처리할 수 있습니다. 이를 알기 때문에 일에 대한 지시나 감독한 일이 없었다고 하는 것 같은데 심지어 점심도 사업주가 운영하는 공단식당에서 점심을 먹었기에 업무상황 등을 수시로 체크할 수 있는 상황이었죠. 점심값도 사업주가 부담했고요.”
기자가 (유)○○ A사업주와도 통화 후 대화를 시도했지만 사업주는 “고용노동부와 근로복지공단에서 ‘도급’이라고 판단했다”면서 “나는 할 말이 없다”고 말하며 해당사건에 대한 답변을 거부했다. 근로복지공단 목포지사에서 박연채 씨를 ‘도급업자’로 판단하면서 이후 임금체불, 산재은폐 등 신고에서 박 씨 사건은 별다른 판단도 받아보지 못하고 내사종결돼 버렸다. 박 씨의 주장에 따르면 사업주에게 못 받은 일용임금은 근무일수에 따라 일당이 지급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도급업자로 판단되는 사유가 돼 버렸고, 이후 도급업자라는 주홍글씨는 고용노동부 임금체불·산재은폐 의혹에서 결정적 내사종결 사유가 돼 버린 셈이다.
해당 사안, 근로자로 판단할 가능성 높아
근로복지공단의 형식적 산재 승인·불승인 판단 부분에 대한 지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근로복지공단이 사업자라는 이유로, 도급이었다는 이유로 형식적 산재 불인정 판단을 내리면서 계약의 형식보다는 근로제공과 근무형태 등 실질적 판단을 하는 법원에서 패소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내부적으로도 이에 대한 문제 인식은 있다.
고용노동부에서는 지난해 8월 근로복지공단에 ‘화물운송(지입)차주 산재보험 적용여부 판단 기준’ 내부 지침을 내리기도 했다. M이코노미뉴스가 입수한 해당 문서는 ▲화물운송(지입) 차주의 경우에 운송업무 외의 업무(물품포장, 창고정리 등)를 수행하는지 ▲보수가 운송 건당 지급되고, 결행이 있으면 삭감되는지 등 운송량의 변화에 따른 손익의 위험을 화물지입차주 스스로 부담하는지 등 구체적으로 판단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번 사건은 어떨까. THE보상 법률사무소 유정은 변호사는 “이번 사건에서 나온 정황을 볼 때 개인사업자도 아닌 박연채 씨는 근로자로 판단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은 사안”이라며 “실제 법원은 개인사업자인 지입차주의 경우에도 계약의 형식이 고용계약, 도급계약 또는 위임계약인지 여부보다 근로제공 관계의 실질을 살피고 있다”고 조언했다.
유 변호사는 “회사 내 유일한 지입차주로 근로복지공단이 재해자가 사업자등록·차량유지비 등을 부담함을 들어 근로자가 아니라고 판단한 사안(2015구단53025)에서도 법원은 ▲다른 사업체의 물품을 운송하는 일은 하지 않은 점 ▲운송업무외 포장업무나 물품정리 등 일을 수행한 점 ▲운행비 외 유류비, 식비를 사업주가 부담한 점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근로자로 인정한 사례가 있다”고 소개했다. 또 대법원에서 사업자등록에 도급계약을 맺고 투입된 팀 5~8명을 이끄는 작업반장도 근로자로 본 사례도 있다. 지난해 8월말 대법원은 ▲자재의 구입비용을 사업주가 부담했고, ▲보수가 시공면적보다는 투입인력을 기준으로 산정한 점을 들어 그간의 법원의 해석을 뒤집었다.
‘도급’이면, 불법하도급 문제 발생 여지 있어
최근 산업재해 사망사고가 하청·외주업체 노동자들에게 집중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원청과 하청간의 업무협조 및 정보 공유 미흡으로 2016년 5월28일 ‘구의역 스크린도어 협착사고’가 발생했고, 과도한 업무할당과 안전교육 미비로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근무하던 故 김용균 씨가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사망하는 사고가 지난해 12월11일 발생했다. 이외에도 여전히 건설현장에서는 많은 노동자가 나 홀로 위험에 노출돼 활동하고 있다. 1인 사업자등록을 하지 않으면, 또 도급형태가 아니면 일을 할 수 없는 구조인 것. 지게차나 덤프트럭 등 중장비 기사뿐 아니라 각종 도장작업을 하는 인력들이 이런 형태로 근로를 제공하고 있다.
이번 박연채 씨의 사고의 경우는 이 같은 구조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아예 근로계약서도 없고, 도급계약서도 없다. 이에 법원은 계약의 형식보다는 근로제공과 근무형태 등 실질관계를 파악해 근로자성을 인정하고 있지만, 산업재해사고 보상에 대해 1차적인 판단을 하는 근로복지공단은 사업자라는 이유로, 도급이었다는 이유로, 근로계약서가 없다는 이유로 여전히 형식적 판단을 하고 있다. 1차적인 조사에서 보다 세세한 증거수집과 업계현황 조사 등이 아쉬운 대목이다. 근로복지공단의 판단에 불복하고 이후 법원에서 소송을 통해 구제받을 수도 있겠지만, 그 기간 동안 재해자 자신은 물론 가족들의 눈물은 누가 닦아줄 수 있을까.
해당 사건은 고용노동부와 근로복지공단 목포지사가 판단한 것처럼 박연채 씨가 도급업자고, 근로자가 아니라면 해당 사업체가 취해온 대부분 업무는 재하도급 금지 위반여부가 문제될 수 있다. 취재 과정에서 드러난 업계 관계자들의 말 등을 종합해 볼 때, 현재 전남 영암군 대불산단에는 각종 공사 밑바닥에서 불법하도급이 만연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자는 해당 문제를 후속 취재해 다음호에 실을 예정이다.
MeCONOMY magazine March 2019